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금손을 알라 (4)
#19. 금손을 알라 (4)
시간 참 빨라, 새삼 느끼는 거지만.
나도 어느새 중학생이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어. 다들 알지? 예비 중2병에서 ‘예비’자 탈락하는 날이라는 걸. 하하하.
“드디어! 내 온 몸 구석구석에서 어둠의 기운아 솟아라, 빠샤!”
딱-
등짝 스매싱은 역시 우리 엄마 손맛이 최고야.
내 얼굴에 썩고 있는 미소가... 보여? 훗. 이정도야 괜찮아. 오늘은 중학생이 되는 날이니깐.
그 동안 기 박사님 연구실에는 한 번도 출입하지 않았어. 가고 싶지도 않았고, 딱히 부르지도 않았고. 그런데도 나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 다 알고 있을 거야 아마. 약속대로 어벤져스 아이템들 착장은 빼놓지 않았거든.
가끔 친구들이 그걸 탐내더라. 그래도, 안 줬어.
가끔 부모님이 샤프에 대고 쌍욕을 시전하시더라. 그래도 괜찮았어.
여전히 매일 집에 들르는 아저씨와 마미손. 이, 금손님, 중학생이 되는 것을 목도하는 역사의 산 증인이여!
“으흐흐. 그대들에 대한 나의 축복이 극대화되리라.”
딱-
“아얏! 아저씨! 왜 이렇게 일찍 집에 오셨어요?!”
이젠 뭐 내 등짝은 국민 등짝이 됐나 봐. 아무나 다 때려. 동네북이야 완전.
아저씨는 이 아침부터 무슨 볼일인지 모르지만, 아버지와 식사를 시작하셨어.
나는 기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지.
중학교 정문을 들어서자 몇몇 친구들이 나를 알은체 해. 그 정도 인사는 반갑게 맞아줘야지. 안 그래?
그런데...
“네가, 금손이지? 우리 학교에도 금맥이 있는 지 좀 봐 주련? 하하.”
교장 선생님을 시작으로,
“우리는 대외협력활동 보다는 내실에 충실하고 있다. 혹시나 해서, 알아두라고.”
대외협력부장님까지.
이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학부모님들이 의심을 품었어. 그리고 항의하더라. 입학식 날부터 이렇게 편애가 있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된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겠냐고. 결과적으로 내 성적조작까지 해 주는 거 아니냐고.
이런 오해를 안 받으려면.... 꼴찌하는 수밖에 없는데. 내가.... 이 금손이, 가능하겠어?
“금손!”
오랜만에 듣는 돌아이 굴러가는 소리! 하필이면, 같은 반이네?!
“장경식! 너 어디 갔었어? 안 보이던데?”
“아빠랑 중국에 가 있었어. 돌식이 한국오고 장난 아니었다면서.”
“니가 그걸 봤었어야 했는데, 안타깝다.”
돌아이가 씩 웃어.
“근데 중국은 왜?”
“희토류 광산에 문제가 있다고, 아빠가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
“재밌었어?”
“말이라고. 지구에 인간이 살고 있는 곳, 발아래는 다 땅, 광물, 광석 이라고. 인간이 잊고 살아서 그렇지....”
이 돌의 아이야. 내가 괜히 말을 꺼냈다 싶다.
이번 입학식엔 떡볶이 코트를 입지도 않았어.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특별한 날들의 계속이더라.
두두두- 갑자기 헬리콥터 한 대가 하늘에서 날아와. 운동장의 모래가 쫘악- 땅에서 솟구쳐. 그리고 헬리콥터가 만드는 바람결 따라 모래가 공중에 막 날아다녀. 누가 보면, 모래요정 바람돌이 출두한 줄 알겠어.
두두두- 사람들이 사진 찍기 시작해. 그러더니 헬리콥터에서 쏴아- 천막이 하나 내려와.
[중학생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악수는 언제하나? - 금손 삼촌들-]
그리고 하늘에서 색종이가 날려. 펄펄- 하늘하늘- 와, 와... 창피해서 말이 안 나와.. 바닥에 쌓인 종이 누가 다 치워?
그래도 같이 입학하는 친구들이 좋아해 줘서 기분 좋더라.
여기서 안 끝나.
학교 수위아저씨가 갑자기 호루라기를 불어대기 시작해. 시끄러울 정도로. 당연히, 사람들이 그 소리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지 않겠어?
검은색 차 20여대가 학교정문 양쪽으로 도열하네?! 그리고 동시에 문이 딱- 열리는 거야. 검은 양복, 검은 선글라스, 시커먼 구둣발. 누가 보면 맨인블랙 영화 촬영하는 줄 알았을 거야.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멋있더라고. 다들 귀에 뭔가가 꽂혀있는데...
이게 또 사진각이야.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 난리야. 어휴...
그런데, 그 사람들이... 반 접힌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옆으로 쫙- 선다. 그리고 그 종이를 활짝 펴! 막 펴!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펴는 거야!
[이제 사람답게 살아라 금손아. 하이파이브! - 금손 삼촌들-]
이쯤 되니깐, 삼촌들이 제정신인가 싶어. 뭐. 어련하시겠어. 그 좋은 직장 들어가신, 고오-급 인력들이 이러고 있으니...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인지 확인해 봐야하는 거 아니야?
저 멀리서 철호 아저씨가 손을 막 흔들어. 신나게 흔들어.
나는 시크하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돌아봤어. 왜냐고? 내가 금손 아닌 척 하면, 이 창피함은 내 몫이 아닌 거거든. 그럼에도 이번 중학교 생활도 쉽지는 않겠구나... 하고 각이 그냥, 딱 나오더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 주변에 서 있던 학부모님들이 한마디씩 하더라.
“쟤랑 친해져. 알았지?”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나도 사람인지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요.... 하긴 마미손 도둑님을 좋아하게 된 것 보면... 난...박애주의자가 틀림없어.
시간은 진짜 빠르더라니깐.
중간고사 1주일을 앞둔 날. 그 동안의 생활이 약간 후회가 되는거야.
그 사이 나는 철저히 부모님의 교육관을 따랐었거든.
[학교는 놀기 위해 다니는 곳이다.]
매일 놀았어. 신나게 놀았어. 어느 날은 밤새 게임하느라, 학교 지각을 했어. 또 어떤 날은 담치기 하고 PC방에 가기도 했어. 또 어떤 날은...
이제, 그만할게. 더 이야기 하면 친구들에게 칼 맞을 거 같은 분위기지 뭐야.
그런데, 이 ‘1주일’이라는 말이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더라고. 그래서 돌아이와 함께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건 시험에 나올 것 같아, 이 문제는 안 나오면 출제자 의도가 이상한거야, 이건 주관식으로 딱 이야. 이런게 있더라. 그리고 내 펜이, 샤프펜슬이 막, 콕콕 자동으로 단어를 찍어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시작했어. 중간고사 족보 만들기. 연필로 한 땀 한 땀 정리했지. 예상문제 유형까지 말이야. 정성스럽게.
그걸 보던 돌아이는 자기도 보여 달래. 자신은 우리 부모님 교육관의 철저한 피해자라면서. 피해자 구제대책중 하나가 이거 아니겠냐는 막말을 날려. 어쩌겠어. 보여줬지. 공짜로.
그런데 돌아이 짝꿍인 양 갈래 머리 소녀가 자기한테도 그걸 보여 달래. 대신 공짜가 아니라 500원에.
그래서 팔았지. 그렇게 우리반 애들 전부가 그 정리집을 사갔어. 소소하게 500원에서 1만원 까지 차등된 가격에.
그렇게 중간고사가 시작됐어. 장장 3일 동안이나.
시험대열로 책상이 정리되고, 시험 시작종이 울려.
다들 중학교 첫 시험에 신경 많이 쓴 눈치였어. 누구는 꼭 과학 고등학교를 가야해서, 누군 외고니, 민사고니 하는 학교 준비 때문에, 누구는 엄마한테 혼나기 싫어서 잘 봐야 한다는 애도 있고. 나처럼 생각 없는 애도 있고.
시험지가 앞에서부터 넘어와. OMR 카드라는 것도 넘어와. 그렇게 시험이 시작됐어.
시험시작 종 친지 30분이 지나지도 않았어. 교실의 절반 이상 친구들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해. 당황한 건 시험감독 선생님이셨어.
“시험지 줘 봐.”
“야, 답안지 줘 봐.”
“야, 시험 다 풀었어? 자는 거야?”
자는 애들 족족 깨우면서 물어보고 다니는 거야. 그런데 그 애들 다 풀었데. 심지어 답안지 작성을 틀리지도 않아. 고치지 않으니, 할 게 없는 거야. 그래서 책상에서 잤던 거고.
그 다음 시간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이 계속 반복 되는 거야.
시험 마지막 날 종례를 하는 도중에, 담임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음. 지난 3일간 시험 보느라 수고했다. 그리고 시험감독 선생님들께 전해 들었다. 시험시작 얼마 안 지나, 다 엎어져 잤다고. 개인적으로 시험문제를 다 푸는 걸 바란 건 아닌데... 다 찍는 건 좀 너무 하지 않았나, 싶다. 결과 나와도 놀라지 않을 테니, 오늘 만은 신나게 놀아라. 이상.”
이러시더라. 우리 담임선생님도 쿨해. 일단 놀래.
그래서 선생님 말 따랐지. 결과야 뭐... 언제고 알 거고.
다음날 아침조례시간에 선생님이 보통 때 보다 빨리 들어오시더라. 막, 얼굴이 복숭아처럼 분홍빛이면서, 흥분되는 일이 있나봐.
“어제 저녁 중간고사 가채점 결과가 나왔다. 우등반하고 점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어... 예상 했었다.”
이러더니 고개를 푹 숙여. 다들 선생님 따라서 고개를 푹 숙이는 거야. 뭐, 공부 못하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다들 고개 들어.”
선생님이 누런 치아를 보이며 웃고 있네?!
“축하한다. 우리가 1등 한 것 같다. 우등반 하고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로. 올백이 수두룩 빽빽이고, 뭐... 우리반 꼴지가... 전과목 10개 틀렸다. 우리반 꼴지가 다른 반 일등하고 점수가 같다.”
“와-”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어마어마하더라. 진짜 교실 천장 날아가는 줄 알았어.
“근데, 진짜, 우리반 우등반도 아니고, 다들 엎드려 잤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비법이 뭐냐?”
이 한마디가 불러온 참사.
애들이 나를 돌아봐. 내가 뭐? 한 거 없는데? 나도 올백이어서 기분이 좋을 뿐이라고.
다음날, 선생님이 우리 부모님을 호출했어. 그런데... 우리 부모님만 오면 되잖아? 아저씨랑 마미손도 왔네? 그래서 왜 왔냐고 하니까, 자기들도 나에 대한 교육책임감이 있데. 어른으로서. 이게 무슨 말이야?
우리 담임선생님이 당황해서 가라고 말도 못하더라? 그냥 어른 네 명이 상담실에 앉았어. 나는 엄마 옆에 앉았고.
“금손이 부모님. 친구들에게 이런 걸 돈 받고 파는 행위는 안 됩니다. 물론 도움이 되어서 다행인데...”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교육을 잘 못 시켰어요. 정당한 거래 행위에 대한 정의를 다시 가르치겠습니다.”
“아니...어머님, 그게 왜.”
“아이고, 죄송합니다. 물물교환을 하라고 이야기 해 주겠습니다. 돈 거래는 안 된다고.”
“죄송합니다. 어른인 제가 잘 가르쳤어야 하는데.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는 받지 말라고 잘 타이르겠습니다.”
“지식정리는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까요? 도둑질도 아닌데, 그건 괜찮지 않을까요?”
마지막을 장식한 마미손 진짜... 부들부들... 더 이상 선생님은 그 일에 대해 말씀 안 하시더라.
상담을 마치고 반에 돌아오니, 양 갈래 머리를 한 친구, 돌아이 짝꿍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야, 금손! 나랑 이야기 좀 해.”
뭐야? 내가 왜?
보통 아버지가 엄마한테 저런 말을 들으면, 일단 약속 있다하고 자리를 피했었는데, 그것이 남자의 살길이라며.
“나 바빠.”
“잠깐이면 돼. 야, 왜 나만 꼴등인데?! 같은 정리 노트 봤는데, 왜 나만 꼴등이야?”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내가 들은 게 맞나 해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10개 틀린 거면 잘 한 거 아니야? 우리 반에서야 꼴등이지만, 절대평가면... 상관없잖아. 그런데 저렇게 무지 억울한 얼굴로 나를 본다고? 어, 어, 막 눈물 흘리고 그러는 거 아니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나타난 구세주! 돌아이닷!
“야, 박민영! 너 집에 안 갔어?”
박민영? 나는 오늘 이 여자아이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돌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그것도 실실 웃으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하더라. 민영이가 듣지 못하게.
“얘, 진짜 공부만 하는 애인데, 우리반 꼴찌야. 그리고 반에서 왕따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흐흐. 내 스타일이거든.”
미친 새끼. 아직 변성기도 안 온 주제에. 어디를 봐서 이쁘다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
그 뒤로 우리는 삼총사가 되었어. 당연히 돌아이의 주장 때문이 아니었지. 알잖아, 나 박애주의자 인거. 이제 마미손도 좋아한다니깐. 그리고 이 금손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왕따?! 이런 거 나 못 봐준다고!
“박민영! 오늘부터 우리 패밀리 인! 오케이?!”
이게... 시작이었어. 하... 어마무시한 일의 시작....
- 작가의말
금손 왈 : “으흐흐. 그대들에 대한 나의 축복이 극대화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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