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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자를 향한 미로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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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greater
그림/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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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12 19:07
최근연재일 :
2024.06.25 22: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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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5
글자수 :
237,404

작성
24.06.0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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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31화 새 이름

DUMMY

그 제단 한가운데에는 황금으로 조각된 꽃 한 송이가 입체적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꽃잎 속에서 푸른 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 물은 수로를 타고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 황금 항아리는 사람들 여러 명이 들어가도 남을 만큼 크기가 거대했다.


그 항아리의 윗부분은 손잡이가 달린 황금 뚜껑에 눌려있었다.


그는 그 항아리를 눈여겨보다가 측면에 열쇠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 그라나의 말대로 황금열쇠가 있어야 저 항아리를 열 수 있는 거야. 그런데 황금열쇠는 어디서 구하는 걸까?”

그가 사방을 살펴봤지만, 황금열쇠는 눈에 띄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그 항아리 앞에 새겨져 있는 황금열쇠를 손으로 만져봤다.


그 순간, 그 황금열쇠는 마법처럼 허공으로 떠올라 공중에 머물렀다.


그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그 황금열쇠를 오른손으로 받았다.


그러곤 그 황금열쇠를 그 항아리의 열쇠 구멍에 꽂은 후 조심스럽게 돌렸다.


“달캉-”

그 항아리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 항아리 안에서 나온 황금색이 도는 피부를 가진 소녀가 그를 바라봤다.


인간을 닮은 그 소녀는 예의 바르고 무척 착해 보였다.


아마도 그 항아리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요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담대하게 입을 열었다.


“난 내 이름을 알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모두 내게 알려줘!”


“이리 가까이 와서 내 손을 잡으세요. 이제 당신의 이름과 잃어버린 기억을 모두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 황금 소녀가 양손을 그의 앞에 천천히 내밀었다.


그는 그 소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우르르릉- 콰과앙-”

천둥 번개 치는 소리가 허공을 갈라내듯 크게 들려왔다.


그는 그 황금 소녀의 손을 잡은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그의 대뇌 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 세상의 숲속에서 그라나를 만나기 전까지의 기억들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이 피에르가 아니라 ‘킹에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바벨론 궁전의 왕이었던 자는 킹데이빗이었다.


킹데이빗의 외아들로 태어난 존재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바벨론 궁전의 왕자인 자신과 글라우나 족장의 딸인 그라나가 서로 깊은 사랑에 빠져있는 사이라는 거였다.


그걸 막기 위해서 그의 부친 킹데이빗이 그들의 기억을 몰래 빼어내서 황금 항아리에 보관해두었다는 걸 알고, 그는 ‘하아-’ 하고 아픈 신음을 입가에서 흘려냈다.


그는 자신만 기억을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그라나도 기억을 상실한 여전사라는 걸 깨닫고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왔다.


바벨론 궁전의 왕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요정과 정을 나누는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만약 바벨론 궁전의 왕자와 요정이 사랑에 빠져 서로 정식 혼인을 하게 되면, 30일 후에는 그들은 모두 죽게 되어있었다.


요정과 요괴는 빛과 어둠의 기를 갖고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요정인 그라나와 요괴인 킹에르가 혼인을 하면 결국 한 줌 먼지로 변해, 둘 다 사라지게 된다는 걸 킹데이빗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기억을 잃어버렸던 탓에 그걸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킹데이빗은 심히 고통스러웠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의 기억을 훔쳐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킹데이빗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외아들인 킹에르를 살리고 싶어서, 그런 어려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글라우나 족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킹데이빗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 까닭에 그라나와 킹에르는 만나도 알아볼 수 없는 망각의 장애를 가진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킹에르는 그라나를 생각하면 심장이 조각조각 파열되는 듯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졌다.


잊어버렸던 지난날의 아픔과 슬픔이 대뇌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 탓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고, 그런 고통을 분담하게 된 그라나를 떠올리며 그는 몸부림을 치면서 그 자리에 엎디어 통곡했다.


킹데이빗은 그녀와 그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아예 그를 인간 세상으로 내보냈다.


그곳에서 망각의 장애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는 편이, 판타지아 월드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던 탓이다.


하지만 운명의 손은 그들을 인간 세상에서 다시 만나도록 서서히 이끌어 주었다.


그라나는 그의 대한 기억을 모두 상실한 채 무덤덤하게 살아가다가, 이상하게도 자꾸만 인간 세상에 가고 싶은 충동이 생겨 절제할 수가 없었다.


뭔가 좋은 만남이 있을 것만 같은 거부할 수 없는 호기심이 그녀를 자극했던 것이다.


그녀는 기회만 생기면, 인간 세상으로 들어가 짧은 여행을 즐기곤 했었다.


인간 세상에서 살게 된 킹에르는 살아남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난 건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청년처럼 날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갔다.


그러다가 그는 우연한 기회에 숲속에서 요정 그라나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는 수시로 킹데이빗의 눈을 피해 글라우나 족의 마을로 찾아가 아무도 몰래 그녀를 만나곤 했었다.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하거나 귀여운 동물들을 만나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숲속을 온종일 돌아다녔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맑고 시원한 강물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즐기며 웃음꽃을 피웠던 숱한 기억들이,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줬다.


그냥 말없이 맑은 그녀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어도 가슴이 설레고 기쁨이 샘솟곤 했었다.


그는 그런 그라나의 얼굴을 다시금 마음속에 섬세하게 그려봤다.


“이 사실을 그라나에게 알려줄 수가 없어. 그라나가 과거의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괴롭고 슬픈 마음을 감당할 수 없을 거야.”

그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그녀를 위해서 그 비밀을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사실, 킹데이빗은 인간 세상으로 보낸 아들을 날마다 걱정하면서 판단력과 기력이 떨어졌다.


그 틈을 타서 바벨론 술사장이었던 헤르가 군대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이미 오래전부터 반란을 계획했던 까닭에, 술사장 헤르는 바벨론 궁전을 삽시간에 장악했다.


그날 킹데이빗은 술사장 헤르의 손에 암살당하고 말았다.


술사장 헤르는 바벨론 궁전의 왕이 되어, 판타지아 월드와 인간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차단해버렸다.


누구든지 그 통로를 열고 인간 세상으로 가는 자들은 국법으로 처단하겠다고 헤르는 엄명을 내렸다.


만에 하나, 인간 세상에 살고 있는 킹에르 왕자가 판타지아 월드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제 술사장 헤르는 그라나가 던진 투명한 창에 박혀 죽었다. 혈공주가 바벨론 궁전을 강탈했지만, 그라나에게 쫓기는 형국이니, 판타지아 월드에는 장기간 평화로운 삶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을 되찾고 나서 더욱 고통스러운 지옥을 맛보게 되었으니...”

그는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을 토해냈으나,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면서 평생을 아픈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생지옥과 다름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그런 사실을 고백하고 그녀에게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준다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여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차라리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지 말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길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는데, 너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실수를 한 것일까.


그는 멍하니 황금빛이 나는 기억의 열쇠를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황금 항아리가 엄청나게 크다! 드디어 네 이름과 네가 누구인지 과거의 기억들을 모두 찾아낸 거구나? 내 말이 맞지?”

또랑또랑한 그라나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귀에 익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가슴이 무너지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그를 바라보는 그라나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떠올랐다.


킹에르는 그녀를 보고 말을 더듬었다.


“내 이름은 알아냈는데, 아직도 과... 과거는 불투명해.”


“그럴 리가? 이름을 알았다면 과거도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기억이 될 텐데.”

그녀가 의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냐! 기억이 좀 희... 희미해서.”


“너 안 좋은 과거를 봤구나. 나한테 말하기 싫은 거지? 괜찮아. 난 다 이해해. 네가 어떤 안 좋은 과거를 갖고 있어도 너를 향한 내 마음은 변함없어.”

그라나가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생각이 잘 안 나서 그러는 거야.”


“으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생기는 일시적인 기억상실증 같은 것도 있으니까.”


“그... 그런 것 같아.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이야. 시간이 지나게 되면 내 기억이 점진적으로 돌아오겠지.”


“그래서 네 진짜 이름은 뭔데?”


“킹에르. 그게 내 이름이었어.”


“뭐? 킹에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 같은데.”


“아냐! 피에르라고 하다가 킹에르라고 하니까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그럴 거야.”


“킹에르... 이상하다.”


“킹에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는데.”


“혹시? 옛날 애인의 이름과 같은 거 아냐?”


“말도 안 돼! 이제껏 그런 애인 같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 이건 진실이거든.”


“그래? 정말로?”


“응! 그렇다니까.”


“그런데 왜 킹에르라는 이름을 듣고 그렇게 가슴이 뛰는 건 뭘까?”

그는 농담처럼 말을 흘렸지만 속으론 마음이 아팠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미래의 내 애인인가보다. 하하하!”

그녀가 소리를 내서 밝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장미꽃들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 장미꽃을 받아들고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킹에르는 그라나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였음을 입술로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다시 그녀를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는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 돼! 이건 그라나에게 말하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어차피 우리는 혼인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빛과 어두움의 기운이 합체되면, 그라나와 나는 영원히 판타지아 월드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

그가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말로 웅얼거렸다.


“나도 잃어버린 기억들이 있는지 황금 항아리를 통해 알아볼까?”

그녀가 황금 항아리 앞으로 다가섰다.


“안 돼! 하지 마!”

그가 그녀를 가로 막았다.


“왜?”


“그냥...”


“그게 무슨 뜻이야?”


“내 말은 지금의 그라나가 제일 좋다는 거지.”


“그렇긴 하다. 나도 지금의 내가 제일 좋아. 자랑스럽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르게 되면 기분이 예상외로 안 좋아질 수도 있어.”


“그래! 네 말이 맞아! 잊을 건 빨리 잊고, 기억할 건 늘 기억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야.”

그녀가 황금 항아리를 바라봤다.


“그런데, 혈공주는 어떻게 된 거야? 잡았어?”


“얼마나 빠른지 그만 놓쳤어.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그녀가 안타깝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은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족장에게로 갔다.


글라우나 족장은 성대한 잔치를 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토록 무섭던 바벨론 궁전의 왕이었던 헤르도 죽었고, 혈공주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말았다.


그것은 바벨론 궁전을 다스리는 자가 바로 글라우나 족장이 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그라나는 글라우나 족장을 바벨론 궁전의 왕으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껏 모든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며 글라우나 족장이 바벨론 궁전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은, 죽음을 각오한 그라나의 희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봐도 그라나가 바벨론 궁전의 여왕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겸손한 마음으로 부친인 글라우나 족장을 바벨론 궁전의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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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42화 하늘로 떠오른 신검 +1 24.06.25 7 1 12쪽
41 제41화 그라나의 화살 +2 24.06.23 22 1 12쪽
40 제40화 킹데이빗 24.06.21 18 0 12쪽
39 제39화 아름다운 찻집 24.06.21 15 0 12쪽
38 제38화 봉인된 보호막 앞에 서다 +2 24.06.19 23 1 12쪽
37 제37화 녹색 불길 +2 24.06.18 19 0 12쪽
36 제36화 붉은 가죽 옷을 입은 자 24.06.17 12 0 13쪽
35 제35화 꽃을 먹는 괴물 24.06.16 10 0 13쪽
34 제34화 용고래의 피 24.06.16 9 0 13쪽
33 제33화 마왕 쉐튼 24.06.12 10 0 13쪽
32 제32화 궁금증 24.06.10 19 0 13쪽
» 제31화 새 이름 24.06.07 12 0 13쪽
30 제30화 보물 창고의 문 24.06.06 13 0 12쪽
29 제29화 대승리 24.06.05 12 0 13쪽
28 제28화 바벨론 궁전의 왕 24.06.03 13 0 13쪽
27 제27화 새로운 전략 24.06.02 14 0 12쪽
26 제26화 두 마리의 표범 24.06.01 12 0 13쪽
25 제25화 바벨론 궁전의 군사 24.06.01 13 0 12쪽
24 제24화 숲의 미로 24.05.31 12 0 11쪽
23 제23화 엄청나게 큰 창 24.05.30 11 0 12쪽
22 제22화 역모 24.05.30 10 0 13쪽
21 제21화 눈사람 24.05.28 11 0 12쪽
20 제20화 마음의 소리 24.05.28 8 0 12쪽
19 제19화 그라나의 위기 24.05.25 11 0 13쪽
18 제18화 구멍이 생긴 보호막 24.05.24 11 1 13쪽
17 제17화 외출 24.05.24 11 1 12쪽
16 제16화 마성 궁전 24.05.23 11 1 13쪽
15 제15화 꽃가루 24.05.23 11 1 12쪽
14 제14화 동굴 속의 해몽 24.05.21 11 1 18쪽
13 제13화 미끼 전략 24.05.21 1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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