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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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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작품등록일 :
2024.07.29 13:23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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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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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초중전함 vs 초중전함

DUMMY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9개의 주포문이 바다 위를 겨누었다.


누군가는 거대한 전봇대를, 누군가는 오래된 거목을, 또 누군가는 신전의 기둥을 통째로 뽑아다 달았다고 생각할 만큼 두꺼운 포신.


인류 공학 기술의 정점에 다다른 그 파괴의 도구가 나란히 정렬한다.


바다 위에서 적을 파멸시키는 데 필요한 가장 확실한 대답.


이순신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제3사, 일제사, 발포!>


태양의 섬광이 잠시 검은 바다를 비추었다.


포문에서 해방된 과압이 파도를 으깨며 7만 톤급 전함의 수선부가 일시적으로 노출되었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폭풍우가 바다를 가로질렀다.


“제3사! 착탄까지 12초!”


전함의 주포는 현대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전술 병기 중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병기이다.


톤 단위의 포탄을 음속의 2배까지 가속해 순수한 운동에너지로 적을 짓뭉개는 거인의 주먹.


그 강대한 화력은 같은 전함마저도 상대하기 벅차, 전함 간의 교전 거리는 러일전쟁 시기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날이 갈수록 증가해 마침내 수평선 언저리까지 다다랐다.


“키 돌려! 키 오른편 15도!”

“키 오른편 15도!”


하지만 지금 양 함대 간의 거리는,

어림잡아 9,000m가량.


공고급 전함이 장착한 구형 36cm 주포도 운이 좋으면 이순신의 장갑을 관통할 만한 거리다.


“적 전함열, 발포 개시!”

“후방 공고급도 발포합니다!”


일반적인 전함 간 교전에서 1만 미터 이내는 그야말로 구경의 우위가 의미가 없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직접 들이대는 격이기 때문이다.


“타수! 키 바로!”

“키 바로!”

“착탄까지 5초!”


포탄이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


이 거리에서 46cm 철갑탄의 장갑 관통력은 680mm가 넘는다.


“착탄―!!”


이순신과 야마토.

서로의 가장 두꺼운 장갑판, 즉 주포탑 정면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이 두부살처럼 뚫린다.


그러니까,


“적함상에 폭발염상! 명중입니다!”


선빵 필승이다.


이순신이 토해낸 폭풍우가 야마토를 강타하며 어두운 수평선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거대 전함 주변을 감싸며 솟아오른 수많은 물기둥.

야마토가 함체 측면에서 연기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야마토의 사격은 훨씬 부정확했다.


거대한 물기둥이 이순신함 좌현 300m 거리에 솟아오르며 일시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이쪽의 포격에 대응해 다급히 쏘느라 그런 듯하다.


사실 야간에는 이런 근거리라도 적을 맞히기 쉽지 않다.


원역사에서는 공고급 순양전함 키리시마가 미 해군 전함에 대해 야간에 5km 거리에서 117발 중 단 1발만 맞히기도 했다.


반면 우리에게는 정확한 거리와 위치 측정이 가능한 레이더가 있다. 먼저 협차를 달성했으니 이제부터는 일방적으로 두들기면 된다.


“적 구축함대, 연막 살포 개시!”


조명탄이 번쩍이는 바다로 검은 구름이 짙게 깔린다. 야마토의 측면에 전개한 구축함대가 굴뚝에서 연막을 뿜으며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도 연막 뿌리고 어뢰 투사하라고 전해.”

“예!”


이걸로 서로의 시야는 잠시 봉쇄되었다.


<제4사, 발포!>


물론 우리에게는 레이더가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

화면에 노이즈가 잔뜩 끼었기 때문이다.


“적에게 전탐 대응 수단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 육안으로 관측해서 쏴야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착탄까지 5초!”


우리 항공대를 쓸어버리든.

레이더를 교란하든.


“제4사, 착탄!”


네가 뭔 짓을 하든 간에.


“명중했습니다!”


내가 찾아가서 아작을 내버릴 거니까.


멀리서 섬광이 번쩍이며 불타는 야마토의 선체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


“제기랄!”


묵직한 충격이 함교를 흔들며 사토는 그답지 않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조선에는 죄다 미치광이밖에 살지 않는 거냐?!”


이순신의 일제사격을 얻어맞은 야마토는 잠시 흔들리더니 다시 평형을 되찾고 근엄히 항진했다.


함교 창밖에서는 물기둥이 가라앉으며 새하얀 거품이 튀어 올랐다.


야마토의 피해는 생각보다 컸다.


3번째 일제사격으로 2발이 명중해 한 발은 함수를 관통, 한 발은 현측 장갑판을 뚫고 전방 보일러 중 하나를 날려버렸다.


속력이 24노트로 저하한 야마토는 다급히 채프 포탄을 쏘아 올리며 함체를 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4번째 일제사격이 함미 부근에 협차하며 한 발이 수상기 격납고를 관통해 거대한 화재를 일으켰다.


46cm 주포의 폭풍에서 관측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폐쇄식 격납고에는 수상정찰기와 항공유가 적재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순신함의 주포탄이 작렬하며 대화재를 일으켰고 함미에서 번진 샛노란 불꽃은 야밤에 그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보였다.


“함장! 손상통제는 가능한가?”

“보수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주포는 멀쩡합니다!”


적과 교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돌려 말하는 함장.

하지만 사토는 그 의중을 알고도 고개를 저었다.


“이런 근거리에서의 포격전은 유리병끼리 산탄총을 들고 싸우는 격이네.”


귀중한 초중전함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다.


아직 준비해둔 수는 많으니까.


먼저 연막과 채프로 눈을 가리고, 어뢰로 접근을 차단한 다음, 공고와 하루나를 동반해 포격을 집중하면 된다.


더 다가오려고 해도 수십 발의 산소어뢰가 날아드는 중이고 이쪽에는 2척의 전함이 더 존재한다.


놈은 스스로 죽을 곳으로 머리를 들이민 셈이다.


“이렇게나 어리석을 줄은 생각 못 했는데. 그저 운이 좋은 범부였을 뿐인가.”


잠깐의 당황에서 벗어난 후 사토는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약간의 기회가 보이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무모한 작자였다니. 야마모토는 겨우 이딴 전함과 지휘관에게 그 고생을 했다는 말인가?


과연 제국 해군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고 할만하다.


사토는 코웃음을 치며 연막이 깔린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야마토의 함미를 감싼 화재가 점차 잦아들 무렵,


“4수전에서 긴급 보고!”

“뭔가?”

“적 전함이··· 본 함으로 지속 접근 중!”


연막을 전개한 구축함대의 보고에 그는 할 말을 잃은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시금, 거대한 물기둥이 야마토의 부근에 솟아올랐다.


***


“키 오른편 15도!”

“오른편 15도!”

“양현 앞으로 비상 전속!”


강철로 빚어낸 용이 바다를 질주한다.


차가운 파도가 큰 함수에 부딪혀 밀려나며 하얀 거품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이순신의 선체가 크게 흔들리고 거함의 굴뚝에서 숨 쉬듯 토해낸 매연이 새까만 하늘 아래 어둠을 더했다.


“함장님! 적 구축함이 어뢰를 투사했습니다!”


함교 난간을 붙잡은 손원일 항해장이 외쳤다.


“이 침로대로 접근하면 피뢰당할 가능성이···.”

“알고 있어!”


쌍안경으로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바다를 응시하며 나는 곧장 대꾸했다.


산소어뢰의 궤적은 희미하지만 그래도 집중하다 보면 보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함대 사령부 시설과 야간 전투 시설이 있는 제2함교는 1함교보다 낮은 곳에 있어 근거리 시야가 좋다.


“항해장! 어뢰 궤적을 계산할 때 가장 덜 맞을만한 위치로 기동할 수 있겠나?”


항해장은 고심하는 얼굴로 눈을 마주치더니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부탁하네.”


이윽고 오랜 조함으로 지친 조타장이 그에게 타기를 넘겨준다.


역시나 산소어뢰의 궤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예측은 할 수 있다.


몇몇 어뢰가 조기 기폭하여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른 것이다.


“항해장!”


눈을 마주친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생각이 통할 지경.

최대한 덜 맞을만한 침로로 가야 한다.


포탄이 한 번 떨어진 장소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듯. 어뢰도 다가오던 경로에 겹쳐서 오지는 않는다.


선체를 돌린 이순신이 적 함대에 비스듬히 파고드는 자세로 돌격하고―


쿵―!

묵직한 충격과 함께 물기둥이 현측에 솟아올랐다.


“좌현에 피탄!”


얕은 충격이 느껴졌지만,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큰 피해는 아닌가. 더군다나 피격 위치를 보아 탄약고 쪽은 아니다.


나는 곧장 전성관을 열고 기관실에 물었다.


“기관장, 상황 보고해!”


잠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겨우 이 정도로 전함을 쓰러트리려고 하다니···.>


분노한 노익장의 외침이 전성관 너머까지 흘러나왔다.


<어뢰 한 발로 이순신함을 멈춰 세우겠다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아아아암!!!>


<기관장님! 보일러실 침수 중이라고요!>


어떻게든 견뎌냈다.

역시 이순신의 방어력은 믿어볼 만하다.


이순신함의 방뢰 구조는 현세대 최고 수준이다. 야마토보다 무거운 배수량을 대부분 이 방뢰 구조에 투자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


설령 구축함의 산소어뢰라도 최대 4발까지는 얻어맞고도 전투 행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비록 무지막지한 작약량 때문에 바깥쪽 보일러에 약간의 침수가 발생했지만 이 정도는 보수반원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안전할 수는 없었다.


“502함 피탄!”


이순신함의 뒤를 따라오던 구축함 중 하나가 산소어뢰에 직격당했다.


날카로운 물기둥이 2,000톤급 구축함 함체 중앙에 솟아오르고, 이윽고 작은 선체가 삽시간에 두 조각 나며 침몰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른 채 물었다.


“두만함과 낙동함은?”

“전부 무사합니다!”

“그럼 연막 계속 살포하라고 해! 공고급의 눈을 가려야 한다!”


지금은 달려야 한다.

저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게끔.


소수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절대로 다수를 동시에 상대하지 않는 것.


쉽게 말해 1대1 상황의 연속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현 견시 보고! 적탄, 방위 040, 거리 80m에 착탄!”

“전함 포탄입니다!”

“공고급은 우리 조준 못 해! 무시해!”


저들에게 없고 우리에게 있는 건 레이더의 존재.


이순신함의 우현에 연막 구름이 번져나가며 적 후열에 위치한 공고급의 시야를 막는다.


제아무리 채프를 흩뿌려도 공중에 날리는 채프는 실시간으로 기동하는 함선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무리 채프를 많이 뿌려도 틈이 보일 터.


그리고 우리 포술장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을만한 실력자다.


“제6사, 발포!”


태양이 번쩍이는 듯한 섬광이 눈앞을 비추고 새까만 매연이 이순신의 함체를 스쳐 지나간다.


폭풍우에 짓눌린 파도가 놀란 채 멀리 도망가고, 회중시계를 든 장교가 긴박하게 시간을 외쳤다.


“착탄까지 10초!”


이순신함 주위로 눈먼 탄이 물기둥을 만들고,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장병들이 긴장하며 쌍안경을 바라볼 무렵,


“착탄··· 명중입니다!”


뿌연 연막 너머로 다시금 샛노란 불빛이 번쩍였다.


***


이순신함의 여섯 번째 일제사격은 총 3발이 명중했다.


한 발은 현측 장갑에 너무 비스듬히 명중해 튕겨 나갔다.


다른 한 발은 주 장갑대 바로 위의 비장갑선체를 관통해 그대로 중심부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은 주포탑 부근에서 작렬.

3번 주포탑 앞 갑판을 뚫고 바벳(포탑 밑기둥)에 명중했다.


비록 포탄은 둥근 장갑 가장자리에 명중해 튕겨 나갔지만 장갑이 우그러져 포탑이 회전 불능에 빠졌다.


수리에는 시간이 걸리는 상황.

사토는 슬슬 초조해지는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함장! 당장 전 포문을 도열해 이순신을 공격하게!”


현재 야마토는 대한제국 구축함의 어뢰 난사를 피해 전장에서 이탈하는 침로로 기동 중.


반대로 이순신은 함수를 들이밀고 다가왔기에 야마토는 함미를 내준 모양새가 되었다.


적의 침로를 잘못 예측했다.


상식대로라면 이순신도 어뢰를 피하려고 똑같이 바깥으로 빠지리라 생각했고, 그리하면 다시 평행진을 유지하리라 보았다.


하지만 사토의 바람과 달리 이순신함의 선택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당최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어뢰가 수십 발씩 날아오는 데 머리를 들이민단 말인가? 심지어 뒤에서 전함 2척도 따라오는데?


어찌 되었건 이제는 전방 주포를 쓰기 위해 함체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함장은 난색을 표했다.


“그러고 싶지만 어뢰가···.”

“이 거리에서 얻어맞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얼른!”


함대 사령관의 권한으로 재촉하자 마지못한 듯 조타기를 잡는다.


이순신의 주포가 다시 야마토를 협차한 후에야 거함은 조금씩 선회했고 간신히 전 주포를 이순신을 향해 겨누었다.


그러나 지축을 뒤흔드는 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왜 쏘지 않는 건가?!”

“주포 정렬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급선회로 인해 야마토의 갑판은 꽤나 흔들리는 와중이다.


하지만 사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 전함은 어찌 이리도 빠르게 사격을 계속하는가? 분명 기동은 오히려 저쪽이 더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차이는 바로 사격통제장치에 있었다.


사격통제반과 각 주포탑이 원격으로 연결된 이순신과 달리 야마토는 각 포탑에서 통제실의 지시에 맞춰 각도를 맞추는 구조.


충분히 훈련된 사관이 아니라면 반응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렇게 거친 기동이 연속해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전 포문 도열 완료!”

“주포, 발사하라!”


이순신함의 8번째 일제사격이 불을 뿜은 이후에야 야마토의 46cm 주포가 일제히 화염을 토했다.


“적탄 착탄!”


이순신의 일제사격은 야마토의 사격보다 한발 빨리 떨어졌다.


거대한 물기둥과 불꽃이 번쩍이자 사토는 반사적으로 난간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2번 주포탑에 명중! 중앙 주포문 완파!”


고개를 들자 함교 앞의 2번 주포탑에서 가운데 포신이 형편없이 구부러진 채 검은 연기를 흘린다.


야마토의 주포탑 정면 장갑은 46cm 포탄을 영거리에서도 막지만 포신은 그렇지 않다.


이걸로 화력의 9분의 1을 상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견딜만하다.


3번 포탑의 수리도 완료되었으니 다음 사격은 8문의 주포를 쏠 수 있으리라.


이윽고 야마토의 일제사격도 그대로 이순신함에 떨어졌다.


“착탄!”


조명탄 불빛 아래, 물기둥의 숲이 거대한 전함을 감싸며 솟아오른다.


“협차입니다!”


초탄 협차라니!


아무리 근거리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라도 다행이다.


어쨌든 협차가 나왔으면 명중탄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금방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띈다.

어째 적 전함은 손상된 기색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저 자세는···?”


당황한 채 이순신함을 보고 있자 야마토의 함장이 심각한 눈으로 쌍안경을 내리곤 말한다.


“제독, 지금 상태로는 치명상을 먹이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인가?”

“대적 자세의 각도가 예리하지 않습니까? 필시 이순신의 함장이 장갑의 두께를 늘리기 위해 침로를 저렇게 잡은 것입니다.”


장갑판을 비스듬하게 두어 적탄이 관통해야 하는 두께를 늘리는 전술.


일종의 경사장갑 효과다.


일본 해군도 방어력이 떨어지는 후소급의 사용을 위해 고심했던 사용법이다.


해군 최고의 수재인 사토도 당연히 알고 있는 전술. 하지만 그가 당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정도로 각을 준 채로 다가온다고?”


일반적인 함대 전술에는 잘해야 30도가량의 각을 주는 거에 그친다.


함대의 전열이나 속도 문제로 개함의 진로를 마음대로 수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교전 거리에서는 그 정도 각으로도 충분히 방어 효과를 누리기도 하고.


하지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예 함미 3번 포탑의 사격을 포기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급격한 침로.


그리고 야마토의 사격이 착탄하면, 기다렸다는 듯 배를 돌려 전 포문을 개방해 발포한다.


전함의 선회는 조타기를 돌린다고 바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이쪽의 사격이 떨어지자마자 배를 돌리고 포격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탄착 시간을 알고 조타기를 돌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탄착 시간과 선회 시간을 초 단위, 아니 어쩌면 그보다 정밀한 단위로 계산하며 행동한다는 소리.


인간의 범주가 아니다.


“저자는, 저 지휘관은 도대체···.”


다른 건 다 몰라도,


한 번도 마주쳤을 리가 없는 일본제 46cm 주포의 장전 시간과 탄착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꿰고 있다는 말인가?


“정체가 뭐냐?”


해군에 몸을 담은 후 처음으로, 그는 두려움을 품은 채 홀연히 중얼거렸다.


***


“침로 돌려! 키 왼편 15도!”

“왼편 15도!”


항해장이 긴장한 숨을 내쉬며 조타기를 돌린다.


상당히 각을 준 이순신의 함체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대로 정확히 5초 뒤, 적탄이 낙하하고―


“착탄!”


이순신의 갑판이 흔들린다.


“피해 보고해!”


<탄약고, 이상 무!>


<기관실, 우현 격실에 소량의 침수 발생!>


<각 포탑, 이상 무!>


곧이어 거대한 선체가 선회하며 3번 포탑의 사계가 확보되었다.


<제10사, 발포!>


맹렬한 섬광이 눈앞을 뒤덮는다.


상호 간 거리는 더욱 좁혀져서 이제 9,000m 이하.

아마도 8,000m 즈음.


2척의 공고급과는 아직 1만 미터가량 떨어져 있다.

하지만 14인치 주포의 탄착군은 계속 이순신함 근처로 떨어지고 있다.


그래, 치킨 게임, 단두대 매치다.


“제10사, 착탄까지 5초!”


발을 빼면 무조건 지는 게임.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하나뿐인 초중전함을 들고 이런 위험한 도박에 끼어들지 않겠지.


적도 아군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나라도 동급 전함끼리의 난타전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래서 말인데.


“착탄! 명중했습니다!”


여기서 46cm 주포 전함끼리 싸워본 경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오직 나를 제외하고선.


10번째 일제사격이 야마토에 작렬하며 현측 수선부에서 불빛이 번쩍인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거함의 선체.

수선하 부분에 명중탄이 나온 모양이다.


굴뚝에서도 흰 연기를 뿜으며 이상 징후를 보인다.


기관부에 일격을 먹인 것이다.


“적 전함··· 기울어집니다!”


장병들이 흥분하는 한편,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세계의 기반이 된 게임은 교전 방법이 참 특이했다.


웬만한 전투는 AI를 통해 자동으로 진행하지만, 불리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직접 부대를 대대 단위, 군함 단위로 조작하는 것도 가능했다는 말이지.


지상전은 ai에게 일임했지만 해상전은 가끔 손맛도 볼 겸 종종 내가 직접 컨트롤했다. 여기서 통용되는 고유의 테크닉도 있었고.


예를 들어, 함체를 틀어 의도적으로 각을 주는 방법.


완전히 함수를 들이밀어 헤드온을 걸면 오히려 이쪽의 탄약고가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함수 탄약고 전방은 두꺼운 수직 장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러니 방어력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대략 45도 정도.


비스듬한 각을 통해 경사장갑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린다면, 8,000m에서도 46cm 포탄을 막아볼 만하다.


물론 무적은 아니다.


함수 포탑 아래, 탄약고 쪽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하므로 오히려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전함의 포탄은 막아내더라도 그 막대한 운동량으로 장갑 구조 자체를 우그러트린다.


이순신의 피해도 클 것이다.


“적탄, 착탄!”


근데 그게 뭐가 문제냐.

전함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건데.


“피탄당했습니다!”

“2번 주포탑, 대파!”


야마토의 일제사격이 이순신함의 중요 구획을 강타했다.


2번 주포탑 바벳에 직격한 46cm 포탄은 기어이 500mm가 넘는 두께의 장갑을 뚫고서 파괴의 끝을 고했다.


포탑 밑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맹렬히 솟아오르며 2번 포탑이 활동을 멈추었다.


손상통제반이 스프링클러를 작동하고 격벽을 닫아 추가 피해를 막는다.


남은 포탑은 2개, 포문 총 6문.


“제11사, 착탄!”


이순신함의 사격이 야마토를 덮친다.


후방 삼각 마스트 아래 불꽃이 터져나왔다.

샛노란 화재의 섬광이 조명탄 아래 선명히 드러난다.


좋아할 틈 따위 없다.

곧바로 놈이 사격할 테니까.


“침로 돌려! 키 왼편 15도!”

“키 왼편 15도!”


<제12사, 발포!>


두 전함은 연달아 포화를 주고받았다.


주포, 부포에서 쏘아져 나간 탄환의 비가 선체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긴다. 장갑판에 튕겨 나간 포탄이 스파크를 반짝거리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부서지고 찢어진 파편이 주변에 떨어지며 수면을 뒤흔들었다.


서로의 머리 위로 조명탄이 반짝거리고 호위 함대의 포화가 불화살처럼 상공에 어지럽게 흩날렸지만···.


그런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철로 만든 두 거인은 연신 서로를 난타했다.


“적탄, 착탄!”


다시금 이순신의 갑판이 흔들렸다.


야마토의 일제사격으로 주 장갑대 아래 명중한 수중탄이 방뢰 구획에 걸려 기폭해 추가 침수를 발생시켰다.


이순신의 선체가 우현으로 조금씩 기울었다.


“3번 보일러실, 침수 발생! 신속대응반 투입 중!”

“함수 제1창고에서 화재 진압 완료!”

“후방 사통, 전력 두절!”


이따금 공고급의 눈먼 탄환이 선체에 명중하며 두터운 파열음이 함교까지 들려왔다.


주포탑 측면에 튕겨나간 거탄이 사방에 파편을 흩뿌리며 전선과 배관을 날려버렸다.


제2함교의 천장에서도 스파크가 튀기며 장병들의 불안함을 더했다.


그래, 나도 아프겠지.

찰과상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제12사, 착탄!”


하지만 내 주먹은 정확히 니 면상을 뭉개버릴 거고,


그 잘난 아가리 속 강냉이를 모조리 추수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다.


“명중! 적함, 갑판상에 대화재!”


야마토의 3번 주포탑 아래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포문이 내려앉는다.


우리도 놈의 바벳을 관통한 것이다.


“키 돌려! 오른편 비상타!”


함체를 돌리려던 그 순간,


번개가 내려치듯 번쩍하는 섬광이 정확히 내 앞의 함교 창밖에서 나타났다.


2번 포탑 천장에 맞아 부서진 포탄 조각이 제2함교를 양옆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통제 불가능하고 확실한 죽음이 정확히 내 옆의 몇 미터 공간을 지나갔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경험이어서 그럴까.


항해장의 부름에 마침내 나는 정신을 차렸다.


“함장님!”


여유 넘치던 평소와 다르게 사색이 된 얼굴로 바라보는 항해장.


그가 애원하듯이 말을 잇는다.


“어서 장갑 함교로 내려가시는 편이···.”

“안 돼!”


단칼에 부탁을 거절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한정된 장갑 함교에서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


당장 나와 항해장의 합으로 겨우 야마토의 사격을 막아내는 중인데 호흡이 흐트러지면 모두가 위험해진다.


그리고 장갑 함교는 부장의 배치 장소지. 내가 죽더라도 그가 함을 지휘해서 어떻게든 작전을 이어가리라.


물론 내가 오늘 여기서 죽을 거 같지는 않다.


“제12사, 착탄!”


다시금 일제사격에 얻어맞은 야마토가 크게 기울어진다.


“명중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섬광을 번뜩이며 이순신함의 주포가 마치 짐승처럼 포효했다.


***


야마토의 함교.

사토는 기울어지는 갑판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는 연신 섬광이 번쩍이며 야마토의 갑판 위로 불타는 강철 조각이 흩날렸다.


“좌현 보일러실, 2개 정지!”

“4번 터빈 작동 정지! 격실 폐쇄합니다!”


죽어가는 거함의 단말마처럼.

절망적인 보고가 함교 사관들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다.


함장이 어떻게든 배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사토는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먹을 움켜쥘 뿐이었다.


어찌, 어찌 저런 미치광이 같은 작자가 지휘관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1만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동급 전함을 상대로 난타전이라니? 같이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인가?


“주포 발포하라! 뭐 하는 건가?”

“선회각을 조정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울기가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야마토의 주포는 선회조차 쉽지 않았다.


이미 좌현 수선부의 주 장갑대에는 포탄 자국과 관통흔 등이 어지럽게 늘어졌다.


사실상 직사포에 가까운 탄도라서 직접적으로 수면 아래를 타격한 공격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일단 이 거리에서 교전을 지속하는 건 무리다.


아직 기동력이 살아있을 때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고자 야마토가 키를 가득 꺾은 순간···.


“뭔가?!”

“타기실에 명중탄! 조타 불능!”


큰 충격과 함께 야마토의 함미가 흔들렸다.


곧이어 정처 없이 선회하기 시작한 야마토.


전방 주포탑이 사격각을 잃고 완파된 3번 주포탑만 이순신을 바라본다.


사토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찌 이런···.”

“제독님! 이대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최후를 직감한 함장이 그에게 말했다.


“야마토를··· 야마토를 포기하시는 편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을 잇는다.


사토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된다. 고작, 고작 1척의 전함을 상대로!”


평소의 차분한 인상은 이미 온데간데없어졌다.


“3전대는 뭐 하는 거야?! 대체 왜 이순신을 막지 않는 건가?”

“연막으로 착탄 관측이 곤란하다고 합니다!”

“그럼 접근해야 할 거 아니야!”

“저, 적의 구축함 전대가 계속 근접해서 뇌격 시도를 하는 바람에···.”

“그딴 거 무시하고 특공하라고 해! 구형함 따위 어떻게 되든 이순신만 잡으면 그만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듯 외쳐보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통신실마저 이순신의 거탄에 짓뭉개져 제대로 명령을 내릴 수단도 사라진 것이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이냐?”


발밑이 후들거려 간신히 함교 난간을 잡고 움직인 사토는 함미 쪽으로 가 이순신함을 바라보았다.


6문의 주포에서 마치 용처럼 불을 뿜는 전함은 어두운 바다에서도 조명탄 아래 훤히 드러났다.


마치 자신은 숨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내 판단이··· 내 예측이 틀렸다는 말인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고 중얼거리는 사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다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저런 상대가 저런 전함을 가지고 하필 이런 순간에 일본의 앞길을 막아서다니.


정말로 천명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결과라고 사토는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이성을 배신하며 눈앞에 펼쳐졌다.


7,000m 거리에서 이순신의 주포문이 사토를 바라보듯 그의 전함을 겨누고 발포했다.


“이순신···!”


분한 듯 포효하는 제독의 목소리 아래,


여전히 선회 중이던 야마토의 함미로 한 발의 포탄이 날아들어 바벳 아래를 관통했다.


정확히 탄약고 격벽에 직격한 46cm 포탄.


함미 횡단면을 방호하는 350mm 두께의 경사장갑은 상당한 방호력을 가졌지만 7,000m 거리에서 46cm 주포탄의 직격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수많은 격벽을 뭉개버리고 들이닥친 포탄은 마침내 장약고까지 뚫고 들어와 수십 킬로그램 폭약을 터트렸다.


단 수 초 뒤,


맹렬한 섬광이 야마토의 함미를 찢어발기며 터져 나왔다.


2,700톤 무게의 주포탑이 마치 맨홀 뚜껑처럼 튀어 오르며 바다에 낙하해 거대한 물기둥을 남겼고,


그것이 본래 위치했던 자리에서는 살벌한 불기둥과 함께 짙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달빛 하나 없이 어두운 바다 위를 대낮처럼 밝히는 불꽃을 보며 모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했다.


잠시 후,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좌승한 기함 ‘무츠’의 통신실로 아주 간결하고 짤막한 보고가 올라갔다.


[야마토, 굉침.]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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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트럭 공방전 (2) +29 24.09.11 10,282 440 15쪽
47 트럭 공방전 (1) +19 24.09.10 10,092 412 12쪽
46 역습의 연방 +28 24.09.09 10,417 458 12쪽
45 다시 바다로 (2) +37 24.09.08 10,611 464 12쪽
44 다시 바다로 (1) +33 24.09.07 10,725 459 17쪽
43 거인의 기상 +27 24.09.06 11,018 450 15쪽
42 진주만 (2) +43 24.09.05 11,158 452 20쪽
41 진주만 (1) +29 24.09.04 11,105 487 14쪽
40 태평양 함대 (2) +40 24.09.03 11,353 480 14쪽
39 태평양 함대 (1) +48 24.09.02 11,437 474 13쪽
38 솔로몬 해전 (2) +38 24.09.01 11,612 405 16쪽
37 솔로몬 해전 (1) +46 24.08.31 11,736 444 15쪽
36 남방 전선의 종막 (2) +34 24.08.30 11,886 425 15쪽
35 남방 전선의 종막 (1) +35 24.08.29 12,037 457 14쪽
34 타이만의 새벽 +48 24.08.28 12,133 468 13쪽
» 초중전함 vs 초중전함 +88 24.08.27 12,645 564 27쪽
32 강철의 포효 +28 24.08.26 11,367 415 19쪽
31 남방 공세 +26 24.08.25 11,225 403 11쪽
30 사냥 준비 +23 24.08.24 11,665 390 16쪽
29 대본영 발표 +16 24.08.23 12,073 400 14쪽
28 남방 수호자, 탄생 +29 24.08.22 12,256 4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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