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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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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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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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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7.07.3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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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DUMMY

야율격의 회오리 바람이 남궁이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간다. 회오리 바람은 마치 먼지를 자양분으로 삼는 것인지 점점 커졌고 점점 커짐에 따라 더 많은 먼지가 회오리 바람으로 말려 올라갔다.

“눈을··· 뜨기 어렵군.”

경표가 눈을 보호하려는 듯 손으로 눈을 감싸며 투덜거리듯이 말한다.

당수진은 어떻게든 두 눈을 부릅뜨고 남궁이현을 찾으려 했지만 남궁이현은 이미 회오리 바람 속에 갇힌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남궁이현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미동도 없이 검을 가슴 앞에 곧추세우고 다가오는 회오리바람을 바라보고 있다.

어디를 벨 것인가?

어디가 바람의 근원이고 핵인가?

단 한번의 벰이 있을 뿐이다.

지금 상대가 시험하는 것은 남궁이현의 검이 아니다. 남궁이현의 눈이다.

남궁이현이 회오리의 핵을 찾지 못하면 회오리에 휩쓸린 뿐이다.

남궁이현이 서서히 팔을 조금 위로 뻗으며 검을 들어올린다. 베려는 것이다. 남궁이현의 검에 퍼렇듯 하얀 강기가 얇게 피어올라 검신劍身을 감싼다.

핫~

남궁이현이 단 한번의 짧은 기합성을 지르며 검을 베어갔다.


야율천은 야율격의 회오리 바람 속에서 퍼렇듯 하얗게 반짝거리는 것을 본다. 아마 상대의 검일 것이다.

‘저 검이 어디를 벨 것인가?’

야율격이 회오리 바람 속에서 먼저 상대를 향해 공격을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바람 속에 자신과 검을 숨기고 있는데 굳이 선공을 통해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 회오리 바람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저 회오리는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다. 상대가 다급한 마음에 엉뚱한 곳을 공격하는 순간의 빈틈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회오리 바람 속에서 퍼렇듯 하얗게 번쩍거리는 것이 어느 순간 섬광 같은 것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동해상단의 무인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회오리 바람 속에서 섬광 같은 것이 번쩍하면서 일더니 어느 순간 붉은 색감이 회오리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먼지를 자양분으로 삼아 커지던 회오리는 붉은 색감을 빨아들이자 급속도로 그 기세를 줄여 나가더니 이내 잦아 들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회오리 바람은 완전히 멈추었다. 다만 공기 중에 비산한 먼지가 아직 바닥으로 내려 앉지 않아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당수진은 두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늦가을의 쌀쌀함 속에서도 손에 땀이 맺혔다. 그런 당수진의 손을 누군가가 가만히 잡아준다.

당수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느 순간에 왔는지 공녀가 서있다. 냉보모의 안내로 이곳에 올라온 것이다. 해정으로 온 일행 중에 얼굴이 알려진 관지선을 빼곤 모두가 해정산 중턱으로 올라온 것이다.

공녀의 눈은 당수진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그래서 공감할 수 있다는 소통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묵진휘를 걱정해 봤기 때문이다. 절망이라는 벼랑 앞까지 갔다 와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수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당수진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 당수진이 공녀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아갈 즈음 허탈하면서도 메마른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야율격~”

야율천의 중얼거림이었다. 그 중얼거림은 낮은 목소리였지만 해정산 중턱에 모여든 모든 사람의귀에 똑똑이 들렸다.

해정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격전이 벌어졌던 곳을 응시했다. 이제 먼지는 가라앉아 있었다. 먼지가 가라앉은 곳에 한 사내는 쓰러져 있었고 다른 한 사내는 쓰러진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쓰러진 자는 장년인이었고 서있는 자는 젊은이였다.

야율천은 쓰러진 야율격으로부터 시선을 거두더니 묵진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차례군.”

소름 돋도록 냉정한 목소리였다. 야율격이 쓰러진 모습을 본 순간에 보였던 약간의 동요와 허탈함도 어느새 사라지고 원래의 차갑고 거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보다 고수의 검에 가는 것도 무인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결말이지.”

야율천이 묵진휘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듯 내뱉었고 묵진휘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기실 그러했다. 무인은 무武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다. 무武란 필연적으로 대결을 동반한다. 대결을 동반하지 않는 무武란 춤이나 기예와 다름 없을 것이다. 대결이 있으면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대결에서 패자란 십중팔구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로, 장수將帥에게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였으나, 무인에게 패배는 무가지일사武家之一事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야율천이 기이하게 생긴 자신의 검을 살랑살랑 흔든다. 검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이리저리 휘날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검에 변화變化를 추구하려는 것은 아닌 듯했다. 검이 이리저리 가볍게 흔들리는 동안 검 자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얄팍하게 생긴 검신에 하얀 강기가 녹이 슬 듯 검신을 뒤덮기 시작하더니 급속도로 두터워져 이내 원래 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하얀 강기 덩어리가 거대한 도처럼 형성되었다.

야율천의 하얀 강기로 된 도刀를 보며 감탄을 토해내는 사람도 있었다.

“가라”

야율천이 순간 단호한 기합성과 함께 하얀 강기剛氣로 된 도를 앞세우곤 신형을 묵진휘에게로 쏘아갔다. 다시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실로 한 점 군더더기 없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직선적인, 그래서 패도적인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율천의 공격을 가만히 바라보는 묵진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야율천의 강기로 된 도가 자신에게 이를 즈음 검을 수직으로 한 번 베었을 뿐이었다.

야율천의 공격이 가장 단순하고 가장 직선적이면서 한 점 군더더기가 없었다면 묵진휘의 방어처럼 보이는 베기는 그저 한번의 휘두름일 뿐이었다. 단순함 자체를 논하기에도 어색한 단순함이었다.

야율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검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강기로 된 도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손은 검의 손잡이만을 잡고 있었다.

상대의 검과 부딪히는 충격도 없었다. 그런데···

야율천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자 검신劍身이 바로 자신의 발아래 떨어져 있었다. 본래 검의 손잡이 부분과 붙어 있었을 검신 부분은 매끈한 표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러진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것에 잘린 것이다.

어리둥절한 상태가 어이가 없는 상태로 바뀌었다. 강기로 두텁게 휩싸인 자신의 검을 아무런 느낌도 없이 베어버릴 수 있는가?

야율천이 묵진휘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냥 검이다. 보검이라 불릴 만한 것이 분명 아니다. 야율천은 묵진휘의 검에서 검기劍氣나 검강劍剛을 보지도 못했다. 검기나 검강도 없이 자신의 검강을 잘라버려?

야율천이 다시 묵진휘를 가만히 바라본다. 묻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하지만 묵진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묻지 말고 스스로 찾으라는 뜻이다. 무인은 스스로 찾는 사람이다.

야율천이 묵진휘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다. 한번의 가벼운 휘두름으로 자신의 검강을 베었다면 살과 뼈로 된 자신의 몸뚱아리를 함께 베지 못할 까닭이 없다. 다만 그리하지 않았을 뿐이다.

야율천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큰 가르침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배움이 시작될 수 있고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야율천이 입을 열었다. 짧은 정적의 순간, 모든 생각이 정리된 듯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가르침에 감사하오. 나는 이제 새외로 돌아가겠소.”

야율천이 묵진휘에게 포권으로 인사한 후 몸을 돌려 야율격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가선 야율격을 들쳐 메더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니···”

야율격을 둘러메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는 야율천의 뒷모습을 보면서 염풍상단의 손천기 총관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우선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른 채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바라보는 염풍상단의 단주 얼굴을 쳐다봤다 피했다 하더니 동해상단의 두원 단주와 서홍 총관을 쳐다봤다 피했다 했고 묵진휘와 남궁이현을 쳐다봤다 피했다 한다.

“내기는 끝난듯하오. 여기 수결手決을 하시지요.”

서홍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손천기에게 종이 한 장을 내민다.

내기 결과, 동해상단이 이겼으며 염풍상단으로서는 이견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서홍이 내민 종이를 떨리는 손으로 받으려다 말고 염풍상단 단주를 바라봤다 다시 종이를 받으려하더니 멈추곤 다시 염풍상단 단주를 힐끗 바라보기를 반복하는 손천기를 지긋이 바라보던 두원이 나서 한마디 한다.

“이리 주게”

서홍이 두원의 말에 손천기에게 주려던 종이를 두원에게 내밀었다.

“괜한 일을 하신 듯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지요. 계약은 계약이니. 단주께서 꼼꼼히 읽어 보시고 수결해주시지요.”

두원이 염풍상단 단주에게 종이를 내민다.

대결 전에 염풍상단 단주가 두원에게 낙찰을 괜한 일이라고 놀린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염풍상단 단주는 수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비빌 언덕이 있으면 비빌 생각이었지만 언덕은 커녕 비빌 풀 한 포기만한 여지도 없는 대결이 되어 버린 탓이다.

이번 계약으로 인해 입을 막심한 손해를 생각하자 분한 마음이 일어 수결을 하는 손끝이 떨렸고 경쟁관계에 있는 동해상단의 단주 앞에서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자니 분노가 더 솟구치는 염풍상단의 단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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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191. 결심決心 +3 17.08.19 2,240 45 9쪽
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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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1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3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3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3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9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1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4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5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70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2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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