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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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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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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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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4,085

작성
22.03.14 17:46
조회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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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0쪽

그 역시 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DUMMY

헤리오스는 정말로 군대를 물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할리 남작령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왕국의 모든 귀족 연합군을 몰살시킨 공포의 상징인 헤리오스 공작이 더 이상의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것에 환호하고 기뻐하였다.


“멍청한...!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수치스로운 모습에 할리 남작이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귀에 들어가기에는 병사들의 환호소리가 너무도 우렁찼다.


반면에 떨떠름하게 헤리오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에스워프 자작이었다.


“공작께서는 정말 이대로 여기를 떠날 생각입니까?”

“그렇소. 산적이 없으니 당연히 군을 물려야하지 않겠소?”

“그럼... 저... 예전 저에게 요구했던 것은...”

“아...! 그렇군... 나중에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망설이지 않고 목을 베면 될 것 아니겠소? 물론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그렇지요.”


고개를 슬쩍 돌리는 헤리오스의 얼굴에는 쑥쓰러운 감정이 엿보이는 듯 했다.


“휴우...”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쩌겠는가? 힘이 없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과연 헤리오스는 에스워프 자작이 영지로 돌아가도록 하였으며, 그를 호위하는 인원을 기사 4명과, 병사 50명, 그리고 각종 고급 천막과 생활용품, 식량과 사치품까지 수레에 실어 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상당히 급하게 벌게진 얼굴로 서쪽으로 병력을 급히 이동하여 에스워프 자작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뭐 이런... 걷다 똥을 밟은 것이 아니라 똥이 달려들어 밟은 것 같은 느낌이군...”


바로 얼마 전까지 할리 남작령을 다 부숴버릴 것처럼 달려들던 군대와 함께 있던 에스워프 자작은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 * *


다시 마을에 들른 에스워프 자작에게 호위하던 기사가 물었다.


“자작님. 마을의 촌장에게 잘 곳과 음식을 대접하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미 거쳤던 마을에서 지독하게 누추한 음식과 집 안 꼴을 기억했던 자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죄송합니다. 귀족의 명예를 아는 자작님께서 비록 남의 영지지만 수탈당해 가난한 이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당연한데 제가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


하지만 기사는 서둘러 물러나더니 병사들에게 이것 저것 지시를 해댔다.


- 넌 물을 길러오고, 너, 너, 그리고 너랑 너는 천막을 쳐! 식사 준비는 당연히 제대로 해야지! 명예를 아는 귀족에게 대충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거냐?


저 만치서 들려오는 호통소리에 슬슬 민망해진 에스워프 자작은 천막을 세워지는 동안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자신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번에는 집 안에 숨어서 귀족이 왔음에도 쳐다보지도 않던 이들이 집 밖으로 나와 깊게 허리를 숙이며


- 자작님.

- 명예로우신 분.

- 신이시어! 저분께 은총을...


등의 말을 하며 예를 표했다.


‘이게 무슨...?’


어리둥절해지는 에스워프 자작의 앞에 작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작은 손으로 들꽃을 모아 조심스레 건네며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힐끔거리며 보고 있다.

하찮은 평민들이지만 아이가 귀여운 것은 귀족과 평민이 다르지 않다.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숨을 쉬지도 않는지 정적이 내려앉았고, 에스워프자 자작이 말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자 아이는 자신의 꽃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슬슬 눈가에 물기가 맺히고 입가도 파르르 떨리는 것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뭐지...? 이런 것은 처음이군...’


묘한 기분을 느끼며 에스워프 자작이 키가 작은 소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손에 든 꽃을 조심스레 거머쥐며 건네 받았다.


“네가 직접 꽃을 꺾은 것이냐?”


조용한 목소리의 질문과 자신의 꽃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는 것에 깜짝 놀란 소녀의 눈에 활처럼 휘어지고, 작은 입술도 헤 벌어지며 토실토실한 볼도 동글동글 모이고 맑은 목소리가 나왔다.


“네! 엄마가 지금 오시는 분은 정말로 멋진 귀족이라고 하셨어요. 멋진 귀족은 우리가 사랑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어요.”

“...”


무언가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드는 에스워프 자작.


“예쁜 꽃 고맙구나...”

“히힛!”


고맙다는 말에 뭐가 그리 좋은 지 동글동글한 얼굴이 헤벌쭉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변하며 말을 툭 뱉고는 쪼르르 도망간다.


“귀족님은 정말 멋지게 생기셨어요.”


그 말에 잠시 멍해져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는데 저 뒤에서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위하던 기사가 달려왔다.


“자작님! 천막이 다 세워졌습니다. 천막 안에서 쉬셔도 됩니다.”


그리고 기사가 안내한 곳으로 가니 화려한 천막과 그 안에 은은한 향기가 돌고, 푹신한 침대와 고급스런 탁자와 소파, 그리고 그 탁자 위에는 술과 부드러운 빵, 그리고 고기 조각과 치즈, 약간의 과일과 고소한 냄새가 풍겨지는 스튜가 올려져 있었다.


“저... 혹시 지금이라도 마을 촌장에게 대접을 하라고...”

“필요없다. 앞으로도 마을에서 음식을 대접하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여자를 징발하여...”


순간 아까의 작은 소녀가 생각이 났다.


“그 역시 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그래. 이제 쉬고 싶군.”

“밖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기사는 예를 표하고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자작의 귀에 기사가 떠드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수탈당하는... 귀족의 명예를 아는... 절대 그들의... 행하지 마라...”


정확히 뭐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는 열심히 떠들어댔고, 그다지 나쁜 기분도 아닌 에스워프 자작은 기사가 말하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다음 마을에서도, 또 그 다음 마을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 * *


아이젠의 군대는 영주의 명령에 따라 마르드뉴브 영주성을 향해 전진해 나갔다. 그러나 이 영지의 영지민들 모두가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아이젠 영지군이 지나는 마을마다 우물이 메워져 있고, 집 안에는 콩 한쪽, 옥수수 한 알 남아있지 않았다.

가축도 없고, 심지어 말이 먹을 건초도 모두 없었고, 가져 가지 못한 것들은 마을의 공터에서 태웠는지 곳곳에 태운 흔적들이 있었다.


“젠장...! 보급품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 해라.”


이끌고 온 병력을 바라보니 모두가 지쳐서 겨우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벌써 삼 일째 물도 아끼고, 식사도 반으로 줄여 허기만 면할 정도로 배급하였다.

이런 상황에 마을에서 징발을 해야 했지만 마을에는 정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마을에도 근처에 인분이 숲 곳곳에 뿌려져 있습니다.”

“괴물의 마른 배설물도 발견 되었습니다. 저번 마을과 같습니다.”


또다. 이로써 부근에서 사냥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식량은 아낀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식수입니다. 근처에서 물을 찾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속출 할 것입니다.”


보급 담당의 보고에 기사단장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자꾸만 나오는 한숨은 벌써 몇 번이나 했는지 셀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늦은 밤.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기사단장의 귀에 시끄러운 소음과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을 꺼!”

“안돼! 저건 안돼! 빨리 물을...!”

“모두 깨워! 빨리!”


천막 밖으로 뛰어 나온 기사단장의 눈에 어두운 밤하늘 아래 붉은 빛이 밤하늘과 비슷한 검은 색의 연기와 함께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고, 그 붉은 빛 주변으로 기사들과 병사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물을 길러... 젠장!”


우물이 막혀있었다. 식수도 부족하여 탈진하는 병사들이 상당수 있는 마당에 불을 물로 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직 타지 않은 것이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 서둘러!”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화재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기사단장의 속은 지금 타오르는 식량 수레와 함께 시커멓게 변해갔다.


밤이 새고 아침이 될 때 불은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꺼졌고, 식량은 절반 가까이 불에 타 병사들의 사기가 곤두박질 쳤다.

아이젠 영지의 모두가 시커멓게 검정을 묻힌 채 말 없이 마르드뉴브 영주성으로 향했다.


“마르드뉴브 영주성에 있는 모든 식량을 가장 먼저 나눠줄 것이다. 그 곳에 있는 모든 것이 너희들의 것이다. 가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라!”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사단장은 약탈을 허용했다. 가급적이면 징발하는 모양새를 가지려고 했지만 이 상태로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 조차 힘들었다.

결국 마지막 수단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 조금만 버티자. 영주성에서 모든 상황을 반전시킨다.”


결의를 다지며 서둘러 마르드뉴브 영주성으로 향하는 아이젠 영지의 기사단장 휴머스 콜린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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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그럼 돌아가지 뭐 +3 22.03.17 457 15 13쪽
147 아주 좋은 생각이야 +3 22.03.17 428 16 11쪽
» 그 역시 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3 22.03.14 499 18 10쪽
145 전쟁은 돈지랄이야 +3 22.03.12 562 16 15쪽
144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7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6 15 10쪽
142 증명해 봐 +3 22.03.09 558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6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3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138 어딜 가 +4 22.01.15 994 34 12쪽
137 그냥 여기다 묻고 갈까 +4 22.01.11 1,019 30 13쪽
136 니들... 미쳤냐 +3 22.01.09 1,040 32 11쪽
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5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7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131 그거 다 필요한 거라니까 +2 21.12.27 1,329 33 11쪽
130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2 21.12.25 1,346 36 11쪽
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3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7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7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40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9 41 10쪽
123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3 21.11.28 1,611 36 11쪽
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4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6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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