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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자를 향한 미로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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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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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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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12 19:07
최근연재일 :
2024.06.25 22: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796
추천수 :
25
글자수 :
237,404

작성
24.05.2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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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21화 눈사람

DUMMY

분노로 가득한 혈공주의 책망을 듣고 진혈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공주님! 저는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수하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을 뿐입니다.”


“밀정들은 변신을 한다. 나무도 되고 새도 되며 벌레로 변신할 수 있는 존재들이 밀정들이다. 그런데 네 말을 밀정들이 들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혈공주님!”

진혈사가 이마를 바닥에 대고 빌었다.


“만에 하나 이 사실이 바벨론 궁전의 왕에게 들어간다면, 나는 천년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진정 몰랐단 말이냐?”

그녀가 핏발 선 눈동자로 진혈사에게 호통을 쳤다.


진혈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감히 혈공주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바싹 밑으로 숙였다.


여차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혈공주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녀는 냉정한 마음으로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애를 썼다.


어떻게 해야 이 난제를 풀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그녀는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고민했다.


항상 혈공주와 진혈사의 주변을 맴도는 글라우나 족의 밀정들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그 사실이 바벨론 궁전의 왕에게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그녀는 바벨론 궁전의 왕이 그 사실을 알기 전에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고양이로 변하여 그라나가 있는 집 주변을 맴돌던 흡혈 요괴들은 숲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분위기가 안 좋아! 술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새들이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어.”

술사 요괴들 중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진짜 그라나가 보낸 새들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우리들의 정체가 드러난 거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멀리 도망가야 하나?”

좀 마른 술법 요괴가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그라나는 술법의 등급이 아주 높아. 멀리 도망가도 우리를 쉽게 찾아낼 거야.”

나이가 많은 술사 요괴가 얼굴을 심하게 찡그렸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맞서 싸우기라도 하자는 건가?”


“쥐도 구석으로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그 꼴이 난 거야! 이젠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해. 어차피 그라나를 피하여 마성 궁전으로 돌아가도 끝장이야. 혈공주는 우리가 실패했다고 분노할 거야. 홧김에 우리를 죽이겠지. 이제 살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이야.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라나를 쓰러뜨려야 해.”


술사 요괴들은 힘을 합하여 동시에 그라나를 공격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


그라나는 새들이 돌아와 이야기하는 것을 마음의 소리로 들었다.


새들은 여덟 명의 술사 요괴들이 숲속에 모여 있다고 그녀에게 보고했다.


그 새들은 술사 요괴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상세하게 그라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라나는 거대한 사자로 변신하여 그 술사 요괴들이 숨어 있는 숲속으로 달려갔다.


그 사자의 등에 올라탄 피에르가 신검을 들고 두 눈을 부릅떴다.


사자를 본 술사 요괴들은 순식간에 하이에나로 변신하여 날카로운 이빨들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 사자는 하이에나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앞발로 때리면서 제거해 나갔다.


그 사자에게 물리거나 발로 공격을 받아 숨이 끊어진 술사 요괴들은 반짝이는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용맹스러운 그 사자의 공격으로 여덟 마리의 술사 요괴들 중에서 여섯 명이 사라지고 두 마리가 남았다.


그 두 마리 술사 요괴들은 술법으로 몸을 합체했다.


그러곤 거대한 구렁이로 변신했다.


그 구렁이는 단숨에 사자의 몸을 휘감았다.


구렁이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 사자는 잠시 당황했다.


그 틈을 이용하여 그 구렁이는 사자의 몸으로 휘감아서 질식시키려고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그 사자는 술법으로 작은 고슴토치로 변신했다.


그라나가 온몸에 바늘처럼 날카로운 침들을 세운 고슴도치로 변신하자, 그 구렁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튕겨 나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라나는 온몸에 고슴도치의 바늘들이 박혀 요동치는 구렁이를 지켜보다가, 그 바늘들을 삽시간에 불기둥으로 만들어버렸다.


검은 재가 되어가며 몸을 뒤틀며 괴롭게 용트림하는 구렁이를, 피에르가 달려가 신검으로 세 토막을 냈다.


신검으로 베임을 당한 그 구렁이는 작은 입자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애썼다. 벌써 네가 다 처리했구나! 술사 요괴들을.”

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씻어냈다.


“응! 등급이 나보다 낮은 술사 요괴들이라 나를 이길 수는 없어.”


“이번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게 된 걸 알게 되면, 혈공주가 몹시 분노할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지. 아마도 혈공주가 직접 이곳으로 오거나, 아니면 내가 판타지아 월드로 들어가게 되면 즉시 쫓아와서 나를 죽이려고 덤빌 거야. 안 봐도 뻔해.”

그녀가 야무지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뛰어난 수하들이나 술사 요괴들을 보내도 안 되니까, 혈공주가 이곳으로 누군가를 보내는 일은 한동안 없겠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라나가 그를 보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주 튼튼한 보호막을 겹겹이 다시 쳐서 혈공주가 구멍을 내지 못하도록 해봐.”

그가 그녀에게 부탁했다.


“알았어! 꽃가루를 많이 먹었으니까, 보호막의 위력은 더욱 강하고 튼튼해질 거야. 이제는 아무도 그 보호막을 통과해서 인간 세상으로 나올 수 없을 거야.”

그녀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환한 빛이 발산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의 말대로 보호막이 튼튼하게 유지된다면 당분간 큰 걱정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단기 여행이라도 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나와 추억들을 만들어 작은 행복을 서로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마음을 품고 오래도록 그녀와 살게 된다면 얼마나 즐겁고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단기 여행이라도 떠날까?”

그가 그라나에게 물었다.


“느닷없이 무슨 단기 여행을 가자는 거야?”


“그냥! 며칠 동안은 혈공주가 보내는 흡혈 요괴들이 이곳으로 오질 못하잖아. 그러니까.”


“그동안 여유를 부리면서 놀자는 거야?”


“응! 세월이 빨라! 금방 한 주가 지나가고, 한 달도 더 빨리 갈 거야.”


“난 도서관에서 책들을 쌓아놓고 읽는 게 제일 즐거운데. 신기하고 새로운 지식들이 너무 많거든.”


“가겠다는 거야? 아니면 안 가겠다는 건지, 정확히 말해. 네가 원치 않으면 나도 단기 여행을 안 갈 거야.”

그녀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그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뭐 그렇게 가고 싶은 여행이라면, 내가 따라가야지. 나 없으면 네가 얼마나 심심하겠니. 안 그래?”

그라나가 미소를 입가에 잔뜩 머금었다.


“알았어. 나중에 딴소리 없기다. 네가 분명히 나랑 단기 여행 가자고 허락한 거야.”


“그 대신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몇 권 가지고 가자. 기차 타고 가면서 달달한 커피도 마시고 좋은 책을 읽으면 난 너무 좋을 것 같아. 감동적인 책을 읽으면 몸이 힐링되는 것 같거든.”


“그래도 꽃가루 한 병을 갖고 가야 될 걸?”


“당연하지. 내 생명줄이나 같은 건데. 아! 그리고 해몽이도 데리고 가자.”


“그래. 해몽이도 우리가 없으면 심심해서 못 견딜 거야. 인간 세상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들은 해몽을 데리고 삼박사일로 일정을 잡아 기차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고 기차를 타고 가다가 마음이 끌리는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그런 단기 여행을 정해놓고 막상 실행에 옮기면서, 그는 알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이 샘솟는 걸 느꼈다.


그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라나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그런 것 같았다.


“여행길에 나서니까, 난 마음이 자꾸 설렌다.”

그가 그라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원래 여행이 그런 매력이 있어. 나도 혼자 인간 세상에 나와서 한 일이 두 가지야. 하나는 독서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거였어. 그것도 일종의 여행이지.”


“너랑 같이 가서 그런 것 같아. 마치 연인처럼 단둘이 가는 거니까.”

그가 그라나의 눈치를 살폈다.


“왜 단둘이야? 해몽까지 치면 셋이지. 그리고 우린 애인은 아니잖아! 난 요정이고 넌 인간인데, 그게 말이 되냐? 그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아주 친한 친구랑 여행을 떠나도 나름 설렘이 있는 거야.”


“맞다! 절친이랑 떠나는 여행이지. 그래! 친한 친구랑 여행을 가도 추억이 생기고 가슴이 설렐 수도 있는 거니까.”

그가 여행 가방을 끌면서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


기차는 가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매끄럽게 앞으로 질주해나갔다.


그들은 마주 보고 앉아있었지만,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어!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야.”

그가 환한 얼굴로 그라나를 바라봤다.


그녀도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신기하다는 듯 연실 바라보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해몽은 아예 창문밖에 시선을 묶고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흰 눈송이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판타지아 월드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진풍경이 연출되자 그라나와 해몽은 입을 벌린 채 쏟아지는 눈송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은 온종일 쏟아질 것 같은 눈송이들을 보다가 대전역에서 하차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면서, 추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인적이 드문 공터로 이동해서 그들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덩이들을 굴리고 굴려서 커다란 공처럼 되자, 그들은 피에르가 만든 둥그런 눈덩이 위에 해몽이 만든 작은 눈덩이를 올려놓았다.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이용해서 그는 작은 눈덩어리 전면에 눈과 코와 입을 만들어 주었다.


해몽이 쓰고 있던 빨간 모자를 눈사람의 머리에 씌워놓자 그럴듯하게 보였다.


조금 큰 나뭇가지로는 눈사람의 양쪽 팔을 만들어 꽂았다.


그라나가 장난삼아 그 눈사람에게 술법을 걸었다.


그 눈사람은 진짜 눈과 코와 입이 생기고 팔과 다리도 만들어졌다.


그 눈사람은 말도 하면서 돌아다녔다.


“야아! 그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사람 괴물을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가 그녀에게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괜찮아! 눈사람 장난감인줄 알거야. 눈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말을 하겠어?”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괜히 동영상이라도 찍히면 우리들의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거든.”


“알았어. 눈사람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할게.”


“조금만 더 있다가 해요.”

해몽이 말렸다.


“왜?”


“지금 눈사람이랑 놀고 있어요. 눈싸움도 하고.”


“그래? 그럼 한 시간 정도만 놀아. 알았지?”

그녀가 해몽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라나 요정님!”

해몽이 흰 치열을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그라나는 해몽이 눈사람과 떠들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옆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만 보였다.


마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옆모습과도 흡사했다.


“나를 낳으신 엄마는 어떤 분이실까. 아빠도 너무 궁금하다. 지난날 나는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난 기억이 없어. 눈을 감아도 생각이 안 나. 아무것도...”

그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많은 과거의 기억들보다도 그냥 가족사진처럼 엄마와 아빠의 얼굴만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 기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될 거야.”

그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눈송이들을 향하여 시선을 돌린 채, 그 자리에 돌기둥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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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42화 하늘로 떠오른 신검 +1 24.06.25 7 1 12쪽
41 제41화 그라나의 화살 +2 24.06.23 22 1 12쪽
40 제40화 킹데이빗 24.06.21 19 0 12쪽
39 제39화 아름다운 찻집 24.06.21 15 0 12쪽
38 제38화 봉인된 보호막 앞에 서다 +2 24.06.19 24 1 12쪽
37 제37화 녹색 불길 +2 24.06.18 20 0 12쪽
36 제36화 붉은 가죽 옷을 입은 자 24.06.17 13 0 13쪽
35 제35화 꽃을 먹는 괴물 24.06.16 10 0 13쪽
34 제34화 용고래의 피 24.06.16 9 0 13쪽
33 제33화 마왕 쉐튼 24.06.12 10 0 13쪽
32 제32화 궁금증 24.06.10 19 0 13쪽
31 제31화 새 이름 24.06.07 12 0 13쪽
30 제30화 보물 창고의 문 24.06.06 13 0 12쪽
29 제29화 대승리 24.06.05 13 0 13쪽
28 제28화 바벨론 궁전의 왕 24.06.03 13 0 13쪽
27 제27화 새로운 전략 24.06.02 14 0 12쪽
26 제26화 두 마리의 표범 24.06.01 12 0 13쪽
25 제25화 바벨론 궁전의 군사 24.06.01 13 0 12쪽
24 제24화 숲의 미로 24.05.31 12 0 11쪽
23 제23화 엄청나게 큰 창 24.05.30 12 0 12쪽
22 제22화 역모 24.05.30 10 0 13쪽
» 제21화 눈사람 24.05.28 12 0 12쪽
20 제20화 마음의 소리 24.05.28 9 0 12쪽
19 제19화 그라나의 위기 24.05.25 11 0 13쪽
18 제18화 구멍이 생긴 보호막 24.05.24 11 1 13쪽
17 제17화 외출 24.05.24 11 1 12쪽
16 제16화 마성 궁전 24.05.23 11 1 13쪽
15 제15화 꽃가루 24.05.23 12 1 12쪽
14 제14화 동굴 속의 해몽 24.05.21 11 1 18쪽
13 제13화 미끼 전략 24.05.21 1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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