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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861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5.31 18:10
조회
582
추천
9
글자
11쪽

진천 - 35화

DUMMY

그러던 와중 잠시 자리를 비웠던 이율이 진호에게 다가왔다.


“김 대협, 공교롭게 조금 어수선한 상황에 모시게 되었구려. 저희 연합군의 부장께 인사를 드리러 갑시다. 대협의 이야기를 했더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시오.”


“민망하게 뭔 인사까지... 뭐, 알겠소. 갑시다.”


이율을 따라 성곽 아래쪽의 임시 막사로 들어간 진호는 그 안에서 상황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사내를 보고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억! 저자는!’


진호가 가까스로 비명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하는 사이 그가 밝게 웃으며 다가와 두손을 덥썩 잡았다.


“오! 이율이 말한 고려의 고수시군요. 정말 잘 와주셨습니다. 저희 진영에 큰힘이 되어 주실겁니다! 저는 섬서성 연합군의 부장이자 과거 무당파의 도사였던 공진이라고 합니다! 하하!”


‘엉? 제자였던?’


무당파의 1대 제자 공진.


진호가 아직 어릴 적 다녀온 여행길에 불쑥 나타나 심법의 비법을 알려주고 갔던 그 공진이었다.


그는 태천심법의 영향인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보다 조금 더 늙었을 뿐, 여전히 부드럽고 호쾌한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정학 이라고 합니다. 미천한 수준이나마 이리 반겨주시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진호는 내심 말하면서도 혹시 자신을 알아보진 않을까 심장이 두근 거렸지만, 이미 30대가 된 진호의 얼굴에서 그때의 어린아이를 찾기란 완전히 불가능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어수선하여 어렵지만 곧 저희 연합군의 대장님께도 소개시켜 드릴 자리가 생길겁니다. 오늘은 한차례 전투를 치른지 얼마 안됐으니 숙소와 식사 방법 등을 안내 받으시면 됩니다.”


“네, 부장님. 헌데... 아까 잠깐 ‘도사였던’ 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요. 허면 지금은 무당파의 도사가 아니십니까?”


"아, 제가 그랬던가요? 이것 참, 워낙 습관이 되어놔서... 사실 제 실수로 파문을 당했지 뭡니까. 다행히 단전은 거둬가지 않으셔서 여기저기 떠돌다가 이번 전쟁 소식을 듣고 참전 했습니다. 하하!”


“아, 이거 실례했군요.”


“아닙니다. 허어? 그러고 보니 대협께서는 저희 무당파의 태천심법을 익히신듯 합니다.”


진호는 순간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아, 네. 무작정 고수를 찾아 중원을 헤매던 중 무당산의 기인에게 겨우 매달려 심법만 전수 받았습니다. 그러곤 금방 떠나셔서 그 분의 성함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간혹 산속에서 몇십년씩 수련을 하는 선배들이 많았지요. 그래도 아주 제대로 배우신걸 보니 어지간히 매달리셨나 보군요.”


진호는 의외로 쉽게 넘어간 공진을 보고 내심 안심하곤 태연히 대꾸했다.


“밥도 못 먹드시고 볼일도 못 보시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 놓았습니다.”


“크핫! 잘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리 귀한 연을 맺었으며 우리는 동문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하, 그렇군요.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갑자기 전쟁에 참전하게 되어 준비를 좀 해야겠습니다.”


“아! 그러시지요. 자, 어서.”


진호는 파문의 이유가 궁금했지만 왠지 더 캐묻다간 괜한 의심을 살 것 같아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날 밤 진호는 굉장히 열악한 임시 막사에서 20여명의 무림인들과 섞여 잠을 잤고,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된 황군의 공성에 맞서 전투를 시작했다.



***



“죽어!”


“죽어라!!”


“으아아아아!”


“밀어 붙여! 밀리지 마라! 방패병!”


3일 째.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화살비와 쇠뇌를 쳐내며 성벽으로 오르는 병사들을 베던 진호는 아무리 베어도 계속 '생겨나는' 황군의 수에 기겁을 했다.


일류고수로 위장 중이기에 검기만을 사용하고 있어 공력의 소모는 거의 없었지만, ‘진'은 있는대로 다 빠져나가 버렸다.


아무리 진호만한 상승의 강자라고 해도 수천, 수만의 생명이 꺼지며 질러대는 비명들이 3일 내내 울려 퍼지는 지옥도는 견디기 어려웠다.


성벽 위는 피와 땀, 대소변, 그리고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악취를 내뿜고 있었고, 어느새 그의 옷은 적들과 아군의 피에 절여져 원래보다 열배는 무거워져 있었다.


‘젠장! 전쟁이 이런거였나? 저놈들은 저렇게 약한데 어떻게 이짓을 매일 하는거야?’


6일째, 진호는 이제 성벽 아래에서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병사들이 이젠 경이로웠다.


개중엔 며칠전에 봤던 얼굴도 있었다. 부상을 당해 핏물이 베어 나온 붕대를 칭칭 감고서도 장창을 들고 악착같이 성벽을 기어오른다.


칼을 직접 대기도 싫을 만큼 그들의 광기에 질린 진호는 어느순간 부터 검기의 방출 만으로 적들을 쳐냈다.


그렇게 진호가 동쪽 성벽에서 적과 맞선지 8일 째.


용병으로 참전한 고려인이 홀로 4천의 적을 베었다는 소식이 북쪽 성채까지 퍼졌다.


이성조는 진호를 백인대장에 올리곤 자신이 있는 북쪽 성채로 이동시켰다.


진호의 활약은 북쪽 성채로 이동한 후 더욱 도드라졌다.


자신에게 배정된 병사들이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병사들과 화살, 쇠뇌에 우왕좌왕 하며 맥없이 죽어 나가자 발끈하기도 했다.


위장신분도 잠시 잊고 흥분한 탓에 일급고수를 상회하는 양의 검기로 넓은 범위에서 날아오는 적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젠장! 날아오는 건 내가 막아줄 테니 사다리나 맡아!!”


쿠과아아아앙!


“끄으으윽!”


커다란 바위 몇 덩이가 날아오자 진호의 부대가 있던 성벽이 단번에 허물어졌고, 진호는 바로 이어서 다음 투석기가 준비되는 것을 보곤 힘이 쫙 빠졌다.


‘안돼. 저건 검기로 못 막는다.’


강기가 아닌 검기 만으로 저 거대한 바위를 모두 부술 수는 없다.


‘이런 빌어먹을!!’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겨우 4일 남짓 됐다고 자신의 대원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그렇다고 여기서 강기를 썼다간 무림맹 놈들까지 적으로 돌린다. 빠지자.’


생각을 정리한 진호는 가장 위험한 대원들 몇을 들춰업고 소리쳤다.


“전원! 성벽 좌측으로 달려!”


파바바박!


진호가 대원들의 선두와 후미를 오가며 화살과 쇠뇌살을 검기로 쳐내며 달려나가는 사이, 그들이 있던 자리는 투석기의 바위에 의해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후- 저 투석기부터 어떻게 해야... 젠장, 동쪽 벽이 한가한 편이었구만!”


개활지인 북쪽과 달리, 동쪽 성벽은 산길로 이어져 있었기에 투석기는 커녕 쇠뇌도 간간히 날아올 만큼 여유가 있었다.


진호가 예상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자 이성조가 상황이 더 어려운 북쪽성벽으로 이동시킨 것 이었다.


무너져 내린 성벽틈으로 어느새 황군이 몰려들었다.


진호는 곧장 아래로 몸을 날려 무너진 잔해의 틈을 막아섰다.


“모두 내려와! 이곳이라면 당장 활과 바위 걱정은 없다!”


파바바바박!


진호와 맹의 무사들은 아직 멀쩡한 양측의 성벽을 벽 삼아 좁은 틈에 화력을 집중시켜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막아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수많은 생의 불꽃이 타오르고 꺼져간 성벽은, 이젠 하얀 달빛을 받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집에 가고싶다...”


차갑게 식은 성벽에 걸터 앉은 진호가 반쯤 찬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그때.


자그락.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부장 공진과 이성조가 각자 술을 두병씩 들고 서 있었다.


“엇...”


“반갑소. 얼굴은 자주 봤는데 인사는 처음이군. 나 연합군 총대장 이성조라 하오.”


이성조가 술 한병을 내밀자 공진이 옆에서 거들었다.


“종남파의 장문인이시기도 합니다. 대협의 전공을 듣고 한번 뵙고 싶다 하여 모셨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따로 적은 없으나... 고려에서 온 김정학 이라고 합니다.”


“고려인임에도 중원의 일에 이리 큰 힘이 되어주고 계시니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이성조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진호는 곤란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엇,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참전의 조건으로 하오문의 무사에게 황금을 약속 받았습니다. 협의로 하는 일이 아니니 저를 부끄럽게 하지 마십시오.”


이성조가 피식 웃으며 술을 한모금 들이켰다.


“알고 있소. 그래서 오늘 그대에게 해줄 말이 있어 왔소이다.”


“말씀하시지요.”


“광동의 지원군이 오는 길에 복병들이 많아 예정보다 늦어질 듯 하오. 그대는 전황을 보다가 황군에서 눈에 띄는 고수가 보이거든 지체없이 떠나시오.”


“네??”


진호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웃거리고는 물었다.


“아니... 지원군이 늦는데 더 싸우는 것이 아니라 떠나라니. 그게 무슨...”


“그대가 중원인이 아닌 고려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오. 부끄럽지만 나는 얼마 전 황궁의 고수에게 처참히 패하고도 목숨을 부지했소. 그만한 고수라면 우리의 승산은... 중원의 싸움에 목숨을 버릴 이유가 없음이요.”


“!!!”


‘뭐? 황궁에 이성조가 감당하지 못하는 고수가 있다고? 그럼 현경... 이건 당장 군사에게 알려야한다!’


진호는 목이타서 급하게 술병을 한모금 들이키고 물었다.


“그,그런... 그럼 모두 후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잖습니까.”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하오. 하오문주가 오면 승산이 없지는 않소.”


‘뭐? 멍청한 놈! 현경급 고수를 상대로 무슨 자신감이야?’


이성조는 실제로 화경의 고수 셋이 모이면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진호는 신마에 근접한 구학영의 무위를 수도 없이 경험했기에 그게 얼마나 턱도 없는 생각인지 알고 있었다.


신마도 아닌, 그저 신마에 근접했을 뿐인 구학영 하나를 상대로 같은 천마인 진호와 범요, 그리고 절정의 끝자락에 있는 장적소가 모두 달려들어도 구학영이 가진 힘의 반도 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경과 화경의 격차는 그 단위가 다르다고 할 만큼 컸다.


“그렇군요. 저를 생각해주셔서 그런... 좋습니다. 그래도 저희 대원들 만큼은 최대한 지켜 보다가 행동하겠습니다.”


“좋소. 고려로 가서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시오. 훗날 다시 만납시다.”


“...”


이성조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자 공진도 따라 돌아서며 진호를 흘깃 바라봤다.


그 눈빛은 분명 그를 붙잡고 싶은 눈빛이었지만, 그도 앞으로의 전황을 뻔히 알았기에 차마 죽어달라는 말은 못해 그대로 성벽을 내려갔다.


홀로 남은 진호는 다시 달빛을 바라보며 술병을 들이켰다.


'현경이라... 미친. 이 대로면 무림맹 전력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군사가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황궁 놈들은 그만한 전력이 있는데 왜 여기서 시간을 끌며 병력만 축내고 있었지? 빌어먹을. 이럴 때 사마교가 있었으면.'


진호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한 고민을 하는 동안 시간은 무정하게 흘렀고, 지루한 성벽 위의 전투로 또 3일이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사흘째 되는날의 오후.


이성조를 몰아 붙였던 황군 장수 둘이 다시 전장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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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 - 35화 22.05.31 583 9 11쪽
35 진천 - 34화 22.05.31 601 8 10쪽
34 진천 - 33화 22.05.30 633 8 14쪽
33 진천 - 32화 22.05.27 648 8 13쪽
32 진천 - 31화 22.05.27 692 7 11쪽
31 진천 - 30화 22.05.26 722 9 16쪽
30 진천 - 29화 22.05.25 714 8 13쪽
29 진천 - 28화 22.05.25 723 9 13쪽
28 진천 - 27화 22.05.24 755 11 17쪽
27 진천 - 26화 22.05.24 715 8 13쪽
26 진천 - 25화 22.05.22 729 10 16쪽
25 24화 22.05.22 735 8 11쪽
24 진천 - 23화 22.05.21 729 12 17쪽
23 진천 - 22화 22.05.20 770 9 15쪽
22 진천 - 21 +1 22.05.20 871 12 14쪽
21 진천 - 20화 22.05.19 821 13 18쪽
20 진천 - 19화 22.05.19 821 11 10쪽
19 진천 - 18화 22.05.18 825 11 13쪽
18 진천 - 17화 22.05.18 860 11 14쪽
17 진천 - 16화 22.05.17 890 12 13쪽
16 진천 - 15화 22.05.17 891 13 13쪽
15 진천 - 14화 22.05.16 910 13 14쪽
14 진천 - 13화 22.05.16 924 12 14쪽
13 진천 - 12화 22.05.15 999 15 12쪽
12 진천 - 11화 22.05.15 1,009 14 11쪽
11 진천 - 10화 22.05.14 1,023 12 11쪽
10 진천 - 9화 22.05.14 1,082 13 13쪽
9 진천 - 8화 22.05.13 1,132 13 15쪽
8 진천 - 7화 22.05.13 1,225 13 14쪽
7 진천 - 6화 22.05.12 1,253 1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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