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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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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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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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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2)

DUMMY

2차 세계대전 시기,


자랑스러운 영국 왕립해군은 매우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북해와 북대서양은 잦은 악천후와 황천으로 장거리 교전이 일어나기 어렵다. 항공 작전은 물론이고 장거리 포격전마저 여의치 않아.”


“북해는 삼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구조라서 육상 항공력이 영향을 미치기도 쉬워.”


“지중해도 날씨는 좋을지언정 사방이 육지라 어디든 육상 항공기지의 작전 범위에 들어가게 되는군.”


주 작전 범위가 모두 항공기를 운용하기 어렵거나. 운용하더라도 적의 지상 발진 항공기 작전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 초기 노르웨이 전역과 크레타 섬 교전에서 영국 왕립해군은 악명 높은 독일 슈투카(급강하폭격기)의 공습에 적지 않은 함선을 손실했다.


그나마 두꺼운 장갑과 튼튼한 격벽을 갖춘 전함은 맞고 버티기라도 할 수 있지만 항공모함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격납고에 인화성 물질인 항공유와 탄약, 그리고 항공기 그 자체를 잔뜩 싣고 다니는 항공모함은 다른 함선보다도 피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아예 안 맞는 걸 전제로 하기도 어렵다. 영국 해군의 교전 지역은 근거리 조우전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에서도 나타났다.


노르웨이 전역 막바지에 항공모함 글로리어스가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포격에 격침당한 것이다.


심지어 그로부터 약 1달 후에는 지구 반대편 남중국해에서 일본 제1항공함대 항모 3척이 전함 이순신에 싸그리 격침당하고 1척이 추가로 대파당했다.


이러한 전훈에서 알 수 있듯 탄약과 항공유를 잔뜩 탑재한 항공모함은 본질적으로 피탄에 취약하다.


그렇기에 주 작전 지역이 육상 비행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왕립해군은 전쟁 전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한 신형 함선을 설계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항공모함이 바로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이다.


“빅토리어스와 순양함 데본셔, 그 외 구축함 3척이 지금 파나마 운하를 넘어 진주만으로 향하고 있소.”


진주만의 회의실.

필립스 제독이 불편한 듯하지만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한다.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3번함 빅토리어스.

취역 직후 비스마르크 추격전에도 참가한 최신예 함선이다.


본래는 지중해 작전 후 북해로 돌아가 노르웨이와 핀란드 쪽 전선에 투입될 예정이었는데 그의 요청으로 미 동해안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본토 해군성이랑 드잡이질하며 겨우 얻어낸 보람이 있다는 걸까.


필립스 제독은 그새 우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빅토리어스의 방어력이라면 다소 전방에서 활동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오. 폭장량이 부족한 일본 해군 따위의 급강하 폭격기라면 더더욱 말이지.”


회의실의 제독들이 다들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래도 무어라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실제로 든든한 전력인 건 맞으니까.


파나마 운하를 건넌 빅토리어스가 함대에 합류함으로 수상부대 근방에서 항공 지원을 담당할 항공모함은 정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탑재기 수 36대라니··· 거기에 전투기는 고작 12대가 아닙니까?”


일러스트리어스급의 고질병.

탑재기 숫자의 부족이다.


황천이 자주 있는 북해나 대서양에서 운용할 예정이어서 격납고의 폐쇄 능력도 강화했고 그 대가로 탑재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36대 중 전투기가 고작 12대라는 건···.


함대 전방의 상공 엄호를 맡는 역할로는 너무 부족하다.


“우리도 폭격 작전 예정이던 함선을 급히 돌려서 어쩔 수 없었소.”

“그러고도 대가로 허미즈는 돌려보내고 말이오?”


홀시 제독의 지적에 필립스는 애써 눈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항공모함 허미즈는 본래 빅토리어스가 수행할 예정이던 작전을 위해 대서양으로 돌아갔다.


영국도 손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겨우 탑재기 숫자 36대짜리 항모 얻자고 탑재량 20대 항모를 보내주다니 왠지 조삼모사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래도 이 상태로는 자함 방공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차라리 공격대를 일부 내리고 전투기를 증강하는 게 옳지 않습니까?”

“항공대의 교대라면 우리도 가능한 협조하겠소.”


라바울 전투에서 일본의 항공력을 경험해 본 필립스 또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논의 결과.

정운함의 전투기 12대, 엔터프라이즈의 전투기 12대씩을 차출해 빅토리어스에 배치하기로 했다.


더불어 갑판에도 전투기를 주기시키는 방식으로 탑재량을 48기까지 끌어올렸다.


풍랑이 거친 북해와 달리 비교적 잔잔한 태평양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와일드캣 24기, 페어리 풀머 12기, 페어리 알바코어 뇌격기 12기로 구성된 그럭저럭 든든한 항공대가 완성.


물론 항공대의 절반 이상이 타 항공모함에서 파견된 인원이니 익숙해지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훈련과 관련하여 조율하기 위해 나는 우리 항공대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저 새빨간 기체 당장 치워버리라고! 네가 무슨 공산당이냐! 빨갱이처럼 하고 다니게?!”

“기동부대 사령관님이 직접 승인하신 일입니다!”


문을 열자, 드잡이질하듯 목소리를 높이는 정운함 함장과 유리가 보였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온 나는 이내 중간에 앉아 한숨을 푹푹 쉬는 항공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대체··· 무슨 일이야?


***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랍니까?”

“뭐가 문제냐고? 저 꼬라지를 봐!”


잔뜩 성난 얼굴의 정운함 함장이 창밖의 비행장에 주기된 붉은 와일드캣을 가리켰다.


그새 콕핏 아래 그려놓은 킬마크가 늘어났다.


미군 애들 따라서 일장기를 킬마크로 그렸는데, 6개씩 열 맞춰서 네모나게 그려놓은 걸 보니 어디 중국집 쿠폰 찍은 것처럼 보인다.


혹시 저거 다 채우면 탕수육 공짜인가?


“저 꼬라지를 보라고! 어떻게 생각해?”


실없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정운함 함장이 이를 갈며 묻는다.


“멋있네요.”

“멋있어? 저 꼬라지가?! 지금 멋이고 나발이고, 서커스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쏴달라고 시위하는 저 꼬라지가 멋있냐고!”


아니 왜 나한테 화를 내.

아 내가 해보라고 했지.


거 사람이 도색 좀 원하는 대로 할 수도 있지.

원래 커스터마이징은 고인물 필수템 같은 거라고.


“붉은 남작 느낌 나고 괜찮지 않습니까? 우리만 이러고 다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그 붉은 남작이 전쟁 끝나기 전에 살아남았냐?”


갑자기 어려운 질문이 들어왔다.


어, 그러니까.

붉은 남작 본명이··· 뭐였지?


“혹시 그 양반 전사했습니까?”

“대공포 맞고 비명횡사했다! 그런 것도 모르는 놈이 붉은 남작이 어쩌고 저째?!”


아니 그걸 내가 어째 아냐.

지금이 1차 세계대전도 아닌데.


하여간 계속 하소연하는 걸 들어보니 정운함 함장의 의견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부대원 사기 문제도 있어서 저렇게 도색하고 다니는 걸 허가했지만 이제는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모양.


“유일한 에이스가 떨어질까 말까 매번 노심초사하는 내 심정을 알아? 저놈 비틀거리면서 비행 갑판 내려올 때마다 내 심장이 덜컥덜컥한다고! 나도 사람이야! 사람!”

“저 요즘에는 착함 잘합니다!”

“네가 대련에서부터 날려먹은 비행기만 6기다, 6기!”


겨우 6기 아니냐고 두둔하면 나까지 죽탱이 날아갈까봐 가만히 있었다.


생각해보니 제주에서부터 가지고 온 항공기는 이제 10기도 채 안 남았다. 나머지는 다 미 해군이 공여한 기체니까.


어쨌든 이들 항공대의 문제에 내가 끼어든 것도 유리의 특수한 처지 때문이다.


본래 함대 항공대 운용은 전적으로 비행대장이랑 정운함 함장의 관할.


다만 유리의 소속처는 여전히 이순신함 휘하로 되어있다. 내가 일부러 집중 관리하려고 파견 인원으로 등록해뒀거든.


그래서인지 정운함 함장은 잔뜩 불만이라는 얼굴로 내게 일갈했다.


“계속 저러고 출격하는 거! 유일한 에이스니까 내가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못 참아! 저대로 나가면 저 녀석이 뒤지든지, 내 속이 터지든지 둘 중 하나야!”

“그럼 도색 지우면 되는 겁니까?”

“아니지! 출격하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후방으로 돌려서 교관을 해야지! 아니 격추 수가 10기를 훌쩍 넘는데 왜 아직도 전방에서 조종간 잡겠다고 난리인 거야?”


결국 정운함 함장은 유리를 이참에 후방으로 아예 빼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유리도 잔뜩 쀼루퉁한 얼굴로 대꾸하고 있던 거고.


근데 그럼 우리 숙련병 없지 않나?


“유일한 에이스 파일럿이 빠지면 항공대는 어떡합니까?”

“유일한 에이스니까 더더욱 빠져야지! 에이스 하나만 믿고 전쟁을 하라고? 지금 뭐 공중전이 삼국지연의인 줄 알아?”


그··· 렇게 되나?

잘 모르겠다.


항공전에 대해 자세한 건 까막눈인 내가 금붕어처럼 눈만 깜빡거리자 정운함 함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항공 병과니까 한마디 알려주자면, 공중전 실력은 평균만 맞추면 그다음은 숫자가 중요해! 잘난 에이스 조종사 하나보다 무난한 조종사 넷이 훨씬 좋다고!”


뭔가 총력전, 대전략스러운 이야기다.


요컨대 현대전에는 날고 기는 슈퍼 솔져 하나보다 규격화된 마린 열댓 마리가 더 낫다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 무난한 녀석들을 많이 만들려면! 저렇게 잘난 녀석들이 교관으로 후방에서 자기 지식 아낌없이 전수하면서 햇병아리들 교육해야 한다고! 무슨 혼자서 일본 항공대 죄다 썰어버릴 것처럼 앞으로 나대는 게 아니고!”


아, 이건 어디서 들어본 거 같다.


격추 수 세 자릿수 에이스가 득실거리는 독일 공군이 몰락한 이유랬던가.


그 에이스 파일럿 뒤에서 무수한 신병들이 산처럼 죽어가서 결국 총량에서 밀려 몰락했다고 했지.


결국 2차 세계대전식 총력전에서는 무난한 다수가 소수의 에이스보다 월등히 좋다는 이야기.


맞는 말이지만 나는 대전략이 아니라 전장의 작은 전술 행동을 담당하는 위치다. 작전을 앞두고서 아무런 대체 방법도 없이 핵심 요원을 빼는 건 곤란하다고.


“선배님 의견도 물론 맞지만 결국 본인 의사가 중요한 게 아닙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유리를 바라보았다.

이건 살짝 흉보는 거 같지만 어쩔 수 없지.


“전투를 잘한다고 교관도 잘할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그냥 어떻게 날기만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정운 함장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빔 기동··· 뭐요?”

“그 이번에 라바울에서 사용한 전술 말이야. 미 해군이랑 같이. 타치 소령이라고 했나?”

“어··· 예. 엔터프라이즈에서 봤던 거 같습니다.”

“그 사람이랑 같이 연구한 자네의 전술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뭡니까?”

“······.”


놀랍게도 그녀에게는 어려웠다.


“···자네와 같이 만들었다고 하던데, 아닌가?”

“그쪽이 멋대로 이렇게 해보자고 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홀시 제독이 말하기를, 자네와 소령이 직접 비행하면서 방법을 공유했다고 하던데?”

“그냥 어떻게 쪽바리 잡냐고 물어보니까 평소 나는 법대로 해봤을 뿐인데···.”


너무나도 순수한 대답이 정운 함장이 이마를 치며 탄식하고 비행대장이 한숨을 내쉬며 탁자 위에 고개를 처박았다.


어쩐지 전술 이름도 ‘타치 위브’라고, 유리 이름은 빠지고 돌아다니더니.


그냥 본인이 관심이 없어서였어?


“그러니까 그 방법을 신참들에게 알려주고 공유를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해줬습니다!”

“어떻게?”

“날아서, 적기 등 뒤로 슉 가서, 방아쇠 땅땅땅.”


충격적일 정도로 신묘한 전술에 우리 모두는 말을 잃고 서 있었다.


항공전에 까막눈인 내가 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시 후, 줄곧 사무실 탁자에서 한숨만 내쉬던 비행대장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인마는 안 됩니다.”

“야 항공대장이라는 놈이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떡해?!”

“지금 유리 빠지면 우리 비행대 애들 다 죽습니다.”


현장 지휘관의 충격적인 고백에 정운 함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 싶어 나도 그의 의견에 힘을 더했다.


“이번 전투에서도 무사히 복귀한다면 계속 허가해주는 게 어떻습니까?”


빤히 나와 눈을 마주치는 정운 함장.

이윽고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한다.


“다들 잠깐 나가 있어.”

“선배님.”

“나가라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에 비행대장은 눈치를 보던 유리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경첩 소리가 들리며 문이 닫힌 후,


“너 미쳤어? 타이만에서 우리 애들 다 죽었는데, 이제는 저 녀석마저 죽게 두겠다고?”


정운 함장은 성난 사자후를 토해냈다.


차마 명목상 상관인 내게 더 무어라 할 수 없는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대신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가슴을 두드린다.


“운룡아! 우리 이제 아무것도 없다! 충무공 살리겠다고 우리 조종사 다 죽었고! 폭격기, 뇌격기 몰던 애들도 다 전투기 조종간 잡게 했고! 이제는 이착륙도 버거워하는 애들 겨우겨우 실전 투입해서 어떻게든 살리려고 안간힘 쓴다! 그래도 사람 부족해서 미군한테 맨날 애걸복걸하는 중 아니냐!”


어찌나 서러운지,

어찌나 답답한지,


손을 떨고,

주먹을 움켜쥐며,

숨을 헐떡거리더니,


억울한 심정을 토하며 말을 잇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어! 다 해줬다고! 근데 이제, 이제는 저 녀석도 사지로 보내야 해? 우리 원래 전투비행단원 중에 남은 사람 쟤랑 비행대장뿐인 거 알고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함대 전체의 전사자 명부를 확인하고 처리한 건 바로 나니까.


대답을 들은 정운 함장이 두 눈을 희번덕거린다.


“그걸 아는 놈이 지금···!”

“그러니 제가 지키겠습니다.”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다가온 정운 함장이 문득 멈춰 선다.


동시에 문밖에서 무언가 벽을 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순신함은 언제나 선두에 섭니다. 일본 놈들 비행기 상대하는 거야 골백번 익숙한 일인데, 우리 전투기 하나 보호 못 할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전함의 방어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거대한 주포와, 튼튼한 격실과 막강한 대공 화기는 왜 존재하겠는가?


“항공대의 희생은 저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이순신함에서도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수백이 아니라 수천의 사상자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모두가 함께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나도 진주만에서 각오를 마쳤다.


“전장에서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제 대원들을 살려주는 만큼, 저 또한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키겠습니다.”

“······.”


정운 함장은 한참 동안 나를 마주 보았다.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지만 차마 전방에서 포화를 주고받는 나에게 무어라 할 수는 없는지.


“하···.”


한숨을 푹 내쉬고 이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부탁한다, 제발.”


잠시 후,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려주곤,


“사령관님께 실례 많았습니다.”


절도 있게 기립하고 경례한다.

나는 경례를 받아주곤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무례하다고 뭐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반대로 처음부터 내 직위를 신경 쓰며 부하를 위해 할 말도 못 했다면 나는 그에게 실망했으리라.


부하를 장기말로 보는 인간을 믿을 수는 없으니까.


사무실을 나가자 문 바로 옆에 서 있던 유리가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아, 아···!”


눈을 화들짝 뜨며 놀라는 유리.


아니 제가 더 무서운데요.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 후 적당히 내가 손을 흔들고 지나가려는 찰나.


“저, 저기···!”


등 뒤에서 그녀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경례했다.


고심하던 나는 차분히 경례만 받아주곤 자리를 나섰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


“정운 함장이 그렇게 말했다고?”

“예. 부하 항공대를 특히나 걱정하시는 눈치였습니다.”


태평양 기동군 사령부.


차후 작전 논의를 위한 자리에서 유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보고하자 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항공대 사령관으로서 조종사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혹시나 해 변명하자면 정운 함장이 건방지다고 일러바치려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지금 우리 항공대 상황이 심각하니까 뭐라도 얻어야 하겠다 싶어 이야기한 거지.


이윽고 류 제독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 친구도 참 불쌍한 친구야. 사연이 많네.”

“사연··· 말입니까?”


뭔가 일이 있었나.

딱히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어리둥절하자니, 류시원 제독이 손을 내젓는다.


“그냥 그런 게 있어.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사령관인 나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닌 듯하다.


뭐,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 하나둘쯤은 있지 않나.


“하여간 그 친구 걱정하는 바도 이해가 돼. 그 제로센이라는 놈··· 현장의 보고에 따르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던데.”

“버팔로는 물론이고, 와일드캣도 적절한 전술이 없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안 그래도 본국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어. 조만간 해결을 보기는 해야지.”


동감하며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이때다 싶어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미군에서 신형 전투기를 좀 공급받을 수 없습니까?”

“미군 신형기를? 있어도 지들이 쓰지 우리한테 주겠나?”


너무도 당연한 대답이라 나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작전하게 될 과달카날은 라바울 항공대의 작전 범위 끄트머리에 있는 곳.


우리가 비행장을 건설하는 동안, 일본 놈들도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훼방 놓고자 폭격기며 장거리 전투기며 있는 대로 투입하겠지.


이렇게 보니 정운 함장이 유리 못 보내겠다고 난리 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저 와일드캣 따위 타고서 제로센 상대로 잘 보이라고 도색까지 하고서 버티는 중인데. 나였어도 저거 언젠가 격추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겠지.


앞으로도 제로센한테 휘둘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이제는 슬슬 대책이 필요하다.


그 ‘타치 위브’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


“그 미군 애들 보면 ‘빅Y’인지 ‘마이티Y’라고 하면서 자꾸 우리 띄워주던데. 걔네들 프로파간다처럼 활동하려면 장비도 좀 새끈한 거 공급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겸사겸사 우리가 시범 운용도 해주고···.”

“이야기는 해보겠지만 너무 기대는 말게.”


류시원 제독은 그렇게 말하고 나도 넘어갔지만,


“보우트사의 최신형 전투기라네.”


불과 일주일 후,


항공모함 빅토리어스와 함께 진주만에 신형 전투기가 배달되었다.


이걸··· 진짜로 줘?


“초도 생산분 6기를 자네 항공대에 선물하도록 하지. 지난 일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게. 우리 비행단이 신세 좀 많이 졌으니 말이야.”


전투기 앞에 팔짱을 낀 홀시 제독이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다.


F4U 콜세어 전투기.


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투기 중 하나로 꼽히는 전설적인 기체의 첫 번째 버전이다.


작가의말

항상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추천과 댓글은 늘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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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Z 부대 (1) +48 24.09.13 10,398 448 20쪽
49 트럭 공방전 (3) +32 24.09.12 10,455 427 14쪽
48 트럭 공방전 (2) +29 24.09.11 10,493 44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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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진주만 (1) +29 24.09.04 11,268 491 14쪽
40 태평양 함대 (2) +40 24.09.03 11,505 484 14쪽
39 태평양 함대 (1) +48 24.09.02 11,590 478 13쪽
38 솔로몬 해전 (2) +38 24.09.01 11,762 408 16쪽
37 솔로몬 해전 (1) +46 24.08.31 11,879 447 15쪽
36 남방 전선의 종막 (2) +34 24.08.30 12,039 429 15쪽
35 남방 전선의 종막 (1) +35 24.08.29 12,203 462 14쪽
34 타이만의 새벽 +48 24.08.28 12,306 472 13쪽
33 초중전함 vs 초중전함 +89 24.08.27 12,818 569 27쪽
32 강철의 포효 +29 24.08.26 11,537 418 19쪽
31 남방 공세 +26 24.08.25 11,392 406 11쪽
30 사냥 준비 +23 24.08.24 11,838 392 16쪽
29 대본영 발표 +16 24.08.23 12,250 40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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