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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무법자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3.12.01 09:37
최근연재일 :
2024.03.18 03:51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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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6
추천수 :
475
글자수 :
198,079

작성
24.03.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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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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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화. 상단 털기 2

DUMMY

라텔 상단의 난민촌 지점. 그곳에 건장한 중장병과 불량배들이 잔뜩 들어온다.

지점장은 혹시 습격인가 생각하고 대기시켜 뒀던 호위를 꺼낼 겸 만약을 대비해 시내에 있는 호위대장에게 연락할 준비도 했다.

그렇지만 일단은 이렇게 물어본다.


“무슨 일이신지?”


건장하고 투구 눌러 쓴 중장병. 파문성기사 엘리크 카탄이 당당히 말한다.


“카탄파 두목인 엘리크 카탄이다. 무기를 좀 보고 싶은데.”

“오······. 무기라?”

“그래. 제니스를 잡고 나온 돈이 꽤 되더군. 이걸로는 얼마나 살 수 있지?”


고객이었다. 그 견적이 나오자 지점장은 이 힘 좋은 깡패 겸 각성자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다가갔다.


“아이고. 그런 것이라면야. 좀 보시지요. 쓸만한 것 많습니다요.”


아무리 난민들을 등쳐먹는 라텔이라도 무기 가지고는 아예 못 쓸 물건을 파는 장난질 안 친다.

그나마 싸구려를 멀쩡한 값 주고 파는 정도다.

엘리크 카탄은 물건을 슬쩍 둘러보더니, 돈을 흔쾌히 투척했다.


“물건이 생각보다 적군.”

“예예. 아무래도 좀.”

“그러면 나머지는 식료품으로 사지. 여기 있는 물건 다 가져가겠다.”

“아이고야!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받은 금화는 틀림없이 진품이었다. 그것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어수룩한 상인이 아니니까. 그는 뒤가 구린 놈들 상대로 장사하는 게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탄파는 지점에 있는 물자를 알뜰살뜰하게 죄다 가져갔다. 제값을 분명히 내고서 말이다.


나는 엘리크가 물건을 사서 수레에 싣고 나르는 모습을 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생각보다 연기를 잘하는군.”

“깜짝이야. 있었냐······.”

“당연히 있었지.”

“거기 있을 줄 몰랐다는 의미였다. 연기는 잘하진 못해. 단지 진심은 언제나 말할 수 있을 뿐.”


당연하지만 우리의 파문성기사는 계획에 찬성했다. 라텔 상단이라는 개자식들을 등쳐먹는 게 그의 정의관에서 올발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라텔 상단의 물건을 싹싹 털어오는 계획이 성공했다.

식료는 난민들에게 싸게 공급하면 되고, 허접한 전(前) 제니스 패거리 불량배들도 카탄파 답게 무장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짓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른 시일 안에 들키기는 쉽지 않을 거다.

금고에 가득한 금화가 정확히 몇 개인지 알아채는 건 힘들지. 그 수많은 금화 중 일부가 금도금 된 동화로 바꿔치기 된 걸 알아내는 건 더 힘들고.

무엇보다 확실히 기하기 위해 우리가 식료를 과도하게 쓸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끔 난민 협조자 몇 명을 통해 구매를 분할하고 있다. 거기에 이녹이나 테라즈 패거리는 정상적으로 구매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보면, 라텔 상단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물건을 판매하고 있고 난민들 역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식량을 소비하고 있다.

단지 이상하게도 라텔 상단의 돈은 줄어들고 우리 해징턴 난민 상단의 돈은 기이하게도 불어나는 상황일 뿐이지.

어디까지 팔아먹을 수 있을지 보자고.


작전 개시 8일째. 우린 아직까지도 들키지 않았다.

작전한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우리는 훈련중이었다.


“전부 돌격!”

“으랴!”


불량배들이 나름대로 방진을 짜서 돌격한다.

전투라면 못 하는 게 없는 엘리크 카탄은 지휘와 용병술에도 능해 제니스 패거리 불량배들을 진짜로 병사 비슷한 수준까지 훈련시킨 것이다.

그렇지만 맞서는 건 유감스럽게도 각성자인 도적. 나는 섀도를 전신에 휘감아서 [흐릿해지기]를 사용하고 다가오는 적들을 하나씩 피해냈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면 모조리 잔상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어지간한 기량으로는 맞출 수도 없게 된다.

그래도 명확한 단점이 있는 기술이다.


“그럼 석궁병! 준비해라.”

“진짜 갑니까?”

“진짜 가라! 쏴!”


패거리들이 손에 든 쇠뇌를 일제히 쏘았다. 화살 다발이 내가 있는 영역으로 쏟아진다.


[흐릿해지기]의 단점이 이거다. 실제로 모습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범위기나 눈먼 화살 같은 건 못 피한다. 그러니 여기서는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땅을 박차 위로 솟구쳤다.


부웅.


“이런 미친!”

“어디까지 올라간 거야!”


[경량화]. 그동안 단련해서 말 그대로 바람에 몸이 흔들릴 정도다.

응용하면 가볍게 뛰어올랐다가 체중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걸로 낙하할 수도 있고, 공격 속도를 빠르게 할 수도 있다.


“좋아! 그럼 내가 나가서 싸운다!”


그리고 엘리크가 등장했다. 저쪽도 날 없는 곤봉 들고 왔지만 저놈의 힘을 생각하면 맞으면 난 어디 뼈가 나가고 말 거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은 없다. 애초에 지금 상황이 내가 각오하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와라─!”


엘리크는 전신에서 아우라를 방출했다. 성기사의 기본 기술. 아우라를 두르는 것만으로 신체와 정신의 강인함이 극도로 상승한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냐면 동레벨 도적의 [암습]을 방심한 채로 맞아도 세 대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정도. 진짜 말도 안 되게 단단해지는 거다.


저 정도가 아니면 엘리크와 나는 싸움이 성립도 되지 않는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엘리크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애썼고, 엘리크는 엘리크 나름대로 집중하며 형체를 포착할 수 없는 나의 본질을 포착하려 애썼다.


집중된 의지와 아우라가 섀도를 지우고 내 모습을 드러낸다.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달려오는 엘리크에게 역으로 달려들어 손에 든 곤봉으로 그의 빈틈을 후려친다.


빡!


진심으로 부러지라고 친 건데 맨몸에 맞았는데 고통스러워하는 기색도 없다.

불량배들은 이거 맞으면 아프다고 바로 지면을 뒹굴던데.

참고로 맨몸을 때렸다는 말만 봐도 알겠지만 엘리크는 지금 갑옷도 안 입고 면 셔츠에 바지다.

이 정도가 아니면 곤봉 든 내 공격은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하던가.

진짜 성기사 개사기네. 게임 내 최강의 탱커인 이유가 있다.


부웅!


그리고 엘리크가 쥔 나무 곤봉도 내게 휘둘러진다. 내 거야 단봉에 지나지 않는다면 저건 야구 배트에 가까운 크기와 묵직함.

엘리크는 엘리크 나름대로 이 정도가 아니면 내게 위협적인 공격을 못 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내 실체를 포착한 듯 제대로 날아오는 곤봉에 난 간단히 [회피]로 대처했다.


일단 도적이 회피만큼은 잘하니 이 세 가지를 극한으로 단련하는 건 기본 전제로 깔고 가야 한다.

어떤 공격도 다 회피할 정도의 생존력이 없으면 공격력도 없는 게 도적이기 때문이다.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엘리크와 아무리 공격해도 다 피하는 나의 기묘한 싸움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나와 엘리크의 힘이 다 떨어져서 이제 아무 기술도 못 쓰게 됐을 시점에 우리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식을 취했다.

난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엘리크는 체력이 남았는지 물을 떠왔다.

그리고 서로 소모된 체력과 자원을 회복시킬 겸 둘이서만 자리를 잡은 다음 조촐하게 상자 위에 다과를 늘어놓고 연회를 벌였다.


“냅터. 자네가 처음 나랑 수련을 같이 하겠다고 했을 때는 무슨 미친 소리인가 했는데 실제로 내게도 도움이 되고 있군.”

“그래?”

“그래. 크고 강대한 적이나 많고 예리한 적에게 맞서는 법은 알았지만 아예 손도 발도 못 쓰는 적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첫 경험이었다. 만약 실전에서 자네를 만났다면 난 정말 아무것도 못 했을 거야.”


엄청난 고평가군.


“나도 실전이었으면 너와 싸울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한 번 기습으로 죽이지 못하는 상대는 내가 맞설 수 있는 적이 아니야.”

“그런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간다. 그리고 동료를 부른다.”

“동료를?”


무슨 차마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말하지. 파문당해서 친구가 없나.


“못 하는 게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대처법도 없으면서 끙끙대는 게 미련하고 부끄러운 짓이지. 부를 동료도 없으면 진짜로 도망간다.”


엘리크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냅터. 자네는 내 동료인가?”


나는 그보다도 깊게 고민한다.

사실 이쯤 되면 얘 기술 경험치도 내가 올려주는 셈이고, 엘리크 카탄은 성능도 성능이지만 막상 얘기 해보니 데리고 다니면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편해질 캐릭터긴 하다.

투자한 게 너무 많아서 짬처리하고 버려두기 좀 그렇다. 그러면 원한 사고 나중에 오히려 안 좋아질 것 같거든.

그리고 사실 이제는 스트레스 받으며 하기가 싫어졌다.


“당연하지.”

“당연한 거면 왜 그렇게 고민을 오래 하나.”

“뜻밖이라서 그렇다.”

“만났을 때부터 제안했다만.”

“그때와 지금은 달라.”


그렇게 대답하니 엘리크도 게임 내 모델링으로는 가히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담긴 표정을 보여주었다.

저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소극적이면서 새삼스러운 동의?


“그렇군.”


하더니, 엘리크는 나처럼 대답이 없어졌다. 그러더니 별안간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에 파문당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우라가 내게 떠나지 않았음을 알고 신의 뜻을 어기지 않았음은 확신했지만.”

“······.”

“성기사 때도 동료는 있었지만 결국 믿고 따라온 이들은 없었다. 그나마 연줄로 [신디케이트]에서 도적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자 솔직히 머리가 새하얗게 되더군. 아. 네 직업을 모욕하려는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 엄연한 사실이다.


“그때는 형식적으로 동료 제안을 했지만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널 만나서 행운이었다. 솔직히 도적이라고 해서 돈만 밝히는 쓰레기가 올 줄 알았거든.”


어. 그래. 진짜 낯간지럽긴 하다. 나는 일단 게임 이기려고 이러는 거긴 한데······.


“생각했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너처럼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솔직히 감동이긴 하군. 미약한 감동.

딱 게임에서 동료 캐릭터가 내게 ‘널 믿고 있어. 넌 훌륭한 녀석이야.’라고 말했을 때 느끼는 감동.

덧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감동하라고 말하는 제작자의 의지가 있다.

하지만 빙의된 세상에도 그런 게 있을까.

게임과 비슷한 전개로 이어지는 이 세계. 내가 지면 반복될 것이고 내가 이기면 끝나버릴 이 세계.

내가 이들에게서 느끼는 감동은 그저 아무것도 아닐 뿐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없었다. 계속 그랬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대답할 것도 없었다. 드디어 임계점이 넘은 모양이다.

난 신호를 주고 조용히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엘리크는 쓴웃음을 짓고 갑옷을 갖춰 입었다.


그리고 카탄파의 아지트에 양손검 든 건장한 여검사와 부하들, 그리고 이를 빠득빠득 갈아대는 라텔 상단 난민촌 지부장이 찾아왔다.


“이 카탄파 쓰레기들아! 니들이 가져간 거 다 알아! 당장 우리 돈 내놔!”


파문성기사이자 카탄파 두목 엘리크 카탄이 위풍당당하게 나섰다.

그 뒤에는 그를 음지에서 지원하는 난민 출신 도적 냅터 잭.

가볍게 처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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