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68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10.19 11:15
조회
36
추천
1
글자
11쪽

마지막 연락

DUMMY

원대함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무도 없는 편의점이라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누구 전화지?


“뭐? 어머니가? 어느 병원이야?”

그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최소희가 병원에? 그녀가 부엌에서 손을 주무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갈 줄 알았던 원대함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조끼를 입은 채 반지하 유연한의 방으로 뛰어갔다.


어찌나 세게 두드리는지 현관문이 부서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유연한이 고개를 내밀자 원대함은 조끼를 벗어 밀어 넣었다.

“어우, 형. 뭐예요?”

“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 가셨어. 사장님 깨어날 때까지만 있어라.”


유연한은 눈을 뜨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대함이 계단 위로 사라지자 입맛을 다시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우, 사장님이 언제 일어날 줄 알고. 아함.”


편의점을 유연한에게 맡긴다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오두막 주인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정령님도 일어나셨군요.”

그는 손세수를 하고 조끼를 입었다.


“가게도 볼 줄 알아요?”

“저도 두 달 전까지 알바했거든요. 사장님도 여기 삼층 사시고.”

“에? 편의점 사장이 큰솔하우스 집주인이에요?”

“정령님은 모르는 게 당연하죠.”


나도 그를 따라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그냥 사장님께 말하지, 왜 유연한씨한테?”

“조금 전까지 사장님이 맡았으니까요. 알바 구한다더니, 아직 못 구하셨나···.”


유연한은 정신을 차리고 편의점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대함이형 어머니는 괜찮으시겠죠?”


나도 그녀가 걱정되었다. 쉽게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금방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


최소희의 병실로 스며들자 지새늬가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오빠! 너무해. 엄마를 이렇게 걱정시켜도 되는 거야?”


지새늬가 눈을 흘기는데도 원대함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침대 발치에 서서 최소희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몸은 어떠세요?”

“괜찮아. 조금 어지러워서 그래.”

“검사해 보시라니까요.”

“괜찮대도. 너 일하다 말고 왔지? 빨리 가봐.”


최소희가 손을 흔들었다. 침대 옆에 앉아있던 노년의 남자가 원대함을 향해 몸을 돌렸다.

“큰 문제는 없단다. 그래도 병원에 온 김에 내일까지 입원하기로 했다. 검진도 받고.”


노년의 남자가 원대함을 올려다보았다.

“대함아, 엄마가 네 걱정 많이 한다. 이제 자리 잡아야지.”

“예.”

원대함은 머쓱해하며 눈길을 돌렸다.


“아빠, 진짜 회사에 넣어주려고요?”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사람답게 살아야 할 거 아니냐.”


원대함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전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허! 왜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해? 네 나이를 생각해라.”


남자의 눈빛에는 힘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이 많았지만, 그와는 달리 매서운 눈빛이었다.

‘이 사람이 지새늬의 아버지? 지남철 사장이구나.’


나주연의 소개팅을 방해하던 날, 선명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소주를 마시며 조아용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속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나도 건너 건너 들었어요. 수완이 좋다고. 지남철 사장하면 예리하기로 소문이 자자한데, 왜 그런 여자와 재혼했는지 모르겠다고.’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


“치이, 벌써 몇 년이야? 아직도 등단 못 하면 재능이 없는 거지. 새오빠는 연기도 못 하면서 극단에는 왜 있어?”

“새늬야?”

최소희가 놀라며 지새늬를 불렀다. 지새늬는 얼른 어깨를 움츠렸다.


“오빠가 걱정돼서 말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네 엄마와 동생 걱정시킬 거니?”

지남철이 한숨을 내쉬며 최소희의 손을 잡았다.


“얘도 생각이 있겠죠. 아직 젊잖아요?”

“엄마가 자꾸 편드니까 더 그래요.”

최소희가 두둔하자 지새늬는 입술을 쫑긋거리며 원대함을 노려보았다.


지새늬가 싱글거리며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작가? 웃기네. 작가는 아무나 돼?’


나는 원대함과 그의 묘한 가족을 둘러보았다.

왜 화살이 원대함을 향해 날아갈까. 마치 최소희가 아픈 것이 아들의 잘못이라는 것처럼.


*


저녁노을이 사라지고 하늘빛이 어두워졌지만, 놀이터에는 실증계의 사람들이 몇 명 남아있었다.


놀이터 담장 안으로 들어가자 금은비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심지아님!”


어리둥절하여 금은비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고충만을 번갈아 보았다.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다.


“금은비님! 고충만님! 어디 있었어요?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호호, 미안해요. 주술사님.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금은비는 깔깔 웃더니 고충만의 팔에 손을 끼고 그의 어깨에 비스듬히 기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희는 포기했어요. 작가는 소설 안 쓴다지, 아무리 노력해도 빙의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그렇게 술을 마셔?”

고충만이 아이를 야단치듯 눈썹 사이에 힘을 줬다.


“어머, 아저씨! 술은 나 혼자 마셨어요? 아저씨도 같이 마셨잖아요?”

그녀는 투정 부리면서도 손을 빼지 않았다.


“두 사람 무슨 일이에요?”

나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구석 벤치에 앉았다.


“될 대로 되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달둥지 최고의 주술사도 못 하는 일인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사라져도 아쉬울 것 없는 인생이고.”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하하, 그 남태평양 휴양지요. 바닷가 오두막에 빈방 많잖아요?”


‘남태평양?’

내가 고충만을 바라보자 그는 싱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안의 집?


“좋더라고요. 함께 술도 마시고.”

“계속 둘이 같이 있었어요?”

“아뇨. 셋이요.”

“셋?”

“집주인이요. 호호호.”


금은비가 웃기만 하자 고충만이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안이 취하니까 우리를 알아보더라고. 얘기해보니 사람 참 진국이더만. 좋은 술친구가 되었지. 이틀인가 지나서는 술 안 마셔도 보더라고.”


짱짱 만화방 붙박이가 왜 만화방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겠다.

“그런데, 두 분은···.”


“하하, 같이 지내보니까 귀여운 구석이 있더라고. 거기선 우리가 잊힌 존재지만, 지금 내 옆을 지키는 유일한 사람이잖아.”


금은비의 양 볼이 발그레해졌다.

“함께 있다가 같이 사라질 거예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거죠.”

“나한테는 단 하나뿐인 존재지.”

“아우, 아저씨도! 나도 그래요. 오호호.”


며칠 전 놀이터를 뛰쳐나갈 때와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가디록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거 신파야? 코미디야?”


남녀가 사랑하면 보통은 로맨스가 되지만, 언제 소멸할지 모를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왜 사라진다고 해요? 우리에겐 구원자가 있어요.”

“그래요? 그게 누군데?”

금은비가 눈을 빛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메시지를 들었어요. 전설의 근원을 살릴 사람이 있다고. 꼭 찾아낼 거예요.”

“예, 예. 그러셔야죠.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금은비는 놀리는 말투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심지아님도 포기하세요. 마음을 비우면 며칠이라도 행복해져요. 그런 사념체의 몸으로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어요. 벌써 실패했잖아요?”

금은비가 토라져서 툴툴거리니 고충만이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현재안이 기다리고 있어. 오늘은 특별히 녹두전을 사 온다고 했거든.”

고충만은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금은비를 안고 담장을 건너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니. 난 찾을 거야. 꼭 찾을 거야.’

허공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검은 허공에 희뿌연 얼룩이 나타났다. 어둠과는 결이 다른 어둠이 미끄럼틀 꼭대기 하늘에서 열렸다.


‘달빛사원?’

어제가 그믐이었다. 오늘도 달이 없는데, 어떻게 연결되었지?


나는 미끄럼틀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원장님, 달빛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저편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구름이 소리를 삼킨 듯 우르릉거리며 잡음이 섞였다.


“원장님!”

“심지아야, 지금이 아니면 안 되기에 남은 능력을 모두 썼다. 이게 마지막 연락일 거다.”

이단주 원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가 말을 못 잇자 살랑 대장이 뒤를 이었다.

“지아야, 그동안 우리 희망이 되어주어 고맙다. 너라도 살아남아라. 너라면 그쪽 세계에서 살 방법을 찾을 거야.”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 생긴 거죠?”


“사람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 달둥지의 수련생도 여럿 사라졌다.”

살랑의 말에 찌리릿 몸이 굳었다.


‘아이는? 아이도 사라졌을까?’

아이에 대해 물을 사이도 없이 육미호 원장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보름까지 기다릴 수 없어! 그 소설,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육원장, 이건 우리의 운명이에요. 버림받은 세계는 사라집니다. 쓰다만 소설은 글자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요.”

이단주 원장의 목소리 뒤로 기루다 대표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소멸할 수는 없다고요!”

육미호의 울부짖는 소리가 넘어오고는 모든 소리가 뚝 끊어졌다.

고요한 어둠이 허공을 덮었다.


“원장님! 대장님!”

미끄럼틀 위에서 수없이 그들을 불렀다.

목이 터지도록 불렀으나 달빛사원의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막 그믐을 지났으니 달빛이 보일 리 없었다. 속절없이 하늘은 맑고 깊었다.


갤럭시의 연주 속에서 보았던 환영이 떠올랐다.

‘환영이 아니었어. 진짜 일어난 일이었어.’


‘이름 없는 아이들이라도 내 친구였어. 함께 공부하고, 같이 수련했어. 모든 시선이 주인공에게 쏠릴 때도 우린 우리만의 삶을 살았어.’

우리에겐 소중한 세상이었다. 그냥 사라질 그런 삶이 아니라고!


‘절대로 소멸하게 두지 않을 거야.’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내가, 내가 살려줄게.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붙잡아줄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래서 현실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심지아는 상상계로 잘 돌아갔어요 23.08.21 27 0 -
공지 파라다이스 빌라가 기다립니다 22.10.22 50 0 -
47 그리고 4 -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22.10.22 34 1 11쪽
46 그리고 3 - 기다려, 차오름 22.10.22 28 1 10쪽
45 그리고 2 - '나'라는 무대 22.10.22 29 1 12쪽
44 그리고 1 - 장미의 계절 22.10.22 29 1 11쪽
43 다시 만난 친구들 22.10.21 52 1 12쪽
42 일곱 밤이 지나고 22.10.21 32 1 8쪽
41 소멸 위기 22.10.21 54 1 7쪽
40 작별 인사 22.10.20 27 1 12쪽
39 집필 22.10.20 31 1 10쪽
38 결심 22.10.20 29 1 10쪽
» 마지막 연락 22.10.19 37 1 11쪽
36 그믐밤의 손님 22.10.19 22 1 10쪽
35 내가 거기 있다 22.10.19 37 1 10쪽
34 플랜 B 22.10.18 34 1 10쪽
33 리허설 22.10.18 30 1 10쪽
32 악몽 22.10.17 36 1 10쪽
31 주술의 부작용 22.10.17 31 1 10쪽
30 훼방꾼들 22.10.17 34 1 10쪽
29 서글픈 빈 손 22.10.16 47 1 8쪽
28 길 잃은 영혼 22.10.16 55 1 11쪽
27 소리 없는 울음 22.10.15 29 1 11쪽
26 애원 22.10.15 24 1 11쪽
25 의외의 변수 22.10.14 29 1 11쪽
24 유령 22.10.14 33 1 11쪽
23 그의 것은 그에게로 22.10.13 33 1 12쪽
22 황혼의 이중창 22.10.13 40 1 10쪽
21 빙의 22.10.12 29 1 9쪽
20 지새늬와 구하라 22.10.11 28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