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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곤 사가 - 은색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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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버터바
작품등록일 :
2023.05.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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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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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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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 신성 아크사 제국(8) (엘람 vs 아세라 황비)

DUMMY

자유도시 에드란, 성주의 집무실.


에드란의 성주 제드 로우는 초췌한 몰골로 책상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최근 들어 폭주하는 업무량 탓도 있었지만,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워서 잠을 못 잔 것이 지금 피로의 주원인이었다.


똑똑.


"성주님. 엘람 님이 보내신 도마뱀.... 으악! 발코 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발코?"


성주가 문을 열자 발코가 도도한 자세로 날아 들어왔다. 뒤로 눈에 시퍼런 멍이 든 경비병이 보였지만, 제드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그냥 문을 닫았다.


"그래, 레이디. 엘람 경의 서신을 가져온 모양이군요. 꽤 먼 거리였을 텐데, 서둘러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크사 제국에서 이곳 에드란까지 오기 위해서는 스발바르 해협을 건너 회색 산맥을 넘어야 했다. 엘람의 서신이 긴급한 것을 알았기에 최선을 다해 날아온 발코였다.


푸흥.


발코는 '레이디'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는지 콧김을 내뿜고는 엘람의 서신을 그의 손에 올려놨다.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던지 종이가 꼬깃꼬깃해졌지만, 글을 읽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발코는 피곤했는지 서신을 전달하자마자 의자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흐음. 어째 갑자기 교류회라는 이상한 행사를 만들어 초청한다 했더니."


제드는 펜을 쥐고 종이에 딱 한 문장을 적었다.


[아크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엘람 경에게 전권을 위임합니다.]


아크사와 동맹 관계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성황과 황비가 사이타륵 가문이고 그곳이 라딘 라르곤 5세의 암살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걸 안 이상 적대국이 되는 것도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


제드는 미안한 표정으로 도로롱 소리를 내며 깊이 잠든 발코를 깨웠다.


"레이디. 피곤하겠지만, 회신을 좀 부탁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급한 일이라 좀 더 쉬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발코는 얼마 자지도 못했지만, 기지개를 쭉 켜고는 제드의 서신을 받아 들었다.


푸흥.


발코가 막 창문으로 빠져나갔을 때, 다시 경비병이 문을 두드렸다.


"성주님. 아드아낫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아드아낫? 어서 모시게."


곧 문이 열리고 지친 표정의 엘프가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행낭에서 통신구를 꺼내 제드에게 건넸다.


"음. 굳이 통신구를 보낼 정도면 심각한 일인가 보군요."


"......."


엘프는 입을 꾹 다물고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의아한 생각이 든 제드는 얼른 통신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커넥트 - Connect]


성공적으로 연결되었음을 알리는 파란 불빛이 깜빡이더니 아드아낫 엘프의 장로 프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드 성주. 오랜만이네요.]


"예, 장로님. 잘 지내셨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통신구 너머로 프레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제드 성주.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요?"


[델써큘로. 그대의 조부가 에피르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


이모르 성의 중앙홀. 새하얀 대리석 바닥 위에 생명의 신 에피르의 가르침이 고대어로 쓰여있었다. 좌우로 거대한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주위로 여러 성인과 천사들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면의 열세 개의 계단 위에 화려한 왕좌가 두 개 있었고 왼쪽에는 황제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황비가 앉아 클레이 일행을 맞이했다.


클레이 일행이 계단 아래까지 다가오자 황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 인사를 건넸다.


"파드 용사님, 그리고 일행분들을 에피르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황제가 가만히 있는데, 황비가 나서는 것은 외교적으로나 황제에게나 모두 큰 결례였다. 그러나 늘 그래왔던 것인지 황비의 언행에 대해 그 누구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황제는 하루 만에 다시 만난 클레이 일행이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은은한 미소만 띤 채 황좌에 앉아 있었다.


엘람이 한 걸음 앞에 나와서는 왼쪽 가슴에 주먹을 가져다 댔다.


"안녕하십니까! 초대해주신 덕분에 이런 훌륭한 황궁을 볼 수 있게 되었군요. 하루밖에 보지 못했지만, 수도 이모르는 정말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곳이더군요."


황비가 흐뭇한 미소로 엘람의 칭찬에 화답했다. 그러나 이어진 엘람의 말에 황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는 엘람 라 큘, 그리고 왼쪽부터 클레이, 용사 파드 로우, 그리고 치유하는 신의 대리자 샤먼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제 폐하."


엘람은 '황제 폐하'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어 말했고, 클레이 일행은 몸을 살짝 틀어서 황제를 향해 예를 표했다.


안티누스 황제는 엘람의 의도를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말로만 듣던 용사님 일행을 만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이쪽이 영광입니다. 일어서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다리가 조금 불편해 그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별말씀을요. 이렇게 환대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죠. 아름다우신 황비마마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엘람은 그제야 황비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황비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삼키고 있었다.


'쥐방울만한 녀석이 날 능멸해?'


황제와 황비가 있을 때, 황제에게 먼저 예를 올리는 것이 당연했지만 황비는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볼 때 황제는 그저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유약하고 쓸모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먼저 인사를 건넸음에도 푸른 눈의 청년은 그녀를 무시하고 황제에게 먼저 예를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비의 동생이자 중앙 성기사단 서열 1위인 옥타 티아스는 걱정이 앞섰다.


'누님이 화가 나셨군. 제발 참으셔야 할 텐데.'


누구보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알던 옥타였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람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황제를 향해 물었다.


"성황께서 초대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오늘 함께 하시진 않나 보네요?"


"미리 말씀을 못 드렸군요. 성황 폐하께서 머무는 성이 거리가 좀 있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연로하신 그분께서 이리로 오시는 것이 좀 불편할 것 같지 뭡니까. 그래서 아크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아크사 성 구경도 하실 겸 교류회의 장소를 그곳으로 잡았습니다."


엘람이 환하게 웃었다.


"와! 안 그래도 일정이 끝나면 시간을 내서 아크사 성 근처로 관광을 갈까 했었는데. 잘됐네요."


엘람이 슬쩍 황비를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화사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이 독사의 그것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본 게임은 그쪽에서 시작하는 거라 이거지? 우리가 아크사 성에 있을 때 황제가 죽고, 성황이 우릴 잡는 그런 그림인 건가?'


의미 없는 인사치레가 몇 마디 더 오가는 중 황비가 드레스를 양손으로 살짝 틀어쥐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자, 인사는 이 정도로 하시고 자리를 옮기실까요? 약소하지만 다과를 준비했어요. 아크사의 중진들이 옆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가셔요."


여전히 황제의 의중을 묻지 않는 황비였다.


황비는 성큼성큼 걸어 홀 한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로 빈틈없이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그녀는 클레이 일행이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불쑥 안으로 들어갔다. 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지 '황비마마를 뵙습니다.'라는 합창이 상당히 크게 흘러나왔다.


에드워드 대령이 황제를 부축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려는데, 엘람이 그를 살짝 불러세웠다.


"대령님. 황제 폐하께 편하신 대로 하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예, 엘람 감독님."


남들이 보면, 몸이 불편한 황제가 자신들 때문에 무리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소리 같았지만, 그 말을 전해 들은 황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람이 걸음을 늦춰 클레이와 샤먼 사이에서 보폭을 맞췄다.


"샤먼 님. 준비하세요."


"뭘?"


"그냥 제가 말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마법은 일단 쓰지 마시고요."


"알겠어."


샤먼은 테이블 위에 놓인 오색찬란한 쿠키와 캔디에 이미 정신이 빼앗겨 있었다.


"클레이. 저쪽 상황은?"


"새벽에 안단트한테 연락받았어. 이미 샌아크사에 자리 잡았대."


샌아크사는 성황이 기거하는 '아크사 성'이 있는 곳이었다. 아크사의 행정적 수도는 이모르였지만, 종교의 힘이 강한 아크사였기에 샌아크사가 훨씬 더 크고 번성했다.


"오케이. 그럼 우리도 쇼를 시작해야지."


엘람이 손을 비비며 막 문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파드가 그를 불렀다.


"엘람 경.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용사니까 용사답게 하면 돼. 용사가 안 할 것 같은 건 하지 말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엘람이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는 팔에 차고 있는 팔찌를 흔들어 보였다.


그것은 사일런트 마법진이 새겨진 것으로 아크사로 출발하기 전 엘람이 드워프들을 괴롭혀서 만들어 낸 아티펙트였다.


"예상했던 대로 지금 우리 대화를 엿들으려고 아크사 사제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거든? 혹시 모르니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그냥 '아, 내가 나서야 하겠구나!'하는 때가 되면 나서면 된다고."


"아니, 그러면 용사가 안 할 것은 하지 말라고 했던 말씀은...."


"지금 네가 하는 그 표정. 그거 하지 말라고. 멍하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표정 말이야."


파드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 얼굴을 매만졌다. 모르긴 몰라도 엘람의 말처럼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인정하는 파드였다.


*


샌아크사. 아크사의 제 2수도라고 할 수도 있는 곳으로 실제 수도 이모르보다 면적이나 인구수, 그리고 경제적인 상황까지도 훨씬 앞서 있었다.


샌아크사는 성황의 성이 있는 곳이다 보니 신성한 에피르의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켰다. 그중 하나가 어둠의 시간에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밤 10시가 지나면 가게들은 다 문을 닫고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데엥 데엥 데엥.


통금 해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집집마다 창문이 열리고, 불이 켜졌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어두컴컴했지만, 사람들은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개장수가 방으로 들어서자 안단트가 그에게 의자를 집어 던졌다.


"대답하면 들어오라고요!"


"이크! 옷 다 입고 있는 걸 아니까 그냥 들어왔습니다. 이래 봬도 제 귀가 상당히 밝은 편이거든요. 옆 방에서도 안단트 님이 몇 시에 잠이 드셨는지, 물은 몇 컵이나 마셨는지 다 알 수 있다고요. 밤 중에 화장실은 몇 번 갔는.... 아, 이건 취소."


콰직.


안단트의 주먹이 개장수의 턱에 작렬했다.


"화장실 가는 횟수를 댁이 왜 세냐고! 휴.... 클레이 님은 날 왜 하필 이런 늑대랑 같이 보내신 걸까."


안단트는 인상은 찌푸리며 거울 앞에 섰다.


안단트와 개장수는 클레이 일행이 아크사로 출발하기 며칠 전, 먼저 떠났고 그들이 이모르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이곳에서 며칠간 지내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단장님께서는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분명 저와 안단트 님을 파트너로 선정한 이유가 있으실 거예요. 덕분에 저는 안단트 님처럼 아름다운 분과 즐거운 여행.... 으앗!"


개장수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자 빗이 날아와 벽에 꽂혔다.


"나가서 기다려요! 여자는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이니까."


"네. 내려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아참. 도시 유력자 중 적합자를 찾았습니다. 아리우노스 로세툼 백작이라는 사람인데 50대 중반입니다. 배가 많이 나왔더군요. 머리숱도 거의 없고. 아무튼, 샌아크사에서 꽤 권력있는 집안 가주입니다. 여자라면 사죽을 못 쓰고요."


"알겠어요."


"로세툼 가문 자체가 성황의 어두운 쪽 일들을 맡아서 해결해주는 곳이더군요. 그렇게 해서 가문의 재력이나 권력이 유지되고요. 거기다가...."


"아오! 나가 있으라고요!"


"넵."


부리나케 뛰어나오는 개장수의 뒤로 컵이며 꽃병이며 마구 날아들었다.


*


샤먼은 정신없이 쿠키와 캔디를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황실에서 먹는 디저트라 그런지 혀에서 살살 녹았다.


황비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런 샤먼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다기보다는 비웃는 것에 가까웠다.


"치유하는 신의 대리자 님?"


황비가 일부러 큰 소리를 내 샤먼을 불렀다.


"예? 그냥 샤먼이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너무 길잖아요, 치유하는 신의 대리자는."


"어머, 그래도 될까요?"


"네. 그러셔도 됩니다."


샤먼은 황비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에서 끊임없이 과자를 입에 쑤셔 넣었다. 어느새, 아크사의 귀족들은 황비와 샤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샤먼 님. 저는 궁금해요."


"뭐가요?"


샤먼이 멀뚱거리게 쳐다보자, 황비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릴 때 엘람이 짓던 미소와 비슷했다.


"아니. 치유하는 신의 대리자라고 하잖아요. 저는 꼭 보고 싶거든요. 사실 저도 치유계 마법을 하긴 하는데, 영 신통치가 않아요. 여기 귀족들도 솔직히 샤먼 님처럼 어린 여자애가 뭘 할 수 있겠냐며 실망하는 눈치랍니다."


샤먼이 치유마법을 쓰는 모습은 엘람이 제작한 '파드 전기'에 담겨있지만, 귀족 중에는 아직 그것을 보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황비 자신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황비는 자신보다 어리고, 생기 넘치는 여자아이가 '신의 대리자'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샤먼이 '뭐라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황비를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엘람이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 치유하는 신의 대리자 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저도 이분께 어깨너머로 치유술과 의술을 좀 배웠는데 그런 저조차도 동네에 가면 큰 병원을 차릴 수 있을 정도죠."


첫 대면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엘람이 대화에 끼어들자 황비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엘람을 발가벗겨서 거꾸로 매달아 매질하는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엘람 역시 지지 않고 생글생글 웃었다.


"엘람 감독님. 영화인지 뭔지를 만드시다 보니까 현실감이 좀 약해지신 거 아닐까요? 그대에게서는 신성력이나 치유력이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걸요."


귀족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남들 앞에서 황비가 독설을 내뱉기 시작하면, 반드시 누구 하나가 실려 나갔으니까.


"하하하. 황비마마. 세상은 넓답니다. 본인이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 건 좀 안타깝네요. 원래 격차가 많이 나는 상대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숨기기도 쉬운 법이거든요."


황비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더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말로만 떠드시는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면, 한 번 보여주실래요? 격차가 많이 나는 제가 알아볼 수 있게 말이에요."


엘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모여있는 귀족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멀찍이 에드워드 대령과 함께 있는 황제에게서 그의 시선이 멈췄다.


"좋습니다. 보여드릴게요."


엘람이 천천히 안티누스 황제 앞으로 걸어갔다. 황제의 정면에 선 엘람은 입 모양으로 '내키는 대로 하세요.'라고 말했다.


황제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자, 엘람은 무대 위에 올라온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돌아섰다.


"여기, 황제 폐하께서 지병이 있으시군요."


"아하하하. 엘람 감독님. 그건 황제 폐하께서 이미 말씀해주신 거잖아요."


황비 역시 과장된 몸짓으로 웃어 보였다.


"그렇죠. 아마, 아크사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황제 폐하가 그 병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


"고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맞나요?"


황비가 가만히 있자 엘람은 황제의 무릎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에드워드가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파직.


황제의 몸이 움찔거렸다. 엘람은 황제를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제가 고쳤습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시간을 주시면 완전히 고칠 수 있죠."


황비가 엘람을 쏘아봤다.


"황제 폐하께 그게 무슨 불경한 짓이죠?"


"불경이라니요. 황제 폐하. 실례지만 자리에서 한 번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다과회장에 정적이 흐르고, 황제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엘람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 보였다.


병약한 황제, 쇠약해서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던 황제만 보던 귀족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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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189화 - 신성 아크사 제국(23) (궁지에 몰린 성황) 24.02.13 14 0 15쪽
189 188화 - 신성 아크사 제국(22) (성황을 자극하라) 24.02.10 1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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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86화 - 신성 아크사 제국(20) (마물 토벌대의 복귀) 24.02.07 2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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