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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무법자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3.12.01 09:37
최근연재일 :
2024.03.18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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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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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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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6화. 탈옥

DUMMY

육중한 잠금장치가 걸린 문을 잡아당기자, 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대단히 드문 일이다. 마치 현실의 형광등 같은 밝은 조명이다. 횃불과 촛불 정도가 광량의 한계인 이 세계에서 이토록 선명한 하얀 빛이라니 말이다.


“뭐냐. 또 먹여줄 음식이라도 있나?”


그리고 안에 있는 죄수는 내게 태연히 물었다. 목소리는 여자. 걸걸하다. 나는 문을 살며시 열어서 딱 들어갈 정도로만 틈새를 만들고 다시 닫았다.

내부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하얗고 깔끔한 방이었다.

그리고 넓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넓었다. 침대와 탁자가 있는 생활 공간. 쓰레기통. 개방되어 있지만 제대로 된 수도 시설이 있는 화장실. 서재. 그리고 공방으로 쓰이는 듯한 폐쇄된 작업장. 또 여러가지 시약이 들어간 창고.

어마어마한 넓이다. 그 환한 방에서 그 여자는 식탁에 앉아 내가 먹었던 것과 같은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발에는 족쇄와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고.


“잠시만. 너 남작의 부하가 아니구나? 타락자냐?”


그녀는 바로 일어나 닭뼈를 부러트렸다. 은빛이 감돌자 그것은 뾰족한 칼이 되었다.

연금술사군. 각성자다.

날 죽이려는 건 아니고, 자기 목에 꽂아서 자살이라도 할 듯한 태세였다.


머리칼은 과도할 정도로 곱슬에 풍성한 빨간색. 그리고 키는 인간 평균보다 40cm 작은 단신. 하체가 두껍고 손은 가늘고, 가슴은 과하게 크고, 숱이 풍성하다.

그냥 여자 육체를 품평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종족이라고 설명하는 거다.


다른 게임 하다 온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저들 종족은 드워프라고 한다. 흔히 특징으로 잡는 긴 수염과 작은 키, 놀라운 손재주와 우람한 대흉근을 아주 과감하게 어레인지한 체형이지.

왜냐면 정통 드워프는 정통 판타지에 있어서 자주 나오긴 하는데 솔직히 더럽게 못생겨서 등장시키기 싫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신디케이트]의 도적이다. 이곳에서 타락자들을 잡았더니 수배범이라고 감옥에 처넣더군.”


드워프 여자는 오롯이 진실만 담긴 내 말에 피식 웃었다.


“하긴. 해징턴 남작이 그럴 놈이긴 하지.”


이 반응은 좀 의외로군.


“어떤 사람이지?”

“날 잡아다 가두고 있는 것만 봐도 모르겠나?”

“글쎄. 난민 출신 입장에서 보면 여긴 저택 수준인데.”

“그래도 자유가 없으면 형편없지.”

“누명인가?”


드워프 여자는 씨익 미소지었다.


“아니. 기계장치, 불법 화합물, 불법 무기 양산 및 무차별적 방화, 기물파손, 살인. 가지가지도 했지. 수배 걸려서 잡혔다.”

“그런데도 당장 모가지 자르는 대신 모셔두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남작은 믿을 사람이 아니긴 하군.”

“캭캭캭캭캭!”


드워프 여자는 자기 이름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자스테 바렛. 2레벨 연금술사다. 혹시 날 여기서 꺼내줄 수 있나? 그럼 내 능력으로 든든히 사례하지. 혹시 엄청나게 좋은 단검이나, 폭발하는 다트 같은 거 안 필요해?”

“싸울 줄은 아나?”

“알지. 싸우려고 익힌 거라서, 갇힌 뒤론 시키는 대로 물건 만드는 것 외엔 할 수 없었지만.”


난 그 말에 솔직히 엄청나게 혹했다.

하지만, 불현듯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친구가 뭘 하고 있었다고?


“잠시만······. 너 2레벨 연금술사라고 했나? 여기 갇혀서 물건만 만들었고?”

“그래. 유능하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 그럼 전공이 뭐냐?”


연금술사는 [에테르(精氣: Ether)]라는 힘의 각성자다.

이 세상의 만물을 이루는 게 원자가 아니라 에테르라고 한다. 그걸 깨달은 연금술사는 제작과 수리, 파괴에 대단히 능해진다.

돈 벌기도 쉽고 초반에 고급 장비를 얻기도 쉬운 직업이지만 에테르라는 힘의 특성상 직접적인 공격기도 방어기도 약간 미묘하다. 말하자면 장비빨로 싸워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연금술사만이 가진 기묘한 특징. 다른 직업은 능력이 순서대로 상승한다. 요컨대 2레벨 도적이 할 수 있는 일을 7레벨 도적은 다 잘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연금술사는 ‘분해’ ‘연성’ ‘합성’ ‘창조’ 라는 네 가지 주제를 이후 2,4,6,8 짝수 레벨마다 하나씩 배우는 형식이다.

만약 6레벨 연금술사라는 초거물 연금술사가 분해 빼고 나머지 전공을 다 배웠다면, 2레벨에 전공으로 분해를 택한 연금술사가 할 수 있는 걸 못할 수 있다.

물론 종합적으로 보면 6레벨 연금술사가 훨씬 강하겠지. 하지만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다.


“어이쿠. 역시 [신디케이트]라 그런가? 전공도 아는군? ‘합성’이다. 그중에서도 금속과 신비물질 전문이지”


이제 알겠군. 만약 다른 연금술사면 아마 갇혀 있지도 않았을 거다. 물건을 분해하거나 변형하는 자기 능력으로 탈출이 가능하니까.

그런데 재료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합성계 연금술사다보니 감금이라는 게 가능한 거다. 들어가고 나오는 소재만 통제해도 아무 기술도 쓰지 못하니까.


다시 말해서 만약 내가 이 친구를 동료로 받으면 다음 전공을 익힐 수 있는 4레벨까지 생산직밖에 못하는 짐덩이.

심지어 4레벨이 되더라도 전투 기술이란 걸 제대로 못 익혔을 테니 실제 모험에 데리고 다니는 건 불가능한 전문 생산 요원이 되어버린다.


사실 나쁘진 않다. 이른바 장인형 연금술사 빌드. 함정따개 도적만큼이나 유명한 비전투원 빌드다.

솔직히 연금술사가 전투원으로 쓰면 대단히 하자가 심한데 생산기술은 최고다보니까 아예 장비랑 수리겸 짐꾼 용도로 데리고 다니는 거다. 잘만 키우면 함정따개도 할 수 있고.


내가 못 하겠다고 거절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먼저 말했다.


“제기랄. 좋아. 그러면 차라리 날 죽여줄 수 없나?”

“뭐?”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꽤 담담하게 얘기하는데 자포자기하거나 뗑깡부리는 건 아니었다.


“사정을 들어보지. 뭐냐?”

“······처음부터 얘기해도 되나?”

“마음대로.”


그녀는 처음부터 설명했다.


“혼돈의 세력이 우리 왕국을 침공했다.”

“나도 그래. 레이즈 연맹 출신인가?”

“하? 레이즈? 너도 고생 더럽게 많았겠구만. 하지만 아니야. 그 반대편, 바다 건너지 않고 북동쪽의 메라티아다. 난민 출신으로 진짜 고생 많았겠구만······.”


뜬금없는 동질감 형성. 그녀는 혀를 쯧쯧 차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도 각성자였지. 1레벨 연금술사가 뭘 했겠나?”

“장비 제작.”

“맞아. 스승님에게서 죽어라 지도받으며 물건 공급했다. 다행히 다른 제자들도 있어서 저항했는데, 결국 메라티아는 무너지고 말았지. 그래도 우리는 조금 남쪽, 노마 제국에 합류해서 우리 왕국을 탈환하려고 열심히 싸워왔는데······.”


여기서 격노한 듯 자스테 바렛은 있는 대로 욕설을 토해냈다.


“이 엿같은 노마 쌍놈들이 우리가 군대로 반역 일으킨다는 누명을 씌워서 가두고 무기는 죄다 압수해버렸다!”

“옹호하려는 건 아닌데, 타락자의 짓일 수도 있을 거다.”

“나도 알아! 노마 제국 상층부에 뭔가가 있다고 하더군. 아무튼 누명을 씌워준다면 누명이 아니게 해줄 수밖에······! 나는 나보다도 못한 수습생들과 메라티아 유민들을 규합해 레지스탕스를 결성했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 한 방 먹이려고 말이야.”


난 넌지시 물었다.


“너도 실전 경험 있냐?”

“물론 많지. 내 사격 솜씨는 백발백중이었어.”

“호오.”


원거리 공격이 되신다 이 말이지?


“숨어다니면서 노마 제국의 난민들을 규합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다가, 제기랄. 클로비스 개자식 때문에 잡혀서 이꼴이다. 동료들은 대피시켰지만 말이야.”

“클로비스는 누구지?”

“아? 아. 그렇군. 해징턴 남작 이름이 클로비스다. 우릴 체포한 공으로 남작위를 받았지. 진짜 개새끼.”


그랬구만.


“제기랄. 남작 개자식이 내보내 줄 수는 없지만 필요한 건 다 가져다준다면서 이렇게 방도 만들어줬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 자식이 요구하는 대로 무기 만들어서 가져다 주는 노예 처지인데.”

“남작의 목적을 알고 있나?”

“목적? 글쎄. 군사력을 키워서 뭘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타락하진 않았어. 그건 확실해.”


자스테는 본론으로 돌아왔다.


“남작은 내 동지들도 어디 감금해서 노예로 부리고 있는 모양이더군. 그러던 와중 타락자가 접촉했다. 얼마 전에 물자 사이에 끼워둔 쪽지로 연락하더군. 우리와 함께하든가, 아니면 죽든가. 동료들을 되찾게 해주겠다고도 했지. 남작에게 들켜서 타락자 문제는 처리해주겠다고 했는데 그건 모르겠다.”


그렇구만. 이 여자가 어떤 의미로는 해징턴 시 퀘스트의 주축이군.

2레벨 연금술사라도 대단하지. 남작은 이 여자의 동지들을 감금하고 노예로 부리면서 물자를 확보한다. 타락자는 이 여자와 동지들의 힘을 이용해 뭔가를 하려고 하고, 그건 아마도 해징턴 시 지하와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남작은 이자를 통해 타락자의 존재를 알아서 엘리크에게 제보한 거고 엘리크는 그 때문에 나를 찾았다.


“난 혼돈의 세력하고 협조하느니 차라리 뒤지겠다. 애초에 내 물건이 그 새끼들에게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역겨워. 남작이 날 죽일 마음은 없고 난 자살했다간 동지들도 대접이 안 좋아질 테니 대신 죽여주면 안 되나?”

“······.”


떨고 있다. 갈등하는 거다.

사실 갈등하겠지. 남작의 말을 듣는 것도 싫지만 죽기 싫어서 아마 일하는 처지.

혼돈의 세력의 편을 드는 게 죽기보다 싫은 게 아니다.

자기가 나중에 신념을 버리고 그쪽 편을 들어버릴지도 모르는 게 죽기보다 싫은 것일 거다.


“여러 제안을 했지만 하나도 믿을 수가 없군.”

“윽······.”

“그래도 연금술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믿을 수 있는 제안을 한다면 되겠지.”

“제기랄. 담보할 게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나가서 자본과 시간만 준다면 필요한 건 뭐든 만들어 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제안해야 하는 건 나다.”

“······?”

“혼돈의 세력이 싫다면, 내 파티에 들어와서 같이 싸워라. 지금 나, 성기사. 이렇게 둘 있다. 이번에 번 돈은 못 주지만, 이후로 번 보수는 언제나 1:1:1로 동등하게 나누도록 하지.”

“······!”

“그리고 별도로 동등하게 나눈 다음 내가 번 몫의 절반씩 연구비 및 재료비 명목으로 후원하겠다. 어쩌면 성기사 친구도 자기 몫에서 절반 떼서 너에게 후원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당연히 우리 장비는 네가 다 수선하고 맞추고 강화 해줘야 해. 거기에 더해서 나는 북부 난민들을 규합해서 노마 제국에게 한 방 먹일 생각인데 이 일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이 정도 조건인데. 함께할 생각 있나?”


그러자, 자스테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굴하고 아첨하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 손바닥을 비벼댔다.


“아이고~ 우리 통 큰 후원자님을 제가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구만. 헤헤. 일단 내가 뭐부터 해드리면 될까나?”

“나가지.”


엘리크 자식이 주의를 잘 끌어주고 있겠지? 그게 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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