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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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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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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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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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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증명해 봐

DUMMY

새로 영주가 된 비슈마르 아이젠 자작은 집무실 책상에서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다.


똑똑.


전날 카밀레아의 방문을 받았던 영주 저택은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고, 그런 분위기의 중심이 되는 자작의 집무실의 문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창 밖을 보니 어느 덧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었다.


“휴... 일단 식사를 하고 대책을 생각해야 겠어.”


4남 2녀 중 넷째 인 그가 영주가 되기 위해 시집을 간 두 여자 형제들을 제외한 세 명의 남자 형제들을 모두 숙청하였고, 그들을 따르는 가신들 역시 모두 숙청하였다.

그래서 인지 지금 걸어가는 저택의 복도와 문 앞의 여기 저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 고용인들의 행동 역시 몹시 조심스럽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얼굴을 하고 지금 지나가는 비슈마르 아이젠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자리를 뜨는 것이 보였다.


“쯧...! 천한 것들이란...”


식당 앞에 이르자 아직 얼굴에 상처가 가시지 않은 기사들이 보였다.


“...후...!”


전날 카밀레아가 끌고 왔던 두 용병인지 기사인지 모를 남녀에게 쓰러진 자신의 기사들이었다.

처음에는 뭐라 하려고 하였지만 단 두 사람에게 저택 안의 경비병과 기사까지 모두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두 얻어 맞고 기절하였거나 고통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대고 있었다.


기사단장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진짜였습니다. 만약 그런 이들을 영지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영지의 전투력은 대폭 상승할 것입니다.”


물론 한 쪽 눈두덩이가 시커멓게 변해서 진지한 얼굴을 해봐야 설득도 안되지만 그런 얼굴로 침까지 튀겨가며 용병이라면 얼마를 들이던 꼭 끌어들여야 한다는 기사단장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니 식욕까지 뚝 떨어졌다.


“재정관.”

“네. 자작님.”

“어제 그 여자가 던지고 간 계산서...”

“알아 본 결과 그 여자의 정체는 카밀레아 사이먼. 사이먼 영지의 신임 영주이며 카밀레아 상단의 주인이었습니다.”

“카밀레아 상단?”


그런데 어째서 카밀레아 상단의 주인이 계산서를 던지고 간 것인지 쳐다보는 비슈마르 아이젠 자작의 눈빛에 재정관이 한숨을 내쉬고 대답한다.


“그 동안 우리와 거래를 해오던 상단들이 채권을 카밀레아 상단에게 모두 팔았다고 합니다.”

“뭐?”

“그러니까 채권할인이라고 하여 우리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상단이...”

“그 소리가 아니라 어째서 카밀레아 상단이 우리 채권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채권할인...”

“이 멍청한 자식! 우리가 다른 곳에 발행한 채권을 왜 그년이 싹 쓸어서 빛 독촉을 하느냔 말이다! 말을 그렇게 못 알아 먹으면 어쩌자는 거냐?”


결국 식탁에 있는 물잔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마는 아이젠 자작.

함께 식사를 하던 식구들과 주위에 서 있던 가신들은 조용히 숨만 쉬며 자작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건 분명 악의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 그에게 집사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카밀레아 사이먼 남작은 이번에 새로 영지의 주인이 되었고, 이번에 벨로시아의 영주가 된 헤리오스 공작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 벨로시아?”


잠시 생각을 하던 자작은 식탁을 쾅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망할 년! 감히 벨로시아의 초대장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이를 드러낸단 말이지?”


헤리오스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사이먼 남작이 벨로시아를 위해 자신들을 압박한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괘씸한 생각이 드는 아이젠 자작.


아이젠 자작가는 그래서 서부에서 나름 알아주는 가문이었고, 수공업 분야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서부 귀족가로 사이먼 남작이 자신에게 계산서를 던지고 간 행위는 상당한 모욕이라 생각하였다.


“나에게 모욕을 준 사이먼 남작에게 전해라. 단 한 푼도 절대로 내주지 않겠다고! 아이젠 자작가를 모욕한 대가도 반드시 치르게 해주겠다고!”


* * *


할리 남작령의 남쪽과 에스워프 자작령의 북서쪽에 위한 영지의 경계에 할리 남작가의 문양을 나타내는 깃발을 펄럭이며 길을 가로막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헤리오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공작께서는 어떤 이유로 군대를 이끌고 이 곳 남작령으로 오시는 건지 물어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헤리오스가 말의 배를 툭 차서 그들의 앞까지 다가갔다.


“남작이 말 안해주던가? 분명 편지를 보냈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에스워프 자작은 고개를 푹 숙이고 속으로 욕을 해댔다.


‘산적토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런 생각은 길을 막고 있는 기사도 같았는지 이를 뿌득 갈고 소리치 듯이 말했다.


“우리 영지에 산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산도 없는 우리 영지에 어째서 산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무슨... 산 있잖아? 분명 있지 않아?”


할리 남작령은 대표적인 중부 영지로 영지 전체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넓은 농지를 가진 농업 위주의 땅이었다.


상당한 양의 밀을 수확하였고, 북쪽의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은 영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영지에 딱 하나 산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할 정도로 낮은 언덕... 그러니까 뒷산 정도 되는 작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이 있는 곳이 바로 영주성 바로 뒤쪽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어찌 영주성 바로 뒤에 산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 기사에게 비릿하게 미소를 지어보인 헤리오스.


“뭐야... 그러니까 그 산이 영주성이 관리하는 곳이고, 그 산으로 들어간 산적은 왕실에서 다스리는 곳에서 왕성을 공격하던 놈들이고... 결국 할리 남작이 왕성을 공격했다는 건가?”

“말도 안되는...! 산적이 없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맞서는 기사에게 헤리오스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증명해 봐.”

“네?”

“없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잠시 멍해진 기사. 그리고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대화를 듣던 에스워프 자작도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 보통은 없다고 증거를 대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증거를 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기사에게 헤리오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비켜! 왕성을 공격했던 산적을 없애러 온 왕실의 명을 받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가는 발걸음이다! 충분히 설명을 했으니 당장 비키지 않는다면 반역죄를 적용할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은 할리남작가의 기사도 알고, 에스워프 자작도 알고, 헤리오스도 안다. 하지만 헤리오스는 그 말도 안되는 상황에 명분이라는 것을 가지고 밀고 들어오고 있다.

국왕령에 있던 산적이 반로프 자작령과 에스워프 자작령을 지나 할리 남작령까지 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두 개의 영지를 무력으로 지날 수 있는 이들이 왜 할리 남작령으로 오겠는가? 또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반로프 자작과 에스워프 자작이 그 산적과 한패라는 소리다. 하지만 한 쪽에 숨은 듯이 있는 에스워프 자작을 본 기사는 지금 헤리오스가 할리 남작령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온 것이라고 판단하고 길을 비키지 않았다.


“안됩니다. 우리 영지에는 그런 산적이 온 적도 없고, 또한 산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들어가서 확인한다고 하지 않나? 아니라면 증거를 가져오라고.”

“어떤 미친 산적이 영주성 뒤에서 살며 노략질을 한다고 합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어떤 미친 놈이 왕실을 공격한 산적을 영주성 뒤에 놓고 있냐고.”

“...결국 피를 보고 말겠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자신의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남작가의 기사를 보던 헤리오스가 피식 웃더니 입을 연다.


“알면서도 그렇게 길을 막는 건 충성심 때문인가?”

“...”


헤리오스가 끌고 온 병력은 기사 50명에 병사 1000명.

그 앞을 막고 있는 병력은 기사 10명에 병사 100명.


“에스워프 자작님!”


싸움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할리 남작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없었다. 결국 울화가 치민 기사는 숨어있는 에스워프 자작에게 소리쳤다.


“이것이 억지라는 것은 자작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에스워프 자작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도 지금 헤리오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오지랖을 부릴 여유는 없었다.


“그래! 죽자! 명예롭게 죽자!”


기사가 소리치자 결국 그 뒤에 있는 나머지 할리 남작가의 기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비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와라!”

“명예를 위해!”


그런 기사들을 보고 헤리오스가 중얼거렸다.


“지랄들 한다...”


그리고 오른손을 살짝 올리고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뭐...뭐하는... 컥!”


그리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기사들.


저 뒤에 서 있는 병사들은 앞에 서 있는 기사들 열 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려 쓰러지자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쓰러진 채 온 몸을 부들거리며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는 기사들을 보니 도저히 기사들을 따라 무기를 들 자신이 없어졌다.


“어이!”


기사들에게 독공으로 손을 쓰고 난 후 저 만치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병사들을 부른 헤리오스.


“네...넵!”


그런 그들에게 헤리오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냥 가라! 오늘 날씨가 좋아서 내가 기분이 좋다. 응?”


그 말에 병사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을 쳤고, 남작령의 기사들은 여전히 바닥에서 몸을 부들거리며 꿈틀대고 있다.


“공작님... 저들은 죽지 않았는데...”


조심스레 물어보는 에스워프 자작의 얼굴을 빤히 보던 헤리오스가 피식 웃었다.


“어떤 때는 죽는 것이 더 좋다고 느낄 때가 있기도 해.”


그 말에 에스워프 자작의 뒷골이 쭈뼛해지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자. 가서 할리 남작 목 가져와야지? 응?”

“무...물론입니다!”


헤리오스가 이끄는 병력이 모두 지나가는 동안에도 기사들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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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7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6 15 10쪽
» 증명해 봐 +3 22.03.09 558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5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3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138 어딜 가 +4 22.01.15 994 34 12쪽
137 그냥 여기다 묻고 갈까 +4 22.01.11 1,019 30 13쪽
136 니들... 미쳤냐 +3 22.01.09 1,040 32 11쪽
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4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7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131 그거 다 필요한 거라니까 +2 21.12.27 1,329 33 11쪽
130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2 21.12.25 1,346 36 11쪽
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2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7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7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40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9 41 10쪽
123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3 21.11.28 1,611 36 11쪽
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4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6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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