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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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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작품등록일 :
2024.07.29 13:23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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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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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강철의 포효

DUMMY

17일 낮,

타이만 상공.


수많은 예광탄의 불빛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구름 아래 흰색 선을 그으며 춤을 추는 수십의 비행기들.


서로가 서로의 등을 탐하며 날카로운 엔진음으로 울부짖는다.


흰 도색의 전투기와 검푸른색 전투기가 교차하며 무전망이 시끄러운 목소리로 가득 찼다.


<9시에 적기!>

<젠장, 제로기가 너무 많아!>

<뒤를 잡혔어! 아무나 이거 좀 떼 줘! 빨리!>

<잠깐만! 나도 잡혔···!>


후방을 잡은 제로센이 기총소사를 가하자 너덜너덜해진 버팔로가 검은 연기를 흘리며 구름 아래로 추락한다.


와일드캣에 탑승한 항모비행단장 주용무 대령은 이를 갈며 추락하는 아군기를 바라보았다.


상황은 최악이다.


적기는 다수.

최소 항공모함 2척분의 공격대가 전부 전투기로 구성되어 밀고 들어왔다.


반면 정운함은 항모비행단장인 그조차도 직접 전투기를 몰아야 할 정도로 숫자가 적다.


평소였다면 어차피 적기 대부분이 뇌격기나 폭격기라서 상대하기 수월했겠지만···.


<단장님! 뒤에!>


“염병할!”


지금의 적은 거의 전부가 제로센이다.

그것도 매우 숙련된 조종사가 몰고 있다.


처음부터 속고 있었다.

적의 목표는 이순신 함대의 공습이 아니라···.


‘아군 항공대의 배제였던 건가!’


등 뒤에서 예광탄이 스쳐 지나가자 비행단장은 곧장 급강하해 구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경험을 통해 그는 제로센이 와일드캣의 강하 능력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오직 그뿐이다. 고도를 낮춰 유리한 위치에서 내려와야 하므로 상황은 악화한다.


<후방에 적기! 원호를 바란···!>

<씨발! 편대장님이 당했다!>


심지어 버팔로는 뒤를 잡히면 그마저도 못 하고 죽어야만 했다.


“저도 내보내 주십시오!”


한편, 정운함의 조종사 대기실에서 유리는 자신의 편대장을 붙잡고 그렇게 말했다.


“제가 이 중에서 제일 전투기를 잘 몬단 말입니다!”

“조종사 휘장도 떼인 녀석이 뭘 몰아 인마!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 있어.”


출격을 준비하던 편대장은 코웃음을 치며 유리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공중전을 너 혼자 하냐? 우린 팀으로 싸우는 거야, 팀! 하여간 그렇게 기가 세니 남자들이 죄다 도망··· 흐익?!”


싸늘한 시선에 오한이 든 편대장이 주춤거렸다.

주먹을 움켜쥔 채 몸을 떨던 유리는 이내 차분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저도 출격하게 해주십시오! 여기서 저보다 전투기 잘 모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지. 실력으로 보자면.”


담담히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편대장.


아까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만큼 진중해진 목소리였다.


“하지만 전투기를 잘 모는 거랑 살아남는 건 다른 이야기야. 무슨 차이인지 알겠어?”


경험과 연륜이 담긴 조언 앞에서 유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돌처럼 굳은 부하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편대장은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곤 등을 돌렸다.


“그럼 누워서 잠이나 자, 짜샤. 돌아오면 알려줄 테니까.”


복도를 걸어가는 편대원들 뒤에서 유리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정운함의 갑판 위는 휑하게 느껴질 정도로 넓었다.

단 3기의 버팔로를 제외하곤 전 기체가 출격했기 때문이다.


함미 갑판에 주기된 버팔로에 오르자 배수량 2만 톤의 항공모함이 파도를 헤치며 몸을 비틀었다.


<역풍 위치로 기동했다. 이륙을 허가한다.>


신호 갑판의 신호수가 발함 깃발을 내렸다.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린 편대장은 그대로 스로틀을 밀었다.


공랭식 가솔린 엔진이 맹렬히 울부짖으며 버팔로의 동체가 정운함의 갑판을 질주했다.


푸른 하늘 아래, 3기의 전투기가 가볍게 창공으로 떠올랐다.


***


한편,

항공모함 류조의 함교에서는 항공대의 보고를 들은 통신반원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대전과입니다, 제독! 적기 다수를 격추! 아군의 손해, 극히 미미!”

“꼴좋구나, 이순신··· 2번이나 살아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주먹을 움켜쥐며 중얼거리는 제독은 류조, 즈이호로 이루어진 신편 2항전 지휘관, 야마구치 다몬.


“이대로 소류와 1항전의 원수를 갚고 싶지만, 공격기가 모자란 것이 한이로구나.”


물론 이번 전투로 항공대를 궤멸시켰으니 다음에는 뇌격기와 폭격기를 잔뜩 끌고 오면 된다.


놈들에게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야마구치 제독은 쌍안경을 들어 수평선 너머의 연기를 바라보았다.


함대의 굴뚝에서 솟아오른 매연이 은은히 하늘 높이 흘러 지나간다.


전함 야마토의 함대다.


***


“편대가 고도 올릴 시간도 없이 달려가게 하면 어쩝니까? 당장 적기한테 먹으라고 던져주는 꼴인데!”

“시간이 없지 않나, 시간이! 나라고 생각 없이 보내기만 하는 줄 알아?!”


정운함의 항공통제실.


편대를 유도하던 통제관이 역정을 내자 유리는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이순신함의 통제관은 이미 현장 통제만으로도 반쯤 마비 상태라 나중에 출격한 편대는 정운함에서 유도했다.


하지만 유리는, 적어도 항공통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움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이 멍청한 놈!

이순신의 망할 호색한 통제관보다 한참 못 미치지 않나!


속 터지는 얼굴로 통제관을 바라보던 그녀는 돌연 격납고로 달려가 정비 중이던 와일드캣 위로 올라탔다.


“유리! 자네는 출격 금지···.”

“전투기 한 대가 급한 와중에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역시 직접 나서야 한다.

저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제기랄. 함교에 엘리베이터 올리라고 해! 문제아 나간다!”


오직 나뿐이니까.


격납고에 남은 건 지난번에 망가트렸다가 고친 와일드캣 하나뿐. 남은 조종사도 자신뿐이니 문제없다.


조종법은 기억하고 있다.

곧장 엘리베이터를 올라 함미 갑판에서 발함을 준비한다.


<유리 소위, 출격합니다!>


창공으로 떠오른 한 기의 와일드캣.


허술한 통제관의 유도 따윈 한 귀로 흘려듣는다.


최대한 빨리 고도를 올리고 전장으로 향하자 예상대로 학살당하는 아군 항공대가 보였다.


상황 파악할 새도 없이 일단 눈앞의 적기를 추격한다.


위에서 내려찍는 구도.

등을 보인 제로센이 50구경 탄환에 난타당하며 순식간에 불타오른다.


약간의 피탄으로 곧장 불타오르는 걸 보니 라이터가 따로 없다.


마치 1항공함대의 항공모함처럼.


<후방에 적기!>

<엄호하겠다! 일단 강하해!>


하지만 모두가 그녀처럼 적을 맞힐 수는 없었다.


자로 잰 듯 날카로운 기동과 눈 깜짝할 새 기수를 돌리는 순발력.


제로센의 기동력과 일본 숙련 조종사의 실력은 대한제국 항공대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소수의 생존자만 남은 전장을 향해 유리는 당차게 기수를 돌렸다.


“후방에 적기! 피하십쇼!”


<유리? 너 비행금지라고 했잖아!>


제로센에게 쫓기다가 구원받은 비행단장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곧장 다른 적기를 찾아 나서는 유리.

헤드온으로 또 하나의 제로를 격추한다.


확실히 대단한 실력.

하지만 역시 너무 막무가내다.


그녀의 등 뒤에서 한 제로센이 급선회하여 후방을 노렸다.


비행단장은 다급히 50구경을 난사해 그 제로센을 격추했다.


“단장님?!”


<모함으로 복귀해! 뒤는 내가 봐줄 테니까!>


“남은 아군은···.”


<다 철수했으니까 후퇴하라고! 명령이다!>


이 악물고 소리치자 유리는 어쩔 수 없이 기수를 돌렸다.


2기의 와일드캣이 수많은 제로기를 꼬리에 달고서 구름 속으로 강하했다.


다행히 저쪽도 탄약이 없는지 더 이상의 추격은 없었다.


<먼저 착함할 테니 천천히 내려와.>


연료 사정이 아슬아슬한 비행단장이 먼저 정운함에 내리고 유리는 여유롭게 착함을 준비했다.


천천히 랜딩 기어부터 확실히 내린다.

분명 크랭크 서른 바퀴였던가.


다행히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


가벼운 충격이 동체를 감싸며 와일드캣의 랜딩 기어가 매끄럽게 정운함를 구른다.


성공적으로 착함을 끝낸 유리는 헬멧을 벗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정운함의 넓은 갑판 위에는 단 2기의 와일드캣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벌써 격납고에 들어갔나?

아니, 거긴 폭격기랑 뇌격기 때문에 자리가 없을 텐데.


“단장님!”


이윽고 그녀보다 먼저 내린 비행단장을 향해 달려간다.


“남은 아군은···?”


순수한 의문이 담긴 목소리에 단장은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분노하듯 하지만 굉장히 슬픈 얼굴로, 그리고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이내 마지못한 듯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간신히 한마디 한다.


“수고했다.”


쓸쓸히 대기실로 돌아가는 비행단장을 등진 채 유리는 한참 동안 멍하니 갑판을 쳐다보았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에선 단 한 기의 비행기도 보이지 않았다.


***


17일 밤.

타이만 남단 해상.


무거운 함수가 파도를 짓이기며 나아갔다.


육중한 거구로 바다의 흐름조차 거스르는 해상 최대의 병기.


인류의 공학 기술력이 만들어낸 파괴력의 절정.


전함 야마토의 함상에서 사토 이치로는 별빛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군. 적기 하나도 없이 청명한 하늘이라 그런가?”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은 참모가 흠칫 고개를 돌린다.


낮 중에 벌어진 함대 항공전.


이순신 함대 상공에서 벌어진 방공 전투는 전투의 향방이 걸린 듯 굉장히 치열했다.


그러나 사토의 목표는 함대가 아니었다.


류조와 즈이호에서 출격한 항공기는 대부분 숙련 조종사가 모는 0식 ‘제로’ 전투기.


여느 때처럼 폭격기를 요격하는 줄 알았던 정운함의 함재기들은 그대로 하늘을 뒤덮은 일본 전투기의 파도에 휩쓸렸다.


성능의 우세와 숙련도의 차이, 그리고 수적 우세를 통해 일본 항공대는 요격 나온 대한해군 함재기들을 공략하고 다수를 격추했다.


뒤이어 육상 비행장에서 출격한 폭격기들이 함대를 공습했으나 이쪽은 별로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순신함에 타격을 입혀서 속도를 떨어트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봐야 어뢰 한두 발 정도겠지만.


이리하여 사토는 이순신 함대의 위치도, 전력도 파악했다.


전투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다.


“아름다운 달이네, 함장. 근처에 적은 없는가?”

“예, 근처에 적영 없습니다.”


어두운 함교에서 달밤에 비친 바다를 응시하고 있을 때, 함장이 사토 제독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당연히 그러겠지.

이미 진 거나 다름없는 전쟁이다.


‘이순신함의 지휘관은 지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굉장한 용장입니다.’


작전 시작 전,

야마모토 장관과의 회담에서 사토는 그렇게 말했다.


‘1함대의 주변을 어선으로 위장하여 돌파하고 항공함대를 급습한 통칭 ‘시마즈의 퇴각’···. 그런 도박적인 수는 전략적인 지장의 머리에서 나올 발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적의 지휘관은 도박사적인 맹장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금 결전을 걸어온 예는 없었네.’


‘그거야 이제 저들이 조선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전투부대이니 당연하겠지요. 자신의 어깨에 실린 무게만 아니었어도 그는 진즉에 기꺼이 함대결전에 응했을 겁니다.’


‘애당초 만일 그런 용장이 아니라면 제아무리 46cm 포 전함이라 한들 어찌 단함으로 연합함대 본대에 덤벼들 생각을 했겠습니까?’


물론 전략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여기서는 후퇴하는 게 맞다.


야마토 하나를 잡는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불리한 상황에서 일전을 걸어봐야 저쪽은 잃을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러니 이순신은 인도나 태평양으로 도망가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적어도 제 판단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야마모토 또한 내심 그 점을 염려했기에 사토는 그를 안심시키고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의 직위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사토가 이 일을 받아들인 이유는 한 가지.

이대로면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미합중국과의 함대결전에서 한 번은 이길지 몰라도 장기전은 무리다.


그 전에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어서 남방을 점령하고 요새화해야 한다.


그 걸림돌인 이순신은 하루빨리 제거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 남방에서는 발을 빼도록 강요해야지.


‘물론 발을 빼지 않을 경우도 다 대비해두었지만.’


이순신이 수적으로 월등한 야마토 함대에 맞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시야가 맑은 주간에 장거리 아웃 레인지 사격을 하는 것. 야마토는 아직 기술적 문제와 낮은 숙련도로 장거리 포격전이 어렵기에 유효한 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토가 먼저 제공권을 잡으며 이 수는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두 번째는 야간에 레이더를 통해 근접전을 벌이는 것.


하지만 야간의 함대함 교전은 필연적으로 근접전.

이기든 지든 손해가 막대하다.


대한 해군 유일의 전함으로 그 책임이 막중할 터.

사토가 분석한 이순신의 지휘관은 설령 맹장이라도 여기서 도박을 걸 스타일이 아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에만 나타나겠지··· 그 이순신처럼.”


단순한 도박이 아니다.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판을 짜놓고서 전투에 뛰어드는 스타일.


개전 초, 제1항공함대를 격멸한 전투에서 이미 그 특성은 다 파악했다.


마치 그가 이끄는 전함 이름의 유래가 된 자와 비슷한 방법.


그런 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을 들여서 이쪽이 이기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 이순신은 전략의 단계에서 일본군을 압도했지만,


전함 이순신은 근본적인 국가 전략의 단계에서 역으로 압도당하는 위치다.


“이순신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네. 필시 우리 함대를 피해 멀리 도망치려 들겠지.”


사토는 이 싸움의 승패가 너무도 쉽게 갈릴 거라 생각했다.


그자는 기회와, 기회인 것처럼 보이는 미끼를 구분할 줄 아는 사내일 테니까.


그러니 자신은 지금처럼 푸르스름한 달빛의 바다만 지켜보고 있으면 된다.


해가 뜨면 이순신 함대는 남방에서 꽁무니를 빼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자신은 함대를 이끌고 남하해 무주공산인 싱가포르항의 방문을 걷어차는 일만 남은···.


“···불빛?”


그 순간,


야마토의 함수 저 멀리.


어두운 수평선에서 사토의 눈에 일순 노란 섬광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당황스러운 감각 속, 그가 시선을 기울일 때―


“전방 포염!”


쾅―!

뒤늦은 폭풍우 소리가 바다에 메아리쳤다.


“적탄, 착탄!!! 함수 전방 150m!”

“공격이라고?”


일순간에 함교가 동요하며 요란한 경보음이 함 전체를 울린다.


야마토함 전방에서 솟아오른 물기둥.


적 함대의 사격이다.

사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두운 바다 너머를 응시했다.


“이순신···.”


일본 해군의 숙련된 견시원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거리.

분명 그 레이더를 이용한 장거리 사격이리라.


기어이 교전을 걸어온 건 예상 밖이었지만, 그 방법은 여전히 예상대로였다.


“대응책은 이미 마련해두었지. 함장!”

“예, 제독!”


사토가 손가락을 튕기자 야마토의 양현에서 부포대가 하늘 높이 포신을 들어 올렸다.


5인치 함포가 연달아 불을 뿜고, 하늘로 쏘아 올린 포탄이 곧장 폭발해 주변에 미세한 알루미늄 파편을 흩날렸다.


시제 금속성 전탐 교란기.

일종의 원시적인 채프다.


얇은 금속제 조각들을 통해 레이더의 신호를 부풀려 정확한 탐지를 어렵게 하는 원리.


예상대로 포탄은 야마토 근처에 떨어질 뿐, 이전처럼 정확히 협차를 내지 못했다. 야마토의 부포대는 연신 경로상에 채프 포탄을 쏘아대며 거함의 신호를 숨겼다.


“이걸로 정밀한 전탐 사격은 봉쇄··· 자, 어떻게 할 테냐 이순신?”


하지만 곧 이상한 부분이 사토의 눈에 띄었다.


46cm 주포치고는 조금 작아 보이는 물기둥.

주포보다는 부포라고 생각되는 크기다.


설마 거리 측정용으로 쏘고 있는 건가 생각한 순간,


“좌현 견시 보고!”


좌현.

칠흑 속에서 샛노란 포염이 용의 숨결처럼 빛났다.


어둠 속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포 섬광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사토는 눈을 번쩍 뜨고서 고개를 돌렸다.


“적 포염! 방위 090! 거리··· 약 1만!”

“좌현이라고···?”


당황한 채 중얼거리는 사토.

이윽고 휘파람 소리가 점점 야마토에 가까워지고.


“이런 미치광이 놈들···.”


지근탄의 충격이 바닥을 뒤흔들었다.


새하얀 물방울이 사토의 눈앞까지 튀어 오르는 가운데,


창밖으로 여태껏 보아온 그 어느 포탄의 것보다 거대한 물기둥이 보였다.


“이 상황에서 근접전을 걸겠다고?”


46cm 주포탄의 물기둥이었다.


***


그 시각,

전함 이순신의 함교.


칠흑 같은 밤중.

레이더로 적 함대를 포착한 우리는 교전에 돌입했다.


먼저 나대용함을 필두로 한 별동대가 함수 방면에서 선제 포격.


적 함대의 시선을 돌리고 이순신과 구축함 전대가 측방에서 돌입한다.


“제1사! 근탄입니다!”


<제2사, 일제사!>


적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0척 이상.


그중 3척이 대형함.

전부 전함 같은데, 하나는 유독 크다.


“적 조명탄입니다!”

“부포대, 조명탄 있는 대로 쏴! 함대, 비상 전속!”

“양현, 비상 전속!”


상황은 본래 예상보다 좋지 않다.


항공대의 피해가 크고, 적의 함대 속도는 우리를 능가한다.


이순신함의 현 속은 25노트도 채 안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교전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

아니면 애당초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는 게 핵심이지만.


아무래도 전략가는 내 적성이 아닌 듯하다.

그게 취향이었으면 애초에 함장이 아니라 제독을 했지.


“조명탄 낙하!”


아미 지금쯤 적 지휘관도 당황스러워하겠지.


“우현 견시 보고! 적 전함 다수! 방위 090! 거리 9,000! 속도 26노트!”


이 거리에서, 이 정도의 전력 차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죽을 거라고.


되려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냐고 물어볼 거다.


어, 알고 있어.


“제2사, 착탄!”


근데 어쩌라고.


내가 너네 전함 개 패듯이 줘패서 죽여버릴 건데.


“협차했습니다!”

“명중탄 있나?”

“보이지 않습니다!”


새까만 어둠 위로 양측 함대의 조명탄이 은은히 빛나며 바다 위를 비추었다.


그 불빛 아래 강철로 빚어낸 괴수들이 조용히 파도를 갈라 세우며, 역동하는 생물처럼 그 자태를 드러냈다.


전함 야마토.

일본 해군 최대이자 최강의 전함.


바다 위에 존재하는,

이순신의 유일한 맞수.


그 녀석의 뒤를 따라 2척의 공고급이 나란히 일자진을 이루며 항진한다. 측면에는 4척의 구축함이 일렬로 경계진을 이룬다.


잔챙이는 필요 없다.


구축함 따위 어뢰만 피하면 부포만으로도 찢어발길 수 있는 놈들.


14인치 포 따위를 주포랍시고 들고 다니는 공고 같은 구형함은 언제든지 용골을 부숴버릴 수 있다.


노리는 건 대어.

내 이순신함과 주포를 맞대기 충분한 성능을 가진 전함.


이 바다 위의 유일한 적수.


“전 함대에 알린다! 목표, 적 전함!”


이 바다에는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다.

결단했다면 오직 지금뿐이다.


양 함대의 조명탄이 서로의 머리 위에서 번쩍일 무렵,


두 번의 일제사를 토해낸 이순신의 주포가 다시금 장전을 마치고 정렬한다.


동시에 야마토의 주포탑도 느릿느릿 선회를 마치고 간신히 우리를 바라보았고―


“주포, 부포, 어뢰, 전부 조준 좋으면 쏴!”


두 전함이 달빛이 비추는 바다 위로 울부짖었다.


작가의말

지식채널 2님,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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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8

  • 작성자
    Lv.29 의중이
    작성일
    24.08.26 19:06
    No. 1

    설마 혼자서 돌격하겠냐교 ㄹㅇ 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7 ranger
    작성일
    24.08.26 19:06
    No. 2

    진짜 뒤는 없네요... 이겨야 한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6 괴선자
    작성일
    24.08.26 19:12
    No. 3

    마크로스 노래 들으면서 이 소설 읽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이트레야
    작성일
    24.08.26 19:18
    No. 4

    뭔가 2차대전 후반기 미군이나 쓰는 '파이터즈 스위프' 전술이 나온거 같지만
    46cm포 전함이 헤드온으로 붙었는데 그딴거 신경 쓰겠냐고!!!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29 조율자
    작성일
    24.08.26 19:18
    No. 5

    사토가 당혹하는것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이순신을 나름 연구했으면서도 뭔가 부족해서 명량해전을 간과한 것 같네요.
    반드시 이기는 전투만 했다니, 명량에서는 통제사또도 도저히 안되서 이기니까 천행이라고 할 정도로 승산이 낮아도 승리를 위한 유일한 선택지라 싸웠는데 비슷하게 야마토를 빨리 보내버리지 않으면 한국에 승산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도 물지 않을거라 생각하다니요ㅋㅋ

    찬성: 46 | 반대: 0

  • 작성자
    Lv.99 즐거운다
    작성일
    24.08.26 19:21
    No. 6

    고작 9km인데 2살보 빗나가는 것도 레전드다...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95 실버윈드
    작성일
    24.08.26 19:22
    No. 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9 조율자
    작성일
    24.08.26 19:25
    No. 8

    19페이지에 야마토와 구축함 전대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순신과 구축함 전대 아닌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6 대형수상함
    작성일
    24.08.26 19:39
    No. 9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HwangBee
    작성일
    24.08.26 19:32
    No. 10

    아니 왜 다음화없어 젠장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bl******..
    작성일
    24.08.26 19:34
    No. 11

    아, 상대는 낭만때매 정답지를 알고도 오로지 전함 한척에만 몰빵한 ㅁㅊ놈이라고ㅋㅋ

    찬성: 35 | 반대: 0

  • 작성자
    Lv.24 정다비라네
    작성일
    24.08.26 19:41
    No. 12

    이순신은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였지만, 그가 전설이 된 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던 단 하나의 전장이었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찬성: 63 | 반대: 0

  • 작성자
    Lv.84 유진클로넬
    작성일
    24.08.26 19:47
    No. 13

    함명이 이순신 인것부터가
    정상적인 전술을 쓰지 않는다고 ㅋㅋ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골드레인
    작성일
    24.08.26 19:56
    No. 1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kraj
    작성일
    24.08.26 19:57
    No. 15

    아니 근데 어뢰는 왜 단거냐 ㅋㅋㅋ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9 PnPd
    작성일
    24.08.26 20:18
    No. 16

    전함으로 헤드온ㅋㅋㅋㅋㅋㅋㅋ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31 해롤드리
    작성일
    24.08.26 20:48
    No. 17

    전쟁 중이라 조종사 훈련이 쉽지 않더라도 할 수 있을 때마다 유리가 그냥 숨쉬듯 하는 전투비행을 기술을 가르쳐줬어야지. 가장 실력 좋으면 뭐하나 혼자서 적기 다 잡을 수 있는 슈퍼히로인도 아니고 언제가 훈련교관이 되겠지 마냥 기다릴게 아니라 차곡차곡 후임 양성도 했어야지. 본인 비행 못한다 억울할거 전혀 없고 다른 조종사들 다 죽었다고 슬퍼할 이유 전혀 없음. 유리 본인도 문제가 있다는걸 확실히 깨우치는 계기가 되어야함. 다음화부터에서 변화된 모습이 없으면 유리는 그냥 어느 전투에서 그냥 다굴 당하고 죽는 퇴장밖에 답 없음.

    찬성: 15 | 반대: 1

  • 작성자
    Lv.99 Rberry
    작성일
    24.08.26 21:21
    No. 18

    "인파이트"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2 dirgon
    작성일
    24.08.26 22:41
    No. 19

    글쌔여 그럴거면 유리는 차라리 본토 교관의로 돌렸지 주인공이 픽업 한이유가 실력보고

    데려온건데 전도리어 전투비행단장이 답답함 에이스를 자기들 실력에 안마춰 준다고

    출격금지때리는꼬라지가 도리어 유리를 뒤에서 백업해주면서 했으면 결과도 많이 달라졌을

    거같은데 정도차이는 있지만 이번전투에서 격추당한항공대원들 전투비행단장 탓임

    찬성: 17 | 반대: 1

  • 작성자
    Lv.90 Bohemia
    작성일
    24.08.26 23:48
    No. 20

    이동네 야마토는 최소한 호텔이라고는 안불리겠네... 아닌가, 신축 수중 호텔이라고 비꼬일려나.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41 nany
    작성일
    24.08.27 05:45
    No. 21

    설마 고마워요 GG사토가 모티브인가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에랄드
    작성일
    24.08.27 06:52
    No. 22

    꼰데는 항상 재능 있는 신예를 괴롭히지.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54 카레곰x
    작성일
    24.08.27 10:43
    No. 23

    정말 로망은 대폭 충전 되는데 주인공이 사실 자기 부하들이나 사람 목숨을 아직 게임속 npc같이 생각하는 느낌이 강하네요. 저 세상에 던져진지 얼마 안되서 실감이 안나는건가? 내 꼴리는데로 할테다! 이 마인드라..

    찬성: 9 | 반대: 1

  • 작성자
    Lv.63 E100
    작성일
    24.08.28 03:27
    No. 24

    인명경시 끝판왕이네
    비전함 급에 쓸려나갈 갑판 승조원들은? 부포들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ly******..
    작성일
    24.09.06 19:32
    No. 25

    잘보고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4 리파이러
    작성일
    24.09.10 16:50
    No. 26

    이건 로망이긴 한데.ㅎ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8 다비드7
    작성일
    24.09.13 15:22
    No. 2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1 나툰
    작성일
    24.09.17 00:08
    No. 28

    실력도없는게 대장먹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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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다시 바다로 (1) +33 24.09.07 10,725 459 17쪽
43 거인의 기상 +27 24.09.06 11,018 450 15쪽
42 진주만 (2) +43 24.09.05 11,158 452 20쪽
41 진주만 (1) +29 24.09.04 11,105 487 14쪽
40 태평양 함대 (2) +40 24.09.03 11,353 480 14쪽
39 태평양 함대 (1) +48 24.09.02 11,438 474 13쪽
38 솔로몬 해전 (2) +38 24.09.01 11,613 405 16쪽
37 솔로몬 해전 (1) +46 24.08.31 11,736 444 15쪽
36 남방 전선의 종막 (2) +34 24.08.30 11,886 425 15쪽
35 남방 전선의 종막 (1) +35 24.08.29 12,037 457 14쪽
34 타이만의 새벽 +48 24.08.28 12,133 468 13쪽
33 초중전함 vs 초중전함 +88 24.08.27 12,645 564 27쪽
» 강철의 포효 +28 24.08.26 11,368 415 19쪽
31 남방 공세 +26 24.08.25 11,225 403 11쪽
30 사냥 준비 +23 24.08.24 11,665 390 16쪽
29 대본영 발표 +16 24.08.23 12,073 400 14쪽
28 남방 수호자, 탄생 +29 24.08.22 12,256 4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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