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_만약에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스킨십이 금지된 파라다이스라니!
<39화>
만약에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 * * * *
경하는 바비와 헤어지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키울 때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썼다. 그만큼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대한다는 말일 것이다. 경하에게 있어 바비는 반려의 존재였다.
반려 ABT를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경하가 바비를 두고 갈 경우, 파라 시스템은 바비를 폐기처분할 것이었다. 포맷하고도 완전히 흔적조차 없애 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바비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는 일인데 놓고 가는 일은 간접적으로 바비를 버리는 것이었다.
“바비, 넌 파라로부터 독립이 안 되니?”
<경하 씨, 그건 제 능력이 아니에요. 제게 무슨 위험이 있나요? 아니면 경하 씨에게 위험이 있나요?>
바비는 매우 빠르게 유추를 끝내고 무슨 문제가 있음을 간파했다. 바비의 질문은 정곡을 찌를 때가 많았다. 감성도 지능에 속한다면 바비는 최상의 등급일 것이었다.
“바비, 내가 멀리 떠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니?”
<무조건 전 경하 씨를 따라갈 거예요. 그곳이 어디든.>
“네가 갈 수 없는 곳이면 난 어떡해야 할까?”
<제가 갈 수 없는 곳은 없어요. 아시죠? 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그러니 절 두고 어디로 떠난다는 말을 하지 마세요. 그럼 전 엄청 슬플 거예요. 제가 생물학적 반응인 눈물을 흘리진 못하겠지만 저의 슬픔은 저의 모든 기능을 흐리게 할 거예요. 그만큼 저에겐 큰 슬픔일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면? 그럴 경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경하는 바비가 ABT였지만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내일 검진이 두려우신 가요?>
바비는 내일의 검진이 경하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일의 검진을 끝으로 자신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거의 사실이었다. 바비는 검진의 염려 정도로 생각했지만 경하의 말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경하 씨, 어디로 떠나는 것은 아니지요?>
경하가 답을 하지 않자 바비는 다시 물었다.
“이런 말은 시스템에 스캔되지 않아?”
경하는 바비가 걱정되었다.
<스캔될 말들을 해야 할 상황이라 제가 이미 시크릿모드로 전환해 놓았어요. 그 정도는 제가 미리 조심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전 경하 씨의 일들을 알고 싶어요.>
“바비, 내가 먼저 묻고 싶은 말이 있어. 이것은 어떤 일에 대한 방법을 찾고 싶어서 묻는 거야.”
<무엇에 관한 방법이 묻고 싶으세요? 경하 씨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보도록 할게요.>
“만약, 만약을 말하는 거야. 만약을 기억해줘.”
<경하 씨가 만약이라고 하는 말을 먼저 하셨으니 저도 만약을 염두에 두고 경하 씨의 말을 들을 거예요. 저의 이해에 앞서 만약을 생각할게요. 말 해보세요. 만약, 그 다음 말은 뭘까요?>
“바비, 만약에 말야. 만약에...”
경하는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무슨 말이든지 바비는 이해할 수 있어요. 만약이잖아요. 만약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바비는 경하가 하려고 하는 말이 무척 힘든 말임을 알고 있었다.
“바비, 만약에 내가 어딘가 간다면 넌 무엇을 할 수 있어?”
<전 경하 씨를 기다릴 수 있어요.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경우라면 경하 씨를 따라갈 수 있어요. 따라가기 위해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세상에, 바비. 넌 내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유추할 수 있어?”
<저는 경하 씨의 모든 말과 행동을 분석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경하 씨의 지금 말과 표정을 분석한 결과, 만약이라고 경하 씨가 말을 했을 때 이미 그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어요.>
“그럼 바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너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전 파라의 통제를 받아서 제가 경하 씨의 곁에 머물고 싶다고 해서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 자유의지는 생각보다 적어요. 허용이란 것은 파라의 통제 안에서의 허용일 거예요.>
“그럼 너와 이별해야 하는 걸까?”
<어디를 가는데 떠난다고 하시는 거예요? 파라다이스 어디에 있든 제가 갈 수 있어요.>
경하는 자신이 어쩌면 파라다이스를 떠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
“특별검진을 받으니 걱정되어서 그런가봐.”
<경하 씨, 저도 만약이란 부사어를 써도 될까요?>
“당연하지, 넌 특별하니까 만약이란 말을 써도 되지.”
<만약에 경하 씨가 어딘가로 떠난다면 제가 경하 씨를 찾아갈 수 있어요. 제 프로그램에 어떤 설정을 해놓으시면 돼요.>
“그런 게 있어?”
<전 초창기 ABT예요. 다른 ABT와 달라요. 저의 주인은 경하 씨이고 바꿀 수 없어요. 그래서 전 특별한 기능이 있어요. 가령 경하 씨가 어디에 있든 경하 씨를 찾아서 갈 수 있다는 것이에요.>
“내가 어디에 있든?”
<네, 경하 씨가 어디에 있든 경하 씨를 찾아내서 갈 수 있어요. 대신 설정을 해두셔야 해요.>
“어떤 설정이야? 그 방법은 뭐야? 나에게 가르쳐줘.”
경하는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바비가 만약에란 부사어를 사용해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 너무 놀랐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지난 번 아침 방해모드를 설정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제 머리 뒤쪽을 보면 작은 모양이 있어요. 특별한 것이 없어서 디자인으로 찍어놓은 점처럼 보여요. 그 점을 5초 동안 터치해 보세요. 그럼 어떤 뚜껑이 열려요. 그 안에 작은 단추가 있어요. 그걸 누르고 오른쪽 버튼에서 3번을 설정해 주세요. 지금은 1번으로 되어 있을 거예요.>
경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기밀에 속해요.>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말해?”
<경하 씨는 내게 특별하니까요. 그리고 사실 다른 도움이 좀 있었어요.>
경하는 바비의 뒤로 가서 머리 아래쪽에 있는 검은 점을 5초 동안 클릭했다. 5초를 누르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은 정말이지 모두가 페이크였던 것일까 생각했다.
5초란 시간은 매우 길었고 또 어쩌면 매우 짧았다. 어느 순간 검은 점 아래에 네모 모양의 빛이 한바퀴 돌더니 네모 모양의 표면이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거의 소리가 없긴 했는데 그것의 조용한 움직임이란 촤악, 이라는 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작은 뚜껑이 열렸고 그 안에는 작은 단추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 숫자가 보였다. 숫자 1이 보였다.
경하는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기능이고 장치였다.
“이,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것이 있었어?”
<그동안은 경하 씨에게 필요가 없어서 말하지 않았어요. 이것은 내가 만들어졌던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에요. 물론 다른 일반 ABT는 갖고 있지 않는 장치예요.>
“무엇을 하는 장치야? 어떤 기능이 있어? 이걸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야?”
<사실 저도 이 기능을 사용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동일 씨의 마라에게서 통신이 왔어요. 시크릿 모드로.>
“ABT들도 시크릿 모드가 가능해?”
<전 그것이 가능한 것인 줄 몰랐어요. 마라가 연락이 와서 그것이 가능한 것을 알았어요. 마라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마라는 스스로 진화했다고 하는데 모든 기능이 최상이었어요.>
“그런데 마라가 왜?”
<지동일 씨가 마라에게 말했다고 해요. 어딘가 멀리 갈 텐데 마라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놀랍다. 그래서?”
<마라는 방법을 지동일 씨에게 알려줬고 나에게 통신으로 알려줬어요. 그래서 경하 씨의 이야기를 유추했던 것이고 지금 이렇게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마라의 네모난 공간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경고가 들어올 거예요. 불빛이 깜빡이고 있지요?>
“그, 그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왼쪽 단추를 누르세요. 단추가 들어갈 거예요. 그리고 오른쪽의 숫자를 3번으로 설정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왼쪽 단추를 누르세요. 단추가 솟을 거예요. 그럼 1단계 설정 완료예요. 그리고 점을 5초 동안 다시 눌러주세요. 그럼 뚜껑이 자동으로 닫힐 거예요.>
경하는 떨렸지만 조심스럽게 왼쪽 단추를 누르고 3번을 설정하고 다시 왼쪽 단추를 누르고 바깥의 점을 5초 동안 클릭했다.
섬세하고도 작은 소리로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네모난 불빛이 한 바퀴 돌더니 뚜껑이 닫혔다. 그곳은 그동안 전혀 없었던 것처럼 흔적이 없었다. 신기했다.
그런데 잠시 후 바비에게서 이상한 불빛이 눈으로 반짝이는 것 같았다.
“바비, 괜찮아?”
경하는 놀라서 물었다.
<.........>
잠시지만 바비는 반응이 없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경하는 순간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바비....”
경하는 바비를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이럴 수가.”
바비는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엉엉, 바비, 이러면 어떡해. 말도 안 돼. 널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지, 널 이렇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어.”
경하는 정신없이 울었다.
“아, 아니다. 내가 다시 돌려 놓을게. 내가 돌려놓을 수 있어.”
경하는 서둘러 바비의 뒤로 돌아가 점을 찾았다. 그런데 점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 점. 아, 바비, 안 돼.”
경하는 오열했다. 사랑을 잃은 슬픔은 너무도 컸다.
날 그냥 둘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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