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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반영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36
최근연재일 :
2022.08.01 21:00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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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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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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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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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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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검정 하양(9)

해당 작품은 가상의 작품으로. 특정 단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



죽는다.

거대한 용의 입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영화처럼 지난 삶에 대한 주마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초의 시간이 영원처럼 다가올 뿐이었다.

펄럭.


“소년. 수고했어.”


천 조각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누더기 같은 옷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옷의 주인인 늑대가면은 차분한 태도로 나를 보았다.


“몸에 힘 빼.”


늑대가면은 내 몸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곧, 거대한 충격음이 사방으로 퍼졌다.

쾅.

용의 머리가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바닥이 산산이 부서졌다.

간발의 차이.

정말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았다.

늑대가면이 나를 업고 몸을 날린 덕분이었다.


“너······!!”


하지만 나는 늑대가면의 멱살을 붙잡았다.

조금만 잘못 됐으면 그녀까지 죽을 뻔 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 이런 무모한 짓을 한 늑대가면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내 질타에도 늑대가면은 태연히 가면을 고쳐 쓸 뿐이었다.


“······콜록! 콜록!”


하필 이럴 때에 비릿한 향기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무릎이 꺾이고 입에서 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늑대가면은 내 등을 도닥여 주었다.


“소년. 쉬어. 수고했어.”


하지만 걱정이나 받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못한 일을 마저 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다.


“끼이이이······.”


용이 산산조각이 된 바닥에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돌 조각과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뱀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놈과 두 눈이 마주치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줄곧 이상하게 여겼던 사실.

죽었던 용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던 건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소년. 죽였어. 히드라. 끈질겨.”


늑대가면이 내 짐작을 확신 시켜주었다.

히드라.

해외에서 레드(red) 등급으로 지정된 이터.

머리가 잘려도 끊임없이 재생하는 신화 속 생물로. 내가 알지 못했던 용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제기랄, 저건 반칙이잖아.”


눈앞에 뱀은 갈라진 몸뚱이 사이에서 머리 한 개의 뼈를 더 생성하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 빠른 판단을 요구하였다.


“펜리스. 검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처음 계획대로 정수리를 꿰뚫어야 한다.

용에게서 갈라져 나온 머리가 아직 뼈의 형체를 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펜리스. 초능력으로 대검을 가져다······”

“괜찮아.”


나는 그녀를 돌아봤다.

괜찮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늑대가면이 내 앞을 막아섰다.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이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건 대체······.’


털썩.

알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휩쓸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것이 곧, 포식자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본능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서 안개 같은 푸른 이채가 아른거렸다.


“괜찮아. 소년. 이제. 쉬어도 괜찮아.”


늑대가면은 봄의 햇살과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과 대비되게. 주위로 서늘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펜리스?”


용이 울부짖으며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늑대가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녀의 발밑에서 새하얀 얼음 꽃이 피어났다.

공중에 수많은 얼음 결정이 생겨났다.

얼음결정은, 어느새 은하수처럼 빌런 구역의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은 용보다 몇 배나 큰 규모였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능력을 기적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명백한 한계가 있는 힘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초능력자라도 살상만을 목적으로 한 살상무기와 맞먹을 화력은 없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었다.


“Bid. ulv.(물어라. 늑대야.)"


늑대가면의 말에 그것이 움직였다.

얼음결정이 모여 만든.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킬 크기의 얼음짐승.

늑대 얼굴의 형상을 띈 얼음 폭풍이 빌런 구역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입을 벌렸다.


“끼에에에에!!!”


마지막으로 들린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늑대 형상의 얼음 폭풍이 거리를 휩쓸었다.

눈보라가 들이닥쳤다.


“······허억.”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는 냉기에 몸을 웅크렸다.

분명 폭풍이 우리를 빗겨가고 있었지만, 늑대가면의 힘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숨을 쉬는데 목이 갈라지는 거 같았다.

냉기에 피부가 부서질 거 같았다.

그런데 이런 힘을 불러낸 늑대가면은, 멀쩡한 모습으로 하얀 눈보라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년.”


늑대가면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섬뜩한 공포가 몸을 차지하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펜리스···.”


그녀가 부리고 있는 힘은 재앙이었다.

인간이 다뤄서는 안 될 거대한 무언가였다.


“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늑대가면의 보호 안에 있는 나와는 달리, 빌런 구역의 사람들은 정면으로 얼음 폭풍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부탁하려 했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추위와 부상 그리고 공포.

불덩이와 토네이도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듯이, 감히 그녀에게 부탁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폭풍이 잦아들 때까지 무기력하게 있어야 하나 싶던 그때였다.


“소년.”


강한 이끌림에 고개를 들었다.

타원의 형태로 비껴가는 눈보라 속에서, 늑대가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소년. 눈을 떠.”


늑대가면의 한 마디에 시야가 트였다.

조금 전까지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납게 몰아치던 폭풍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규격 외의 힘과 그것을 다루는 초능력자.


“펜리스 너는 대체······.”


말을 하던 중에 무언가 손등 위로 떨어졌다.

차갑고 하얀 눈송이가 내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나는 기이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지난겨울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하얀 눈이, 빌런 구역의 온 거리에 내리고 있었다.


“이번 일. 빡세다. 맞아?”


빡세다.

계속 되던 긴장이 풀려서일까. 늑대가면이 한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정말 빡세네.”


나는 늑대가면이 건넨 손을 잡고 일어섰다.

어느새 거리는 하얀 눈으로 이불을 덮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자초한 원흉을 보았다.

게이트에서 나와서 거리를 망가트리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 용.


“정말 끝난 거구나.”


그 놈은 온몸이 하얀 성에로 뒤덮인 채로 머리 정중앙에 거대한 얼음이 관통되어 있었다.


“야옹.”

“······고양이?”


밑을 보니. 하얀 눈만큼이나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는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그 행동에 고생했던 시간이 위로받는 듯하였다.


‘잠깐만···.’


문득 어느 기억이 떠올랐다.

녹아내리려던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었다.

하얀 털과 노란 눈동자.

잭이 의뢰했던 고양이와 완전히 일치하였다.


“야옹.”


조심히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다행히 발버둥치지는 않았다.


“야오옹.”


고양이는 좁은 골목을 보고 울었다.

골목에서 고양이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결국 저질렀구나.”


잭에게서 우리를 탓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에 질세라. 늑대가면은 동요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느림보. 책임 없는 남자.”

“······펜리스, 이상한 말 배워오지 말아줘.”


잭은 피곤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늑대가면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 한국말 어렵다. 이상한 말 모른다.”

“덴마크 말은 어디다 두고···. 하아, 일단 여기를 벗어난 다음에 이야기하자.”


우리는 잭을 따라서 눈 덮인 거리를 걸어갔다.

고양이를 잭에게 돌려주자, 의뢰 완료에 대한 확인을 즉시 끝내어 주었다.


“그런데 잭. 여기 며칠만 더 머물러도 될까?”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최소한 이곳 사람들의 안부와 빌런 구역의 상황이라도 확인하고 떠나고 싶어졌다.


“절대 안 돼.”


잭이 거절하였다.

더 이상 이곳에 관여 할 핑계거리가 없었다.


“현우여, 가져가게.”


무사히 백발노인도 합류하였다.

내가 무명의 대검을 잠깐 빌린 것이라 여기었기에 돌려줬지만,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다하였다.


“이제 그 검은 자네의 것일세. 부디 훌륭한 히어로가 되는 것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겠네.”


결국 무명의 대검을 받았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아.”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이제 잭의 일행이 떠났다.

혼자 남은 나는 검을 등에 맨 채 눈길을 걸어갔다.

그나마 거대한 얼음 조각이 곁을 함께 하고 있었다.


“하하···.”


아직까지도 중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베이징 게이트 사건.

그 사건의 주인공이 한낱 얼음조각이 되어 방치 되고 있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하였을까.

나는 길게 뻗은 용의 조각을 감상하며 걸었다.

이제는 흉흉하게 남아있던 게이트도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세간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빌런 구역을 빠져 나왔다.



*



“그래.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의뢰가 마음에 들었나 봐?”

“하하. 어쩌다보니······.”


무사히 돌아온 히어로 사무소. 호접지몽.

호텔에서 푹 쉰 다음 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의뢰는 무사히 끝냈고?”

“네, 여기 받아왔어요.”


안경을 착용한 진 선생님은 내가 준 서류를 훑어보았다.


“흠. 고양이는 잘 찾아줬고?”

“네? 아. 뭐···.”

“짜식. 일 잘 해 놓고 반응이 왜 그러냐.”

“하하하······.”


왠지 웃으면서도 웃는 기분이 아니었다.

분명 시작은 고양이 의뢰였고 끝도 고양이 의뢰로 끝났는데. 그 과정이 지나치게 험난했으니 말이다.


‘다음에는 이런 종이가 아니라 여동생을 통해 보낼게.’


잭이 헤어질 때 한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찾아오면 될 거를 여동생을 보낼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여동생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증이 생기긴 하였다.


“그 사람도 한 성격하려나?”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평소에는 불러도 대답 없던 사람이 왜 이런 데에만 귀가 밝은지.

나는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 그런데 기천은 어디 갔나요?”


이 시간에 있어야 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진 선생님은 서랍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어 보여줬다.


“어린이 안전 구역··· 지킴이 모집 의뢰······?”


어이가 없어서 진 선생님을 보았다.

그가 귀찮은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마침 딱 인 거 같아서 거기로 보냈다.”

“걔가 이런 일을요?”

“누구는 적성이 맞아서 고양이를 찾으러 갔을까?”


그러니까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보낸 거란 말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미움 받을지도 몰라요.”

“걱정마라. 이런 거로 뒤끝 있는 놈은 아니니까.”


항상 그런 식의 태도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조만간 피바람이 불어올 것을 예측한 가운데. 진 선생님이 불쑥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수고했다. 이건 이번 의뢰수당의 40퍼센트다.”

“···예?”


고양이 찾기가 본래의 의뢰가 아니었던가.

돈 봉투의 두께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의심쩍은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봤다.

그러자 위인의 얼굴이 그려진 갈색 지폐가 봉투 안을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건······?”

“육백이다. 내가 돈도 안 되는 일에 인력을 쓸 거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감동이 몰려왔다.

돈 하나로 사람이 달라 보였다.

고작해야 히어로 인턴 같은 존재에게 이렇게 배려를 해주다니. 괜히 전(前) 랭킹 1위 히어로가 아니었다.


“선생님. 일 년 뒤에 인재 필요 없으십니까? 제가 졸업생 중 쓸 만한 인재를 알고 있는데요.”

“돈맛을 보니 아주 미치지? 어필 할 거면 말이 아니라 실적으로 해라.”

“하하하······.”


침묵.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사무실 안에 내려앉았다.


“음···. 그러면 무얼 할까요. 선생님?”


이제 의뢰가 끝났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청소부터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길게 고민할 것 없이 곧바로 청소기를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막 청소기를 들은 그때였다.


“오늘은 퇴근해라.”

“···네?”


당연히 일을 시킬 줄 알았기에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돈을 벌었으면 쓰는 날도 있어야지. 오늘은 푹 쉬어라.”


나는 차분하게 청소기를 내려두고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시간은 오전 열한 시.

그가 잘못 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뒤늦게 기쁨이 몰려왔다.


“정말 퇴근해도 돼요?”

“그래. 싫냐?”

“아니요? 감사합니다!!!”


나는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그가 말을 바꾸기 전에 이곳을 뜨기 위함이었다.


“꼬맹아.”

“예?”


어중간한 자세로 뒤를 돌아봤다.

설마 이제 와서 말을 번복할까.

나는 이미 사무실 문턱에 발을 디딘 상태였다.

제발, 별 일 아니기를 소망했다.


“그거 뭐냐?”


다행히 순수한 질문이었다.

그는 내가 등에 매고 있던 물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안도하며, 등에 매고 있던 물건을 양손으로 들어 보였다.


“이거요?”

“그래. 그거.”


검은 가죽으로 돌돌 감아둔 내 키보다 거대한 물건.

들고 올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걸어가는 동안 눈에 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집으로 갔다가 가족들이 이거를 본다면···.’


가족들의 좋지 않은 시선이 예측되었다.

아무래도 들키지 않을 곳에 고이 모셔둬야 할 거 같았다.


“······이거 두고 가도 되지요?”

“잠깐, 그게 뭔지는 말해 줘야지.”


벽에 물건을 기대두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 선생님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장난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서 다시 문턱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외쳤다.


“선물 받은 거니 버리지 말아줘요!”


다행히 이틀 뒤에 사무실에 왔을 때에도 물건은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



<외전- 설경 속 오두막>



빌런 구역 끝에 위치한 나무 오두막.

이현우가 떠나고 시간이 지난 뒤, 잭을 포함한 네 명의 사람이 오두막에 들어왔다.

그들은 오두막에 들어오자마자 각자 원하는 자리를 차지했다.

오두막의 주인인 잭은 나무 장작을 난로에 넣은 뒤 불을 붙였다.

때 아닌 추위가 급습한 이곳에, 서서히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잭. 이번에는 어디까지 계획 한 거야?”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을 한 건 늑대가면을 쓴 여자, 펜리스였다.

그녀는 모자 끝에 털이 달린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난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글쎄······.”


잭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의자에 앉자, 하얀 고양이가 무릎위로 올라와 편안히 누웠다.

잭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앞선 질문에 답하였다.


“3할 정도 계획했어. ······라고 말하면 믿을 거야?”

“믿어야지. 너 멍청한 게 하루 이틀 아니잖아.”

“응?”


잭은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펜리스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펜리스. 나한테 멍청하다 말하는 사람. 너 밖에 없는 거 알고 있지?”


정작 말을 한 펜리스 본인은 정색했다.


“바보야? 본인에게 실례니까 다들 입 다물고 있는 거잖아.”

“······진짜야?”


잭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나 이곳에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았다.

오직 그의 무릎 위의 고양이만이 위로하듯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역시 나를 위로해 주는 건 너 뿐이구나.”


잭은 고양이의 앞쪽 다리 사이를 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보통의 고양이라면 놀라서 하악질을 하겠지만. 이미 이러한 행동이 익숙한 듯 얌전히 있었다.


“자, 그런데······.”


잭은 고양이를 다시 무릎위에 앉혔다.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영감님은 왜 울상인 걸까?”


잭은 하얀 머리의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은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네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는가?”


깊은 슬픔과 분노를 가라앉힌 목소리였다.

백발 노인의 손은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잭, 대답해주게. 왜 말리지 않았던 거지?”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잭을 보았다.

두 눈동자에는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었다.

잭은 태연히 깍지를 끼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영감. 김 씨 일은 유감이야. 하지만 더러운 생쥐가 밖으로 나오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빠득.

노인은 이를 갈았다.

잭의 대답에 그의 기세가 폭발할 거 같이 변하였다.


“잭. 나는 이렇게 될 거를 알고 있었냐고 물었네!”


노인은 큰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잭을 노려봤다.

노인의 양손에서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제야 잭은 편하게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잭은 반복해서 의자 손잡이를 두드렸다.

툭. 툭.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이 소리만이 적막함을 깼다.

툭. 툭.

툭.

반복되던 소리가 멈추었다.

결단을 내렸는지. 잭은 싸늘한 눈빛으로 노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싫으면 치료를 중단하면 되겠어. 안 그래?”


잭의 말에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타오르던 불길도 금세 사그라졌다.

노인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온몸에 총알 자국이 가득한 채, 침대 위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유일한 혈육.

그런 노인의 아들을 치료하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누구의 연줄로 이곳에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푸훗.”


돌연, 잭이 양손을 펼치고 웃어보였다.


“농담이야 영감. 너무 심각해지지 마~”


잭은 언제 분위기가 험악했냐는 듯 행동하였다.

그리고 이 집안에 있는 또 다른 한 사람, 검은머리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너는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친구의 깨진 머리를 치료하기만하고. 한 마디도 이야기를 못 나눈 거는 괜찮아?”


반 즈음 부서진 하회탈을 쓴,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

한창 노인의 아들을 치료하던 검은머리의 치유사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별로. 얼굴 봤으니 그걸로 됐어.”

“음······. 그렇다면 됐고.”


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 위에 있던 고양이도 덩달아 카펫 위로 뛰어내렸다.

잭은 천천히 움직여, 원형 탁자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을 들었다.

제목도 그림도 없는 공책 한 권.

공책의 마지막 장에는 공책을 사용했던 인물인 윌리엄 키네시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자, 이거 봐. 모든 게 무너지기 직전의 젠가 같지 않아?”

“야옹.”


잭은 노트를 닫고 창밖을 보았다.

한 밤 중에 내리는 비가, 이곳 빌런 구역만큼은 눈으로 바뀌어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창가에 올려둔 와인 잔을 들어서 자주 빛 액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강혁. 우리의 오랜 친구를 맞이할 날이 기대가 돼.”


검은 머리의 치유사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여기 있는 모두처럼 묵묵히 제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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