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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005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12.31 20:29
조회
1,136
추천
34
글자
12쪽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DUMMY

숲 안쪽으로 들어간 헤리오스를 우왕좌왕하며 우르르 몰려서 따라간 산적들.

헤리오스의 뒤를 따라가는 그들을 보며 제이크가 혀를 찼다.


“저런 어수룩한 녀석들이 어떻게 산적을 하겠다고...”

“그러게... 이런 어리석은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몸이 고생하는 지도 모르고 말이야.”


퍽퍽!


이미 키사에게 멱살을 잡힌 채 얻어맞는 제이크는 그저 그녀의 주먹에 얼굴을 맡길 뿐이었다.


숲으로 어느 정도 걸어들어가서는 주위를 쓱 둘러 본 헤리오스가 품 속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뒤따라 가던 산적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구부정한 노인이 손에 들린 번쩍이는 단검을 보고 바로 바닥에 엎드린다.


“제가... 촌... 아니 두목입니다. 부디 저 하나의 목숨으로만...”


그리고 번쩍이는 빛과 함께 헤리오스의 손에 들린 단검이 사라졌다.


“으아아아!”

“꺄아아아!”

“아아아악!”


엎드리지 않고 벌벌 떨던 나머지 인원이 헤리오스의 손이 움직이자 바로 비명을 질렀지만 엎드린 남자는 여전히 비굴하고 구차한 모습으로 눈 앞의 젊은 귀족에게 자비를 구할 뿐이었다.


“부디... 자비를...”


하지만 날아간 단검이 도착한 곳에서는 쿵 소리가 나며 무언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들의 오른쪽 수풀을 보자 제법 커다란 사슴 한 마리가 미간에 단검이 꽂힌 채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아... 저...”

“언제... 저기에...”


그저 사슴만 바라보는 그들에게 헤리오스가 냉랭하게 말한다.


“이거 먹고 그냥 가라.”


멍해져서는 눈 앞의 귀족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가 막상 이 젊은 귀족이 사슴의 머리에서 단검을 뽑아 근처 풀잎에 피를 닦아내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엎드려 그의 자비에 감사를 표하며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였다.


사슴은 깔끔하게 사냥이 되어 가죽을 잘 벗겨 팔면 어느 정도의 여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고기와 뼈를 담아 계속 끓여서 먹으면 상하는 것도 최대한 막으며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빨리 가. 어차피 이거 다 먹고 나면 또 산적질 하겠지? 그 때는 분명 다 죽을거야.”


비참한 현실을 상기시켜주는 헤리오스의 말에 눈 앞의 식사거리를 보고도 이들의 감동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거 먹으면 대충 일주일까지는 버티겠지? 그 후에는 어쩔건데? 나 말고 다른 녀석들은 너희들 손가락부터 하나 씩 하나 씩 잘라가며 귀족을 우습게 한 죄를 영혼에 새겨줄거야. 여자가 있다면 조금 더 괴롭다가 죽겠지.”


“흐흐흐흑!”

“으흐흐흑....”

“어흑...”


무리 중에 어설프게 남자의 옷을 입고 있던 여자들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또한 앳되보이는 남자 역시 온 몸을 벌벌 떨었다.


“너희 애들도 있다면서? 걔들은 분명 제일 먼저 죽을거야. 못 먹고 제대로 못자고 씻지도 못하면 병에 걸려서 죽는 순간까지 피를 토하다가... 가는거지.”


헤리오스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더 이상 눈 앞에 생긴 먹을 거리에 기뻐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쩔거냐? 이대로 죽을거냐? 어차피 영지로 돌아가도 너희들은 영주에게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노예가 되거나 노역에 처해져서 죽을 때까지 땅 속에서 삽질만 하겠지.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헤리오스가 가만히 울면서 떨고 있는 조금 전은 산적이었고, 이제는 겁에 질린 노약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이들의 귀는 헤리오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기다리느라 숨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너희들이 살 방법이 있다.”


이 말에 그들의 귀가 열리고 팔과 다리 그리고 목에도, 눈에도 힘이들어가며 헤리오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동부로 가라. 그럼 살 수 있지.”


그 말에 사람들의 머리가 다시 숙여졌고, 노인은 억울한 눈으로 헤리오스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괴물들이 나오고, 오크들이 항시 쳐들어오는 곳에서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거라고?”


그들의 입에서 나올 말을 이 젊은 귀족이 먼저 말한다.


“확실한가? 너희들이 직접 확인 해 보았나? 그 말을 한 자들이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노인이 힘겹게 목과 입에 힘을 쥐어 짜 겨우 헤리오스에게 목소리를 내었다.


“말해라.”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가 증명했습니다. 괴물들이 나타나 모두 잡아 먹히고 자신은 도망쳐왔다고...”


노인의 대답을 들은 헤리오스가 크게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고, 멍청하고, 나약하다. 그리고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구나.”


젊은 귀족의 지탄에 노인과 사람들은 그저 헤리오스를 겁에 질린 얼굴로 훔쳐보고만 있었다.


“잘 들어라. 네가 가장 나이가 많으니 가장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겠지. 전쟁에서 수배에 이르는 군대에 괴물을 데려다가 싸운 곳은 과연 괴물을 훈련시켜서 다스리는 곳이겠느냐? 아니면 항상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시달리는 곳이겠느냐?”

“아...!”

“또한 그 많은 군대를 부숴버리는 괴물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병사들과 기사들은 괴물보다 강하겠느냐? 항상 괴물을 보며 두려워하겠느냐?”

“그것은...”

“그런 괴물도 조종하는 영지가 오크로 인해 고생을 하겠느냐? 오크가 그 괴물들보다 더 힘이 세고 더 덩치가 크겠느냐?”

“그렇다면...!”

“멍청하긴... 너희들이 동쪽으로 갈 것이 두려워 누군가 퍼뜨린 소문이겠지. 그 누가 누구일까?”

“설마...?”


이제야 깨달았냐는 듯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헤리오스가 마지막으로 말을 던지고 마차로 돌아간다.


“떠돌다가 아이들까지 굶겨 죽일테냐? 무책임하고 용기도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숲 밖으로 나가는 귀족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이 어설픈 산적들... 아니 유랑민들은 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동부로 가면 살 수 있을까?’

‘괴물들이 사람들을 잡아 먹고 사람들은 지옥처럼 도망치다가 결국 모두 죽는 곳이 아니라면?’

‘정말 괴물을 길들일 정도로 강한 기사들과 병사들이 지키는 영지에서 산다면?’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미 그들의 고향에서 뼈저리게 느끼던 절망은 그들에게 용기와 무모함을 주었다.


“가보자.”

“네?”

“어차피 이대로 떠돌다가 병사들에게 잡혀 죽거나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나?”

“...”

“동부로 가서 잘 살수 있다면 어쩔거야? 만약 그 말이 진짜라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바닥에 닿아있던 무릎에 힘이 들어가 꽂꽂히 펴졌고, 그들의 주먹은 꽉 쥐어졌다.


“귀족의 자비로 사슴까지 얻었다. 가죽과 고기를 여비로 바꾸고, 밀로 바꾼다면 동부까지 갈 수 있어.”


그리고 그들은 사슴을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멀리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던 헤리오스가 중얼거렸다.


“이걸로 스물 세 번째인가?”


헤리오스의 연출에 넘어간 유랑민들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며 뿌리는 소문 또한 혼란스러운 영지에 퍼지며, 점점 고향에서 탈출하여 동부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당연히 영지에서는 탈출하는 영지민을 막기 위해 힘을 써야 했지만 권력다툼으로 인한 내분으로 영지민들에게 돌릴 병력이 없었다.

그들의 저택과 성, 그리고 벌어질지도 모를 전투를 위해 한명의 병사라도 더 아끼고 아꼈다.


헤리오스와 카밀레아가 탄 마차가 다시 서쪽을 향해 움직였고, 마부석에는 제이크가 시퍼렇게 변한 오른쪽 눈두덩이를 만지며 마차를 몰았고, 그 뒤를 키사가 한 마리 말에 올라타고 다른 한 마리의 말에 실린 짐을 챙기며 따랐다.


* * *


일단의 기사들과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벨로시아의 전 영주가 국왕의 직할령에 도착하여 왕성으로 향했다.

이미 왕성은 일왕자와 이왕자의 병력들이 성 밖에 주둔하여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고, 기사들 역시 기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던 차에 벨로시아에서 새로 병력이 오니 그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국왕의 명령을 받아온 양피지를 두 세력에게 전달하기 위해 왕성 앞 넓은 들에 천막을 치고 발쟈크 전 공작과 일왕자와 이왕자를 지원하는 병력의 총지휘를 맡은 기사들이 그 천막 안에서 서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왕의 인장이 맞군요. 하지만... 저는 일왕자께 충성을 맹세한 기사이니 이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이왕자께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아무리 국왕의 명령이라고 해도 이왕자님의 명령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이미 오래된 소강상태이지만 일왕자의 병력과 이왕자의 병력은 해산되지 않고, 여전히 국왕령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벨로시아의 전 영주가 국왕의 인장이 찍혀있는 명령서를 가지고 와 보여주었는데


- 병력을 해산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


이라는 간단한 문장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 명령에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은 서부와 중부의 세력에서 따로 뽑힌 기사들과 병사들. 그러니 이득이 없이 그냥 싸우다가 돌아가는 것은 큰 손해였다. 또한 동부와의 전쟁에서 패해 자신들의 기반이 어려워졌다는 소식도 들은 상태라 당연히 벨로시아에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왕께서 명하신 일이다. 거부하는 것은 반역이다. 알고는 있는 건가?”


발쟈크 전 공작은 그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무겁게 입을 열었고, 그런 모습에 쉽게 겁을 먹을 이들이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 전쟁에서 이겼다고 너무 강경하게 이야기 하시는 군요.”

“우리 역시 벨로시아처럼 전투를 쉬지않고 벌여 온 정예들입니다. 힘으로 누를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항상 싸우던 두 기사들도 발쟈크 전 공작의 등장에 같은 소리를 내니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나 결국 전 공작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냥 벨로시아의 방식으로 이야기 해야 하는데, 내가 실수했군.”


- 어차피 말로 해서는 듣지 않을 테니 일단 패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다시금 헤리오스의 조언을 되새기며 왕의 명령이 적힌 양피지를 품 속에 집어 넣고는 바로 검을 뽑아들고는 천막의 기둥을 베어렸다.


후두두두.


내려앉는 천막 밖으로 세 사람이 나왔고, 두 기사는 발쟈크 전 공작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무례요!”

“이것이 벨로시아의 방식이요? 정말 수치스럽군!”


그들의 고함소리에 각 세력의 기사들이 그들의 수장의 뒤로 달려와 검을 뽑아들고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회의의 방식을 바꿔야 겠군. 벨로시아의 방식으로...”


그리고 괴물들과 오크들의 전투에서 항상 앞장서던 발쟈크 전대 공작의 허리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우리의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쉽지. 다만...”


두 기사들 중 일왕자의 편에서 싸우던 총지휘관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두꺼운 거검이 방어하는 기사의 검을 부수고 갑옷의 가슴부위를 직격했다.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그리고 이왕자쪽의 총지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이런 야만스러운...!”


그에게도 똑같이 달려들었고,


콰앙!


다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저만치 날아가는 이왕자측의 총지휘관.


“살아남거든 다시 생각해봐. 벨로시아는 매우 세련된 곳이라고.”


한 손으로 거검의 손잡이를 잡고 휙휙 손목을 돌려 원을 그리면서 발쟈크 전대 공작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두 세력의 우두머리를 날려버린 발쟈크 전대 공작이 갑작스런 상황에 얼어붙어있는 일왕자와 이왕자측의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땅바닥에 둘 중 하나만 내려놓으면 된다. 검 아니면 머리통. 빨리 선택해라.”


수 백년 간을 오크와 싸워오고 괴물들로부터 영지민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던 동부 기사 중 가장 강했고 가장 고귀했던 기사의 기세를 처음으로 받은 일왕자와 이왕자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입을 벌리고는 다물지를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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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7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6 15 10쪽
142 증명해 봐 +3 22.03.09 557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5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2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138 어딜 가 +4 22.01.15 994 34 12쪽
137 그냥 여기다 묻고 갈까 +4 22.01.11 1,018 30 13쪽
136 니들... 미쳤냐 +3 22.01.09 1,039 32 11쪽
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4 33 9쪽
»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7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131 그거 다 필요한 거라니까 +2 21.12.27 1,328 33 11쪽
130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2 21.12.25 1,346 36 11쪽
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2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7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6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39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8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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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3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5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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