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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반영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36
최근연재일 :
2022.08.01 21:00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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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수 :
44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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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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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조사

해당 작품은 가상의 작품으로. 특정 단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서막-조사>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광신도 토벌도 지난날이 되었다.

사회와 언론은 해당 사건을 크게 다뤘으며, 작전에 참여한 히어로와 경찰에게 크나큰 찬사를 보내었다.

그러나 정작, 신문 기사 어디에도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이트의 출현여부와 마지막 방에서 사라진 금발 남자에 대한 정보.

진 선생님을 통해 물어도 돌아오는 건 그런 일 없다는 답변뿐.

주위에서 초조한 것은 나뿐이었다.


“후우.”


내 방에 위치한 노트북이 놓인 책상 앞.

나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으는 일을 그만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다들 일부러 숨기는 걸까.”


경찰과 히어로 협회가 무언가를 숨기려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지 않다면 있던 것을 없다고 말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정보의 한계였다.

내가 가진 정보로는 진실을 숨기려는 의도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검은 명함을 들어, 손가락 사이에서 만지작거렸다.


‘옛날에 나였다면 이유가 있다고 여기고 넘어갔겠지만···.’


검은 명함을 내려놓고. 명함에 적힌 글씨를 그대로 검색 창에 옮겨 적었다.


‘큐브(cube).’


팔 년 전까지만 해도 랭킹 일 위를 차지하고 있던 히어로 사무소.

현재는 큐브의 책임자가 바뀌면서 하락세를 걷고 있으며, 암암리에 용병과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 히어로사무소다.


“또한 한국의 몇 안 되는 일급 초능력자가 셋이나 모인 사무소이다······.”


나는 인터넷의 글에서 눈을 뗐다.

노트북을 덮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세 명의 일급 초능력자가 모인 히어로 사무소.

일급 초능력자라는 단어에 잊을 수 없는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내 자존심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겠지.’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이제 와서 스스로의 무력감을 곱씹어 봤자 무의미했다.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었다.


‘안녕, 주인공.’


스쳐 지나간 기억에 입안이 메말랐다.

나는 양 손으로 머리를 헝클이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갑작스레 이매탈을 쓰고 나타나서 하양이를 데려간 강혁.

알 수 없는 일투성이인 사건이었지만. 그의 등장만큼 의아한 일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강혁과 함께 온 여자도 있었지······.’


나는 드러누운 채로 입 꼬리를 비죽였다.

그녀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신비로운 존재이긴 하였다.


“트윈클라운······.”


나는 문득 떠오른 기억에 상체를 일으켰다.

곧바로 책상 앞을 향해 움직여 노트북을 펼쳤다.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던 김서아라는 여성.

분명 그녀는, 오페라 가면을 쓴 여성을 보고 트윈클라운이라고 불렀다.


“찾았다.”


검색 화면에는 김서아가 말한 이름이 그대로 나왔다.

오페라 가면을 쓴 쌍둥이 광대.

사진 한 장 없지만. 글에 적힌 외견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일치하였다.


‘하지만 이건······.’


나는 마우스 커서를 바쁘게 움직였다.


“세계 지명수배······.”


문단의 첫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인터넷 창의 스크롤을 읽어 내려갔다.


“다수의 국가 밀입국 및 기밀 열람···”


공무 집행 방해 및 상해.

한 국가의 사회체제 붕괴 활동까지.

수십 가지의 범법행위가 나열되어 있었다.

탁.

나는 노트북의 화면을 닫았다.

뒤통수라도 맞은 거 같은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현대에 활약한 영웅들에게 붙는 이름, 이명.

그러나 그것이 히어로에게만 극한 되는 것이 아님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감싸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명, 트윈 클라운.

국제적으로 수배중인 빌런의 이명이었다.



*



<episode14-조사>



“오빠, 밥 먹으래.”

“아, 미안. 벌써 그런 시간이구나.”


슬비가 방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동생은 내 방 안의 모습을 살피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깜깜하게 있어? 자고 있던 거 아니지?”

“아니야.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래.”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내가 상담해줄까?”

“정말 별 일 아니야. 잠시 방 정리하고 갈 테니 먼저 먹으라고 말 좀 전해 줄래?”

“알겠어. 엄마가 국 식기 전에 빨리 나오래.”

“응, 금방 나갈게.”


방문이 닫히고 다시 방 안이 어두워졌다.

목에 흘러내린 식은땀이 말라붙고. 핸드폰을 쥔 두 손에 땀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탁상위의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시계의 바늘이 여덟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거야?”


아무도 없는 허공에 말을 걸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행동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나는 핸드폰에서 강혁의 이름을 눌렀다.

그러나 통화버튼은 누르지 않고 그대로 전원을 껐다.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지고 짧게 탄식했다.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거실로 나갔다.


“어서 와라.”


부엌 식탁에 다다르고. 아버지가 나를 보고 말하였다.

나는 의자를 빼며 식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잠시 생각할 일이 있어서 지금 나왔어요.”

“그래, 네 나이 때에는 무언가를 열심히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장하다. 하지만 영양소는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어요.”

“그래. 많이 식었다. 더 식기 전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떠라.”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나는 젓가락을 뻗어 반찬을 집었다.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였다.

식탁 위에서는 빠른 속도로 장아찌 종류의 음식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환영받는 음식이 그런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음식도 있는 법.

처음 접시에 담겨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음식이 하나 보였다.

오늘의 희생양이 된 건 콩나물이 들어간 생선찜 비슷한 것.


“오늘은 생선찜이구나.”


드디어 아버지가 젓가락을 움직였다.

가족 모두가 숨을 죽이고 속내를 내색하지 않으려 힘을 썼다.

마침내 아버지의 젓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안색이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갔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마음속 깊이 묵념했다.

생소한 음식이 있다면 섣불리 건들지 않는다.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맛이 어때요?”

“어어, 괜찮네. 그런데 식초를 조금만 더 줄이면 어떨까?”

“어머, 이상하네? 식초 같은 거 안 넣었는데 말이에요.”


접시 위를 배회하던 젓가락이 움찔하고 떨렸다.

지난 경험을 걸고 단언하는데 저 음식은 상한 것이 아니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어머니의 요리에서 지주 생기는 일.

매번 아버지가 맛평가를 해주는 모습은 감탄스럽기까지 하였다.


“크흠, 여보. 역시 얼린 생선은 구워먹는 게 나은 거 같아. 요리 실력은 날로 좋아지는데 재료가 좋지 못했네.”

“그런가요? 마트에서 살아 있는 것을 준다했는데 냉동 생선을 줬나 보네요.”

“어? 아, 그, 그렇지. 그런가봐. 마트 직원이 바빠서 실수했나 보네. 그러니 다음에는 꼭 나랑 같이 가자?”

“알겠어요. 다음에는 당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장보러 가요.”

“그. 그래. 그러면 마저 먹을까?”

“그래요. 다 식겠어요.”


다행히 아버지는 무사히 위험을 모면했다.

그리고 그의 희생덕분에 우리 또한 안전하였다.


‘어머니가 요리 실력을 키운다며 삼시세끼를 차려주던 일이 있었지······.’


마늘장아찌를 입에 넣는데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그 때는 아마, 슬비가 된장국을 먹고 구토하였던 일 이후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는 필수로 참여하고. 학교에까지 도시락을 가지고 가야 했었다.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가 은밀히 명칭하길, 마(魔)의 일주일.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식사가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체감되었다.

그렇다. 정말로 행복한 식사였다.


"야, 일은 잘 되가?"

“어, 그럭저······?”


지금 누가 말한 거지?

나는 밥알을 집으려던 젓가락을 멈추고 말을 한 이를 바라봤다.

툭.

젓가락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동생인 이태영이 가족 식사시간에 나한테 말을 걸었다.

이것은 몇 년 만에 일어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그래. 현우야 일은 잘 되가니?"


아버지가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보였다.

아무래도 나 혼자 당황스러운 건 아닌 모양이었다.


“오빠."


슬비가 작게 속삭이며 내 팔을 건드렸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일이 잘 되냐고요? 네, 나쁘지 않아요. 이번에도 광신도 토벌 작전에 일조했는걸요."

“광신도라니···? 뉴스에 나오는 그거 말이냐?”

“네, 맞아요.”


아버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나는 그들의 반응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내가 이번 일을 말한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부모님 두 분, 특히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어머니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면 남은 건 아버지인데······. 별 생각 없이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하하, 우리 현우가 정말로 어엿한 히어로가 됐구나! 장하다 장해!"


걱정받기를 원치는 않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칭찬을 받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막 걸음마를 뗀 어린 아이라도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요. 그 정도 까지는 아니고 그냥 조금 보탬 한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게 어디냐? 원래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게 되는 법이야."

"그래도 정말 작은 일만 맡았는걸요."

“하하 짜식. 원래 다 그런 법이라니까? 괜히 겸손해 할······”

"그야 그러겠지. 네 주제에 뭘 할 거 같지 않았어."


침묵.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화를 시작한 장본인이 찬물을 부어 버리는 건 무슨 경우인 걸까.

여전한 행동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죠, 어머니?"


태영은 그렇게 물으며, 가라앉은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이 와중에 어머니는 다른 곳에 정신이 가 있는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쾅.

슬비가 밥상을 치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태영의 무례한 행동에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야! 너 오빠한테 자꾸 그럴래?”

“내가 뭘 어쨌는데?”


태영은 태연하게 받아쳤지만 눈빛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쨌냐고? 지금 오바한테 한 태도가 정상이라 생각해?”

“얘들아, 진정······”

“본인도 뭐라 안하는데 왜 네가 난리야? 야, 말해봐. 기분 나빴냐?”

“어? 아니 뭐······”

“너! 지금 또 오빠한테 야라고 했어!”

“하! 내가 얘를 뭐라 하던 뭔 상관인데. 애초에 그런 걸 따지자면 너부터 내 호칭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뭐라고?”

“다시 말해줘? 내가 얘 호칭을 신경 쓰는 거면 너부터 바꾸고 말해. 여동생님아.”

“이게 진짜!”


슬비가 화를 내는 건 그렇다 쳐도. 태영이 일일이 반격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래도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만큼은 자제했던 거 같은데, 오늘은 무슨 심경의 변화인걸까.

오랜만에 느끼는 다툼이지만 반가움보다는 그만 뒀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이태영!”

“왜!”


높아지는 언성을 따라 분위기도 점점 험악해져갔다.


“슬비야? 태영아? 우리 조금만 진정하자꾸나.”


아버지가 중재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눈에 힘을 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으르렁거렸다.

당장 큰 싸움으로 번져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

웬만하면 끼어들고 싶지만 더 싸움이 커질까봐 그러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아, 또 이런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일상에 금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주위의 환경이 느리게 보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두통에 미간을 짚었다.

의자를 넘어트린 슬비와, 고개를 가로젓는 태영.

쩔쩔매는 아버지와 멍하니 있는 어머니.

소리와 상황이 전부 소음이 되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나는 어디까지나 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이야······’


“네가 말한 저주라는 게 대체 뭔데······.”


머리가 지끈거리며 환청까지 들렸다.

나는 두통이 안정될 때 즈음, 이상함을 느끼고 가족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다툼은 멈춰 있었다.

모두가 말과 행동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다들······.”


그제야 나는 조금 전의 생각이 입 바깥으로 새어나왔음을 깨달았다.


“아, 방금 말은 아무것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뜬금없는 소리를 했지만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현우야.”


나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조용하지만 위에서 누르는 거 같은 압박감.

탁자 앞의 모두가 조용히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자, 얘들아. 그만 싸우고 밥이나 먹자꾸나.”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생선의 살점을 집었다.

생선의 살점이 입 안으로 들어가고. 각자 엇갈려 있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쌍둥이는 얼굴에 불만이 남아 있지만 조용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어머니도 더 이상 멍하니 있지 않고 반찬을 집었다.

나만이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분위기를 따라서 반찬을 집었지만 차마 입 안에 넣을 수 없었다.

내가 저주라는 말을 꺼낸 직후, 일제히 나를 향했던 가족들의 시선.

여덟 개의 푸른 눈동자들이 뇌리에 강렬히 남았다.



*



휴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찾아왔다.

호접지몽의 아침은 지난날의 일이 꿈으로 여겨질 정도로 한산하였다.

나는 대량의 서류를 정리하여 파일에 담았다.

서류는 지금까지 그러하듯 개인 의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서류를 분류하고. 소파에 등을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다.

지나칠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

이런 고요함이 낯설기만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새하얀 천장에 얼룩 같은 것이 겹쳐보였다.

평범한 얼룩이 아닌, 내 눈에만 보이는 얼룩.

주마등처럼 지난 일이 떠올라서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해?”


머리 위로 다른 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익숙함을 지나쳐 진절머리 나는 얼굴이었다.


“기천···.”

“돌멩아. 어디 아프냐?”


기천은 거리낌 없이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덩치만큼이나 손도 거대해서, 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안 보여. 치워봐."


내가 말하자 눈앞에서 손이 치워졌다.

기천은 한 쪽 눈썹을 추어 올렸다.

그는 나를 따라서 천장 위를 올려봤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얼굴을 찌푸렸다.

내 몸이 흔들릴 정도로 과격하게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소파 등받이에 양팔을 올리며 말하였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천장.”


대답하자마자 픽하는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보면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조금 생각할 일이 있어서 그래.”

“뭔데? 내가 특별히 조언 좀 해줄까?”

“필요 없어. 그리고 엉덩이 좀 그만 들썩거려.”


아까부터 소파가 흔들리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불평을 해도 그가 아랑곳 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기천은 엄지 끝으로 내 미간을 눌렀다.

화를 돋우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걸까.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다.


“야. 적당히 좀······”

“인상 찌푸려서 뭐가 좋냐? 다 잘 끝났으면 됐지.”


나는 미간을 짚은 손을 치우려다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기천의 얼굴을 바라봤다.

기천은 양 팔을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편히 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지금의 대화에 별 관심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조금 전의 말은 훈수보다 한탄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기댈 수 있을 때 착실히 기대 둬.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후회는 무슨. 그런 거 없어.”

“그러냐. 그래도 이제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어. 당장 생각나는 게 없어도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게 해야지.”


졸업.

그 단어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호접지몽에 나는 학생 신분으로 있는 것이고. 졸업 후에는 이들과 작별할 터였다.

그들과 함께한, 육 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기다면 긴 시간.

학생이 졸업을 맞이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가슴 한쪽이 어렴풋이 아려왔다.


“후회할 일이라······.”


기천이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나까지 울적해졌다.

그렇다고 졸업 이후의 일을 계속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기천의 조언대로, 지금만 할 수 있고 나중에 후회할 거 같은 일을 고민했다.

생각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현재의 고민인, 한 사람의 모습과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기천아.”


나는 머리를 헝클였다.

떠오른 것은, 지난 광신도 토벌 작전 이후로 줄곧 신경 써왔던 일.


“기천아. 저주에 대해 아는 게 있어?”


강혁, 그가 어째서 빌런과 엮여 있는지.

하양이는 왜 데리고 간 건지 작은 실마리라도 필요했다.


작가의말

이번 에피소드는 1부 완결을 위한 떡밥과 정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좋아요와 선호작 등록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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