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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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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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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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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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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1쪽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DUMMY

촌장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 구수한 냄새가 퍼져왔다.


“이건 무슨 냄새지?”

“그... 수프입니다.”

“가져와 봐.”


어느 새 집 안의 식탁에 앉은 헤리오스와 마지 못해 맞은 편에 앉은 에스워프 자작.

그리고 저 만치에서 벌벌 떨고 있는 촌장의 아내와 딸. 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촌장과 그의 아들.


“흠... 아니 며느린가? 거기 딸이야? 며느리?”


헤리오스의 물음에 모두가 땅에 머리를 박고는 그저 살려달라고 빌어댔다.


“안 죽일테니까 말해. 딸이야? 며느리야?”

“...딸입니다.”

“음... 신기하네. 두 사람 사이에서 상당히 예쁜 얼굴이 나왔어.”

“제발...! 딸만은...”


부들거리는 딸과 그녀를 부둥켜 안은 촌장의 아내. 그리고 촌장과 그의 아들은 이제 서럽게 눈물까지 흘리며 그저 한번만 봐달라고 빌어대고 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에스워프 자작이 코웃음을 쳤다.


“천한 것들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시끄럽게 구는구나! 공작님께서 원하시면...”

“내가 뭘 원하는데?”


에스워프 자작의 말을 자르고 헤리오스가 날카롭게 찔러왔다.


“저... 아이를 밤에...”

“뭔 헛소리야?”

“아니면 저 여자아이의 얼굴을...”

“그냥 말도 못해? 그리고 여기 오늘 그대들의 식사를 가져와 봐. 빨리.”


촌장의 눈짓에 딸을 안고 있던 촌장의 아내가 겨우 일어나 끓고 있는 솥에서 수프를 떠 식탁에 놓아두었다.


“이게 끝?”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먹을 것이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촌장의 말에 에스워프 자작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걸 지금 먹으라고...”


그런 에스워프 자작의 앞에서 헤리오스는 앞에 놓인 수프를 떠 먹었다.


“싱겁네...”


그러자 놀란 얼굴이 된 에스워프 자작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공작님! 이런 것을 드시다니! 이런 것은 개도 먹지 않을...”

“앉아.”

“...네.”

“먹어.”

“하지만...!”

“죽을래?”


헤리오스의 협박에 수프를 떠서 입에 넣자 밍밍하고 싱겁고 무언가 씹히는 것처럼 입안으로 와도 거의 녹아버릴 듯한 건더기 아주 조금이 있었다.


“안삼키면 내가 직접 삼키게 해준다.”


그 말에 억지로 삼킨 에스워프 자작.


“어때? 먹을만 해?”

“공작님... 이건 너무나 큰 모욕...”


하지만 헤리오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수프를 모두 다 먹고 뚱하니 에스워프 자작을 쳐다보고 있다. 그 빈그릇을 보고 있자니 모욕이라는 말도 할 수가 없다.


“왜 귀족인 우리가 평민들이나 먹는 이런 것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왜 돈을 주는 평민들이 먹는 음식을 못먹는 거지?”

“돈을 주다니요?”

“너... 농사 지어봤어?”

“제가 왜...?”

“밥도 못해. 농사도 못지어. 전쟁도 못해. 니가 할줄 아는게 뭐야?”

“제가 비록 공작님께 잡혀있지만 이런 모욕을...”


씨익 웃은 헤리오스가 자작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와 대립하고, 그래서 나와 전쟁을 하고, 그래도 운이 좋아 살아 남는다면 앞으로 네가 먹을 식사는 바로 이거야. 기억해. 그리고 그 때는 저 여자아이를 잠자리로 들일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아이에게 음식을 달라고 애원하는 처지가 될 거고... 알겠어? 그러니 먹어.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그 음식...”


살벌한 말에 에스워프 자작은 더 이상 투덜대지 못하고 촌장의 아내가 떠다 준 수프를 허겁지겁 떠 먹었다.


두 사람이 집에서 나간 것은 기사단장이 병사들을 시켜 음식을 가져온 때였다.


식탁에 놓여지는 빵과 술, 그리고 고기들을 보고 촌장의 식구들은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그저 식탁 위의 음식만 쳐다보고 있었다.


“식사 바꿔 먹기로 했으니 너희들은 그것을 먹어. 그것이 귀족들의 식사야. 너희들이 먹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지.”


헤리오스가 천막으로 돌아간 후에도 촌장의 식구들은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하고 그저 멀뚱멀뚱 한참을 바라만 보았다.


* * *


헤리오스가 할리 남작성으로 천천히 진군하는 것과는 달리 카밀레아 상단은 상도덕을 저버린 매우 과격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거의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가축과 식량, 그 외 생활에 쓰이는 땔감과 술, 약초, 소금과 같은 것들까지 거의 일시에 구매해 영지의 대부분의 물자를 싹쓸어버리고 그것들을 모두 영지 밖으로 옮겨버렸다.

그러자 먼저 문제가 생긴 곳은 식당들이었다. 상공업이 발달된 곳이니 만치 음식은 식당에서 먹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이 식사를 하기 힘들어지니 당연히 생산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고, 또한 물자가 부족해지니 물가는 급등하였다. 그러자 영지 안의 은행이 무너져갔다. 은행이 무너지자 사업을 하던 사업체들 역시 돈을 융통하지 못하였고, 이어 사업체들이 무너져 내리자 실업자들이 급증하였다.

실업자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였고, 그래서 굶고 살 수는 없으니 강도와 절도가 증가하였다.

또한 매춘과 각종 범죄도 증가하기 시작하니 병사들은 치안을 위해 하루종일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다.

그런다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하면 그러지도 못한 것이 성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식재료가 거의 끊기다시피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영주성에는 비축해 놓은 식량들이 있다. 하지만 신선한 채소나 고기는 그 때 그 때 구입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음식은 오로지 소금기만 있는 빵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메뉴는 병사들에게만 제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을 먹으라고 내놓은 거냐?”


식탁에는 덩그러니 빵과 물, 술이 있을 뿐이었다.


“과일과 고기는?”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그 말도 안되는 일을 카밀레아 상단에서 저질러버렸습니다.”


어느 곳에서 물건을 사고 다른 곳에서 또 사는 방식이 아닌 어느 한날 한시에 물건을 모두 한꺼번에 구매해버렸으니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이런 시대에서는 당연히 물건을 후한 값에 팔아치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 영주의 식탁에도 이렇듯 영향을 미쳤다.


“가축도 모두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

“이제는 기사들의 말을 잡아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영지는 아직도 태도에 변화가 없는건가?”

“...네.”


결국 아이젠 자작은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병사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시골이든 다른 도시든 그들의 부모가 있고, 부모들 역시 부족해진 물자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다른 영지를 공격해 물자를 빼앗아 오는 것이 더 좋은 수일지 모른다.


“그럼 북쪽에 있는 그 멍청이에게 물자를 지원해달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영지전을 신청할 거라고 하고.”


영주의 말에 안색이 펴지는 집사장이었다. 그 만큼 영지의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 *


“거봐요. 제가 분명히 그럴거라고 했죠?”


빙긋 웃으며 말하는 카밀레아가 분노로 손을 벌벌 떨고 있는 마르드브뉴 남작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사이먼 남작의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이겼네요. 그럼 약속대로 내기의 걸린 것을 제가 받을 차례에요.”

“물론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얀 백발과 풍성한 수염을 가진 이 북쪽 끝은 반도의 영지를 가진 영주는 남쪽에 붙어있는 아이젠 자작가에 눌려 군사력도 상업도 발전하지 못하고 항상 눌려 살아왔다.

단지 이 곳의 기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영지를 병합하지 않았던 아이젠 자작가가 이번에는 어마어한 식량을 보낼 것을 요구하며 거의 선전포고 비슷한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아이젠 자작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주변에 식량을 달라고 해도 상단에 채무를 불이행하여 신용이 떨어진 상태에서 누구도 식량을 함부로 주지 않았고, 설사 약탈을 위해 영지전을 건다고 하더라도 다른 영지와 연합을 하여 반격을 한다면 어려워지는 것은 아이젠 영지다.

하지만 마르드브뉴 남작령은 달랐다.

반도의 땅에 아이젠 자작령 한 곳에만 영지를 맞대고 있다. 즉 다른 영지로 갈 수도 없고, 또한 도움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이곳에서 먼저 약탈을 하고 다른 곳을 손 봐주면 될 것이라고 계획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호호호! 애송이 영주께서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돈을 많이 잡아먹는지 알고 있다면 이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죠.”


그랬다.

비슈마르 아이젠 자작은 형제와 싸우고 영주가 되었지만 그것은 영지성이 있는 도시 안에서의 싸움.

대규모의 병사들과 기사들을 동원한 전쟁이 얼마만큼의 돈과 시간을 잡아먹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이젠 자작은 마르드브뉴 남작의 답신을 받기도 전부터 영지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을 모두 불러 영지전을 알렸고, 병사들을 소집하라 하였다.

그러나 기사단장은 자작의 의견에 조심스레 반대의 의견을 나타냈다.


“전쟁이라는 것이 사람과, 무기, 식량이 모두 준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심스레 시작하는 것인데, 지금처럼 식량도 부족하고 사람과 무기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정석적인 말이지만 그것이 아이젠 자작의 심기를 거슬렸다.


“영지가 이렇게 힘든데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다. 영지민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이 때, 그대의 의견은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에게 부족한 것은 용기인가? 아니면 충성심인가?”


충성심을 의심하는 말까지 나오자 기사단장도 더 이상은 반론을 펼칠 수 없었다.


그리고 북쪽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그 동안 가난하게 살았던 영지에 온갖 행포를 일삼던 자작령이 이제는 가난한 영지민들의 먹을 것까지 빼앗는다는 힐난이었다.

어차피 내용이야 어찌되었던 공격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아이젠 자작이었기에 다음 날 아침 즉시 군대를 이끌고 정벌이라 칭한 약탈을 위해 북으로 이동을 개시하였다.


작가의말

너무 오랜만입니다.

왜 그랬냐고요?

눈이 망가졌어요. 자꾸 눈에 병이 생기네요... ㅠㅠ

이제 한달이 지나고 회복이 좀 되었지만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빨리 완결을 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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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전쟁은 돈지랄이야 +3 22.03.12 561 16 15쪽
»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7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6 15 10쪽
142 증명해 봐 +3 22.03.09 557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5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2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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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4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6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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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2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7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6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39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8 41 10쪽
123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3 21.11.28 1,610 36 11쪽
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3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5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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