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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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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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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9
글자수 :
71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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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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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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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1쪽

피곤 때문이라고 해두지

DUMMY

“할 말이 끝났다면 난 돌아가겠다.”

“아...”


말머리를 돌리고 산적 토벌단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헤리오스를 붙잡는 한숨. 그 소리를 들은 헤리오스의 입가에는 아주 아주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목구멍까지 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이젠 자작은 뱉어내지 못했다. 지금 욕을 한다면 전쟁이다. 하지만 지금 저 악마와 싸워 이길 자신은 없었다. 이렇게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했었다.


그리고 헤리오스의 철군은 매우 또한 아주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아직도 나의 땅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들은 현재 영주성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마을 근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빨리 가도록 독촉을 해!”


영지 곳곳에서 끌어모은 병사들이 영주성 부근에 머물면서 여전히 군량을 소비하고 있다. 기사들 역시 병사들을 관리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상황.

한 달만 더 있으면 영주성에 있는 식량도 모두 동이 난다.

이 땅을 손에 넣기 위해 벤치노프, 그라흐 두 형을 죽이고, 동생인 베르너 또한 눈 앞에서 목을 베었다.

그렇게 손에 넣은 이 땅이 지금 엉망이 되고 있다.


“북쪽에서 군사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 기사단장은 그들이 영주성까지 버리고 모두 도망쳤다고 했었다. 그런데 군사적인 움직임이라니?

영주성이 무너지면 영지전은 끝난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제대로 된 정보를 이야기 해!”


북쪽의 행정관이 가져온 소식에 당황감이 분노로 바뀌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비슈마르 아이젠의 기세에 행정관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몸을 움츠리고 말했다.


“급히 온 소식이라 자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몇 남지 않은 병사 중 하나가 마르드뉴브가의 깃발을 보았다고 전했습니다.”

“그쪽으로 군대를... 이런 시발...!”


북쪽으로 다시 군을 움직이면 헤리오스가 무슨 짓을 하던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최대한 짜내! 징집병을 늘려서 움직일 수 있는 남자는 모두 북쪽으로 올려!”

“하지만...”


행정관이 난처하게 무언가를 말을 하려 하였지만 서슬 퍼런 아이젠 자작의 얼굴에 그냥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 행정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도 다 도망가고 이제는 움직이는 것이 힘든 노인들 밖에 없습니다.’


행정관이 징집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직접 자신이 기사들을 이끌고 압박을 넣을 수밖에...


“단장은 나와 함께 벨로시아 공작을 찾아간다. 기사들을 모두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그 날 저녁 즈음 병사들의 걸음으로는 하루 거리지만 말을 타고는 반나절 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주둔하고 있는 헤리오스의 군대를 보며 아이젠 자작이 접근하였다.

그러자 경계를 서던 병사들과 기사들 몇몇이 창과 활, 검을 뽑아들고 경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역시...! 벨로시아 공작은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기사들과 병사들이 이리 경계를 하다니...’


자신의 짐작에 옳다는 것에 더욱 씁쓸함을 느끼며 거리를 두고 서서 소리쳤다.


“난 이 땅의 주인이며, 조상부터 내려온 아이젠의 성을 이은 영주 비슈마르 아이젠이다. 벨로시아의 공작은 이 곳에서 조상부터 지켜오고, 대대로 번성케 한 나의 땅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이유를 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지만 그 뒤의 말을 그냥 삼키고 말았다. 솔직히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고, 이긴다고 해도 많은 손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천천히 말을 타고 나오는 잘 생긴 백금발의 헤리오스가 느긋하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공작. 내 땅에서 나가겠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그랬지.”


살짝 거만해진 말투에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참았다.


“도대체 지금까지 나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뭐요?”

“음... 글쎄... 뭐랄까...?”


대답도 속 터지게 바로 하지도 않는다.


“그래... 피곤 때문이라고 해두지.”

“피곤? 피고온?”

“그렇지. 간도 지쳤고...”


어제 몰래 찾아왔다가 돌아 간 카밀레아와 술을 한잔 하였다.


“허리도 그렇고 몸에 힘이 쭈욱 빠져서...”


결국 둘은 천막에서 날이 셀 때까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조금 더 쉬었다가 가려고 생각 중이지만...”

“중이지만...?”

“주인이 이렇게 가라고 타박하고 적대적이니 어쩔 수 없이 가야겠지.”


헤리오스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귀족인 상대를 매우 모욕적으로 대하고 영지에서 내쫓은 것 같은 모양이 되어 버린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내 영지에서 떠나겠다고 한지가 벌써 닷새가 지났는데 아직까지 영주성 부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분명 난 적대행위를 한 적도 없고, 나의 군대는 상단의 물자를 호위하여 마르드뉴브로 가려던 것까지 포기한 채 큰 손해를 감수하고 되돌아 가는 중이거늘 오히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 영지의 주인에 왕의 토벌단을 이용해 상단의 곡식을 수송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왕의 명령으로 산적 토벌을 하는 군대가 식량을 옮기는 것이 말이 되오?”

“어. 돼. 너희들이 제대로 왕에게 세금을 바쳤어 봐. 그럼 국왕이 쓸 돈이 모자라지 않았을거야. 그래서 이렇게 돈 벌이라도 하는 거지.”

“그런 것을 어찌 영주가...”

“그거야 내가 우리 영지에서 가장 강하니까.”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곡식이 없다면 헤리오스가 돌아가지 않을까? 마침 영지에 식량이 부족하기도 했으니


“그렇다면 그 곡식들을 내가 다 사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공작도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소.”

“음... 그건 곤란해.”

“어찌 그렇소?”

“상단의 채무도 갚지 않는 영지에게 무엇을 믿고 곡식을 팔지? 또 떼어 먹으려고?”

“바로 금화를 지불하겠소.”

“그럼 밀 한 포대에 50골드.”


3골드에 거래되던 밀 한포대를 50골드를 부르다니? 헤리오스의 말에 아이젠 자작이 버럭 화를 냈다.


“3골드에 거래되는 밀을 50골드나 달라고? 지금... 무언가를 잘못 아는 것 아니오?”


제 정신이냐는 말을 꾹 누르고 돌려서 이야기 했다.


“그거야 평소 거래하던 밀이고, 지금 여기는 식량이 매우 부족한 것 같던데... 싫으면 말고.”

“으드득...!”

“아... 그리고 우리가 가져 온 밀은 모두 1000포대야. 보리는 500포대, 옥수수는 400포대, 콩은 200포대. 모두 50골드 씩. 모두 사주는 조건이라면 넘기지. 그리고 모두 넘기는 즉시 금화로 지금해줘. 어음은 절대 사절이고... 이유는 알지?”


이건 개소리다. 사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는 소리.


“꼭 후회할 거요...”


결국 헤리오스에게 바로 떠난다는 말도 듣지 못하고 식량으로 조롱까지 당하고 돌아온 비슈마르 아이젠은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헤리오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병사들의 무기는 번쩍였고, 기사들의 갑옷과 말은 튼튼해보였다. 거기다 남의 땅에서 저리 여유있는 헤리오스의 모습을 보니 분명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이 들어 싸움을 걸지도 못했고, 모욕을 당했다고 사과를 요구하지도 못했다.


* * *


결국 할리 남작은 뒤이어 달려온 병사들 약 일천명을 데리고 에스워프 자작령으로 남하하기 시작했고, 에스워프 자작 역시 부러진 왼팔을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고정시킨 모습으로 삼천의 병사들을 이끌며 방어에 나섰다.

헤리오스에 의해 기사단이 전멸한 상태인지라 병사들을 데리고만 싸울 수 밖에 없지만 아무리 기사가 강하다고 해도 50명의 기사가 삼천의 병사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두 영지의 싸움은 영지의 경계부근의 평원에서 팽팽하게 대치가 되는 상태에서 고착되고 있었다.


“기사단 거창!”


할리 남작은 병사의 수는 적었지만 50의 말을 탄 기사단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노력했고,


“창병 앞으로! 벽을 만들어! 기사단의 돌격을 막아내면 바로 승리다!”


에스워프 자작은 세배나 많은 병력으로 수비 위주로 굳건하게 지키며 기사단의 기동성을 무효화 시키면서 난전으로 가기 위해 전술을 진행시켰다.


“이런 죽일 놈...!”


에스워프 자작령으로 자신의 영지민들이 대거 탈출하는 것이 멈춰지지 않아 징집병의 수가 터무니 없이 적어 할리 남작은 상대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고,


“그 악마 같은 새끼가...”


자신의 기사들을 모두 제거되어 이 쉬운 싸움이 어려워진 에스워프 자작은 그 원흉인 헤리오스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이렇게 마르드뉴브, 아이젠, 할리, 에스워프 네 곳에서 싸움이 일자 주변의 영지들 역시 이 상황에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곳이 의외로 카밀레아 상단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의 취급 품목은 귀족들의 사치품과 각종 무기류들 뿐 아니라 평민들에게 파는 식료품과 의류, 가축, 심지어 각 영지의 특산품 같은 것을 모두 취급하며 급성장하였는데, 이는 헤리오스가 처음에 만든 귀족들의 정력제와 귀부인들에게 팔아 넘기던 화장품 및 미용기구들에서 남은 이윤이 그 밑바탕이 되었으니 카밀레아 상단을 키워준 것은 바로 영지의 귀족들이었던 셈이다.

상업도 상업이지만 유통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헤리오스는 오크들에게 말을 최대한 얻어내어 그것을 전투마로 쓰는 것이 아닌 상단의 유통망 강화에 쏟아부었고, 단시간 내에 카밀레아 상단은 왕국 전역을 장악하는 유통망을 형성하여, 타영지에서 타영지로 물건을 수송해주고 돈을 받는 전생의 표국과 같은 사업까지 확장하였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정보는 왕국내에서 가장 빠른 것이었고, 또한 가장 정확한 것이었는데, 이 정보의 취급과 처리는 헤리오스의 유모로 있던 나르샤가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나르샤는 헤리오스와 라이비아 공주, 카밀레아의 계획에 따라 정보를 왕국의 곳곳에 약간의 변형과 손질을 거쳐 제공하였고, 정보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귀족들은 헤리오스들의 계획이 말려들기 시작했다.


할리 남작과 에스워프 자작의 전쟁이 길어지자 유리켈론 자작령은 에스워프 자작령을 도와 할리 남작령을 공격한다고 선언하였고, 휴머스 남작령과 메이안 남작령은 할리 남작령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난민의 이동으로 고생을 하던 홀티엔 남작령과 리카도 남작령은 아이젠 자작령이 스스로 영지민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군대를 아이젠 자작령 부근으로 이동시켜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난민들을 따로 모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즉 왕국의 절반 가까이가 군사적 행동을 하자, 서부와 중부의 맹주로 군림하던 쟈이네크 후작과 슬로안 후작은 당황하였고, 이내 각 귀족들에게 싸움을 중재하겠다는 의견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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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그럼 돌아가지 뭐 +3 22.03.17 456 15 13쪽
147 아주 좋은 생각이야 +3 22.03.17 428 16 11쪽
146 그 역시 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3 22.03.14 498 18 10쪽
145 전쟁은 돈지랄이야 +3 22.03.12 561 16 15쪽
144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7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6 15 10쪽
142 증명해 봐 +3 22.03.09 557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5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2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138 어딜 가 +4 22.01.15 994 34 12쪽
137 그냥 여기다 묻고 갈까 +4 22.01.11 1,018 30 13쪽
136 니들... 미쳤냐 +3 22.01.09 1,039 32 11쪽
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4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7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131 그거 다 필요한 거라니까 +2 21.12.27 1,328 33 11쪽
130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2 21.12.25 1,346 36 11쪽
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2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7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6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39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8 41 10쪽
123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3 21.11.28 1,610 36 11쪽
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3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5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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