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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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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57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10.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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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그리고 4 -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DUMMY

맛집 식당의 안주인은 계속 원대함을 흘끗거렸다.

“그니까, 남자친구?”


할머니는 입을 삐죽거리며 볼을 부풀렸다.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허기야, 자기 좋으면 그게 최고지. 여하튼, 내가 솜씨 부릴 테니 많이들 먹어.”


“어째 사모님이 날 안 반기는 것 같은데?”

원대함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물 한 모금으로 입술을 축였다.


“그럴 만도 하지. 소개해주신 사람이 조건은 훨씬 좋으니까.”

나주연은 그를 흘겨보았다.

“아니, 뭐. 나도 이 정도면 반듯하지 않나. 눈코입에 팔다리 다 있는데.”


“언니, 오빠 데이트하는데 저는 왜 불렀어요?”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데이트는 무슨.”

나주연이 피식 입술을 비틀었다.


“새늬가 앙상블 오디션에 합격했잖아. 축하해야지. 연이의 첫 주연 작품도 성황리에 끝났으니.”

“그게 언젠데? 일주일이나 지났어.”

“축하야 아무 때나 하면 어때? 기분 좋으면 되지.”

원대함이 맥주를 한 잔씩 따랐다.


“나도 축하해. 열심히 다니더니 결국 따냈구나.”

나주연이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쳤다.


그녀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가 풀어졌다.

원대함의 동생이니 잘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지새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직장인반에서 공연 준비할 때도 조금 어색했다.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섬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선다고 할까.


그래서 나도 기다렸다. 달라진 나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테니.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언니, 그때는 제가 철이 없었어요. 들뫼무역에 계실 때,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그거···. 지난 일인데 뭘. 벌써 잊어버렸어.”


“언니가 새언니가 된다니 너무 좋아요.”

“뭐?”

나주연이 입안의 맥주를 뿜을 뻔하다가 간신히 삼켰다. 기침을 쏟으며 가슴을 쳤다.

“얘기가 왜 그렇게 돼?”


“그럼 아니야?”

원대함이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잖아?”

“이게 그거지.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자. 그게 뭐 어렵다고.”

원대함은 대답하면서 나를 향해 윙크를 보냈다.


“언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이제는 절대! 절대로 힘들게 하지 않을게요.”

“됐어. 지금도 잘하는데.”

나주연이 해물찜을 앞 접시에 덜어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랑은 완전히 달라. 연습할 때도 느꼈는데. 지금도···.”

원대함이 서둘러 그녀의 말을 끊었다.

“얘가 죽었다가 살아났잖아? 죽음의 문턱에서 정신을 차린 거지.”


원대함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새늬에 대한 고급정보를 알려줄까? 얘는 단팥죽이면 된대. 간단하지?”

“단팥죽?”


그건 진짜 지새늬의 입맛이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단팥죽이 싫은 것도 아니니까.


그가 빈 잔에 맥주를 채웠다.

“아버지가 차 사주신다며? 앙상블 합격했다고.”

“응.”

“단팥죽이면 되는 걸 차까지 사주냐고. 근데 사륜구동을 고른 건 의외야. 너라면 날렵한 세단을 주문할 줄 알았는데.”

“그냥 멋있어서.”


멋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혼령회복술을 쓸 일이 없다면 차를 사준다는 아버지의 제안도 거절했을 것이다.


푸르니에 이어 이귀들의 부탁까지 들어주려면 비포장도로를 다닐 일이 많아진다.

며칠 전에는 원혼을 달래러 갔는데, 택시가 안 들어간다고 해서 난감했다. 결국 걸어가다가 발이 다 까졌다.

스터디그룹에서 연습할 때 발목 상처를 가리느라 얼마나 끙끙댔던지.


“어, 저기 연한이 아냐?”

원대함이 소리친 덕분에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주차장 앞으로 유연한이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갔다. 손에는 하얀 비닐봉지가 달랑거렸다.

원대함은 날쌔게 나가서 그를 끌고 들어왔다.


“뭐야? 소주랑 참치캔?”

원대함이 비닐봉지를 펼쳐보며 혀를 찼다.

“편의점에서도 파는데 어디까지 갔다 와?”


“머리가 복잡해서요. 산책하러 나갔다가.”

유연한은 나를 알아보고 얼굴을 붉혔다.


“가족 모임에 제가 껴도 되나요?”

“가족이라니요?”

나주연이 잔을 내려놓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예비가족이에요.”

내가 대답하자 나주연이 한숨을 쉬었다.

“하! 새늬가 그런 농담을 하다니. 변해도 너무 변했어.”


*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유연한이 조심스럽게 나를 보았다.

“새늬씨 애인 있으세요?”

“어허! 무슨.”

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원대함이 손을 뻗었다.


“얘가 어려서 아직 안 돼.”

“너 이상하다? 그거 과잉보호야.”

나주연이 웃는 데도 원대함은 눈썹을 올리며 유연한을 노려보았다.


이런 분위기에는 중재가 필요하지.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오빠한테 가는 길에 뽀글 미용실 갔었는데요, 거기 젊은 아티스트 있지 않아요? 오늘도 안 보이던데?”

“안가유씨요? 세탁소 형이랑 결혼하거든요. 집에 인사하러 갔대요.”

“아···, 결혼하는군요.”


유연한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다른 사람에게로 바뀌었구나. 어쩌면 자신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 나을지도.

그래,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식사가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안타가 식당 문 앞에서 소리쳤다.

“우리 집에 왔으면 나를 불러야지!”

“형. 이제 퇴근이야?”

“퇴근이 뭐 있어. 내가 나오면 퇴근이다.”


노안타는 나주연과 나란히 서 있는 원대함을 보며 싱글거렸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애쓴다, 애써.”


맞다. 노안타가 삼 층, 나주연이 이 층에 산다고 했지.

그렇게 차돌재 주민의 회합이 시작되었다. 노안타의 아내까지 합세하여 네 명이 호프로 들어갔고, 나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먼저 돌아섰다.


유연한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며 나를 따라왔다.


말없이 걷던 그는 놀이터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있다가 가실래요? 다, 달이 밝아서요.”


놀이터 구석에서 야문과 푸르니가 서성거렸지만, 나는 태연히 그네에 가 앉았다.

반쯤 차오른 달이 하늘 꼭대기에 걸려있었다.


달을 올려다보며 미늘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떠올렸다. 함께 나룻배를 타고 낚시하던 차오름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소설 속 세상보다 여기가 좋아요?”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고···.”

헛! 나 지금 무슨 말 하는 거니.


깜짝 놀라서 유연한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으며 달을 바라보았다.

“심지아 정령님이죠?”


그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숨결이 똑같아요. 분위기랑 기운도요. 긴가민가했는데, 지난번에 왔을 때 그림 속 호수에서 빛이 났어요.”


그는 내 손을 가리켰다.

“그 손버릇. 고민 있으면 엄지를 부딪치잖아요. 지아 정령님이랑 똑같아요.”


목이 메는지 소리가 흔들렸다. 설마 우는 건 아니겠지.

“돌아오셔서 기뻐요. 얼마나 괴로웠다고요.”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하지? 위로해야 하나, 변명해야 하나.


그는 그넷줄을 잡고 흔들었다.

“심지아가 쓰는 소설, 그것도 정령님이죠? 우연히 봤는데, 그때 확신했죠. 어딘가에 계시는구나. 소멸하지 않았구나.”


그가 일어나 내 앞에 섰다.

“저랑 공동 작업하실래요? 지금 발표하는 소설, 제가 그려볼게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저 이제 매니저 있는 작가예요. 어때요? 믿고 맡기시면.”


그를 보니 심부름센터 조끼를 입고 최소희의 집 앞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저 이런 스릴 넘치는 일 하고 싶었어요. 변장도 하고. 속임수도 쓰고요.’

그때 그는 눈을 빛냈다. 모험을 앞둔 용사처럼.


유연한이라면 우리 팀에 합류해도 괜찮겠는데?

야문과 푸르니를 볼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해도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하시죠. 공작.”

나는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


촬영이 끝나 막 세트장을 벗어나는데 야문이 날아왔다.

“큰일 났어. 예언자 흉내 내는 악령이 대형사고 쳤어.”


“수니홀이 걱정하던 그거? 이계에서 넘어온 거라지?”

“응. 사기꾼과 한패가 돼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있어.”

“사기꾼?”


“재산을 다 바치라고 했대. 집에 아이들도 남겨놓고 다 버리라고. 공동체에서 살라나.”

“미친 거 아냐? 그 사기꾼과 결이 맞았구나. 어쩌면 그들이 악령을 불러들였을 수도 있어.”


자동차 뒷좌석에 짐을 밀어 넣었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정신이 나갔네. 최면에 걸렸나.”


실증계는 언뜻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신이 피폐한 사람도 많았다. 마음의 틈으로 악령이나 귀령이 비집고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다.


“만풍산 소원바위 뒤쪽으로 내려가면 회당이 있어. 지금 수니홀과 이귀들이 감시하고 있어.”

“악령을 소멸시키면, 사기꾼의 허점이 드러나겠지.”


그러나, 사람을 잡는 건 우리 몫이 아니었다. 나는 혼령만 상대할 수 있다. 그 이상 개입할 수 없었다.


이용당한 사람이 스스로 눈을 떠야 했다.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범죄자가 마땅한 벌을 받게 하는 것도, 상처를 치유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부디 제때 눈을 떠야 할 텐데.


나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지팡이와 스노우볼을 꺼내 보았다. 모두 파라다이스 빌라에서 받은 것으로, 혼령조종술과 혼령회복술을 증폭시켜주는 도구였다.


지팡이는 파라다이스 빌라의 달숲 천사가 직접 깎아준 것이다. 소품샵에도 비슷한 것이 있지만, 그것은 사람이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강했다.


스노우볼은 그룹 갤럭시의 바우에게 받은 것이다. 파도와 모래, 바람을 순간에 굳혀서 만든 것으로 귀령을 잡아놓는 힘이 있었다.


‘높쌘, 소슬.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나는 지팡이 높쌘과 스노우볼 소슬을 쓰다듬었다.


야문이 앞장섰다.

“근원을 끊어내자고. 그런 악령은 완전히 소멸시켜야 해. 다시 나오지 못하게.”

“푸르니는?”

“유연한에게 갔어. 그 녀석 이파리를 띄우는 재주가 있잖아. 하던 대로 잘 처리할 거야.”


“좋아, 가자.”

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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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결심 22.10.20 29 1 10쪽
37 마지막 연락 22.10.19 36 1 11쪽
36 그믐밤의 손님 22.10.19 22 1 10쪽
35 내가 거기 있다 22.10.19 36 1 10쪽
34 플랜 B 22.10.18 33 1 10쪽
33 리허설 22.10.18 29 1 10쪽
32 악몽 22.10.17 35 1 10쪽
31 주술의 부작용 22.10.17 31 1 10쪽
30 훼방꾼들 22.10.17 34 1 10쪽
29 서글픈 빈 손 22.10.16 47 1 8쪽
28 길 잃은 영혼 22.10.16 55 1 11쪽
27 소리 없는 울음 22.10.15 29 1 11쪽
26 애원 22.10.15 23 1 11쪽
25 의외의 변수 22.10.14 29 1 11쪽
24 유령 22.10.14 32 1 11쪽
23 그의 것은 그에게로 22.10.13 32 1 12쪽
22 황혼의 이중창 22.10.13 39 1 10쪽
21 빙의 22.10.12 28 1 9쪽
20 지새늬와 구하라 22.10.11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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