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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무법자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3.12.01 09:37
최근연재일 :
2024.03.18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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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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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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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5화. 과정과 결과 5

DUMMY

레벨은 세계관 설정상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상대 강함을 보고 그 사람이 몇 레벨이겠거니 측정하는 게 아니라.

레벨을 측정해서 대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측정하는 거다.

엘리크는 스스로 감격한 듯 연신 감탄을 토했다.


“성기사 생활 중에 레벨이 상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군.”


레벨을 진짜로 레벨로 말하니 미묘하군. 의역과 음차의 기준을 모르겠다. [격]이라든가 하는 표현도 있잖아.

나야 레벨이야 게임에서도 빙의된 이후로도 딸깍딸깍 조작하면서 수천 번은 올랐지만 엘리크는 흥분했는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열변을 토했다.


“그렇게 넘어갈 얘기가 아니야! 자네는 각성한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래.”

“이건 우리가 한 일이 실제로 세상을 바꿨으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큰 증거······.”


알아. 안다고. 레벨 오르면 좋은 것도 알고 레벨 오르면 엄청 강해지는 것도 알아. 그것도 만렙이 고작 10밖에 없는 게임이니까 1레벨 오른 것도 대단히 큰 변화긴 해.

그런데 이 게임 레벨, 솔직히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아. 레벨, 기술 경험치, 장비, 동료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걸 고르라면 단연코 레벨이야.

왜냐면 레벨은 게임을 하다보면 스토리 깨다보니 진행에 따라서 그냥 오르거든.


설정상으로는 레벨은 세계의 판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던가.

우리 둘은 해징턴 시의 타락을 막아내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1레벨 수준은 넘은 거다. 10레벨이면 마신을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고.

캐릭터의 성장을 나타내는 다른 요소인 경험치는 100% 노력으로만 쌓이고, 장비는 그걸 얻을 기연과 재산이 없으면 아예 얻을 수가 없고, 좋은 동료는 거의 80%는 운빨이다.

그러니까 솔직히 이렇게 기뻐할 건 아닌 거지. 레벨이야 진짜 아무 생각 없이 해도 오르긴 오르니까.


“냅터. 진짜 기뻐하지 않는 것 같군? 무슨 일이라도 있나?”

“혼돈마신을 잡으러 가려면 멀었잖나.”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아직 일이 안 끝났다.”

“음?”


오히려 지금 상황이 되니까 더 확실해진 거다.


“처음에 돌았던 던전 기억하나? 흉물밖에 없었고 코어는 단단히 봉인되어 있어서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던 던전.”

“그래. 아!”


말하자마자 깨닫는 걸 보니 이 친구도 머리가 나쁘진 않다.


“짐작이지만 해징턴 시의 타락자는 두 부류다. 하나는 이녹에게 접근한 놈들.”


엘리크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도시 하수도의 던전에서 모종의 작업을 한 타락자. 이렇게 둘이군.”

“그래.”


이 게임 설정에서 거의 항상 지켜지는 게 있다.

타락자들의 조직은 사이가 나쁘다.

이유는 모르겠다. 타락자들이 연계까지 잘 되면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그래서 타락자 조직이 뒤져보면 두세 개씩 나오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짐작하는 건데 한 쪽은 아마도 난민 구역 쪽에서 뭔가를 하고 싶었겠지. 제국 변방 아닌가.”

“그러면 다른 쪽은 거꾸로 해징턴의 시민 구역에서 작업을 한 거군.”

“그래. 하지만 도중에 물러났거나, 아니면 잠시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가 빈집털이를 했다. 짐작이지만 거의 확실해······. 해징턴 남작은 난민 구역을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어. 심지어 난민 구역에서 접촉한 타락자란 놈들은 남작의 군대로도 손쉽게 쓰러트릴 정도였다.”

“그러니 남작이 본래 파악한 타락자는 우리가 처치한 이녹 쪽이 아닌 거라는 결론이군. 좋다. 이제부터 남작이 어떤 경로로 그 타락자를 알아냈는지 조사해야겠군.”


그렇겠지. 그래도 우리에게 포상한 이유는 단순히 포섭 때문이고.

동료가 의욕을 내는 건 좋지만, 난 엘리크에게 당장 할 얘기가 있었다. 갓 레벨이 오른 지금 재빨리 말이다.


“엘리크. 내가 알기로는 아우라는 하급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신념’을 담아서 아군을 북돋고 적을 위압한다고 들었다.”

“잘 알고 있군? 맞아. 나는 ‘헌신’이나 ‘수호’의 기치가 마음에 드는데······.”

“그거 말고 다른 신념으로 생각해 줄 수 있겠나?”


엘리크는 그 말을 듣고 멍청한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내가 굳이 이걸 내 입으로 해야겠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신념이라는 건 그렇게 마음대로 정해지는 게 아니다만?”

“아니······.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이 다양하니 지키고 싶은 신념이라는 것의 방향성도 다양하지 않은가. 강적에게 당당히 맞서서 아군을 ‘지킨다’와 약한 아군을 ‘보호한다’는 다른 거다.”

“흠······. 그건 그렇지. 그런데 굳이 네가 내 신념을 지정할 이유가 있는 거냐?”


어. 있어.

뭐냐면 성기사의 신념은 한 번 정하면 못 바꾼다. 말 그대로 신념이니까. 신념을 멋대로 바꾸는 놈이 성기사냐? 도적이지.

그런데 여기서 엘리크가 뜬금없이 ‘나는 이제 힐러형 성기사 할래’하면 우리 조합이 말도 안 된다.

그리고 신념도 잘 골라야 한다.

나랑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골랐다가 정작 엘리크랑 성향이 안 맞아서 그 신념대로 못 살면 약해진다. 아우라는 전투 실전경험이 아니라 자기 삶의 일관된 자세로 쌓는 기이한 특징이 있거든.

그렇지만 이걸 그대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


“네게 가장 어울리는 신념은 헌신이나 수호가 아니다.”

“그런가? 그러면 뭐지?”


나는 적당히 약을 팔았다.


“신의(信義). 너는 처음에 자신이 배신당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날 믿었다. 그리고 모든 약속을 지켰으며, 홀로 고립될지언정 나를 끝까지 신뢰하며 버텨냈지. 그리고 지금 나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 내가 볼 때 너를 상징하는 미덕은 ‘헌신’이나 ‘수호’가 아니라 ‘신의’. 그 자체다.”


대놓고 ‘아군에게 모든 걸 맡긴다.’컨셉의 성기사가 택하는 신념이다.

신의의 아우라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기술은 아군에 대한 강화 효과가 더욱 커지고, 적을 쓰러트리진 못해도 약화하는 효과가 있어서 아군이 그것을 마무리하기 좋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효과는 그저 맞을 때 오래 버틸 수 있게 하는 탱킹력 버프와 미칠듯한 도발 성능뿐.

딜은 대놓고 내가 다 할 테니 엘리크에겐 이게 딱이야.


나름대로 효율적인 방식을 고른 것인데. 엘리크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네 말이 맞군. 냅터. 나는 남들을 돕는 것도, 지키는 것도 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세상과 사람을 믿고 싶다.”

“······.”

“나는 신의의 성기사다. 동료와의 의리를 절대 먼저 저버리지 않고, 어떤 자의 말이라도 한 번은 믿고 그것으로 배신당할지언정 상심하지 않고 이 가치를 지키겠다 맹세한다.”


그 선언에 엘리크의 아우라의 질감이 바뀌었다.

황금빛인 건 같지만 뭐라고 할까. 말 그대로 그 빛에서 나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고 할지. 이 친구가 내게 기회를 만들어 줄 것 같은 깊은 의지가 느껴진다.


“됐군. 그럼 이제 이 감옥을 나가지.”

“뭐?”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섀도를 뻗어 감옥문을 따고 있자 엘리크가 당황하며 나를 만류했다.


“냅터. 여길 그렇게 급하게 나갈 이유가 있나?”

“그래. 봤는지 모르겠지만 지하감옥 안쪽에 귀빈이 있어. 우리에게 가져온 음식의 일부를 저쪽으로 가져가더군.”

“어? 진짜냐?”

“네놈은 신의의 성기사가 되자마자 동료를 의심하는 거냐.”

“······아니 그건 아니다만.”

“그러니 가서 확인해보고 싶다. 누구기에 우리와 같은 대접을 받는지 말이다.”


엘리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남작님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겠나? 크게 보상해 주신다고도 하셨고.”

“엘리크. 너 애냐? 남작의 뻔한 사탕발림을 그대로 믿어?”

“아니? 응?? 야???”


철컥.


지하감옥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크가 뭐라고 하건 바깥으로 나왔지만 그는 팔짱을 끼곤 날 바라봤을 뿐이다.


“그래도 난 안 가. 남작님에게 적어도 말이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엘리크는 날 따라오지 않았지만 신념에 의해서 남는 거지 배신한 건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그럼 나는 감옥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전해라.”

“음? 알겠다.”


내가 진짜로 감옥 문을 열고 나가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간수가 화들짝 놀라서 다가온다. 그래도 무례하게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대단히 정중한 투였다.


“저기 도적님. 아무리 그래도 감옥인데 그렇게 멋대로 나가면 저희 체면···어버버.”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가볍게 [마음 잡기]로 실신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윽고 감옥 바깥을 지키는 간수들에게도 [은신]으로 은밀하게 접근해 한 번씩 [마음 잡기]로 건드린 다음 나가진 않고 그냥 돌아왔다.


“이 처리는 나보고 하라는 거지? 하.”


엘리크는 그리고 혀를 차고는 감옥 밖으로 나가 쓰러진 이들을 상냥하게 모시며 아우라로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퍼뜩 정신을 차려서 일어난다.


“어, 어? 방금 뭔가가.”

“미안하다. 그 친구가 갇혀 있는 게 싫다고 나가버렸군.”

“예에?!”

“걱정하지 마라. 나는 남아 있을 테니. 죄가 있다면 내가 받겠다.”


‘정직’이 신념이 아니라 ‘신의’가 신념이다. 엘리크는 친구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은 할 수 있었다.

잠시 뒤 도적이 탈출해 버렸다는 말에 날 데려온 해징턴의 드루이드 기사가 허겁지겁 내려왔지만 말 그대로 탈출만 했을 뿐이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도적이라 갇혀 있으면 직성이 안 풀리겠지. 돌아오는 건 맞아?”

“그럴 겁니다. 약속했으니.”

“좋아. 그러면 일단 너는 남작님에게 가도록 하지. 이제 굳이 이런 지하 감옥에 남을 필요도 없으니까.”


드루이드은 내가 숨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남작은 엘리크를 꼬드겨서 자기 기사로 삼으려는 걸 것이다. 엘리크에겐 그럴 만한 능력도 자격도 있으니까.


그리고 간수, 기사, 엘리크 모두가 나간 지하감옥, 진짜로 갇혀 있을 죄수들과 나밖에 남지 않았다.

감옥 문을 따봤자 이미 같은 문을 따본 거니 경험치는 안 오를 테고, 다른 죄수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싫어서 난 감옥 가장 깊은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기이한 방이었다. 최근에 증축한 듯 계단도 새것, 외벽도 새것. 아예 지하감옥의 땅을 파서 새로운 지하감옥을 만든 듯한 모양새였다.

은밀히 내려가기 전에 함정 확인을 했다. 믿을 수가 없지만 있었다. 감옥으로 가는 길에 말이다.

위치만 알면 피할 수 있는 간단한 함정이라 부수는 대신, 일단 해체한 다음 다시 조립하면서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육중한 감옥문은 천만다행으로 마법이 아니라 기계식 자물쇠. 복잡하긴 하지만 오래 투자하면 못 딸 것도 없다.

나는 침착하게 내부에 섀도를 불어넣고 그림자와 동화되어 조작했다. 이전에 받아두었던 기계공학 서적이 꽤 도움이 됐다.

그래도 한참을 끙끙대야만 했지만.


자. 안에 들어 있는 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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