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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029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2.02.01 19:29
조회
905
추천
26
글자
12쪽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DUMMY

에스워프는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영지에서 긁어 모을 수 있는 모든 전력이었다. 소집 된 기사들도 종자들이나 조금 실력이 있는 이들은 최대한 긁어모아 얼추 300명을 채워 당당하게 끌고 나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졌고, 무려 2500명이나 되는 병사들 역시 모두 도망쳐 달랑 혼자 남은 처량한 신세가 된 지금은 헤리오스의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며 가자는 대로 막연히 따라가고만 있었다.


‘이런 괴물이 벨로시아에 살고 있었다니...’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옆에서 함께 말을 타고 가는 저 젊은 벨로시아의 영주는 아직 소년의 티도 벗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갑옷을 갖춰 입은 기사들이 말에서 우수수 떨어졌고, 확실히 죽어있었다.

심지어 저 멀리 도망간 기사들이 단번에 모두 죽어버리는 모습은 도저히 인간의 그것이라고 여길 수도 없었다.


‘혹시... 진짜 악마? 아니면 드래곤?’


“나 사람이다.”

“히끅!”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퉁명스럽게 입을 여는 벨로시아의 영주를 보고 에스워프 자작은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머리 속까지 읽는 건가? 도저히 맞설 수 없어. 무조건 죽는다.’


고개를 푹 숙이는 에스워프 자작을 보며 헤리오스가 히죽 웃는다.


“그래. 그렇게 포기하면 편해.”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북으로 계속 이동하는 일행들.


동부를 공략하기 위해 중부와 서부가 모두 합심하여 벨로시아로 넘어갈 때 에스워프 자작은 귀족 연합군에게 길을 제공하였고, 영지를 지나는 그들에게 많은 양의 군량과 돈을 제공하였다.

반면에 식량을 주는 만큼 병사들의 지원은 적었고, 보급을 감독해야 하기에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아, 인명피해가 가장 작았던 곳이다.

물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보낸 기사단은 전멸하였지만 타영지에 비하면 가장 군사력을 잘 보존한 곳이었다.

그러나 헤리오스와 단 한번 만남으로 그 힘이 무너지자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렇게 왕국 전체에 충격을 준 헤리오스는 북쪽으로 말없이 이동하였다.


* * *


“부인. 들었어요? 벨로시아의 젊은 공작이 손짓 한 번으로 기사단을 모두 죽였대요.”

“리디아... 그대가 아무리 물건을 팔기 위해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과장해서 하더라도 참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좀 심하군.”

“후작 부인. 이번에는 정말 제가 들은 대로만 이야기 하는 거라구요. 기사단 300명이 공작이 손을 휙하고 움직이니까 모조리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고 해요.”

“하! 말도 안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지?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리디아라고 불린 여인이 답답하다는 듯히 가슴을 두드리고 말한다.


“정말로 제가 에스워프 자작령을 지나가다가 도망친 병사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니까요. 이 말이 거짓이라면 지금까지 제가 받아야 할 물건의 값을 다 받은 셈 치고 돌아가겠어요.”

“호오? 그럼 기다려보도록. 내가 바로 알아보지.”


외상값이 생각보다 많았던 쟈이네크 후작령의 안주인은 이번에 둘째와 셋째를 모두 굴복시키고 영주가 된 첫째의 부인으로 그 힘의 과시를 위해 카밀레아의 상단 물품을 평소보다 많이 구매했던지라 외상값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남편을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 후작님께서는 기사단장과 영지 방위군 대장, 시종장과 함께 회의를 하고 계십니다.”


집무실 밖에서 지키고 서 있는 기사가 그녀의 출입을 막았다.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유를 생각하고 있는데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부인. 마침 잘 왔소. 잠시 안으로 들어오지.”


시종장이 문을 열었고, 저 안에 있는 이제 영주가 된 자신의 남편이 회의에 참석을 권하고 있었다.


“여자인 제가 감히...”

“필요하니 들어오도록 하시오.”


단순히 후작가의 정보조직에서 파악한 내용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하였던 것 뿐인데 남자들이 하는 회의에 여자가 참석하게 되자 후작부인은 당황하였다.


“에스워프 자작령에서 작은 분쟁이 있었소.”

“아...”


후작이 말을 꺼냈지만 이미 상단의 여인에게 들은 바가 있는 후작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바가 있소?”

“예. 상단에서 물건을 파는 여인이 에스워프 자작령을 지나다 들은 소식이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습니다.”

“뭐라고 했소?”

“저...”

“괜찮소.”

“벨로시아의 영주가 손을 한 번 휘젓자 기사들이 모두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와...”


하지만 후작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사실이오.”

“...네?”

“우리가 따로 알아본 바에도 그것은 사실이었소.”

“아...!”


후작부인은 혹시나 자신을 놀리는 말을 하는 것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심각한 표정의 기사단장과 영지 방위군 대장, 시종장이 말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후우... 부인.”

“네.”

“우리는 돌아오는 겨울에 그 괴물이 사는 성으로 오라는 초대장을 받았소. 그것도 부부 또는 일가족이 오기를 바라고 말이오.”

“...신이시여...”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초대장. 그저 예의 상 참석하겠다고 하였고, 그 자리에는 대리 자격으로 다른 이를 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 똑똑.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말소리가 이어진다.


“후작님. 아이젠 자작령에 대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들어와라.”


기사 하나가 둘둘 말려 밀랍으로 봉해진 양피지 하나를 후작에게 건넸고, 그것을 펴 본 후작은 얼굴에는 참담한 감정이 가득 담긴 채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 * *


아이젠 자작령은 왕국 서쪽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국왕령에서도 사이먼 남작령에서도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전쟁에 참전했다가 병사와 기사들을 잃고, 내부에서 권력싸움이 시작되어 3남인 비슈마르 아이젠이 영주가 되었다.

당당함을 과시하기 위해 저택과 성을 꾸몄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신임 영주의 유능함과 고귀함을 보이기 위해 상단에 채권을 발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대함을 보이기 위해 세금까지 낮추었기에 발행한 채권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 채권이 다 카밀레아 상단에...?”


신임 영주 비슈마르는 자신에게 날아온 독촉장을 보고 분노했다.

여러 상단에 고루 발행했던 채권이 모두 카밀레아 상단으로 넘어가 채무이행을 독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느긋하게 북쪽으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가다가 맘에 안드는 놈 때려주기도 하고요.”

“난 바쁘겠는걸. 각 상단이 보유한 채권부터 모조리 사서 자금에 압박을 넣고, 영지에 물자도 좀 막아야 할 것 같아. 음... 지금 바로 나가봐야...”


왕성에서 라이비아와 카밀레아 헤리오스 세 사람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헤리오스는 벨로시아에서 기사단과 영지병을 불렀고, 카밀레아는 각 지점을 통해 채권의 구입 및 각 물자의 유통망을 모조리 장악해 나갔다.

이런 카밀레아의 상단의 공격적 행보를 이용해 타 상단이 물건을 팔기 위해 아이젠 영지에 판촉을 하려고 하면 거대해진 카밀레아 상단은 그 상단에 자금 압박은 물론 주변 상권에 돈을 뿌려 지점을 망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였고, 심지어 서로 불량배를 동원해 싸움까지 벌였다.


아이젠 자작령의 어느 거리에 있는 상단 건물.


“개인적으로 감정은 없지만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이라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마슈. 응?”


뺨에 칼자국이 나 있는 남자가 뒤에 20여 명의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들을 끌고 와 카밀레아 상단의 지부의 문을 발로 차 열고는 건들거리며 말을 하였다.


지부 안에 있는 이는 겨우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탁자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얘들아... 다 때려 부숴!”

“예! 형님!”


그리고 우르르 달려드는 남자들을 보고 탁자의 여자는 피식 웃고, 남자는 격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 오늘 처음 먹는 끼니를...”


막상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의 덩치는 생각보다 컸고, 짙은 갈색의 머리는 얼마나 안감았는지 기름져서 더러워 보였다.


“덩치만 큰 더러운 곰 새끼가...”


비웃는 칼자국의 남자의 표정이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퍼억! 퍽! 콱! 쿠웅! 우지직!


사정없이 날리는 주먹 한 방에 사람 하나가 날아가 거품을 문다. 20여명의 남자들 모두가 주먹과 발차기 한 방에 어디 한군데는 꼭 부러져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본 칼자국의 남자가 바로 뒤돌아 도망을 치려는데


덥썩!


“뭐? 더러운... 곰 새끼? 곰 새끼이~?”

“놔! 놔라!”


바둥거리다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뒤로 휘두르는 팔을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덥썩 잡는다.


“이 양아치야... 잘 들어라. 난 곰새끼가 아니라...”

“오우거지...”

“그래. 오우거... 아! 키사! 너무한 거 아냐?”


뒤에서 빈정거리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나오던 말이 꼬여버리고 결국 뒤의 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됐고, 빨리 처리하고 씻고 와. 안그래도 정말 냄새나서 별로였어. 그리고... 우리 애들 돌아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윗층 방에 있는 침대가 정말 폭신하던데... 응?”


그러면서 슬쩍 위층을 쳐다보는 키사.

그 모습에 이 곰... 아니 오우거 같은 제이크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칼자국이 있는 남자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엉!


길 밖으로 훨훨 날아가는 칼자국 남자 위로 데리고 온 부하들이 척척 날아와 쌓인다.


“금방 씻고...”

“깨끗이!”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쾅!


카밀레아 상단 지점의 문이 닫히고... 음... 그랬다.


“식량이 모자라 영지민들이 모두...”

“다른 상단에서도 우리 영지로 보내는 식량이 모두 팔려...”


행정관들의 보고에 비슈마르 아이젠은 소리를 질렀다.


“상단이 그렇게 없나? 그리고 비축해놓은 식량이 있지 않나? 응?”

“하지만 그 식량은...”


그 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다툼이 들려왔다.


“들어오시면 안됩... 컥!”


그리고 벌컥 열리는 문.


또각또각.


바닥에 울리는 하이힐 굽소리. 몸에 달라붙는 붉은 드레스에 창이 넓은 모자는 망사가 달려 얼굴을 살짝 가렸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검고 윤기가 있는 가죽으로 된 핸드백을 잡고 우아하게 걸어들어오는 카밀레아.


“영주님. 분명 어제부로 채권에 기재된 금액을 변제하셨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나요?”

“이 무슨 무례냐? 감히 귀족의 저택에...”

“나도 귀족이고 한 영지의 영주로서 이렇게 신용이 없는 자를 귀족으로 대접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뭣이? 감히...!”

“기회를 드리죠. 사흘 후까지 내놓지 않을 경우 나도 실력행사에 들어갈테니 그리 아세요. 모두 합쳐 이만 사천 오백 구십 오 골드에요.”


계산서를 휙 던지고 나가는 카밀레아를 보고 당장 잡으라고 소리치는 아이젠의 영주의 목소리를 듣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바닥에서 끙끙대고 있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겨울철 깨끗이 씻고, 청결을 유지해야 감기에도 코로나에도 안걸린다는 뜻으로...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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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증명해 봐 +3 22.03.09 558 16 11쪽
»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6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3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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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5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7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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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9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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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4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6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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