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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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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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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60. 동굴 수련

DUMMY

“이끼도 점차 줄어들고 큰일이군.”

백의의 걱정에 흑의마저도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면 확인할 수 있는 뻔한 상황이었다. 요즘 묵진휘가 먹는 이끼의 양은 극히 작아 거의 먹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오의붕경은 달랐다. 지속적으로 이끼를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굴의 주인이었던 적대강은 먹고 마시는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은 항상 바닥 조그만 샘에 가득 차있었고, 동굴의 이끼는 워낙 생육이 왕성해 며칠이 지나면 금방 새로 돋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달랐다. 묵진휘를 빼더라도 오의붕경 다섯 명이 이끼를 먹어대자, 자라는 속도가 먹어서 없어지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 줄여야겠군”

“더 줄이더라도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군.”

적의의 말을 황의가 걱정으로 받는다.

“빨리 묵대협이 단서를 풀어야 할 텐데···”

백의가 염원을 담아 조그만 석실에 있는 묵진휘를 바라본다. 묵진휘가 다시 좌대에서 공중에 부양해 있었다.

“얼마나 된 거야?”

흑의가 묻는다.

“글쎄, 이전에는 일다경 정도였고 얼마 전에만 해도 길어야 한식경이었는데 지금은 반각을 넘고 있는 것 같아.”

적의가 답한다. 사실 적의는 반각이 넘는 것 같다고 했지만 이미 일각을 넘고 있었다. 동굴에 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관념은 물질에 의지하고 물질은 자연의 이치 속에 있다. 그런 의미로 관념은 자연 속에 사는 물질로서의 인간 존재 속에 있는 부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관념과 물질, 자연의 이치 사이에는 영향이 직선 방향으로 흐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물질과 자연에 대한 관념이 깊어지면서 물질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로운 자연의 이치를 깨우친다. 깊어진 관념은 의념으로 발전하고 의념은 물질을 조절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자연의 이치를 찾아 현실을 재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물질이 있고 수많은 자연법칙이 뒤섞여 돌아간다. 사람의 관념이 어찌 모든 물질을 알고 모든 자연법칙을 알 것인가? 하지만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모르던 새로운 물질과 물질의 특성을 발견해 새로이 적용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현실의 이치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긴 묵진휘는 이제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 존재를 자신의 의념을 깊게 하고 확대해 꺾어 보려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의념의 공간, 그것을 묵진휘가 창출하려 하는 것이다.

처음 공중부양을 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그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그 존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묵진휘는 공중부양을 하고 있었지만 당연히 자신이 다시 떨어질 수 밖에 없음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묵운기를 사용해 억지로 버티려 했었다. 그것도 수련인지라 처음에는 잠깐 떠 있었으나 그것이 일다경, 한식경, 반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자신이 떨어진다고 당연 전제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은 자신의 의념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떠 있고자 한다면 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정도는 되었다. 떠 있고자 한다면 한정 없이 떠 있을 수 있었다.

엄청난 발전이다. 동굴에 들어오기 전 묵진휘도 의념을 알고 그 힘을 알았다. 하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있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듯, 인간 속에 있는 의념의 한계를 전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의념의 한계를 규정짓던 전제를 털어버리자 무한한 새로운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묵진휘는 자연의 한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질도 아니며 물질 속에 한계적으로 자리하던 의념의 소유자도 아니다.

지하동굴에 들어오기 전에도 잠과 먹는 것의 제약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몇 일을 자지 않아도 되었고 며칠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결국 먹어야 했고 자야 했다. 결국 몇 십일이 한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 한계가 어디쯤에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묵운기는 묵운내기와 묵운외기로 나누어져 묵운내기는 항상 몸 속에만 있었다. 외부와 조응하기 위해서는 묵운외기를 통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묵운기는 하나가 되었다. 내기와 외기의 구분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밖에 있던 무한한 자연의 기운이 묵진휘의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묵진휘 내부에 있던 기운이 곧장 밖으로 표출될 수 있었다. 내부의 기운과 외부의 기운간 경계가 없다 보니 결과적으론 무인의 내공이란 것이 무한해지는 효과가 생긴 것이다.

원래 묵운신공이 의념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내공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으나 결국 묵운신공의 위력은 내공이라 할 수 있는 묵운기의 위력에 기반하고 있었고 묵진휘가 창출하는 공간도 묵운기에 근거하고 있었다. 다만 의념을 통해 묵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고, 의념을 통해 묵운기로 하여금 공간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의념 그 자체가 묵운기가 되었다. 묵운기와 의념간의 경계도 사라진 것이다.


‘아직 공간을 자유자재로 창출할 수 없다.’

의념의 전제도 없어지고 몸도 변했지만 아직 그 변화가 외부로 맘껏 표출되지 못하고 있었다.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만이라면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었다. 먹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의붕경은 먹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부족했다.

묵진휘가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수련에 집중했다. 다섯 생명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수련을 한 적이 있었던가?



“최호의 황학루를 아느냐?”

교주가 유긍연에게 물었다. 교주, 유긍연, 유혜연, 파파와 주은백 다섯 사람이 오늘은 황학루에 올라온 것이다.

“아무리 제가 공부를 등한 했기로서니 그것도 모르겠습니까?”

유긍연이 짐짓 목청을 가다듬더니 최호의 황학루를 읊는다.


옛사람 이미 황학을 타고 갔고 이 땅에는 다만 황학루만 남았네.

···..

해저물때면 내 고향은 어디일까? 안개 속 강물결이 수심에 젓게 하네.


당나라 시인 최호가 황학루에 올라 지은 시다. 역시 당나라 시대의 시인 이태백이 황학루에 올라 푸른 강물의 그림 같은 풍경을 벗삼아 시를 쓰고자 하였으나 최호의 시를 보곤 찬탄을 금치 못하며, 자신은 뛰어 넘을 수 없는 경지라 한탄하곤 붓을 강물에 씻어 버리고 홀연히 배를 타고 강남으로 떠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유긍연이 황학루를 모두 읊자 유혜연이 박수를 친다.

“제법이구나. 무공 수련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등한히 하면 안된다. 그러면 한계를 넘을 수 없느니라.”

“알겠습니다.”

교주의 말에 유긍연이 대답했고 교주가 주은백을 돌아보자 주은백도 고개를 조금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교주께서 이렇듯 풍류를 즐기실 줄 아니 보기가 참 좋소. 선대 교주께서는 참 외골수였소. 오로지 무공만... 클클”

파파 서은후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눈빛은 회한에 젖어 있다. 전대 교주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대 교주가 사랑했던 여인.

“할아버지는 무서웠어.”

유혜연도 한마디 한다. 선대 교주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손자들에게도 그리 웃어주지 않았다. 현 교주 유태준은 그런 아버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다. 그래서 더 자상하고 따뜻해지려고 노력한 것이다.

“자네는 황학루에 올라오니 무엇이 좋은가?”

교주가 이번에는 주은백에게 묻는다. 유혜연이 조심스런 얼굴로 주은백과 교주를 번갈아 본다.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바람이라··· 그래 그것도 좋은 구경이지. 허허”

주은백의 말에 교주가 웃는다. 자신이 본 그대로다. 바람 같은 녀석이다. 하지만 곧 달라질 것이다. 교주는 확신했다.

“아빠는 황학루에서 뭐가 제일 좋으세요?”

유혜연이 교주에게 묻는다.

“그게 잘 모르겠구나. 젊은 시절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삭막하고 거친 청해가 답답하고 싫었지.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좋았다. 중원이 부러웠지. 청해로 쫓겨간 것에 화가 많이 났다. 언젠가는 중원을 다시 정복하리라 다짐했지. 그 다짐을 이곳 황학루에서 이십 여 년 전에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이곳도 좋지만 새삼 청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삭막하고 거친 곳이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곳이지. 청해도. 하하하”

교주의 얘기에 유긍연과 유혜연이 조금 아득한 눈길로 교주를 바라본다. 교주인 아버지가 평생 선대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안다. 선대의 숙원은 거칠고 황량한 청해에서 벗어나 당당히 중원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 숙원은 지금 유긍연의 가슴속에서도 뿌리 깊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청해도 나름 멋이 있다니?

“교주께서 그리 생각하시니 정말 훌륭하시오. 선대 교주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었소. 중원에 대한 숙원이 심장을 지배하는 바람에 가슴에서는 항상 불이 치솟았고 머리에 다른 잡생각은 다 타버리고 없었지. 그래서 삶이 메마르고 힘겨웠던 거요. 달리 생각하면 얼마든지 달리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을···”

파파 서은후가 더욱 회한이 깊어진 눈으로 교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대 교주가 지금 교주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그의 사랑을 받아 들였으리라. 하지만 그의 가슴에 타오르는 불길이 너무 거셌다. 서은후 자신마저 타버릴 것 같았기에 그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주은백은 그런 교주를 보며 신기할 정도로 이해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 스승께서 평생 그리워하셨던 것도 저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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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3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1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6 4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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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10 4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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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4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3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10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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