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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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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작품등록일 :
2020.11.28 17:19
최근연재일 :
2022.08.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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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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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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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화 - 고려를 탈출하다.

DUMMY

559년 가을의 어느 날.


밤공기가 차가운 캄캄한 새벽 아침, 대성산성(大城山城) 내에서 남문을 향해 한 무리가 이동하고 있었다.


무리는 말이 아닌 낙타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무리의 중간에는 두 마리의 낙타가 지붕이 딸린 마차를 끌었다.


후미에는 수레들을 이끄는 일꾼들과 무장한 낙타 병들, 그리고 노예로 보이는 남녀들이 뒤를 따랐다.


성곽 위의 경계병들이 동료와 잡담 도중에 성문으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이~ 저기 뭔가 다가오는데?“


”이 시간에? 어라? 북 안 치고 뭐 해!?“



이내 성곽 위의 병사가 소북을 치며 경계했다.


-통통통통!-



”저기 누군가가 성문을 향해 옵니다.“



거대한 성문에 다다르자 문을 지키는 병사들과 수문장이 횃불을 들고 다가가 무리를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강국(康國) 분들이신데, 이른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은 아무도 나갈 수 없습니다.”



문지기들이 경계하자 하사안이 탄 낙타가 성큼성큼 한 수문장에게 다가갔다.


은빛 투구와 사슬갑, 찰갑으로 중무장을 한 그는 능숙한 고려어로 대꾸했다.



“우린 황실에 ˚수우각(水牛角)을 납품하는 자들이오. 주나라에 일이 있으니 나가야겠소.”


“지금은 아무도 나갈 수 없다는 명인지라.. .으흠!”



수문장은 무언가 요구하듯 헛기침을 하며 노려보았다.



“잠시 이쪽으로.”



하사안은 병사들을 피해 낙타의 고삐를 돌렸다.


수문장이 따라오자 하사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의 주머니를 뒤척였다.


이내 손바닥을 가득 메꾼 은전뭉치를 꺼내 보란 듯 만지작거렸다.



“이정도 은전이라면 한동안 돈 걱정은 없지 않을 텐데..”



횃불의 불빛에 은전뭉치는 더없이 빛나 보였다.


수문장은 동그래진 눈으로 커다란 은전뭉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휙-


하사안이 은전뭉치를 수문장에게 건넸다.


수문장은 받은 것을 곧바로 자신의 갑옷 안으로 쑤셔 넣었다.



“흠흠! 하오면 잠시 검문을 하겠습니다. 협조하시지요.”


“그러시오.”



자리로 돌아온 수문장이 병사들을 보며 고개를 강국인들의 방향으로 까딱였다.


문지기들의 횃불들은 이내 선두에서 낙타를 타고 있던 하사안과 망토를 걸친 젊은 청년을 비추었다.


짙은 눈썹에 선명한 쌍꺼풀, 날 선 코, 오른쪽 귀에 은귀걸이를 한 청년은 봉긋하게 솟은 특이한 모자를 쓰고 양쪽 귀밑으로 머리를 땋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횃불은 이내 지붕이 달린 마차 내부를 비추었다.


마차 안에는 역시 특이한 모자를 쓰고 말 무늬의 자수가 장식된 붉은 색 두루마기를 입은 한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 매서운 눈매, 턱 전체를 감싼 수염 그리고 오른쪽 귀에 금귀걸이를 한 중년의 남성은 내부를 검문하는 자를 노려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 아닙니다.”



마차의 후미에는 수레와 낙타들을 이끄는 일꾼들, 칼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 열 명이 있었다.


그 뒤로는 헝클어진 머리에 비루한 누더기 차림으로 쇠고랑을 찬 남성 노예 넷과 여성 노예 한 명이 있었다.



“호오~ 여기들 봐. 계집종인가 본데?”



고려인으로 보이는 여성 노예는 상당한 미인이었기에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성노예로 예상한 수문장은 그녀에게 다가가 여성 노예의 몸을 일부러 더듬으며 살폈다.



"음~ 미인이군. 어디 보자. 가만히 있어라. 위험한 것이 있나 좀 살필 것이니."



수문장이 몸을 더듬자 여성은 수치심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떨궜다.



“으...읏.”


“나이 치고는 제법 실하구나. 몸값깨나 나갈 계집이야.”



후미의 여성 노예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자 선두에 있던 청년의 낙타가 다가왔다.


능욕당하는 여성 노예의 모습을 본 청년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놈! 죽고 싶은 것이냐! 그 여성은 진상할 여자이거늘 네놈들 따위가 감히 함부로 건들다니!”



청년의 일갈이 성문 주변의 정적을 깨뜨리자 성곽 위의 병사들도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놈, 방금 뭐라는 거야?”


“성깔 부리는 것 같은데?”



청년의 일갈에 놀란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타국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수문장은 통역에 능한 병사 하나를 불러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저 당돌한 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그게 죽고 싶... 아니 아니, 그, 진상할 여자이니 건들지 말랍니다..”



수문장은 팔짱을 끼며 청년을 바라보고는 비아냥거렸다.



“지 것도 아니면서 어린놈이 계집 하나로 염병을 떠는군. 좀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흥!”


“지금 뭐라 했느냐!”


“으앗... 아니 그, 그게...”



닌감해진 수문장은 청년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딴청을 부렸다.



‘뭐야. 이놈. 고려말 할 줄 알았던 거야? 제기랄.’



어설픈 억양과 발음이었으나 청년이 고려어를 하자 다들 놀란 상황이었다.


청년 곁으로 하사안이 다가와 수문장에게 말을 건넸다.



“언제까지 지체되어야 하오?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오?”


“아. 아니오. 이상은 없어 보이니 어서 통과하시오. 성문을 열어라!”



-쿠구구궁-


거대한 문이 열리자 강국의 무리는 서둘러 성을 빠져나왔다.


밤하늘은 점차 보랏빛으로 변해가며 해돋이의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멈춰라. 이쯤에서 재정비 한다.”



마차 안의 목소리에 무리의 행렬이 멈추었다.


마차 안에서 남성이 나오자 낙타 위의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으나 여성 노예만이 그저 남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빠져나오는 와중에 고생이 많았소. 부정주.”


“아닙니다...”



능숙히 고려어를 구사하는 남성은 여성이 찬 손목의 쇠고랑을 직접 풀어주었다.


그리곤 눈물 자국이 선명한 그녀의 눈과 볼을 어루만졌다.



“오랜만에 고려 땅을 밟았거늘, 고려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이었을 줄은 몰랐소.”


“남은 가족들이 무사하길 바랄 뿐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선택한 결정이니 서둘러 고려를 벗어납시다.”



이내 선두의 청년이 다가와 어설픈 발음의 고려어로 부정주에게 옷을 건넸다.



“어머니. 마차 안에 올라 옷을 갈아입어요.”


“온달. 고맙구나.”



부정주가 마차에 탑승하자 노예로 변장했던 이들도 모두 재정비하여 낙타에 올랐다.


다시금 이동행렬이 이어졌을 때 하사안이 온달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주인님. 아까는 놀라운 기지였습니다. 왕께 바칠 여성이라...”


“감히 내 어머니를 농락하다니, 고려 땅만 아니었다면 단칼에 목을 쳤을 거야.”


“잘 참으셨습니다. 이제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거대했던 산성이 저 멀리 작아질 무렵, 낙타의 무리는 무사히 고려를 빠져나가는 듯 보였다.



***



아침 햇살이 안학궁성(安鶴宮城) 내 동궁 내부의 창호들을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말끔한 차림의 한 20대 초반의 태자 고양성은 뒷짐을 지고 한 별채 안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어찌 되었을까.‘



고심하던 중에 곧 문 뒤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자 전하. 유수이옵니다.”


“그래. 들라.”



검은 도복을 입은 20대 후반의 여성이 들어와 그에게 ˚호궤(胡跪)했다.


평강공주 고담현의 ˚시위(侍衛)이자 ˚중리소형(中裏小兄)인 유수는 고양성의 직속 가신이기도 했다.



“그래, 다들 무사히 나갔느냐?”


“예. 태자 전하. 성을 빠져나갔사옵니다.”


“아들과 부인 역시?”


“예. 그렇사옵니다.”


“휴우...”



고양성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궁장 부정웅과 그의 가문이 걱정되는구나.”


“전하...”


“반란이 일어났던 것도 모자라 설상가상으로 ˚타르칸의 아들이 하필 부정웅 장녀의 아들이었다니.”


“궁장은 태왕께서 직접 가문의 연을 맺어주지 않사옵니까.”


“어찌 이런 일이, 궁장 기술 유출이라는 죄목만으로 오해받아도 가문이 풍비박산 날 수 있거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온씨와 부정씨는 황실의 맥궁 제조에 꼭 필요한 이들이옵니다. 전하께서 직접 태왕 폐하께 상소를 올리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부왕께선 간주리(干朱理)의 삼족을 멸하신 뒤 사리 분별이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들 또한 가만두실 리 없을 것 같구나.”


“하오면...”


“지금껏 숨기고 지낸 것이 용하구나. 아들 이름이 온달이었지?”


“예. 전하. 그가 부정주에게 어머니라고 했을 때, 제 귀를 의심했사옵니다.”


“순간 감정을 못 참고, 이런 바보 놈 같으니... 그 상황에 다른 이들이 있었느냐?”


“부정웅 부녀 외에 위부건이라는 사내가 있었사옵니다.”


“위부건?”


“예. 전하. 부정부(負鼎府)에서 부정웅을 돕는 자인 걸로 아옵니다.”


“위부건이 어떤 사내인지 알아봐라. 행여 폐하의 첩자라면 큰일이다.”


“예. 전하.”


“한동안 부정웅이 무사하다면 부정 가문 역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대성산성으로 가서 부정웅의 상황을 살펴라.”


“예. 태자 전하.”


“아, 이걸 가지고 가거라.”



고양성이 옷소매 안에서 금으로 된 영패(令牌)를 건네자 유수는 허리 숙이며 영패를 받았다.



“바로 출발하겠사옵니다.”


“그래. 조심해라.”



곧바로 자신의 처소로 달려간 그녀는 하얀 색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하얀 모피와 너울을 걸친 뒤 말에 올랐다.



‘부디 무탈하기를.’



유수가 안학궁성의 북문에 다다르자 문지기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가씨 어딜 가시려는 거요? 북문 출입은 아무나 가능하지 않소, 허가증이 있으면 보여주시오.”



말을 탄 정체불명의 여성이 북문으로 나가려는 것을 의아스럽게 여긴 병사들이 곧 그녀를 에워쌌다.



“난 중리소형 유수다. 태자 전하의 명으로 대성산성에 확인할 것이 있어 나가야 하니 어서 문을 열어라.”



너울로 얼굴을 가린 유수가 고양성이 건넨 금빛 영패를 꺼내자, 주변의 모든 군사이 호궤했다.



“아. 중리소형이셨습니까. 몰라 뵈었습니다. 어서 성문을 열어라!”



거대한 성문이 열리자 유수가 탄 말이 저 멀리 보이는 대성산성을 향해 넓은 대지를 달리기 시작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작가의말

˚수년 전 연세대학교 역사학자 지배선 교수님께서 신당서를 포함한 고서에서 강국의 왕족 성씨가 온씨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온달이 왕족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인용해 이야기에 녹여보았습니다.

 

˚온달(溫達) : ( ? ~ 590), 고구려의 장수이자 평원왕의 사위, 평강공주의 남편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봉성온씨의 시조이기도 하며 설화에서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사내가 공주인 아내를 잘 만나 출세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아마도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극적인 묘사를 위해 그렇게 이야기가 쓰여진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온달의 정체와 죽음에 대해서 확실한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은 오랫동안 의문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평범한 고구려인이 아닌 타국인으로 묘사됩니다.


˚타르칸(Tarkhan)은 한자로는 달간(達干)으로 표기 되며 소그디안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원시몽골, 유라시아 유목민들 사이에서 사용된 최고의직에 대한 호칭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시위(侍衛) : 임금이나 어떤 모임의 우두머리를 모시어 호휘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호궤(胡跪) : 고구려, 고려 중~말기, 조선 초에 유행했던 예법으로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절하는 인사를 뜻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자주 사용될 용어입니다.

 

˚수우각(水牛角) : 물소의 뿔을 의미하며 맥궁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였습니다.

 

˚중리(中裏) : 중리는 국가의 중요한 기밀을 관장하거나 국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부서로 인사관리 뿐 아니라 수도경비, 국왕의 시위, 첩보 등 국가의 중추업무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구려의 장수왕 시기 평양천도 후에 국호를 고려로 개칭했기에 소설의 대사에서 고구려의 명칭은 고려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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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221화 - 대모달 온달. +2 22.08.11 131 5 14쪽
222 220화 - 수풀들의 공격. +1 22.08.05 76 4 16쪽
221 219화 - 적목성(赤木城)으로. +4 22.08.04 88 4 15쪽
220 218화 - 대대로의 능욕. +4 22.07.23 80 4 15쪽
219 217화 - 적들을 물리치는 아내. +2 22.07.19 65 3 12쪽
218 216화 - 염탐. +2 22.07.15 59 3 14쪽
217 215화 - 아내와 남쪽으로. +2 22.07.11 72 3 15쪽
216 214화 - 강국과의 거래. +4 22.07.08 63 3 13쪽
215 213화 - 혼혈임을 이용하는 온달. +4 22.07.04 71 3 17쪽
214 212화 - 맹세. +4 22.06.29 89 3 15쪽
213 211화 - 담판. +2 22.06.27 78 3 14쪽
212 210화 - 출산. +4 22.06.21 103 3 14쪽
211 209화 - 온달의 무기. +4 22.06.14 74 3 13쪽
210 208화 - 부정적인 소문. +2 22.06.08 76 3 13쪽
209 207화 - 남하를 위한 준비. +2 22.06.07 73 3 13쪽
208 206화 - 오열. +2 22.06.02 82 3 14쪽
207 205화 - 떠나는 사람들. +2 22.05.30 80 2 12쪽
206 204화 - 도망자들. +2 22.05.26 68 2 14쪽
205 203 화 -무너진 상단. +2 22.05.24 81 2 13쪽
204 202화 - 신라땅에서의 습격. +2 22.05.21 80 2 12쪽
203 201화 - 발각. +2 22.05.18 79 3 16쪽
202 200화 - 회임 소식. +2 22.05.14 92 3 16쪽
201 199화 - 처리해야할 자. +2 22.05.11 85 3 13쪽
200 198화 - 남은 이들을 위한 목표. +2 22.05.07 100 3 13쪽
199 197화 - 충격에서 충격으로. +2 22.05.04 85 2 13쪽
198 196화 - 넋 잃은 온달. +2 22.05.03 73 3 14쪽
197 195화 - 용서를 구하는 부녀. +2 22.04.27 8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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