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 0화 (프롤로그)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수만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이 되어 잔잔히 흐르는 시산혈해(尸山血海)가 된 황궁.
시체만이 가득한 황제전엔 단 둘 만이 살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중 하나, 자신이 자른 황제의 머리를 바라보던 흑의인이 느긋한 걸음으로 용상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맹주, 본좌가 네놈들을 찢어 죽이겠다고 친절히 통보까지 해줬는데... 이해가 안 되는군. 왜 도망을 안 가고?"
그에 무림맹주 천소청은 원망과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흑의인을 노려봤는데, 이미 두 다리가 잘려 주저앉은 채 울혈을 토하는 것이 생을 이어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쿠학! 교주... 그대는 대체... 그런 무공은 들어 본 적도 없건, 쿨럭!"
"무공이라."
비릿하게 웃은 교주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에 시퍼런 강기를 불어 넣곤 그것을 이리지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제 한계를 몇 번이나 넘어가며 몸뚱이를 단련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구결을 달달 외고, 정교하게 짜여진 초식을 따라야만 발현됨에도 하찮은 힘 밖에 내질 못 하는... 이딴 건 고양이가 범을 흉내 내기 위해 만들어진 조잡한 것이다. 범으로 태어난 본좌에겐 필요없음이야."
"... 알 수 없는 얘길 하는군. 그대는 역시 생사경을 이루었는가."
"무공이 아니라니까. 현경이니 생사경이니... 결국 고양이들의 계급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쿨럭! 이제 무림을 가졌... 아니, 군림할 무림 자체를 몰살 시켜 놓고 대체 뭘 어쩌려는 건가."
"무림 따윈 처음부터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 너희들을 멸한건 용을 잡기 위한 초석일 뿐."
"용? 그게 무ㅅ..."
후웅- 뻐걱!!
순간, 교주가 앉은 자리에서 손목을 휘적이자 동시에 무림 맹주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기괴한 경련과 함께 피분수를 내뿜으며 시산혈해의 일부분이 됐다.
"쯧, 알아 듣지도 못할걸 자꾸 물어."
교주는 느긋이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적막이 가득한 주변을 둘러봤다.
"으으음. 일 하나 치렀구만. 이제 가볼까."
후욱!
교주의 신형이 마치 촛불이 꺼지듯 찰나에 사라지며 이제 산것이라곤 단 하나도 남지 않은 황궁.
마교의 손에 무림맹과 황궁이 전멸함으로 완전한 마도천하가 선포된 날.
이것은 그날로 부터 50년 전의 이야기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