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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반영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36
최근연재일 :
2022.08.01 21:00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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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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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악惡(6)

해당 작품은 가상의 작품으로. 특정 단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뒤로 물러나 있어.”


싸이코가 동료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새로이 나타난 두 사람을 향해 적대심을 보였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조금 전까지 초능력을 난발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태도였다.


“트윈 클라운?”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싸이코의 어깨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트윈 클라운.

두 명의 광대 혹은 쌍둥이 광대.

광대 아가씨라 불린 여성의 가면에는 검은 눈물이 찍혀 있었다.


“광대 아가씨 오랜만이야~ 못 본 사이에 새 남자친구랑 다니는 거야?”


경계하는 싸이코에 비해서 회색눈동자의 여성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오페라 가면을 쓴 여성이 그녀 쪽을 바라봤다.


“당신이야말로 여기는 무슨 일이야?”

“내 질문은 무시하는 거야? 뭐, 그래도 오빠랑 같이 있을 때보다는 말이 통하는 거 같아서 좋네.”


두 사람은 서로 안면식이 있는지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신경이 쓰이는 곳은 두 여성의 신경전이 아니었다.

반쯤 부서진 이매탈을 쓰고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면바지를 입은 남성.

그는 대화를 나누는 두 여성을 뒤로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 남자는···’


이매탈의 남성은 하양이 앞에서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 팔을 뻗어서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나는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다른 이었다면 하양이를 건들지 못하게 하겠지만, 어째선지 그에게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이 남성에게서는······.


“그만.”


이매탈 아래에 위치한 입술이 움직였다.

나는 가면을 향해 뻗었던 손을 멈추었다.

이매탈의 남성은 하양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하였다.


“반가운 건 알겠는데. 이해 좀 해줘.”


그는 한 번 말을 하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공.”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한 때는 끔찍하게 싫었지만, 다시는 같은 사람에게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던 별명.


“너 강혀······”

“쉿.”


이매탈의 남성이 손가락을 자신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을 톡톡 건드리며 입 꼬리를 올렸다.


“너무 많이 말하지 마. 그러다 죽어도 난 모른다?”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마. 너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과거와 같은 말투, 다른 내용.

대한민국의 일급 치유 능력자인 강혁.

내가 알던 그가 맞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이는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할만한 일은 이제 없으니까.”

“어?”

“조금만 늦었어도 손쓸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제는 후유증도 남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소망했던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하양이의 손을 잡고 이마에 갖다 댔다.

입 바깥으로 약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다행이야.’


다행스러운 일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뜨겁던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른쪽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당장이라도 생사를 넘나들던 하양이가 무사히 치료될 수 있다니.

정말로 안도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친구의 전언이야.”


강혁이, 하양이에게서 손을 떼고 내 이마를 짚었다.

뜨거우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강혁은 치유의 초능력을 발휘하며 계속해서 말하였다.


“저주를 풀 조건은 갖춰졌다. 하지만 그 방법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어.”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강혁을 보았다.

그가 해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주라니. 그게 무슨······”

“미안, 나는 그저 말을 전달 해주는 역할이야. 나머지는 순전히 네가 알아내야 해.”

“잠깐만, 잠깐만 강혁!”


강혁이 내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나치게 단호한 행동에 그를 붙잡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갈게.”


그런데 어째서일까.

마치 그는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 같았다.


‘강혁······.’


이매탈 아래에 그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어쩐지 슬퍼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에 불과한 걸까.

강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양이를 양팔에 안은 채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쓰러질 거 같은 의식을 붙잡으며, 그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강혁, 괜찮은 거지!”


처음으로 강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나를 돌아봤다.

가끔씩 내게 보여줬던 서글픈 미소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다른 미소로 자리를 대신했다.


“이럴 때에는 이매탈이라 불러줘. 주인공.”


오페라가면을 쓴 여성이 그와 함께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나와의 인연에 미련 같은 건 없다고.

그렇게 시인하는 듯하였다.


‘또 제멋대로야.’


나는 주먹을 쥐었다.

돌이켜 보면 첫 만남 때부터 전부 그의 마음대로였다.

멋대로 들러붙어서 연을 만들고. 멋대로 사라져서 연락을 끊었다. 그러고 이제는 멋대로 사람을 살리고 떠나려 한다.

나는 한 호흡 이상의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 힘껏 내뱉었다.


“강혁! 네가 만약에 이상한 일에 연관되어 있다면!”


나는 강혁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이대로 보낸다면 언젠가 후회할 거 같은 기분이 사무쳤다.


“이상한 짓을 하는 거면. 네 얼굴을 뭉개버릴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강혁의 형체는 반절 이상이 푸른 이형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나는 끝까지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주인공.’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아주 작은 소리였다.

환청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

하지만 나는 강혁이 말한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인 마지막 순간.

강혁 또한 나를 돌아 본 거 같았다.


“어딜 가려고.”


등골이 오싹했다.

감성적인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작스레 들린 말 한마디와 함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것은 혈액이 대량으로 담겨있는 유리로 된 물탱크.

물탱크는 검붉은 빛을 일렁이며, 아직 남아있는 형체를 향해 날아갔다.


“강혁!”


내가 외친 그 순간이었다.

와장창 깨지는 큰 소리와 함께, 물탱크가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이 순식간에 검붉은 액체로 물들었다.

게이트를 감싸던 하얀 안개는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윽.”


유리조각이 모래알처럼 쏟아졌다.

나는 팔로 머리를 가려 쏟아지는 유리조각을 막아냈다.

그리고 곧, 지금의 상황이 이상함을 깨달았다.


“왜 유리조각이 머리 위로······.”

“크르르르.”


소름끼치는 울음이 붉은 안개 속에서 들렸다.

나는 앞선 의문에 대한 답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물탱크의 유리조각이 어째서 내 쪽까지 닿았는지.

그 원흉인 검은 짐승의 발이 안개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독!’


세 마리의 블랙독 성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난처하게도 나에게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블랙독의 모습에 식은땀이 흘렀다.


“준서야. 저거 처리 할 수 있지?”


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바로 뒤에 서있었다.

여성과 함께 서 있던 싸이코가 손가락으로 푸른 구멍을 가리켰다.


“쟤들은 그냥 놓아줘도 돼?”

“이미 사라졌는데 뭘 어쩌겠어. 어차피 우리의 일은 여기까지잖아?”

“얘는 어쩌고?”

“아, 이 아이?”


두 사람이 바로 옆에서 나를 내려다 봤다.

선한 감정 따윈 느껴지지 않는 타산적인 눈빛들.

이내 커다란 충격음이 들리고. 흙먼지가 사방을 에워쌌다.


“······콜록.”


바닥을 채웠던 액체가 손목까지 잠길 정도로 늘어났다.

시야가 트일 때 즈음, 방을 채우고 있던 게이트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가 있던 자리를 대신한 건, 고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게이트와 함께 모습을 감춘 블랙독 세 마리도, 거대한 구조물의 잔해 속에 매장되어 있을 터였다.


“얘.”


나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봤다.

검붉은 강물 속에서, 얼룩하나 생기지 않은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너 광대 아가씨랑 아는 사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대답을 하며 뒤쪽 바닥을 더듬었다.

하지만 곧, 이들에게 저항해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며 손에 쥐었던 돌덩이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렇다 해도 쉽게 굴복할 생각은 없었다.


“······빌런이 여기는 왜 찾아 온 거죠?”

“빌런?”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아까 저분이 본인 입으로 싸이코라는 빌런명을 말했으니까요.”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싸이코를 돌아봤다.

본인들의 정체를 말한 것 때문인가 했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흣··· 프흣.”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지금 회색눈동자의 여성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우스워하고 있었다.

이내 회색눈동자의 여성은 자신의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푸핫! 너 진짜······끅.”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웃지 말고 제대로 해.”


싸이코가 불만을 말했지만. 여성은 웃음을 참는 것만으로도 벅차보였다.

여성이 진정한 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아. 정말 오랜만에 웃음이 터졌네. 너 아직도 그 이름을 안 버린 거야?”


동료의 질문에 싸이코는 애먼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흘깃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겁을 주려고 알려준 거뿐이야. 다른 의도는 없었어.”

“어라, 설마 네 이름을 듣고 벌벌 떨기를 기대한 거야? 정말로 광신도가 겁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어?”

“······집요하게 묻지 마. 광신도에게 의미 없다는 거는 충분히 알았으니까.”

“푸흣!”


또다시 여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 이전에 문제야, 바보야. 광신도가 이런 거를 갖고 있을 리 없잖아?”


여성이 손바닥을 펼쳐서 물건을 보였다.

그것은 갈색 가죽으로 된 지갑이었다.


‘어?’


나는 황급히 바지 뒷주머니를 확인했다.

주머니 안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여성은 지갑을 펼쳐서 내용물을 손에 들어 보였다.

그것은 내 히어로 자격증.

내 지갑이었다.


“자, 여기 돌려줄게. 그리고 험하게 대해서 미안했어?”


순순히 손바닥 위로 지갑이 얹어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히어로였어? 당연히 광신도인줄 알았는데.”


싸이코가 목을 풀며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애써 몸을 가누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싸이코가 손을 내밀었다.


“미안했다.”


미안하다니.

대체 왜?

나는 그들의 바뀐 태도를 경계했다.

한 번 목숨을 위협해놓고 태도를 달리하다니 신용할 리가 없었다.


“괜찮아~ 이제 그렇게 경계 하지 않아도 돼~”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머리카락을 풀고 다시 묶었다.

그들의 불분명한 의도에, 경계심은 높아지기만 했다.


“대체 당신들은······”

“거기 누구냐!”


돌연, 입구 쪽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참수리 문양이 있는 보호 장비와, 경찰봉.

경찰 쪽 지원 병력이었다.


“거기 누가 있는 거 다 안다! 순순히 항복하고 나와!”

“어라? 벌써 이런 시간이야?”


지원군 등장에도 회색눈동자의 여성은 차분했다.

당황하거나 곤란해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나올 때까지 5초 주마! 5···”

“있잖아 현우야?”


경찰의 지원에 한눈을 판 그때였다.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내 두 손을 맞잡았다.

나는 여성의 두 눈동자를 마주했다.

어떠한 색에도 물들을 거 같지 않은 고고한 회색빛이 있었다.

여성의 뺨이 내 뺨과 맞닿았다.


“현우야, 비밀로 해줄 거라 믿고 있어?”


입술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귓가를 간질였다.

양 손의 손가락에 여성의 손가락이 얽혀왔다.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마치 여성의 손가락 하나가 수백 개의 거미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을 옭아맨 압박감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2, 1! 모두 진입 해!”


경찰의 호령과 함께 수많은 발소리가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회색눈동자의 여성이 눈웃음을 지었다.

여성은 얽혀있던 손가락을 풀고 나를 밀어냈다.


“잘 있어. 기회가 되면 또 보자?”


뒤로 물러난 여성은 싸이코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여기! 생존자 발견했습니다!”

“사전에 연락받은 히어로와 외견 일치합니다!”

“제길!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여성이 떠난 손바닥에 이물감을 느꼈다.

주먹을 펼쳐보니 검은 명함이 쥐어져 있었다.


‘신속 대행, 큐브(cube) 소속 김서아.’


적힌 글씨를 읽자 웃음이 나왔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혼자서 헛꿈을 꿨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빌런인 줄 알았던 히어로와 게이트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사람과 강혁.

처음 받은 임무와 다르게, 감당하기 힘든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다,


“이봐!”


나는 몸에 힘을 빼고 쓰러졌다.

경찰들의 당황한 모습이 눈꺼풀 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예, 하얀 머리와 갈색피부로 일치합니다. 사전에 연락받은 히어로를 발견했습니다.


머리 위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방이 고요하고 편안했다.

광신도 토벌전의 마지막은 침묵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흔들렸다.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무거웠다.


“일어났어?”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내리는지, 사방이 빗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뿌연 시야로 주위를 둘러봤다.

좁은 공간과 묵직하게 울리는 엔진 음. 푹신함이 느껴지는 좌석과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방울들.

운전석 너머의 계기판 앞에는 익숙한 이가 앉아 있었다.


“······선생님?”


나는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다 갑작스런 두통에 머리를 짚었다.

머리가 멍하고 숨쉬기가 불편했다.

진 선생님의 눈동자가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보았다.


“멀쩡하대.”

“네?

“네 몸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대. 다만 피로가 겹쳐 있을 테니 무리 하지 말라더라.”


진 선생님 특유의 내뱉듯이 말하는 억양.

배려하는 거 같긴 한데. 이 때문에 헷갈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진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이, 침묵만 이어졌다.


“진 선생님.”

“왜?”

“설마, 죽다 살아온 사람한테 할 말이 그게 다예요?”


나는 말을 내뱉고 자동차 창가에 몸을 기댔다.

딱히 책임감을 느끼라는 식은 아니지만, 조금 더 감격스러운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데?”


퍼뜩 눈을 뜨고 시선을 돌렸다.

진 선생님의 인상을 쓴 얼굴이 백미러에 비쳐보였다.


“웬일이세요?”

“뭐가?”

“평소라면 안 할 소리를 하셔서요.”


백미러에 비친 미간의 골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의 색다른 반응에 상당한 흥미가 생겼다.

나는 조금 더 그를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진 선생님. ‘무사해서 다행이야.’라든가. ‘죽은 줄 알고 많이 걱정했어.’같은 말 없어요?”

“무사하면 됐지. 뭘 더 바래?”

“그래도 사랑스러운 제자잖아요. 고생했다는 말은 해줄 수 있지 않아요?”

“선생 자리 그만 둔지가 몇 개월인데···. 꼬맹아, 넌 내 제자이기 이전에 내 노예라는 사실을 기억해 둬라.”


사무실 지위를 언급하는 말에 결심을 그만뒀다.

더 이상 말을 붙여봤자, 잃을 것 밖에 없을 거 같았다.


“하여간, 차가운 도시 남자 같으니.”

“멀쩡한 거 같으니 집까지 뛰어 갈 테냐?”

“아니요. 아야야······. 아무래도 의사가 돌팔이였나 봐요!”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좌석 위로 쓰러졌다.

아예 안전벨트도 풀고 드러누워서 한쪽 눈만 슬며시 떴다.


“멀쩡한 놈이 엄살은···. 무사해서 다행이다. 됐어?”


‘응?’


아예 죽은 척 해볼까 하던 마음은 얼마가지 못하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백미러의 거울을 보았다.

진 선생님의 모습은 눈그늘이 짙은 거 빼고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문제가 컸다.


“혹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거나, 중독되신 건가요? 다크서클이 짙은 건 그 증거고요?”

“뭔 헛소리······. 잠이 덜 깼냐? 다시 재워줄까?”

“아니요, 아니요. 잘 생각해보세요. 어린 시절이 회상되거나 괜히 마음이 울적하지 않아요?”

“인마,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맙소사. 지금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심각한 일이에요. 평소에는 그런 말 절대 안하시면서 대체 무슨 죽을병에 걸린 거예요!”


끼익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덕분에 안전벨트를 풀은 대가를 단단히 치르고 말았다.


“커흑.”


앞좌석에 부딪힌 얼굴을 똑바로 하고, 자리를 더듬어서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빠르게 움직이던 주위의 풍경이 잠잠해졌고. 비에 젖은 도로는 신호등의 붉은 빛이 비쳐보였다.

앞좌석의 진 선생님이 몸을 돌려서 나를 보았다.


“어이가 없어서······. 꼬맹아, 도대체 평소에 나를 어떻게 평가 한 거냐?”


그의 말은, 물음이라기보다는 어이없어서 하는 구박에 가까웠다.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다가, 그를 마주보고 웃어보였다.


“글러먹은 어른?”

“···그래. 네가 멀쩡하다는 건 잘 알겠다.”


진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다시 앞을 보았다.

기어를 바꾸고 초록불로 변한 신호등을 지나갔다.

우리는 그대로 한참을 조용히 있었다.

한 사람은 묵묵히 차를 몰고. 다른 한 사람은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며 별말이 없었다.

그렇게 적절한 소음과 고요함이 섞인 시간 속에서, 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큐브와 만났지?”


나는 창가에 머물러있던 시선을 움직였다.

백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놓인 명함 때문이겠지.


“웬만해서 그들과 엮이지 마.”


부탁과도 비슷하지만 경고에 가까운 조언.


“엮여봤자 좋을 거 없는 조직이야.”


진심이 묻어나는 조언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말

이번 에피소드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전투 장면이 없을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활기찬 일요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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