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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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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008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2.03.17 21:53
조회
427
추천
16
글자
11쪽

아주 좋은 생각이야

DUMMY

삼 일간 기사들은 지치고 배고픈 병사들을 이끌고 독려하고 윽박지르며 행군하여 결국 마르드뉴브 영주의 성에 도착하였다.


“이게... 뭐야?”

“이...이럴 수가...”

“아... 망했다...”


그들을 반긴 것은 정련된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이 아닌 비어버리고 성문조차 부서져 있는 아무도 없는 성과 집들 뿐이었다.


“먼저 식수를...!”


누군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아이젠 영지의 기사단장은 소리쳤다.


“어서 식수와 식량을 찾아!”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과 병사들이 서둘러 성 안으로 갔지만 이전에 겪었던 마을과 다른 것은 마을 주변에 울타리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성벽 안에 있다는 것, 그 하나 말고는 모두가 똑같았다.


“독한 새끼들...”


누군가 중얼거리며 주저 앉았고, 연이어 병사들은 절망하며 쓰러지듯 엎어졌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놈이...”


전쟁이 별로 없던 이 왕국에서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싸움 방법이다. 적의 보급이 약한 것 하나만을 파고드는 지독하게 치졸한 수법.

게다가 이전에 화재로 인해 식량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식수를 쓸 수 있는 물도 구하기 어렵다.

그나마 메워진 우물 근처를 파서 지하에 갇혀서 진흙탕이 된 물을 떠올려 흙을 가라앉혀 목을 축일 뿐 시원하게 물을 마시지도 못하는 병사들.

그 동안은 약탈을 할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 짜내 이 곳까지 왔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금 사기와 체력, 정신력까지 바닥을 치고 있다.


“어째야 하는 걸까?”


기사단장은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지만 누구도 그의 물음에 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저 다시 전령을 아이젠 자작령으로 보내는 것 뿐.


빈 집에서 잠을 자게 하고 다음 날 병사들을 추슬려 부근에 밭에 남아 있는 먹을 거리가 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데 아이젠 성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해서 황급히 회군하라는 명령입니다.”

“뭐라고? 다시 말해라.”

“동쪽 할리 남작령에서 벨로시아 공작이 군대를 이끌고...”


그제야 기사단장의 뒤통수를 누군가 세게 후려 친듯한 충격이 왔다.


“벨로시아가... 동쪽에서 오고 있다... 우리의 군대는 영지 밖 북쪽에 있고...”


서둘러 돌아가야 하지만 이제 돌아가는데 들어가는 군량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싸움이라도 나서 사망자가 생기면 식량이라도 덜 들겠지만 사망자도 없다.

더구나 벨로시아의 그 악마같은 존재가 군대를 이끌고 오는 마당에 병사들과 기사들의 수를 최대한 보존해야만 했다.


“...아!”


그저 탄식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기껏해야 기사 열명 남짓에 병사들이라고 해봐야 이삼백 정도있는 작은 영지에서 어찌 싸울까 했더니... 벨로시아와 붙어먹은 것이었구나. 그래서 이리 독하게 버티는 것이었어.”

“단장님. 서둘러 돌아오라는 영주님의...”

“알았으니 나가라. 잠시 생각할 것이 있다.”


검술만을 연마하고 사실 전쟁이라고 나가 본적도 없고, 그저 범죄자들을 잡아올 때, 세금을 걷을 때 폼만 잡고 다녔었다. 그래도 검을 뽑아 기사와 생사를 겨룬 것도 영주 자리를 놓고 지금 영주의 형제들이 서로 다툴 때 다른 세력의 기사와 싸운 것이 다 였다.

하지만 지금 서둘러 영지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상태의 병력이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가지 않는다면 영지는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정말 앞 뒤로 꽉 막힌 상황.


“영주님의 명령이니 들어야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자신은 없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병사들을 모아라. 영지로 돌아간다.”


사정을 알고 있는 기사들 역시 묵묵히 병사들을 부르러 움직였고, 텅 빈 성에서 하루를 보낸 기사들과 병사들은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다시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먼 곳에서 그들을 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정말 가네?”

“그럼 공작님께서 오고 있다는 거지?”


큰 덩치의 남자와 호리호리하지만 큰 키의 여자가 허리에 칼을 찬 채 먼 풀 숲 사이에서 빼꼼히 아이젠 영지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관찰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한 표정에 서로의 몸 한쪽이 착 달라붙어 누가 보면 숲에서 낯뜨거운 일을 벌이러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 였다.


“그럼 가는 것도 확인했으니까 아까 하던 거 마저 해야지?”

“...험! 그럼! 아주 좋은 생각이야!”


...낯뜨거운 일 하던 거 맞았다.


* * *


에스워프 자작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남쪽으로 이동을 계속 하여 내일이면 영지에 다다를 즈음에 있는 할리 남작령 최남단의 작은 마을에 도착할 때 쯤이었다.


“뭐...뭐지?”


눈 앞의 마을 앞에 당도하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 엎드려 그를 맞이하였고, 심지어 그가 도착하는 것에 맞춰 돼지와 가축들을 잡고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 작은 마을에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 건지 경... 아니 자네는 아는가?”


벨로시아의 기사는 귀족이 아니며, 성 또한 없었기에 평소대로 ‘경’이라 칭했다가 그간의 배려를 생각해 ‘너’가 아닌 ‘자네’라는 호칭으로 수행하는 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저는 예상 했습니다만...?”


오히려 왜 모르느냐는 듯이 물어보는 기사의 표정에 더 멍해지는 자작.


“자작님께서는 그간 많은 은혜를 베풀며 이곳까지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내...내가?”

“가난한 평민의 음식을 취하지 않으셨고...”


정말 더럽게 맛이 없어 먹기 싫었던 것이다.


“불쌍한 마을 처녀를 품고 쓰레기처럼 버리지 않으셨으며...”


그간 헤리오스에게 받은 사치품으로 목욕을 하니 평민 계집에게서 나는 냄새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품지 못했다.


“남는 음식을 자비롭게 나누어 주셨으며...”


잔뜩 싸준 식량으로 식사를 할 때마다 너무 많은 양을 만들어 오기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귀족으로써 항상 근엄함을 보이셨으니...”


남의 땅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 말을 섞지 않았다.


“저들은 오직 자작님을 뵙고 따르고 싶어 마을을 버리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 뭐?”


자신을 따라 사는 곳을 버리고 여기로 왔다고?


“지금 이 자들이 할리 남작령을 버리고 나를 따른 다는 것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하여 제가 미리 다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이들은 오늘 여기서 묶고 내일 자작님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저~얼대 명예로운 자작님께서 수치스럽고, 욕심많은 신에게 저주받을 탄압을 일삼은 할리 남작에게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 일렀습니다.”

“네...네...이...!”


시뻘겋게 변한 얼굴이 터질 것 처럼이 익어오르는 것을 본 기사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명예를 아시는 분이자, 신에게 선택을 받은 핏줄인 귀족은 아랫것들도 이리 살피시니 모두가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쏠랑 사라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머리를 땅에 박고 조아리며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니 허탈해지는 에스워프 자작.


많은 시선 속에 불안감과 허탈함을 삼키는 에스워프 자작과 달리 분노로 인해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방 안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바닥을 발로 쾅쾅 굴러대는 이가 있었다.


“감히...! 감히...! 내 땅의 영지민을 빼가다니...!”


영지민은 영지의 소중한 재산이다.

때 되면 일하고, 세금도 내고, 전쟁에도 쓰고, 가끔 괜찮다 싶으면 밤에 데려오기도 하는 재산이다. 그런 것들을 감히 아무런 증거도 없이 쳐들어와서 영지를 홀랑 뒤집어 놓더니 가면서 재산을 강탈해가다니...!

이것이야 말로 도둑질...아니 강도짓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가만두지 않겠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길길이 날뛰는 할리 남작에게 집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자작이고... 가진 힘도...”

“그렇다고 멍청하게 나의 것을 눈뜨고 손도 못쓰고 빼앗기라는 말인가? 그런 후에는 다른 영지에서 가만히 있겠나? 너도 나도 다 한 번씩 집적거릴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자신의 영지민도 지키지 못하는 영주를 누가 만만히 보지 않겠는가?


“어서 준비하라고 해라! 지금이라도 쫓는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내 땅에서 떠나는 년놈들과 나의 것을 훔쳐가는 그 명예도 모르는 도적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화산처럼 그 분노가 펑펑 터져오르는 할리남작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준비되자마자 먼저 말을 타고 앞장서서 에스워프 자작의 뒤롤 쫓았다.


* * *


누구들과는 달리 헤리오스가 이끄는 병사들은 마치 산보를 하듯 느긋하게 걸어 아이젠 자작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후미에는 가축들과 밀, 콩, 옥수수등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이 따르고 있는대다 선두의 헤리오스가 느긋하게 갈 것이라고까지 했으니 정말 편안하게 가는 중이었다.

물론 이렇게 가기 전 전령을 아이젠 자작에게 보내 서신을 전하게 하기는 했다.


- 신의 축복을 받아 왕국의 통치자가 되신 국왕 카이 쥬 멘토라 브이 세이르멘의 지엄함을 보이기 위해 왕성을 공격했던 무도하고도 신의 저주를 받을 산적들을 좌시할 수 없어 용맹한 기사와 강건한 병사들이 모였다. 현재 우리가 가는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길에 아이젠 자작령이 있고, 그 선두에 왕국의 단 하나뿐인 공작이자 온전하고 정통의 핏줄이며, 신의 뜻을 이어 동쪽의 방패가 된 나 헤리오스 벤 레크 벨로시아가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가고 있으니 나를 맞이하는 그대는 더 없이 경악과 놀라움을 참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난 안정과 고요를 사랑하니 자작은 조용히 성 앞으로 나와 나를 맞아하도록 하라.


이 서신을 받은 아이젠 자작은 멍해졌었다가 다시 한 번 글을 읽고 분노했으며, 다시 한 번 글을 읽고는 구겨 집어 던지고는 북쪽으로 떠난 자신의 군대를 소환했다.


“어린 애송이가 이제 막 작위를 이었다고 건방지게 이따위 글을 보내다니...!”


자신도 형제들을 죽이고 자작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헤리오스의 작위 승계 시기를 입에 담으며 모욕감에 치를 떨어댔다.


“영주님... 하지만 지금 충분한 식량이...”


재정관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이젠 자작.


“지금 나를 모욕하는 글을 내가 직접 읽어주기까지 했는데, 식량타령인가? 어떻게든 모아! 나의 군대가 저 오만한 벨로시아의 애송이를 짖밟고 처절하게 응징할 것이다! 그러니 무기와 식량을 준비하고 북쪽에서 돌아오는대로 동쪽에서 오는 저들을 모두 박살낸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여기서 나가서 할 일을 하란 말이다!”


그렇게 난리를 치고 화를 내며 보낸 전령의 전갈을 받은 이들의 기사단장은 마치 진흙 속을 걸어가는 듯한 병사들을 겨우겨우 이끌고 영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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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좋은 생각이야 +3 22.03.17 428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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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전쟁은 돈지랄이야 +3 22.03.12 561 16 15쪽
144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7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6 15 10쪽
142 증명해 봐 +3 22.03.09 557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5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2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138 어딜 가 +4 22.01.15 994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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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4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7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131 그거 다 필요한 거라니까 +2 21.12.27 1,328 33 11쪽
130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2 21.12.25 1,346 36 11쪽
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2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7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6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39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8 41 10쪽
123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3 21.11.28 1,610 36 11쪽
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3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5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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