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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자를 향한 미로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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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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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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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12 19:07
최근연재일 :
2024.06.25 22: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794
추천수 :
25
글자수 :
237,404

작성
24.06.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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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40화 킹데이빗

DUMMY

“아닙니다. 마땅히 잘 곳도 없으신 것 같아서, 숙박이 가능한 찻집을 술법으로 만들어 봤는데, 마음에 드시나요?”

그녀가 빙그레 웃는다.


“들다마다요! 숲속에서 차가운 나뭇잎들을 덮고 잤었는데, 이런 과분한 찻집 숙소에다 따뜻한 커피까지 내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라나 공주님!”


“제가 이 찻집에 보호막을 쳐 놓았으니까,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을 겁니다. 안심하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고맙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슬쩍 바라봤다.


밤이라 그런 건지 그녀의 모습은 더욱 빛이 났고 아름답기만 했다.


“꽃가루는 많이 채취하셨나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꽃송이들을 따서 가방에 담아두었습니다. 며칠 만 더 작업을 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너무 고생이 많으시네요. 내일부터는 제가 일을 좀 도와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저 혼자 해도 됩니다.”


“아무래도 속히 판타지아 월드로 꽃가루를 갖고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불안한 표정을 지어냈다.


“혹시, 그곳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혈공주가 판타지아 월드에 있는 꽃송이들 위에 독이 든 액체를 뿌렸습니다. 글라우나의 요정들을 모두 무력하게 만들려는 계획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혈공주가 꽃송이들까지 오염을 시키다니.”


“혈공주의 전략은 나와 술사 요정들을 모두 잠재우고 바벨론 궁전을 탈환하려는 겁니다. 아마도 꽃가루를 채취하고 있는 킹에르, 그대도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려고 할 겁니다.”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킹에르는 그녀가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마음은 허하고 괴로웠지만, 육신은 편안하고 포근한 밤이었다.


그라나와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그랬던 걸까.


킹에르는 오랜만에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침대도 말랑말랑한 빵처럼 부드러웠고, 룸 안에서는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꽃향기가 늘 넘쳐흘렀다.


아마도 그녀가 술법으로 그를 위하여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햇살이 눈 부신 아침이 되자, 그는 잠에서 깼다.


그가 룸에 딸린 욕실에서 가볍게 세면을 하고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였다.


“킹에르님! 잘 주무셨어요?”


그녀가 그를 바라보곤 밝은 표정으로 입가에서 엷은 미소를 지어냈다.


“한동안 잘 곳이 없어서, 저는 냉기가 도는 숲속에서 불편하게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어제 공주님을 만난 덕분에 오늘 아침까지 아주 편안하게 푹 잠을 잤습니다.”


그도 그녀를 바라보면서 씽끗 웃었다.


그의 마음 한편 구석에서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연기처럼 올라왔다.


조금도 아니 전혀 아무것도, 자신과 함께 했던 추억을 기억할 수 없게 된 그라나를 보면서, 그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속히 판타지아 월드로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기억을 되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설 뿐이었다.


“내가 일찍 일어나서 커피 대신 화차를 끓였는데, 맛이 어떤지 좀 드셔 보시겠어요?”


그라나가 꽃무늬가 새겨진 하얀 사기 컵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아! 고맙습니다. 손수 화차까지 끓여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는 찻잔을 들고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내음을 코로 흡입했다.


화차의 향기가 그의 대뇌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신기한 화차의 맛이었다.


“이게 무슨 차죠? 화차를 여러 번 마셔봤지만, 이건 너무 좋은데요.”

그가 꽃향기를 맡으며 화차를 여러 모금 마셨다.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모아서 만든 꿀화차인데, 글라우나 족의 요정들이 즐겨 마시곤 합니다.”


“이런 화차를 매일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즐겨 먹는 커피보다 더 깊고 오묘한 맛이 있네요. 마치 아주 행복했던 옛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판타지아 월드로 돌아가게 되면, 내가 즐겨 찾아가는 글라우나 찻집이 바벨론 궁전에 있거든요. 그곳으로 오시면 이런 꿀화차를 언제든지 마실 수 있어요.”


“아! 그런 곳이 있었나요? 바벨론 궁전에.”


“옛날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내가 꿀화차를 즐겨 마시니까 전하께서 바벨론 궁전 안에 글라우나 찻집을 만들어 주셨어요. 지치고 힘들면 언제나 이걸 마시거든요.”


“요정님들은 피곤하시면 아무래도 꽃가루가 더 많이 필요하겠네요.”


“그렇죠. 요정들은 꽃가루를 먹어야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꽃가루를 먹게 되면 질리지 않나요? 맛도 없을 텐데.”


“아뇨! 그렇지 않아요. 요정들은 꽃가루를 먹을 때마다 수백 가지의 맛을 입안에서 음미하죠. 꽃가루를 많이 먹게 되면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쾌락과 행복감을 얻게 되니까, 정말 기분도 너무 좋아집니다.”


그녀가 일부러 기분 좋은 표정을 익살맞게 그려내며 상체를 흔들었다.


“흐음! 그런 꽃가루를 먹어본 경험은 없지만,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들을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먹을 때처럼, 진짜 기분은 좋을 것 같네요. 하하하!”


그는 웃음기가 배어있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절로 웃음을 쏟아냈다.


“혈공주와 흡혈 요괴들만 없어도 판타지아 월드는 파라다이스가 될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그녀가 혈공주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맞습니다. 바벨론 궁전을 탈환하려는 혈공주가 사라져야, 판타지아 월드도 싸움과 전쟁이 없는 곳으로 바뀔 텐데, 그런 걸 생각하면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킹에르님은 요정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것 같은 데, 어디서 오셨나요?”


“저는 판타지아 월드에서 인간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아니, 바벨론 궁전으로 오기 전에, 어디서 사셨는지 그걸 내가 묻는 겁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인간 세상에서 살다가 저는 판타지아 월드로 들어갔습니다.”


“허면, 인간이세요? 진짜로?”


“인간은 아니고, 저도 판타지아 월드에서 살다가 인간 세상으로 나왔거든요.”


“왔다 갔다 하시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네요. 아! 그러면, 혹시 하프그라나?”


“하프그라나요?”


“예! 요괴였다가 요정으로 변해가고 있는 착한 반요정이 하프그라나죠. 우리 글라우나 요정들도 하프그라나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언젠가는 요정이 될 존재들이니까요.”

그녀의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자신이 킹데이빗의 아들이라는 걸 그녀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경계심을 갖거나, 안 좋은 감정이 생기는 걸 염려해서였다.


과거의 킹데이빗은 바벨론 궁전의 왕이었고, 글라우나 족장과는 적대관계에 있었던 탓이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 탓에, 그는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킹에르님은 우리 글라우나 족을 돕고 있는 분이시니까, 더욱 가깝게 여겨지네요. 앞으로도 우리 잘 지내도록 합시다. 바벨론 궁전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하고요.”


“고맙습니다. 그라나 공주님! 미천한 저를 이토록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더욱 감사해야지요. 킹에르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 세상까지 나와서, 우리 요정들을 위해 꽃가루를 채취하시고 있잖아요.”


그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꽃가루를 구하기 위하여 산속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했다.


***


혈공주는 흡혈요괴들의 보고를 받고 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라나가 판타지아 월드에 있는 꽃들을 오염시킨 것을 알았고, 인간 세상으로 꽃가루를 구하기 위하여 직접 나갔다는 보고를 받은 탓이었다.


“그라나! 대체 너는 어떻게 나보다 한발 앞서서, 매번 내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그라나가 어떻게 꽃들이 오염된 걸 알았단 말인가?”

그녀가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창백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마도 술사 요정들이 가까운 곳에서 혈공주님의 말씀을 엿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술사 요괴 하나가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술사 요정들을 찾아내어 죽이든가, 내 주변에서 멀리 쫓아내거라! 알겠느냐?”

그녀가 충혈된 눈으로 술사 요괴를 매섭게 노려봤다.


술사 요괴는 두려움에 떨면서 지시대로 하겠노라며 뒷걸음질로 물러갔다.


“인간 세상으로 쫓아가서 그라나가 꽃가루를 채취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래야 그라나의 숨통을 내가 틀어쥘 수 있을 테니까..”

그녀가 빠드득 이를 갈면서 웅얼거렸다.


그라나와 정면 대결을 하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는 혈공주는 나름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변신술로 몸을 감추고 그라나의 뒤쪽이나 옆쪽에서 그녀의 일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일이었다.


“그라나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채취한 꽃가루를 독으로 오염시킨다면, 효과가 클 것이다. 독을 먹은 그라나는 깊은 잠속으로 빠질 테니까. 그때 그라나를 제거하면 되는 거지.”


혈공주는 술사 요괴들 몇을 데리고 인간 세상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번 일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바벨론 탈환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허니, 반드시 그라나를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처단해야 한다.”

혈공주가 찢어진 눈을 치켜뜨면서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는 술사 요괴들 여섯 명을 데리고 인간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 신속하게 움직였다.


***


글라우나 족장은 그라나가 인간 세상으로 나갔다는 보고를 받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킹에르를 만나게 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킹에르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그녀에게 발설한다면, 잃어버린 그녀의 기억들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 탓이었다.


“막아야 한다. 킹에르와 그라나가 만나지 못하도록 하지 않으면 일이 커질 수 있다.”


글라우나 족장은 술사요정들에게 킹에르와 그라나가 만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방해를 하라고 명했다.


“너희들은 인간 세상으로 가서 킹에르와 그라나가 함께 있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만약 킹에르가 반항하면, 그라나가 모르게 즉시 그를 죽여라!”


글라우나 족장이 엄명을 내리자, 술사 요정들은 명을 받들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들어갔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라나를 살리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킹에르가 나를 대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실로 아까운 능력자이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딸을 지켜야 한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얼굴이 침울하게 일그러졌다.


글라우나 족장은 킹데이빗이 한 말을 다시금 되씹으면서 어금니를 단단히 다물었다.


그것은 그라나를 당장 죽여서, 아들 킹에르를 살릴 수도 있지만, 아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킹데이빗은 그라나를 사랑하는 아들 킹에르의 기억을 삭제한 후에, 인간 세상으로 내보냈다.


글라우나 족장은 킹데이빗의 깊은 뜻을 마음속으로 헤아리면서 혀를 찼다.


“난 킹데이빗처럼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난 그라나를 아끼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글라우나 족장은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반복해서 뇌까렸다.

커피숍 사진 그림062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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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42화 하늘로 떠오른 신검 +1 24.06.25 7 1 12쪽
41 제41화 그라나의 화살 +2 24.06.23 22 1 12쪽
» 제40화 킹데이빗 24.06.21 19 0 12쪽
39 제39화 아름다운 찻집 24.06.21 15 0 12쪽
38 제38화 봉인된 보호막 앞에 서다 +2 24.06.19 24 1 12쪽
37 제37화 녹색 불길 +2 24.06.18 19 0 12쪽
36 제36화 붉은 가죽 옷을 입은 자 24.06.17 13 0 13쪽
35 제35화 꽃을 먹는 괴물 24.06.16 10 0 13쪽
34 제34화 용고래의 피 24.06.16 9 0 13쪽
33 제33화 마왕 쉐튼 24.06.12 10 0 13쪽
32 제32화 궁금증 24.06.10 19 0 13쪽
31 제31화 새 이름 24.06.07 12 0 13쪽
30 제30화 보물 창고의 문 24.06.06 13 0 12쪽
29 제29화 대승리 24.06.05 13 0 13쪽
28 제28화 바벨론 궁전의 왕 24.06.03 13 0 13쪽
27 제27화 새로운 전략 24.06.02 14 0 12쪽
26 제26화 두 마리의 표범 24.06.01 12 0 13쪽
25 제25화 바벨론 궁전의 군사 24.06.01 13 0 12쪽
24 제24화 숲의 미로 24.05.31 12 0 11쪽
23 제23화 엄청나게 큰 창 24.05.30 12 0 12쪽
22 제22화 역모 24.05.30 10 0 13쪽
21 제21화 눈사람 24.05.28 11 0 12쪽
20 제20화 마음의 소리 24.05.28 9 0 12쪽
19 제19화 그라나의 위기 24.05.25 11 0 13쪽
18 제18화 구멍이 생긴 보호막 24.05.24 11 1 13쪽
17 제17화 외출 24.05.24 11 1 12쪽
16 제16화 마성 궁전 24.05.23 11 1 13쪽
15 제15화 꽃가루 24.05.23 12 1 12쪽
14 제14화 동굴 속의 해몽 24.05.21 11 1 18쪽
13 제13화 미끼 전략 24.05.21 1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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