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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펜릴 님의 서재입니다.

퓨전펑크에 드래곤으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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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펜릴
작품등록일 :
2024.05.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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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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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직업 (5)

DUMMY

21. 첫 번째 직업 (5)




그건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많았다.


일단 가장 카펠에게 가장 충격이 된 것은 직업이었다.


카펠의 영혼에 건축가 혹은 건설자라는 직업의 각인(刻印)이 새겨졌다.


이제 카펠에게 건축가라는 직업은 생계유지나 돈벌이를 위해서 임시적으로 선택한 노동수단이 아니었다.


이제 카펠에게 건축가 혹은 건설자는 초월과 절대의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수행하고 성장해야 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건 어디 으슥한 곳에 레어 같은 것 만들어서 혼자 자급자족할 생각 따위는 일찌감치 내다 버리고, 거대하고 산업화한 도시의 그림자에 숨어 자본주의의 힘을 만끽하려던 카펠이 전혀 바라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개념적이고 관념적이며 영구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 외에도 당장 직면한 문제도 있었다.


직업 각인과 동시에 어머니의 기록은 물론 왜인지 몰라도 전생 기억의 관련 분야까지 실시간으로 정리되면서 머릿속에 퍼붓고 있었다.


관련하여 발현되기 시작한 생각도 못 한 [권능]은 드래곤 하트와 영혼이 연동되며 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전적으로 드래곤을 기준으로 진행되는 중이라서, 인간으로 폴리모프 중인 카펠의 몸은 제대로 감당을 못하고 있었다.


‘망할, 이런 식으로 폴리모프가!’


두통이 얼마나 심한지 머리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 폴리모프 풀고 드래곤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본능적 울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카펠의 영혼이 환생을 거치며 쌓은 단련과 어제 이미 한번 인간 몸으로 어머니가 남기신 기록을 인스톨하면서 감당했던 경험이 없으면 견뎌내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도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창백해진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카펠의 그런 모습이 자신의 이야기에 놀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 로이드가 당황해서 얼른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까지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카펠은 여전히 고통을 참기 어려웠지만, 멋쩍게 웃는 로이드에 이를 갈며 대답했다.


“농담 아니잖아요. 세상이 알 정도로 진심 가득 담아 말씀하셨잖아요. 이러면 이미 결정된 거잖아요!”


“음? 어?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실수한 건가? 이거 민망하군, 그래. 하하.”


사납게까지 느껴지는 카펠의 말투에 멋쩍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카펠은 시선을 피하는 로이드의 등을 정말 매섭게 노려보았다.


일행 대부분은 누가 봐도 카펠이 자신의 행운에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이드가 보기 드물 정도로 기분 좋게 웃고 있었고, 나이 든 고참 몇도 비슷한 모습이라서, 카펠의 행운이 그냥 부러워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잠시 더 시간이 지나 진짜로 작업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 되었을 무렵에는 다들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카펠빼고.



*****



로이드의 팀원들이 도착한 현장에는 [기숙사 예정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팀원들은 거기서 다시 한번 출근 기록을 작성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젊은 여성 직원의 통솔을 받았다.


금속제 안전모와 선글라스 그리고 묵직한 서류철과 펜으로 무장한 그녀의 가슴에는 ‘감독관 제인’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제인은 로이드의 팀보다 먼저 온 다른 팀을 확인한 다음, 일행들을 쭉 확인하다가 카펠을 주목했다.


“이 꼬마는 뭐죠?”


“우리 팀 신참이야. 이름은 카펠. 임시 코드는 올가에게 발급받았어.”


제인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물었다.


“카펠이라, 꼬마야, 네 이름의 스펠링은 아니? 없거나 모르면 내가 만들어서 알려줄까?”


당연히 모를 거라고 깔보는 느낌에, 왠지 모를 악의도 느껴지는 그 질문에 카펠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К а ́ п п е л ь.”


눈살을 찌푸리건, 한자씩 또박또박 말한 것은 그녀가 기분 나뻐서가 아니라 아직도 두통이 심해서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카펠의 모습이 어딘지 반항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했다.


올가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이미 기분이 좀 상했던 제인은 그런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특히 스펠링 부분이 몹시 기분 나빴다.


진짜 카펠의 이름 스펠링은 아니고, 임시 코드를 발급해주던 올가가 서류에 적은 스펠링이었다.


카펠이라는 이름은 진명(眞名)인 [카툼필루스]을 변형해서 만든 거고, 그걸 진짜 문자로 적으면 진명의 힘과 의미가 담길 터였다.


그 이름을 선언하려고 했을 때 [주시자]의 반응을 생각하면 절대 절대 저얼대 직접 문자로 써도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제인이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카펠의 스펠링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직접 그런 식으로 이름을 만들면 [거짓]의 위험이 있는데, 카펠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서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진실]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력이나 법칙이 부여되지도 않은 발음 기호 수준의 문자였기 때문에, 읽을 때 평범해 보이는 이름이라는 점도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단지 카펠이 착각한 것은 그런 정보가 카펠에게 기록과 정보를 물려주신 어머니 기준에서나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로망어’라고 불리는 이 문자는 이 시대 이 세계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고전적이고 귀족적인 특별한 문자였다.


“흥, 로망어 이름을 쓰는 꼬마라. 이름과 외모로 봐서는 북방 제국 귀족 출신인가? 딱 올가가 좋아할 만한 취향이군 그래. 하지만 꼬마야 잊지 마라. 네 과거 신분에 상관없이 너는 여기서 그냥 임시 일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겠니?”


제인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카펠을 윽박질렀다.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로이드를 향해 서류철 하나를 내밀며 차갑게 말했다.


“이게 오늘 팀장님 할당량이에요. 참고로 저 꼬마는 일당 계산 대상 아닌 것 아시죠?”


“물론이지, 처음 온 신참에게 일당은 무슨.”


“그렇다고 정말 구경만 시키지 마시구요. 제대로 된 인원인지, 공사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제가 꼼꼼히 주목할 겁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잘 관리할 테니. 나 못 믿나?”


“흥, 팀장님이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줄 아세요.”


거기까지 한 제인이 다음팀에게 고개를 돌렸고, 로이드는 카펠과 팀원들을 챙겨서 살짝 자리를 벗어나 거릴를 벌리고는 서류철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카펠은 로이드가 제인이라는 감독관에게 받은 그 서류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얼핏 보기에 간략화된 설계도나 이런저런 수치들이 적혀있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한편으로 거기에 흥미를 느끼는 자신에게 새삼 기겁하고 있었다.


전생과 현생의 모든 기억과 취향을 다 살펴도 저런 것에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직업 각인이 취향에조차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했다.


‘소름 끼치네, 이거.’


아무리 절대적인 법칙에 의한 것이라도 자신의 취향이 건드려질 수 있다는 것이 절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카펠이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팀원 중 고참 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카펠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라, 꼬마야.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그리고 제인은 좀 까다로운 사람인 대신 공정한 사람이다. 한 사람 몫 제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트집 잡거나 갈구는 일은 안 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무뚝뚝한 그의 이야기에 카펠은 잠시 고민했다.


바꿔말하면 한 사람 몫 제대로 못 하면 트집 잡고 갈군다는 의미가 아닌가? 오늘 처음 나와서 언제 한 사람 몫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신참을 달래 주는 말이 맞나? 오히려 포기하고 도망치라는 말 아닌가?


하지만 팀원들 다들 그 말에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가벼운 막내 루이스마저 그랬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에 카펠은 알았다.


‘신참이고 뭐고 한 사람 몫 못하면 트집 잡히고 갈궈지는 건 너무 당연한 거라 딱히 걱정할 일도 아니라는 거지, 이거?’


아주 잠깐 조금 편하게 느꼈던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다시 실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세계에 전생의 ‘인권 감수성’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도 다행히 카펠이 한 사람 몫을 못 해서 트집 잡히거나 갈궈질 일은 없었다.


서류철을 살펴보던 로이드가 일행들에게 전체적인 건물 구조가 보이는 서류 한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길 봐라. 오늘치 우리 할당량은 여기 C-3구역의 벽면이다. 방이 6개에 공용 화장실과 공용 욕실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적은 구역이 절대 아니야. 다들 힘 좀 내자고.”


“배관은 되어 있는 겁니까?”


“그거 안 되어 있으면 할당 안 나왔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누가 미리 좀 확인해 봐.”


“네. 제가 하죠.”


“아 그리고 맥킨지. 나 대신 창문 쪽 좀 더 신경 써줘. 난 신입 좀 챙겨야 할 것 같으니.”


“네, 그러죠.”


“자 그럼 시작하자. 벽돌이랑 모르타르부터 채크 시작해.”


로이드가 몇몇 고참에게 도면 서류 일부를 나눠줬고, 팀원들은 다시 2-3명씩의 작은 팀으로 갈라져서 흩어졌다.


혼자 남은 로이드는 카펠을 보고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오늘 할 일을 설명해주지. 두 번 말하지 않게 잘 들어라. 그렇다고 못 알아들은 것을 아는척해도 안 되고.”


로이드가 새벽 출근 때의 분위기를 풍겨왔지만, 카펠은 시큰둥했다.


그냥 단기 생활비 아르바이트한다는 기분으로 나섰을 때야 착하고 얌전하고 손이 안 가는 취향에 맞는 아이인 척했지만, 이제는 그럴 생각 없었다.


카펠은 로이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설명해주시기 전에 그거 좀 줘보실래요.”


“응? 뭘?”


“그 도면이랑 서류들이요. 설계도랑 시방서 맞죠?”


“아니, 이건 그렇게까지 부를만한 물건은 아니고.”


“약식 기록이겠지만, 본질은 그거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좀 줘보세요. 보고 말할게요.”


로이드는 그런 갑작스러운 카펠의 태도 변화에 당황했다.


“본다고 알겠니? 혹시 따로 공부한 적이 있는거야?”


“따로 공부한 적 없지만, 지식은 있어요. 그러니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보게 일단 좀 줘보시라니까요.”


지나치게 무례한 데다가, 새벽부터 온종일 고생해서 유지하고 있던 연기가 다 날아가서 잘못하면 애써 쌓은 첫인상이 다 망가질 판이지만 알바 아니었다.


뜬금없는 로이드의 선언으로 무려 영혼에 건축가 직업이 각인되어 직업 경험과 위업을 쌓아야 하는 판에 첫인상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거기에 당장 확인해봐야 할 것도 있었다.


카펠이 계속 손을 내밀고 노려보자, 로이드는 결국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류철을 내밀었다.


설계도란 쉽게 말해 만들려는 건물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도면이고, 시방서는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그 외의 필요한 재료의 재질이나 품질, 치수, 시공 방법, 공법 등을 기록해둔 문서다.


설계도는 몰라도 시방서는 원래 카펠은 애초에 그런 단어도 들어본 적 없는 문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걸 펼쳐보니 내용이 너무 쉽고 편하게 이해되다 못해 이 서류가 너무 간략하다 못해 조잡하게까지 느껴져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당장 제대로 된 내용과 서식으로 수정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제엔장!’


카펠은 자신의 머릿속 지식과 영혼이 착실하게 건축가에 맞춰 진화하고 있으며, 그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납득 당해 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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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레일라 +13 24.07.02 2,109 138 18쪽
44 첫 일확천금 +16 24.07.01 2,170 137 15쪽
43 강습 (3) +10 24.06.30 2,301 129 15쪽
42 강습 (2) +15 24.06.29 2,333 142 14쪽
41 강습 (1) +5 24.06.28 2,523 121 18쪽
40 관심의 척도 (2) +17 24.06.27 2,451 152 15쪽
39 관심의 척도 (1) +15 24.06.27 2,484 160 16쪽
38 주말의 시장 나들이 +7 24.06.26 2,551 121 16쪽
37 마무리 (4) +9 24.06.25 2,626 128 17쪽
36 마무리 (3) +14 24.06.24 2,562 148 13쪽
35 마무리 (2) +10 24.06.23 2,610 146 17쪽
34 마무리 (1) +10 24.06.22 2,655 120 15쪽
33 마법과 건축 (4) +8 24.06.21 2,698 121 15쪽
32 마법과 건축 (3) +6 24.06.20 2,700 128 15쪽
31 마법과 건축 (2) +12 24.06.19 2,703 140 15쪽
30 마법과 건축 (1) +11 24.06.18 2,775 153 14쪽
29 다시 하수도 (2) +12 24.06.17 2,793 130 16쪽
28 다시 하수도 (1) +8 24.06.16 2,801 130 14쪽
27 재진입 +9 24.06.16 2,898 125 17쪽
26 비정규 계약직 (3) +17 24.06.15 2,856 131 14쪽
25 비정규 계약직 (2) +8 24.06.14 2,936 128 15쪽
24 비정규 계약직 (1) +14 24.06.14 3,008 137 14쪽
23 첫 번째 직업 (7) +12 24.06.13 3,051 13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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