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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딜 님의 서재입니다.

널 만지고 싶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핫딜
그림/삽화
양지은
작품등록일 :
2021.07.26 14:23
최근연재일 :
2021.10.02 10:2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28,434
추천수 :
1,404
글자수 :
320,930

작성
21.07.27 10:05
조회
911
추천
76
글자
12쪽

02화_병도 없이 죽음이라니

스킨십이 금지된 파라다이스라니!




DUMMY

<2화>


병도 없이 죽음이라니


* * * * *



“충분한 삶을 누렸으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과연 그 사람들이 온전히 삶을 누리고 간다고 생각해요? 생로병사가 바로 인간의 삶이에요. 늙음도 없고 병도 없이 죽음이라니. 잔인해요.”


“사람들이 늙고 병드는 것이 더 잔인한 거 아닌가요? 육체가 시들어서 사그라지는 것이야말로 잔인한 것 같아요.”


둘이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이 드신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휠체어에 탄 분이었다.


파라다이스에서 90대이신 분은 누구나 휠체어를 탔다. 80대는 휠체어를 타지 않았지만 90대가 되면 누구나 휠체어를 탔다. 휠체어는 그 사람의 모든 생체기능에 맞춰져 있었다.


파라다이스에서 사람들은 아프지 않았다. 슈퍼컴퓨터가 인간의 유전자를 파악해서 결함을 모두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도 아프지 않았고 병에 걸리지 않았다. 파라다이스에서의 삶이었다.


파라다이스 바깥에서의 사람들은 태어나면 병이 들고 아프고, 나이 들고 늙었다. 안전구역 바깥의 사람들은 인생을 운명에 맡겼다.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불행과 고통은 운명이기 때문에 비껴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라다이스 사람들은 고통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만약 불행한 일이 있으면 뇌파가 흔들려서 차크가 바로 알아냈다. 마음에 괴로움이 찾아올 때면 바로 차크가 달려와 의자를 내밀었다. 그 의자에 앉으면 사람들은 순식간에 마음에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차크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뇌파를 체크했다.


사람들은 슬프거나 불안하거나 분노가 일면 뇌파가 흔들렸고 특정 호르몬이 생성됐다. 차크는 사람 후각의 300배 능력과 뇌파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차크는 테디베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크는 힘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몸에 자신의 몸을 댔다. 사람들은 차크가 오면 알았다. 자신의 마음이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차크를 온전히 믿었다. 어려서부터 차크가 오면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차크는 조건반사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차크를 보기만 해도 행운이 온다고 믿을 정도였다. 차크가 가까이 오면 몸을 대고 싶어 했다.


차크는 사람들 눈에 그리 많이 띄지 않았다. 파라다이스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다. 불행하지 않으니 차크가 나타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경하는 꼰대와 같은 국장에게 스트레스가 있었다. 그런데 지동일과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짜증지수가 올라갔다.


지 형사는 자기의 의견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물론 경하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토론과 토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사안이 있을 경우,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은 토론과 토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지 형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화가 치밀었다. 이야기를 진행할 경우, 뭔가 이야기가 풀린다는 느낌이 있어야 맞았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 형사는 이상하게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지 형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이끄는 감도 없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이어간다는 느낌은 경하를 더욱 짜증나게 했다. 지 형사와의 대화는 일상적인 감정과 대화의 흐름이 아니었다. 파라다이스에서의 일상적인 대화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좁힐 수 없는 의견이 있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괴로움을 피해서 이야기를 중단했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이야기의 중단을 선택했다. 사람들 사이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파라다이스에서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파라다이스는 사람들의 개인적 의견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개인적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했고 그 의견은 존중받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개인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은 개인의 의견이란 것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분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조정해줄 수 있는 의견을 누군가에게 구하게 되었는데 그 방법이 사람들을 평화롭게 했다. 사람들은 평화로운 방법을 선택했다.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이는 바로 슈퍼컴퓨터인 파라였다.


파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며 가장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존재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 역시 가장 현명한 지혜로움은 슈퍼컴퓨터인 파라에게 있었다.


분쟁이 있거나 괴로움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파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파라는 어김없이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려줬다. 사람들은 파라의 판단에 무릎을 치곤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집이라는 것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참 이상해. 옛날에는 맨날 싸웠던 것도 같은데. 이젠 싸우는 것이 뭔지를 모르겠어.”


“그렇죠? 난 어쩐지 뭔가 계속 서운해서 울었던 것 같은데 울음이 없어졌어요.”


“화났던 거, 슬펐던 거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런 감정이 뭔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우린 그래서 행복한 거죠. 늘 행복해서 좋아요.”


사람들은 슬픔과 분노와 서글픔의 감정을 잊은 지 오래 되었다.


사람들에게 있는 문학작품 역시 아름다운 동화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의 괴로움이 담겨진 소설 종류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이러한 악서는 역사 속에서만 소개될 뿐이었다.


파라다이스에서 사람들의 인생은 아름다운 동화만 존재했다.


동화 속에서 나쁜 괴물들이 나올 경우,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괴물이 나오는 책들은 모두 출판이 금지됐다. 지금은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사랑 이야기만 책으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악이 제거된 선만이 존재하는 파라다이스에서 모두 행복한 삶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지 형사는 경하의 신경을 많이 건드렸다. 경하는 자신의 가슴에서 뭔가가 끓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났다.


그러자 어느새 차코가 곁에 와 있었다. 차코가 경하를 살짝 건드렸다. 경하는 차코가 곁에 오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날 뻔했다.


분노란 감정은 뭔지 기억도 없었다. 두려움도 잊고 지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닥친 어떤 불안을 위로해줄 차코가 있었던 것이었다.


경하는 자신을 위로해줄 차코가 가까이 오자 안도의 숨이 쉬어지면서 마음이 푹신한 솜사탕 구름 위에 올라탄 기분이 되었다. 차코가 자신을 건드린 순간부터였다.


차코는 의자를 펼치고 있었다. 이제 차코의 품에서 한숨 자면 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지 형사는 경하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차코에게서 경고음이 울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지 형사는 뛰었다. 경하도 얼결에 뛰었다.


둘은 어느 순간, 파라다이스 경계에 와 있었다. 파라다이스에서 바깥 세상에 닿으려면 어떤 공간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나 지 형사가 어떻게 한 것인지 어느 순간 그들은 이미 바깥 세상에 와 있었다. 엑스트라 구역이었다.


비밀통로가 있다고 하더니 그 비밀통로를 통과한 것이 틀림없었다.


바깥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너무 추웠다. 그러나 파라다이스 사람들이 입는 옷은 기온에 따라 옷이 기능을 달리하고 있어서 금세 괜찮아졌다.


어느 새 둘은 겨울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 정신이에요? 여긴 겨울이에요. 겨울의 추위는 사람들의 심장박동에 위협을 줘요.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어요.”


“하하, 심장마비라고요? 아직 우리는 20대예요. 이따위 추위로 심장마비라니 어림없어요.”


그런데 경하는 겨울의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자신이 항상 그림 속에서 보던 눈 오는 풍경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얀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부신 눈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깥의 눈을 맞으면 방사능에 오염되어서 병에 걸릴 거라고 했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경하는 급하니까 반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호라, 말씀도 놓으시고. 반말은 이 팀장이 먼저 시작했으니 날 탓하지는 마."


지 형사는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반말을 넙죽 받아 반말로 응수했다.


"맘대로 해."


경하는 이까짓 말투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보통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하하, 반말 좋아. 접수야. 그런데 병에 걸린다고? 이 눈을 맞는다고 병에? 말도 안 돼. 너, 눈을 맞아서 병에 걸린 사람을 본 적이 있어?”


“당연히 없지. 아무도 눈을 안 맞잖아.”


파라다이스에서는 눈 오는 풍경을 만나고 싶으면 눈을 주문하면 되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눈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스키든 썰매든 무엇이든 가능할 만큼의 눈이 오는 풍경은 사전 예약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의 눈이라니, 파라다이스 사람들에겐 기겁할 일이었다.


지 형사는 경하의 손을 잡고 눈이 쌓여 있는 나무 사이로 갔다. 그리고 나무를 흔들었다. 나무 위의 쌓여있던 눈이 경하의 머리로 쏟아졌다.


“아악, 너 뭐하는 거야?”


경하는 너무 놀라 눈이 쏟아지는 나무 아래를 피했다.


“눈을 맞는 것이 뭐가 어때서? 아무렇지 않은데?”


지 형사는 눈을 만나 즐거운 듯이 눈 위를 뒹굴 기세였다. 그러더니 눈을 뭉치고 있었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오염덩어리를 손으로 뭉치다니.’


“손이 타들어 가면 어쩌려고? 손을 어서 털어.”


경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불행한 사고를 목격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 형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다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를 것이었다. 표정을 보면 알 것 같았다.


“아악,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경하는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없었다. 이미 눈송이는 자신에게로 날아들었다. 경하는 너무 놀라 피할 수도 없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면 뛰어나다고 자타 인정한 편이었는데 너무 놀라 피할 수 없었다. 눈송이가 정통으로 경하의 등에 맞았다. 경하가 놀라 몸을 뒤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받아야지. 피하는 건 폼이 아니지. 다시 던질 테니 받아.”


“받으라고? 미친 거 아냐? 이런 미친 경우가 어디 있어?”


경하가 놀라 손사레를 하며 던지지 말라고 소리질렀다. 소용없었다.


“받아!”


지 형사는 기어코 눈송이를 재차 던졌다. 제대로 미친 행동이었다. 파라다이스에서 오염된 눈송이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은 추방될 터였다.


경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공포를 넘어서 암담한 좌절이 경하를 눈물 나게 했다.


파라다이스에서는 눈물을 흘릴 일이 없었다. 슬픔이 없기 때문이었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불행은 누구도 겪지 않았다. 눈물이 나기 전에 이미 차크가 와서 위로를 주었다.


지금은 안전구역의 바깥세상 엑스트라였다.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었다.


“미쳤어?”


경하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지 형사는 다시 눈을 던지려다 경하가 눈물을 보이자 뭉치던 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경하의 곁으로 왔다.


“괜찮아? 이 눈 괜찮은 거야. 안 죽어. 봐, 나 괜찮잖아?”


경하는 너무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털어내는데 손에 눈이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 서늘했다.


이제 경하는 제대로 오염된 것이었다. 눈물이 났다. 가슴은 뭔지 모르게 시큰거렸다. 경하는 눈물을 그냥 두었다. 이미 어떤 큰 병이 침범했을 것이었다.


이곳은 안전구역 바깥의 세상 엑스트라였다.


“아, 병도 없이 죽음이라니!”




날 그냥 둘 수 없겠니?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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