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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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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70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10.17 09:5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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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주술의 부작용

DUMMY

그들의 저녁 식사는 요란하면서도 간단하게 끝났다.

콩나물국밥에 해물파전과 오징어순대가 나왔고, 소주에 맥주까지 얹어졌지만, 내일을 위해서 다들 일찍 돌아가겠다고 했다.


원대함과 나주연은 같은 동네이니 함께 갈 줄 알았는데, 때마침 전화가 왔다.

“은서? 맞아. 아이, 뭘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그래? 그럼 거기로 갈게.”


타이밍도 잘 맞추네. 은서님은 왜 하필 이런 때···.

집으로 가면서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나 들으려 했는데. 과거에 어떤 인연이었는지.


원대함은 혼자 터덜터덜 돌아갔다.

내 시선을 끈 사람은 선명해였다. 식사하면서 나름 분위기는 맞춰주었지만, 그녀는 내내 새침하게 앉아 있었다.


모두 오늘의 우연을 재미있어할 때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누군가의 기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엇갈리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생각이나 의지로는 어쩔 수 없으니 더욱 그렇겠지.


그녀는 일이 있다며 혼자 거리로 나섰다.

나는 그 뒷모습에 끌려 주저 없이 따라갔다. 마음으로나마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달빛사원에서의 나와 아이, 구하라도 그랬다. 차오름이 멋진 남자라는 건 인정하지만, 주인공이라는 그것은 후광이 더해진 때문일 거다.


벌써 밤이 찾아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엷은 것이 곧 하늘이 갤 것이다. 오늘은 달빛사원과 연락할 수 있겠구나.


그녀는 골목의 어묵집으로 들어갔다. 일이 있다더니 누구를 만나기로 했나?

그러나 그녀는 혼자 앉아 소주를 시켰다.


그녀가 막 병뚜껑을 따는데 조아용이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다. 혼자 청승 떨 거 같더라니.”


“뭐예요? 따라왔어요?”

“무슨, 나도 일이 있어서.”

조아용이 소주잔을 내밀었다.


“너 놀리는 일.”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선명해는 기운 없이 술을 따르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하늘이 맑아지는 것을 지켜보느라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구름은 많아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옅은 구름이라 바람이 불면 금방 사라질 것 같았다. 그믐이 가까워 달이 손톱 끝만큼 가늘어도 달빛사원과 연락할 힘을 줄 것이다.


달과 구름을 확인하는데, 선명해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처음 봤을 때 끌린 건 맞죠. 그런데 솔직히···. 대함이 어머니가 잘 나가는 사업가와 재혼했다는 말 들으니까 욕심이 나더라고요. 나도 속물이죠?”

“현실적인 거지. 누구나 그 정도 계산은 해.”


선명해가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건데. 기분이 더럽단 말예요.”

“야, 세상에 쌓이고 쌓인 게 남자다. 너 정도면 덤벼들 사람 많을 거야.”

“그거야 당연하죠. 가진 게 미모와 인성뿐이라. 하하.”


선명해는 두 개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조아용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보니까···. 선배도 만만치 않던데? 둘이 썸 탄 사이, 맞죠?”

“어어, 위험한 상상하지 마라.”

“눈빛이 그렇던데. 여자의 육감은 무서운 거예요.”


“그냥, 대학 다닐 때 잠깐. 혈기 왕성할 때는 누구나 찔러보는 거지.”

조아용이 빈 잔을 내려놓았다.


“옷 하나를 사도 맞는지 안 맞는지 입어보잖아? 옷도 그런데, 반평생 함께 할 반려자를 찾는데 그보다 더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봐야 알 거 아니야. 누가 나와 맞는지.”


“그쵸! 마셔요. 마시고 잊자고요.”

선명해가 손뼉을 쳤다.


“나도 다른 사람 찾아야지. 미모에 노래, 춤 다 되는 사람 흔치 않아요. 돈이 없다 뿐이지.”

“좋다. 패자부활전을 위하여!”

“진짜 사랑을 찾아서!”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며 웃었지만,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달을 향해 앉았다. 아파트 숲에 가려 정작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의 애타는 바람을 아는지 달빛사원과 연결되었다.


“심지아, 잘 지내냐? 일은 어떻게 되어가니?”

이단주 원장은 나지막하게 물었지만, 그의 뒤에서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한가하게 말할 때가 아니에요! 심지아, 큰일 났어!”

육미호 원장의 목소리였다. 당장 숨이 넘어갈 듯 다급했다.


“어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오.”

“그렇게 허허실실해서는 해결될 수가 없어요. 이건 명백히 부작용이라고요.”

육미호가 소리 지르자 누군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육원장님, 일단 진정하시죠. 파견의 주술은 원래 부작용이 많아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습니까?”

해묵은 예언자였다. 보통 때와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명백히 제약사항을 어겼어요. 저쪽 세계에 너무 깊이 개입했어요.”


그의 말을 듣자 숨이 턱 막혔다. 은서의 경고가 떠올랐다.

실증계에서 너무 많은 인연을 쌓지 말라고 했는데···.

‘나 때문인가? 나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요. 작가를 찾으려면, 찾아서 소설을 쓰게 하려면 저쪽 세계에 개입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살랑 대장이 엄숙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육미호 원장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허공 너머 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달빛이 강하면 또렷하게 볼 수 있을 텐데, 달의 기운이 약하니 원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심지아가 어떤 아이인지 내가 잘 압니다. 수많은 장애가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맞설 아이예요.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도 하게 되겠지요.”

이단주 원장은 그들을 설득시킨 뒤 나를 불렀다.


“심지아야, 파견의 주술이 풀리고 있단다. 이대로 가다간 주술에 관련된 사람이 먼저 지워질 거야.”

“소설을 빨리 시작해야 하나요?”

“그러면 좋지만···, 작가는 아직 소설을 안 쓰냐?”


아직까지 진전이 없다니. 나는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예. 설득하고 있는데 잘 안 돼요.”

“작가를 다루는 일도 네가 있어야 하는 거야. 우선은 몸을 사리고 있어라.”


“우리 세계는 어떤가요? 경계가 무너지는 속도는요?”

“그것이···.”

이단주는 말을 잇지 않았다.


저편에서 기루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아야, 여기는 상황이 좋지 않아. 어떻게든 빨리 소설이 이어져야 해.”


“작가를 갈아치워!”

육미호가 소리 질렀다.

“뭐, 그따위 작가가 다 있어!”


“어허, 무슨 소리. 그래도 작가인데.”

해묵은이 점잖게 그녀를 타일렀다.


“아냐, 그거 좋은 생각이야. 어차피 도 아니면 모. 엎어 치든 메치든 소설만 이어지면 되잖아?”

기루다의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러려면 심지아가 저쪽 세계에 더 깊이 관여해야 할 텐데요?”

살랑의 말에 기루다의 웃음이 뚝 끊어졌다.


“처음부터 심지아를 믿고 맡겼으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모두 맡깁시다. 어차피 우리 세계는 소멸하고 있었잖아요?”

살랑의 말을 듣고 이단주가 다시 나를 불렀다.


“심지아야, 어떤 결정을 하든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는다. 많이 힘들 테니 무엇보다 너 자신부터 챙기도록 해라. 그리고···.”

이단주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차오름과 연결되었어. 너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어렵게 닿은 것이라 긴 얘기는 어려울 거다. 우리와는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예. 원장님, 다음에 또···.”


인사를 마칠 시간도 없이 원장실의 소리가 사라졌다. 허공에는 희끄무레한 빛이 어른거렸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오름을 기다렸다.

얼마 만의 만남인가. 용사로 떠나기 전에 보고 처음이다.


허공에 어렴풋이 황무지가 나타났다. 바위에 앉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또렷하지 않아도 차오름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가슴이 울컥하며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지아 누나?”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거긴 어때? 힘들지?”

“누나, 왜 떠났어요? 파견의 주술···. 돌아온 사람이 없다던데.”

그는 울분을 참는 듯 간신히 말을 마쳤다.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소설을 이어줄게.”

“그럼 누나는요?”

“나도···.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나도 돌아가야지. 너를 다시 만나고, 네가 행복하게 사는 거 봐야지.


“누나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어요. 나한테는 누나가 더 소중해요. 알아요?”

“나도 네가 소중해, 우리 세계가 다 소중해. 그러니까 꼭 해낼 거야.”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꼭 돌아와야 해요. 난 마지막까지 누나 옆에···.”


갑자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었다. 미약했던 달의 기운이 완전히 가려졌다.


울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원로들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모두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오름, 고마워. 불러준 것만으로도, 내 생각을 해준 것만으로도.’

우리의 세계, 꼭 살릴 거야. 살아남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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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결심 22.10.20 29 1 10쪽
37 마지막 연락 22.10.19 37 1 11쪽
36 그믐밤의 손님 22.10.19 22 1 10쪽
35 내가 거기 있다 22.10.19 37 1 10쪽
34 플랜 B 22.10.18 34 1 10쪽
33 리허설 22.10.18 30 1 10쪽
32 악몽 22.10.17 36 1 10쪽
» 주술의 부작용 22.10.17 32 1 10쪽
30 훼방꾼들 22.10.17 34 1 10쪽
29 서글픈 빈 손 22.10.16 48 1 8쪽
28 길 잃은 영혼 22.10.16 55 1 11쪽
27 소리 없는 울음 22.10.15 29 1 11쪽
26 애원 22.10.15 24 1 11쪽
25 의외의 변수 22.10.14 29 1 11쪽
24 유령 22.10.14 33 1 11쪽
23 그의 것은 그에게로 22.10.13 33 1 12쪽
22 황혼의 이중창 22.10.13 40 1 10쪽
21 빙의 22.10.12 29 1 9쪽
20 지새늬와 구하라 22.10.11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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