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885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5.21 14:00
조회
729
추천
12
글자
17쪽

진천 - 23화

DUMMY

진천은 거처로 돌아가는 대신 상단 뒤쪽 야산의 넓은 공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곳은 상단의 무사들이 수련을 할 때 쓰는 공간이었는데, 왠만한 대형문파 연무장의 두배쯤 되는 넓이의 공터를 큰 나무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세상과는 단절 된 듯한 이질감을 주는 고요속에서 진천은 꽤 오랜만의 명상에 빠져들었다.


스스스스스


새파란 달빛이 공터를 밝게 비췄고, 스산한 바람에 나무들은 가벼운 마찰음을 내며 이리저리 풍성한 머리채를 흔들었다.


‘내게 그들을 심판 할 자격이 있을까. 관아에 넘겨야 하나?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내 손으로 직접 벌을 내리고 싶다.’


진천은 그 순간 진호가 3살 때 가족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 가족들을 굶기던 아버지...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세상 앞에 그렇게 당당했던 괴팍한 분이었지... 매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는데. 그 말을 하도 듣다 보니 사실 내가 숨겨진 귀족 집안의 아들은 아닐까 생각 한 적도 있었어.’


진천의 단전으로 옅은 바람이 빨려 들어갔다.


‘그땐 도저히 무슨 말 인지 몰랐는데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는 내 힘을 알았던 걸까. 하긴, 아버지도 나이에 비해 젊게보이긴 했지. 그럼 아버지도 엄청난 고수였나. 근데 왜 가족이 매일 굶는데 아무것도 안했을까.’


후우우우웅.


옅었던 바람이 어느새 작은 돌풍으로 변해갔다.


‘알게 뭐야. 아직 안돌아 가셨다면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굶어죽어가는 가족을 두고 떠난 양반 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 나이 50이 넘어서 처음으로 아버지 말 한번 들어보자.’


서서히 눈을 뜬 진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낮은 중얼거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진천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한층 초연해진 얼굴로 자신의 단전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그토록 제자리 걸음이던 진천의 단전은 신기하게도 자연진기의 수련 이후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더니, 이제는 웬만한 절정고수 수준 만큼 커져 있었다.


“부교주님이 웬만하면 자연진기는 쓰지 말라고 하셨으니...”


진천이 조용히 흑룡검을 뽑아 그간 배운 육합검법과 외공무술의 초식들을 느릿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천이 열심히 땀을 쏟으며 지금껏 배운 수많은 초식들을 펼치는 사이,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지나 뜨거운 태양이 중천에 걸렸을 때 였다.


후우우욱!


“천마신교의 지존이시여.”


장광이 경쾌한 경공으로 진호의 1장 앞에 내려앉아 부복했다.


“찾았나?”


“네, 교주님. 모두 무공을 익힌 무사 여섯입니다. 하서객잔의 점소이가 팔이 부러진 것에 앙심을 품고 알고 지내던 낭인패에 의뢰해 빼앗은 재물을 나누기로 했답니다.”


“데려 왔는가?”


“저희가 신병을 확보하기 전에 이미 화산파에서 선수를 쳐 놈들을 구금하고 있습니다. 점소이는 아직 객잔에 있으며 감시조를 붙여 놓았습니다.”


“화산파?”


“네. 섬서는 화산파의 관리지역이기 때문에 화산파에서 그들을 처벌 할 듯 합니다.”


“관아는 뭐하고?”


“대형 문파가 있는 이런 지역의 경우 영향력이 큰 문파가 치안과 죄인의 처벌 등을 담당하기에... 명문문파의 제자와 일반 포졸들의 능력은 큰 차이가 나서 그렇습니다.”


“흐. 황제가 무림맹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구만.”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 쉰 진천이 입을 열었다.


“화산파로 와라.”


“교, 교주님. 허나...”


“거기서 보자.”


후악!


진천의 신형이 기이하게 이동하며 엄청난 풍압을 일으켰고, 공터의 온갖 잡초와 나뭇잎이 장광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며 휘몰아 쳤다.


“교주님!”


***


엄청난 속도로 성내를 내달린 진천이 멈춘 곳은 화산파가 아닌 하서객잔의 입구.


한 쪽 팔을 흰 천으로 둘둘 말아 어깨에 걸친 점소이는 진천의 얼굴을 보자 사색이 되어 엉덩방아를 찧었고, 진천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서서히 입을 열었다.


“나와라.”


"...?"


점소이는 '나와라'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 했지만, 곧 진천의 등 뒤에 시커먼 복장의 사내가 나타난 걸 보고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었다.


“히이익!!”


진천이 흑룡검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사지를 자를 것이다. 죽지않게 곧바로 혈도를 짚어 지혈하고 눈알을 뽑아라.”


“존명.”


“히...히이익! 나으리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저는 그저 재물만 얻고자 했는데 그, 그 놈들이...!”


턱, 터터턱.


“...??”


순간,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본 점소이는 곧 땅에 떨어진 자신의 양쪽 팔과 다리를 보곤 눈알이 뒤집어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 끄아아아아아아악!!”


진천은 점소이의 비명은 들리지도 않는 듯 평온한 얼굴로 흑룡검을 집어넣고 곧바로 객잔 밖으로 몸을 날렸다.


후욱.


그리고 곧장 점소이에게 달려든 흑의인이 몇 군데의 혈도를 짚자, 사지에서 뿜어지던 피가 멈추며 점소이의 호흡이 안정을 찾고 검은 눈동자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헉... 헉... 사, 살려...살, 살...끄륵...”


점소이의 애원에 들려온 흑의인의 대답.


“살려 줄 것이다. 잠시만 참아라.”


뿌아아아악-


“끄...으윽- 으으아아아아!!”


눈 깜짝할 새에 점소이의 두 눈을 뽑은 흑의 무사는 옆 탁자의 마른천에 제 손의 피를 슥 닦고는 순식간에 경공을 펼쳐 객잔을 떠났다.


***


화산파는 깎아지른 기암절벽으로 유명한 화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산세가 얼마나 험했는지 일반인은 4부 능선 이상은 감히 오를 엄두도 내지 못했고, 3급 무사라 해도 큰마음 먹고 모든 공력과 체력을 쓴다는 각오로 올라야 할 만큼 화산은 거칠고, 험하고, 높은 곳이었다.


진천은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있는 그런 화산을 통채로 끌어 당기는 듯한 엄청난 속도로 뛰어 오르고 있었다.


‘내가 잔인해 진것인가? 아니... 누구라도 이런 악인들을 잔인하게 벌하고 싶을 것이다. 그럴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일 뿐.’


진천이 순식간에 4부 능선을 지나자 점점 흙과 풀은 사라지고 차갑고 거친 바위 절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내게 힘이 있다는 것이 실감은 안 난다. 이는 내게 힘이 있어서가 아니야. 나무꾼으로 살 때도 불의를 참지는 않았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늘어났을 뿐. 내가 악(惡)해진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진천은 나무꾼 시절에도 불의를 보고 지나치는 성격은 아니었다.


산속에서 심마니 노인에게 강도짓을 하던 낭인패들에게 달려가 도끼를 마구 휘두르며 노인을 구해준 것을 비롯해, 소매치기를 잡거나 빈촌의 주민들에게 곡식으로 고리대를 놓던 포목점 주인과 한바탕 드잡이 질을 하기도 했다.


‘하긴, 그 때는 사소한 시비에 목숨을 걸 싸움도 아니었지만...’


훅!


"??"


오늘따라 과거에 관한 회상을 많이 하던 진천의 전방으로 갑작스레 나타난 시커먼 신형.


“교주님!”


“왜 아직 여기 있나? 먼저 올라가 있지않고?”


“교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래, 가자.”


“교주님! 부디 잠시만 속하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뭔가.”


장광이 재빨리 납작 엎드렸다.


“신 천마신교 연비대 1조장 장광, 목숨을 바쳐 지존께 직언을 올립니다. 화산파는 구파일방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파 최고의 무투파. 무력은 물론 무림맹에 가하는 영향력 까지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입니다. 그런 화산파의 행사에 천마신교의 지존께서 개입하신다면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 할 수가 없습니다. 놈들이 혹 교주님께 해를 가하려 한다면...”


“...”


"교주님. 현재 저희 연비대 섬서분타의 전력이 투입된다고 해도 그들의 1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부디 걸음을 고려해주십시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장광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진천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싸우면 못이기니 가지 마라?”


“속하 주제 넘는 충언을 모두 올렸으니 죽여 주십시오.”


“... 장광.”


“신 장광!”


“감히 천마신교 지존의 무에 한치의 의심이라도 가진 죄를 지었으니 당장 목을 쳐야 하나... 걱정마라. 본좌의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으니.”


“... 교주님.”


“군사의 당부가 있어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으려 함이다. 이 죄는 후에 따로 묻겠다.”


후욱!


그대로 장광을 지나친 진천은 눈부신 태양으로 향하듯 화산의 기암절벽을 뛰어 올랐다.


***


화산파에 도착해 사정을 설명한 진천은 곧 화산파의 거대한 마당과 연무장을 지나 가장 안쪽으로 늘어진 독채 중 하나로 안내를 받았다.


독채의 평상을 지난 진천이 방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커다란 탁자 너머로 새하얀 수염을 곱게 다듬은, 70세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 짙은 차향을 한껏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시오 공자. 본도는 화산파의 장로 소호연 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떠돌이 낭인 이덕 이라고 합니다. 귀한 신분이 아니니 호칭은 편하게 해주십시오.”


“허허, 보아하니 꽤나 귀한 분 같소만 어찌 자신을 낮추시오.”


“아버님께서 말년에 운이 트이셔서 얻은 재물의 덕을 조금 볼 뿐, 원래는 나무꾼을 하던 천한 몸입니다.”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군요.”


“그저 사실대로 말씀 드렸을 뿐입니다.”


“허허, 좋습니다. 자, 어서 앉으시지요.”


잠시 조용한 정적이 흘렀고, 먼저 말을 꺼낸것은 진천이었다.


“저, 그들의 처벌은 어떻게 되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으으음... 당연히 참수하여 저자에 효수를 하는 것이 맞으나...”


진천이 그가 흐린 말끝이 신경 쓰이는지 미간을 찡그렸다.


“이 대협에게 모든 것을 말해드릴 수 없음에 사죄하오. 우리 화산파는 그들을 벌할 수 없을 것 같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안하오. 본도가 실로 부끄럽구려.”


진천이 눈앞의 찻잔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괜찮습니다. 안그래도 제가 직접 벌하지 못해 아쉽던 참이었습니다.”


“뭐요?”


이번엔 소호연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대협, 그것은 본도... 아니, 본문파가 막을 것이오. 그들의 신병을 인도하러 온 자들이 떠날 때 까지 그들을 해 할 수는 없소이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다 굶어 죽기 직전이던 모녀를 무참하게 때려 죽였습니다. 단지 돈 몇푼을 빼앗기 위해서요.”


“...”


“그런 이들을 그냥 보내신다니 이해가 어렵긴 하지만... 뭔가 사정이 있으시겠지요. 허나 제가 그들을 벌하는 것은 장로님의 판단과는 별개인 저의 자유입니다.”


“대협의 마음 모르지 않소. 허나 본도가 이렇게 고개 숙여 부탁하오. 저들이 화산파의 영역에서 변을 당한다면 그 여파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오.”


“죄송합니다. 그것이 어떤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참하게 죽어간 그 모녀의 한을 덮어 둘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이대협.”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말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 입니다.”


이때, 진천이 그간 습관처럼 감추던 공력을 한순간에 쏟아내며 소호연을 노려보자 그는 경악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덜컹!!!


“저, 절정고수!! 당신 정체가 무엇이오!!”


“떠돌이 낭인일 뿐입니다.”


“공력을 거두시오! 그대가 무림인이라면 본도가 사정을 설명하겠소!”


“무슨 사정인들 그들의 죄를 덮을 수는 없습니다.”


진천이 흑룡검을 향해 서서히 손을 움직이자, 소호연도 공력을 끌어 올리며 내공을 실어 외쳤다.


“그대의 무위가 뛰어난 것은 알겠으나 여기는 대 화산파! 본도는 고사하고 본 문파의 제자들도 감당하기 어려움을 아시오!”


“봅시다.”


“이, 이익...!”


“장로님!”


소호연의 노호성 때문인지, 낯선 공력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채의 밖으로 수십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곧 다부진 체격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20대 청년이 별채의 문을 열고 들어와 다급한 눈으로 소호연과 진천을 바라봤다.


“소장로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 분은...”


“자, 장문인!!”


꿈틀.


‘장문인? 상당히 젊은데 화경을 이뤘구나. 중원에 9명 밖에 안 된다더니... 역시 구파일방이라 이거군.’


진천이 화산파의 장문인 이건을 관찰하는 짧은 찰나, 이건의 압박섞인 시선을 받은 소호연이 곤란한 표정으로 이건의 물음에 답했다.


“장문인, 어제 낭인들에게 살해 당한 모녀가 쥐고 있던 은자가 이 시주님께 받은것 이라고 합니다.”


“...허어!”


짧은 설명이었지만 그걸로도 상황을 다 알겠다는 듯 눈을 감은 이건이 고개를 천장을 향해 치켜 올렸다.


잠시 숨 막히는 정적이 장내를 휘감았고, 곧 이건이 침음성을 흘리며 괴로운 표정으로 진천을 바라봤다.


“대협."


"..."


"저들은 황궁에서 본 문파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첩자들이오."


"그런데요."


"무림맹과 황실의 대치가 길어지며 지루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이런 짓을 했다고 하더이다. 나도 당장이라도 저 놈들을 직접 쳐 죽이고 싶소. 허나 이곳에서 저들의 목을 친다면 이는 곧 황군이 이 섬서를 침략할 빌미를 주게 되는 것. 그렇게 전쟁이 일어나면 그 모녀처럼 비참하게 죽는 이들이 수십만에 달하게 되오.”


잠시 말 끝을 흐린 이건이 비장한 표정으로 진천을 응시했다.


“나는 수만의 무고한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오.”


“무공을 익힌 군부의 무사가 그런 짓을 했다면 더욱이 처벌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허면 이곳 섬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들을 벌하는 것은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들을 쫓을 생각이오? 어디서 그들에게 화가 미치든 마찬가지요. 황궁은 우리의 보복이라 여길테니.”


“비참하게 죽은 그 모녀의 목숨도 무고한 것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만의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소.”


“목숨의 경중은 하늘이 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정의는 대협에게 있기에 반박할 수 없소. 허나 이미 잃은 목숨의 슬픔을 수만, 수십만 명에게 똑같이 느끼게 하는 일을 막는 것이 나의 정의. 본도는 기필코 그대가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오.”


진천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눌렀다.


누구의 말도 틀리지 않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진천이 물었다.


“자녀가 있는지는 모르나 혹 그들의 손에 맞아 죽은 것이 장문인의 자식 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물론. 내 혀를 짓이기고 내 손목을 스스로 자르는 한이 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오. 그런 절망을 수십만명에게 느끼게 할 수 없소.”


“장문인은 진정한 대인이시군요. 만약 제 아들이 당했다면 저는... 이성을 잃고 황군과 싸우다 죽었을 것입니다.”


“대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화산파의 장문인의 책임일 뿐이오. 본도는 이 지역의 양민과 화산파의 제자들 또한 자식처럼 여길 책임이 있기에.”


이건의 말이 끝난 듯 하자 진천은 여전히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그에게 포권을 올렸다.


“그토록 비장한 각오로 전쟁을 막으려 하신다니... 허면 저도 제 각오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철컥.


스릉 -


자신이 어느정도 진천을 설득했다고 생각하던 이건은 뽑혀나오는 진천의 흑룡검을 보곤 경악성을 내질렀다.


“후회할 선택을 하지 마시오! 이대로 고집을 부린다면 그대의 목숨도 위험하오!”


“수만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제 목숨이야 하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고민말고 제 목을 치십시오.”


“이익!! 그 모자를 지킬 기회가 있었다면 나도 내 목숨을 바쳐서 지켰을 것! 수만, 수십만의 무고한 생명이 걸린 문제를 그리 극단적으로 곡해하지 마시오!!”


“...”


이건의 그 외침이 진천을 잠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저 자의 말이 더 옳다.'


이건의 말에서 분노의 정당성을 잃은 진천이 큰 한숨을 내쉬곤 흑룡검을 검집으로 집어 넣었다.


“후... 알겠습니다. 부아가 치밀어 객기를 부려 봤습니다만 역시 제 분노를 풀겠다고 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이런 일로 화산파와 검을 섞는다면 저 또한 살인귀와 다름이 없겠습니다.”


“대협.”


진천이 자신의 뜻을 이해해준게 고마웠는지 이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글썽일 듯 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진천은 별다른 말 없이 살짝 고개를 숙이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뜨거운 태양이 높이 떠있는 시간이었지만, 워낙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차가운 공기가 진천의 뼈 속 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그들을 죽이고 싶지만...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다. 이러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게 맞나?’


짙은 운무가 낀 장원을 지나자 다시 보인 널찍한 연무장.


‘아니.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놈들을 벌하는거야. 흐! 아버지 말 좀 들어 볼랬더니 쉽지가 않구만. 하고 싶은건 다 하고 살라니... 아버지. 웬만한 힘 가지고는 되도 않을 소리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진천 - 35화 22.05.31 583 9 11쪽
35 진천 - 34화 22.05.31 601 8 10쪽
34 진천 - 33화 22.05.30 634 8 14쪽
33 진천 - 32화 22.05.27 649 8 13쪽
32 진천 - 31화 22.05.27 693 7 11쪽
31 진천 - 30화 22.05.26 723 9 16쪽
30 진천 - 29화 22.05.25 715 8 13쪽
29 진천 - 28화 22.05.25 724 9 13쪽
28 진천 - 27화 22.05.24 755 11 17쪽
27 진천 - 26화 22.05.24 715 8 13쪽
26 진천 - 25화 22.05.22 729 10 16쪽
25 24화 22.05.22 736 8 11쪽
» 진천 - 23화 22.05.21 730 12 17쪽
23 진천 - 22화 22.05.20 771 9 15쪽
22 진천 - 21 +1 22.05.20 871 12 14쪽
21 진천 - 20화 22.05.19 822 13 18쪽
20 진천 - 19화 22.05.19 822 11 10쪽
19 진천 - 18화 22.05.18 826 11 13쪽
18 진천 - 17화 22.05.18 861 11 14쪽
17 진천 - 16화 22.05.17 891 12 13쪽
16 진천 - 15화 22.05.17 892 13 13쪽
15 진천 - 14화 22.05.16 910 13 14쪽
14 진천 - 13화 22.05.16 925 12 14쪽
13 진천 - 12화 22.05.15 1,000 15 12쪽
12 진천 - 11화 22.05.15 1,010 14 11쪽
11 진천 - 10화 22.05.14 1,023 12 11쪽
10 진천 - 9화 22.05.14 1,083 13 13쪽
9 진천 - 8화 22.05.13 1,133 13 15쪽
8 진천 - 7화 22.05.13 1,226 13 14쪽
7 진천 - 6화 22.05.12 1,254 15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