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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무법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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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3.12.0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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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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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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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4화. 과정과 결과 4

DUMMY

엘리크 역시 갑옷을 벗고 무기를 손질하면서 말을 걸었다.

줄곧 의문이었다는 투로 말이다.


“도적 기술 중에서 굳이 사람 마음 흔드는 수법에 꽂힌 이유가 있나? 난 자네의 단검과 투척 솜씨가 더 마음에 드는데.”


글쎄.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다. 나도 원래는 이런 것 안 하거든. 기연을 얻어서 이렇게 된 것도 있다만.


게임 내의 피해는 물리 피해와 정신 피해로 구분된다.

물리 피해와 마법 피해가 아니다.

마법으로 불덩이 던져서 적 불태우면 물리 피해다. 그을린 인두로 지져서 고문하면 그거 정신 피해고.


아무튼 도적은 암살도 잘하고 섀도를 통해서 정신 공격도 가능하니 물리+정신 피해를 둘 다 가하는 타입의 대미지 딜러로 육성하는 것도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른바 쌍두형, 아니면 복합형, 고급스럽게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형식의 빌드 말이다. 암살형 도적과 주문형 도적의 합성형이지.

하지만 그 연구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묻혔다.


첫째. 함정 따개형 유틸리티 도적이 너무 좋았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운영법이 거의 연구될 필요성조차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 일단 까놓고 말해서 [신디케이트]의 도적들도 대체로 함정 따개들이야.

둘째. 복합형 딜러를 파티에 넣는다면 굳이 도적을 쓸 이유가 없었다. 일단 성기사부터 복합형 피해를 입힌다. 도적이 다른 딜러들과 차별화가 안 되는 건 아닌데, 말 그대로 굳이?

셋째. 다른 복합형 딜러와는 달리 도적은 물리 암살형 빌드와 정신 침투형 빌드의 방향성과 육성 경로가 완전히 달랐다.

성기사는 아무 생각없이 키워도 자연스럽게 복합형 캐릭터로 성장하지만, 도적은 작정하고 물리형으로도 키우고 주문형으로도 키워서 둘 다 하면 그게 복합형 도적이었다.


게임이란 선택의 미학이다. 선택이란 한정된 자원의 투자와 집중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냥 함정따기와 정찰에만 집중해도 쓸만한 도적, 그게 정 싫다면 암살이나 후방 교란책 하나에만 투자해도 되도 충분히 1인분은 하는데 굳이 암살도 하고 적 교란도 하느라 자원이 두 배로 낭비되는 이상한 육성법을 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어이. 냅터?”

“아. 대답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이유인가?”


난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게 이론상 최강이다.”

“······?”


이론상 최강.

한마디로 현실적이지도 않은 망상에 최강도 아니란 얘기지.

그렇지만 이론만 들으면 사실이다.

도적의 복합형 빌드는 다른 직업의 복합형 빌드와 완전히 다르다.


앞서 말한 대로 다른 직업은 그냥 능력 자체가 복합형이라 키우다보면 자연스럽게 복합형으로 육성되는 거라면, 도적은 그냥 물리 피해를 주는 빌드와 정신 피해를 주는 빌드가 따로따로 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거다.

다시 말해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2배라면, 그래서 양쪽 기술 모두를 전문가 수준으로 단련할 수 있다면,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론상 도적은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강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막상 생각해 보니 이런 방식의 육성이 가능하면 딜 탱 힐 근딜 원딜 주문 다 되는 드루이드의 잠재력이 더 높네.

도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또 1패다.


엘리크는 내 대답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물을 수는 없었다.

왜냐면 멀리서 백여 명의 군세가 진군해오는 게 느껴졌거든. 엘리크도 나도 긴장하며 다가오는 것을 봤다.

정규군이다. 동네 불량배들과는 질이 다른 백여 명의 훈련된 병사.

그리고 다가오는 다섯 명의 각성자는 역시 갓 각성한 나와 파문성기사 엘리크보다 레벨이 1높은 무도가 둘. 같은 레벨의 마법사, 사제. 드루이드. 이렇게 다섯. 말하자면 이곳의 ‘기사’들이다.

그 뒤에서 말을 타고 갑주를 입은 판금 기사가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그래. 솔직히 화려한 갑옷은 아니지. 말도 명마는 아니고.

하지만 갑옷도, 명마도, 차고 있는 검도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무기는 아니다. 부자,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이 없으면 갖출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해징턴 남작과 그 기사들, 그의 사병들이 이쪽을 향해 진군해오고 있었다.


“우읏.”

“형님?”


난민들의 동요가 심하다. 카탄파가 이곳을 제패했다고 선언하고 자시고, 실질적으로 해징턴 시의 주인은 해징턴 남작이다. 난민들은 그가 허락한 선에서만 날뛸 뿐이지.

저놈들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 둘뿐만 아니라 난민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다.


근데, 말은 그렇게 해도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뭐······. 초등학교 선생님이 마음만 먹으면 물론 자기 반의 초등학생을 죽일 수 있다.

근데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해징턴 남작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엘리크 카탄. 오랜만이군. 그리고 거기 숨어 있는 도적은 초면이구만.”


중년의 남작은 근엄하면서 예리한 눈으로 나와 엘리크를 훑었다.

[은신]한 나를 단숨에 꿰뚫어보다니 틀림없군. 남작 아니랄까봐 레벨이 좀 높다. 그래봤자 변방 남작 정도면 레벨 3이겠다만······.

이 게임 만렙이 고작 10인데다가 레벨 1차이마다 천지 차이니까 높은 건 맞긴 하지.


엘리크는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우리가 아직 부수지 않은 카오스 오브를 그에게 진상하듯 보여주었다.


“해징턴 남작님. 제보하신 대로 난민촌에 있는 혼돈의 세력을 축출했습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자 해징턴 남작이 방긋 웃었다. 근엄함 어디 갔어. 기사들 역시 활짝 웃었다.

저게 통치자의 정상적인 반응이지. 자기 영토에 어디 있는지도 모를 반란분자 소탕해주면 기쁘지 않겠냐?


“훌륭하다! 엘리크 카탄! 이전 날 그대가 파문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했는데, 설마 [카테드랄]의 지시에 굴하지 않고 그 증거를 찾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이 도시는 살았어!”


수상한 흑막처럼 말하고 있지 않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투다. 그는 말에서 내려서는 정중히 다가와 엘리크와 악수하면서 부둥켜안기까지 했다.


“자네가 행한 공이 있으니 [카테드랄]에 보고하고 파문이란 오명을 반드시 씻어주겠네.”


보상도 더 해줄 것 같은 눈치다. 사실 해주고 싶겠지. 파문당한 성기사를 회유해서 자기 기사로 만들면 아주 든든할 테니까.

인재를 푸대접하는 병신은 남작을 못한다. 능력 없으며 싸가지도 없고 지능도 없는 귀족은 말 그대로 소설에서나 존재하는 거지.


“돌아가면 성에서 연회를 열도록 하지. 자네의 업적은 칭송받아야 마땅해.”


엘리크도 바보가 아니라 그의 속내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우선 순위는 남작에게 신뢰받는 것보단, 의외로 나였던 것 같다.


“예. 그런데 남작님. 여기 있는 냅터 잭은 난민으로 저를 도와 혼돈의 세력을 축출한 [신디케이트]의 도적입니다. 보상이 있다면 이 자에게도 보상을 내릴 수 없겠습니까.”


해징턴 남작은 아직도 [은신]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훈련할 겸 [은신]을 풀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집중해서 노려보는 것만으로 [은신]이 완전히 까발려져서 섀도가 흩어지고 말았다.


“조금 무례하군.”

“섀도를 각성한 이후 버릇이요.”

“동료의 죄는 제가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날 바라보는 해징턴 남작의 표정은 그냥 평범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답변 자체는 긍정적이었다.


“물론. 마땅히 그리해야지. 분명 자네 혼자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힘이 큰 도움이 됐을 터.”


얘기가 잘 통하는군. 이제 해징턴 시는 정리됐고, 덕분에 난민들 처지도 호전됐다.

이제 우리 둘은 혼돈의 세력을 막을 겸 동료를 찾아 돌아다니면 된다만.


아니나 다를까. 해징턴 남작의 얼굴이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지만 원칙은 지켜야 한다. 내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내가 누가 법도를 지키겠나?”

“?”


당황하는 엘리크. 나는 놀라지 않았다. 진짜로 제대로 된 통치자라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수배범 냅터 잭을 체포해서 지하 감옥에 처넣어라!”


나 수배범이다. 보상을 주고 자시고 제국에서 수배를 걸었는데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안 잡으면 그건 남작의 체면이 우습게 된다.


“자, 잠시만. 남작님?”

“저자에 대한 처분은 일단 우리끼리 연회를 즐기고 난 다음 하지! 자! 자네도 날 어서 따라오게!”


엘리크가 황망해하며 남작에게 따졌지만 남작은 고레벨 전사답게 엘리크를 그냥 붙잡아 끌고 갔고, 기사들은 날 끌고 갔다.


그중 여자 드루이드가 날 보고 미소지었다.


“저항 안 해요?”

“처벌 안 할 거 아닌가.”

“저기 성기사보단 눈치 좋네요. 그래도 동료를 많이 아끼나봐요.”

“그러게. 나도 저 친구가 저렇게 날 아낄 줄은 몰랐지.”


포박조차도 시늉이었다. 밧줄은 헐겁고 주문으로 된 속박도 없어, 심지어 무기도 안 뺏어. 이게 감금이냐?

기사들은 느긋하게 날 연행했다. 위풍당당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어서 이건 연행이라기보단 일종의 개선식과도 같았다. 백여 명의 병사들이 호위하는 개선식.


“잠시만 기다려요. 연회 음식도 곧 가져다 줄 테니까.”


어쨌든 난 지하 감옥으로 처박혔다. 지하 감옥이라는 게 ‘던전’의 번역이란 걸 생각하면 약간 기분이 미묘하군. 영어 원문판에서는 어떻게 되더라?


아무튼 그래서 난 완벽히 형식적으로 깊은 감옥에 갇혔다. 안에서도 족쇄 따위는 처박히지 않았다. 냄새는 좀 나는데 어쩔 수 없지. 수배범인 냅터에게는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 갇혀 있었을까. 엘리크가 지하 감옥으로 내려왔다.


“엘리크. 남작이 이제 나오라고 하더냐?”


내 동료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아니. 나도 붙잡혔다. 하지만 동료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나만 빠져나가느니 차라리 갇히는 게 낫다!”


나는 내 이마를 진심으로 쳤다.


“새꺄······. 지금 남작이 날 대충 가두는 시늉만 하는 거잖냐······.”

“어······.”


잠시 뒤, 기사들이 배꼽 빠져라 웃으면서 하인들과 함께 원래 그를 위해 준비되었어야 할 연회 음식을 가지고 내려왔다. 더러운 지하 감옥의 냄새도 쫓을 겸 향초를 가져온 것은 덤이었다.

이것만이면 우리를 위한 만찬이라고 생각할 텐데, 난 그들 중 일부가 음식을 가지고 지하 감옥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걸 확인했다.


흐음.


엘리크는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선 난처한 듯 진땀을 흘렸다.


“윽. 전혀 몰랐다.”

“어떻게 몰랐지.”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수배범이라고 잡아가는데 어떻게 너는 그렇게 멀쩡하냐?”

“됐고, 밥이나 먹지. 그래도 동료라고 지하 감옥에서 사식도 같이 먹어주니 좋군.”


그리고 일단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다리 통구이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빠바바바밤! 빰! 빰! 빠아아암~!


우렁찬 팡파레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여기 와서 쓰레기 같은 음식만 먹었던 내 입이 너무나도 감동적인 나머지 효과음을 낸 건 아니었다.

내 힘의 원천인 섀도. 마음속 어둠에서 기반한다는 그 힘이 체내에서 넘쳐흘러 주위에 전염된다.

뻗은 섀도가 지하 감옥을 곰팡이라도 핀 것처럼 얼룩져서는 이 방을 음침하게 가뒀다.

한편, 엘리크의 아우라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수준을 넘어서 옅지만 뚜렷한 광채를 띄었다.


“냅터. 너!”

“나도 알아. 너도 축하한다.”


해징턴 시 난민 문제를 해결한 결과로 우리 둘은 레벨이 올랐다.

그래. 죽어라 마음에도 없는 난민들 구한 이유가 이거지. 퀘스트를 통한 레벨 업.

우린 지금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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