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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반영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36
최근연재일 :
2022.08.01 21:00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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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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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관계(3)

해당 작품은 가상의 작품으로. 특정 단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



오전 열한시.

히어로 자격증시험에 대한 공지가 끝이 났다.

학생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 또한 친구들과 함께 일어선 그때였다.


“현우야 잠깐 볼 수 있을까?”


불공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친구들을 먼저 보낸 뒤, 그의 요청대로 교실에 남았다.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커튼 끈이 바람에 휘날려서 소리를 내었다.

모두가 떠나고 허전한 교실.

어색한 공기가 그와 나 사이에 끼어있는 거 같았다.


“일단 앉을까?”


그의 바람대로. 나는 구석에 접혀있던 의자를 가져왔다.

하나는 펼쳐서 내 쪽에 두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앞에다 두었다.

그러나 의자에 앉고 나서도 서로 마주보기만 할 뿐. 오가는 말이 없었다.


‘원래 무슨 대화를 했었더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탓도 있었지만, 자꾸 그의 상처에 눈길이 갔다.

다행히 불공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잘 지냈지?”

“네. 잘 지냈어요.”


침묵.

끊어진 대화에 다급하게 말을 이어 붙였다.


“형은 어떻게 지냈어요?”

“나야 뭐. 이곳저곳 불려 다녔지. 협회에서도 부르고. 직장에서도 부르고. 내가 떠난다니 다들 아쉬웠나봐.”

“역시.”


나는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쉬울 만도 하죠.”

“정말 그럴까?”

“형은 유명인사에다 실력이 뒷받침 되잖아요. 이제 형 자리 채울 사람은 아주 죽을 맛일 거예요.”

“그래, 네 말이 맞네.”


불공은 입 꼬리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와서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치 개 털 만지듯이 머리를 헝클였다.


“형. 제발 배려 좀 해주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숙여 빠져나왔다.

덕분에 엉망이 된 머리를 손으로 빗질하였다.

그는 내 투정에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괜찮지 않아? 그렇게 심한 곱슬도 아니잖아.”

“심한 곱슬이 아니라니요! 보기엔 이래도 엉키기 시작하면 장난 없다고요!”

“그래? 괜찮아 보이는데?”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다.

나는 원망스런 마음으로 그를 노려봤다.


“전혀 괜찮지 않아요!”

“그래 내가 미안했다.”


불공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방금 전까지 머리 만지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또 만지다니.

그래도 이번엔 헝클이지 않고 두드리기만 하니 봐주기로 했다.


“형. 정말로 보고 싶었어요.”

“그래, 나도 그랬어.”


머리 위로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제는 히어로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활동해야 할 불공.


“형, 축······”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의 새 출발을 응원해야하는데. 왜 말을 못하는 걸까.

이제는 비어버린 오른 팔과 절뚝이는 다리.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형······.”


그가 웃고 있으니 나도 웃어야했다.

지금 이러는 행동은, 그에게 도움이 안 될 거였다.

하지만 한번 터진 감정은 마음대로 절제되지 않았다.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리 와.”


불공이 가볍게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짜식. 나랑 훈련 할 때는 한 번도 군소리 없더니 이제 와서 칭얼대기야?”


나는 그의 품에 파묻힌 채로 이를 악물었다.

변함없이 머리 위로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윽. 으윽.”


참으려 했지만 우는소리가 새어나왔다.

정작 힘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눈물을 보이고 있는 걸까.

이성은 멈추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나는 그의 옷소매에 매달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형.”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후회가 새어 나왔다.


“시합장에서 상처 준 일 미안해요. 형을 버리고 도망가려 했던 거 미안해요. 제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대로 된 히어로였다면······”

“그만해.”


불공이 내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기댈 수 있게 더욱 머리를 끌어안았다.


“네가 잘못 행동 한 건 없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던 최선이었고. 그 이상을 해줬어. 그러니까 스스로 자책하는 건 그만해줘. 넌 훌륭했으니까.”


정말로 용서해도 되는 걸까.

그에게 용서를 받아도 되는 걸까.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어느새 옅어진 죄책감을 거듭 곱씹었다.



*



“어때. 진정이 돼?”

“네, 진정 됐어요···. 첫 제자라는 놈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화하였다.

창피함에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게 느껴졌다.

대체 왜 지금까지 잘 참다가 눈물샘이 터진 것인가.

화끈거리는 얼굴에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그러면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나는 못 들 거 같던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불공은 만족하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턱을 감싸고 책상에 기대어 섰다.


“그래···. 너에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불공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모습이 슬퍼 보이는 건 단순히 내 착각일까.

불공은 충분히 고민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미안해··· 라고 말하고 싶던 건 내 쪽이었어.”


나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스러웠다.

불공은 작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스로 할 말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을 숨기기 위한 미소.

불공은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해줄게.”


이야기의 시작은 불공이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던 시절이었다.


“그때에 나는 자존심이 쌨었어. 초능력이 화염속성이면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학생이 없다는 게 원인이었지.”


학창시절의 그는 초능력과 몸의 실전 활용에 있어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선생님들의 평가에도 자기애가 강하다는 걸 제외하면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에는 자기애라는 게 크게 어긋날 수 있다는 거를 몰랐지.”


성적 상위권. 인간관계 준수. 히어로 영입 제안 다수.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 한 가지 열등감이 존재했다.

그 열등감의 정체는 본인의 초능력 등급에 대한 것이었다.


“4등급의 화염능력자라는 말이. 낮은 등급이 아님에도 듣기 불편했어.”


4등급의 초능력자는 10등급의 초능력 등급 안에서 나름 상위권에 위치했다.

하지만 이곳은 히어로가 되기 위해 모이는 장소.

뛰어난 초능력으로 활동하는 이곳에서는 4등급의 초능력은 그저 그런 취급을 받곤 했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어. 그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불공은 2학년 때에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히어로로서의 자질을 갈고 닦기만 하였다,

그렇게 2학년의 끝 무렵이 될 때 즈음에서야 그는 첫 무대에 나갔다.


“전 학년 모의 대련 시합. 그것이 나를 알릴 첫 시작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대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잠깐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질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

대회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

불공은 모든 시합이 힘겨웠다

그럼에도 그는 악착같이 승리를 따내어 결승전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불공의 결승전 상대는 처음 보는 일학년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보여준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불공은 시작 된지 얼마안가 싸울 의지를 상실하였다.

그는 시합시간동안 얼른 끝나기만을 기도하였다.


“심판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드디어 끝났다고 안심했어.”


긴장을 풀고 안도하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심판이 손을 든 시점부터 승부는 갈린 거나 다름없었지만, 일학년생은 멈추지 않았다.


“···일방적인 폭력이었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던 불공은 기습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심판과 세 명의 선생님이 아이를 제압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서 일어나서야 내가 이겼다는 걸 알았어. 그 아이가 난동을 부린 게 원인이었지.”


불공은 마음이 착잡한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로 얼음송곳을 내려찍던 아이.

그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기억에서 잊혀 지지 않는 듯하였다.


“그래서 사과하고 싶었어. 내 좁은 시야 때문에 너를 상처준 거 같아서.”


그와 나의 갈등의 원인이었던 독 능력자 안세라와의 승부.

그때에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아니요. 그건 형이 옳았어요.”


나는 내 잘못을 알고 있었다.

나를 생각해준 그를 밀쳐내고 거친 말을 뱉었다.

절대로 나는 그에게서 사과를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밟아주겠다는 생각에 정도를 넘었어요.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냥 즐겼다.

불공이 말해준 아이처럼, 상대를 굴복시키는 싸움에서 희열을 느낀 것이다.


“형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용서하지 마라.

당신의 제자는 약자 앞에서 폭력적이고 위험 앞에서는 도망치는 구제불능의 겁쟁이이니까.


“모든 게 제 잘못 뿐이니 형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말을 끝내고 두 팔을 늘어뜨렸다.

어쩌면 그와의 인연은 이걸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야.”


나는 다가오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그도 그럴게 나였어도 첫 제자가 이 모양이면 화가 났을 것이다.

툭.

그러나 가벼운 감촉이 이마에 느껴졌다.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짜식···. 네가 정말 잘못했으면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예상과 다르게, 이마에 붉은 상자가 닿은 게 끝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러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불공은 여느 때와 같은 미소로 나를 볼 뿐이었다.


“자 이만 가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네?”


나는 고개를 돌려 교실 문 쪽을 보았다.

조금 열린 미닫이문과 그 너머에 느껴지는 인기척.

분명 먼저가라고 말했었는데. 내 팀원이자 친구들이 문틈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이런. 들켰네?”


문이 열리고 기수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아연과 혜리, 진석과 어느새 나타난 수호도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연이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녀는 짓궂게 웃어 보였다.


“울보 녀석~”

“뭣···!”


울보란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 모습을 지켜봤을 거라 생각하니 할 말이 없었다.

혜리와 기수 그리고 수호까지도 한마디씩을 더 하였다.


“괜찮아. 현우야 나도 자주 눈물 보이고 그래.”

“우리 중에서 이렇게 펑펑 울었던 애는 처음이지만 말이야,”

“현우야. 눈물 보인다고 약한 게 아니야. 나를 보면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혜리와 기수의 말은 그렇다 쳐도. 수호에게 위로를 받은 게 비참했다.

어딘가에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데려 가도 될까요?”


진석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불공이 그에 대답했다.


“그래, 오늘 학교 오느라 수고했어. 그리고···”


불공이 내 눈 앞에 붉은 상자를 갖다 댔다.


“화해의 선물이니. 싸우지 말고 나눠먹어라?”

“어린애냐고요···.”

“그래도 좋아하지?”


나는 손을 뻗어 상자를 받았다.

초코가 묻은 막대과자가 들어있는 붉은 상자로. 어렸을 때 자주 사먹던 과자였다.


“잘 먹을게요······.”

“그래, 다음에는 더 씩씩한 모습으로 보자.”


나는 과자를 보았다.

무의식중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이미 불공의 대답을 들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차례였다.


“형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불공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잔잔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이만 가볼게요.”


나는 간질거리는 기분을 뒤로하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나가고. 나도 뒤따라서 교실 문턱에 발을 디뎠다.


“현우야!”


불공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햇빛이 비추는 교실의 한 가운데에서. 그가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음에 볼 때는 선생님이라 불러야 한다?”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제는 나만의 선생님이 아니라, 모두의 선생님이 된 거구나.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하 선생님!”


교실 문을 닫고 복도를 걸어갔다.

짓궂은 농담을 하는 친구들과 변함없는 복도의 풍경.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훗날에 이 교실을 다시 찾아 올 때에는, 내가 과연 어떤 위치의 사람이 되어있을까 하고 말이다.



*



익숙한 바이올린 소리와 메인인 피아노의 협주곡.

주머니에서 여동생이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귀에 갖다 댔다.

슬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어디야?”


현재 시간은 오후 8시.

위치는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다.


“그래? 그러면 나도 보이겠네?”


근처에 있다는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리끝까지 녹색 후드점퍼를 눌러쓴 사람과, 덩치 큰 개를 산책시키는 여자.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남녀 학생의 모습.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많았기에 여동생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힌트 좀 줄래?”

“나는 오빠 찾았는데? 먼저 들어간다. 안녕~”

“슬비야? 슬비야······?”


전화가 끊겼다.

하지만 통화 너머에서 들린 소리로는 아직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게 분명했다.

나는 주위를 살펴봤다.

내가 보이면서 집과 가까운 위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여동생이 있는 건 분명했다.


“흐음.”


나는 여동생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선별했다.

나와 같은 방향을 걷고, 정체가 불확실한 사람은 총 세 명.

녹색 후드와 검은 바지를 입은 사람과, 우리 학교 치마와 회색후드를 쓰고 있는 여학생 그리고 야구점퍼와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었다.

역시. 제일 의심이 가는 건 회색후드를 쓴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의 친구가 나타나면서 내 짐작은 엇나갔다.


‘그러면 저 사람인가?’


야구점퍼와 모자를 쓴 여성.

하지만 지금까지 여성은 핸드폰으로 통화한 적이 없었다.

역시 내 짐작대로 여성은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탔다.

차를 운전하니 여동생이 아니란 게 확실해졌다.


‘이제 남은 건.’


후보 중에서 제일 여동생 같지 않은 사람이 남았다.

녹색후드와 검은색 면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한 사람.

하지만 멀리서 봐도. 여자의 체형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정말 슬비인가?’


녹색 후드의 사람은 우리 집과 제일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고. 내가 통화를 할 때 같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심지어 가는 방향이 정확히 우리 집 방향이었다.

정황상 슬비일 가능성이 제일 컸기에,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슬···”


나는 이름을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기 직전, 녹색후드가 다른 길로 틀었기 때문이다.

다시 보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무래도 슬비는 진즉에 집에 올라간 모양이었다.

나는 아파트 입구 계단을 올라갔다.


“응?”


그런데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통 유리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누가 봐도 슬비가 분명한 여학생.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에서 사라졌다.


“아, 이런!”


허망한 마음에 혀를 찼다.

전화를 받자마자 집으로 달렸다면, 충분히 쫓아갈 수 있던 시간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다 여기고. 현관 비밀번호를 쳐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는 서서히 올라갔다.

역시.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느렸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아파트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내가 있던 곳이 보인건가?’


아파트 안에서 내가 서 있던 위치를 찾았다.

그런데 문 바깥의 도로에서, 조금 전에 봤던 녹색 후드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뭐지······.”


녹색후드를 입은 남자는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냥 별 거 아닌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1초. 2초.

심장이 고동치며. 남자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곁눈질로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확인하였다.

멈춘 층수는 8층.

우리 집이 있는 층이었다.

4초. 5초.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녹색후드의 남자는 무언가를 세듯 손가락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덟.

이내 남자는 손가락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려댔다.


‘잡아야 한다.’


나는 가방을 벗어던지고 땅을 박찼다.

아파트 현관을 연 다음, 그의 뒤를 쫓아 달렸다.

남자 또한 내 기척을 눈치 챘는지 빠르게 달렸다.

그를 쫓아서 주차장 도로를 뛰어든 그때였다.

끼익하는 급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뭐하는 거야! 죽고 싶어!?”


검은 승용차의 주인이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나는 양손바닥을 모아 보이며 그에게 사과했다.


“나원,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


차 주인의 말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가 있던 장소를 눈으로 좇았다.

그러나 트럭 한대가 지나가며 시야를 가렸다.


“젠장······.”


트럭이 지나간 후에는. 녹색 후드를 입은 남자의 모습은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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