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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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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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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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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자유시간

DUMMY

"으으으으..."


완벽한 수학여행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태어나서 멀미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첫 경험을 오늘 하게 될 줄이야.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방금 먹은 과자들이 역류하려고 한다.

조금만 더 가면 휴게소니까 참자.


"토할래?"


한솔이 구토 봉투를 벌려 보인다.

수학여행 버스에서 그것도 한솔의 옆에서 토한다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마에 식은 땀이 맺히고 꼭 쥔 두 손이 파르르 떨린다.

한솔이 힘이 꽉 들어간 나의 왼손을 잡아 주먹을 편다.

그리고는 손바닥 한가운데를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른다.


"아아!"


"멀미를 완화 시켜주니까 아파도 참아."


나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내 손을 꾹꾹 눌러 지압을 한다.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하지만 지압을 할 때마다 입에서 '끅'하고 외마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살살 해도 될 것 같은데 인정사정이 없다.

너무 아파서 오른손으로 차한솔의 팔뚝을 꽉 잡고 고개를 어깨에 파 묻었다.


"5분까지 화장실 갔다 올 사람 갔다 와. 늦으면 놓고 간다."


드디어 휴게실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차에서 빠져나간다.

조금 한가해 지고 난 후 한솔의 어깨에 기대어 차 밖으로 나섰다.


"소연이 왜 그래?"


"멀미가 심한 것 같아요."


"밖에서 바람 좀 쐐."


걱정하는 담임 선생님께 목례로 답하고 차에서 내렸다.

버스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불자 이마에 맺힌 땀이 증발하며 머리를 식혀준다.


"좀 괜찮아?"


"지압 덕분에 좀 나아진 거 같아."


"안 통하는 사람도 많지만 너한테는 잘 통할 줄 알았어."


"지압이 잘 되는 체질 같은 게 있어?"


한솔이 피식하고 웃는다.


"혈액 순환에 조금 도움이 되기는 하는데 플라시보 효과가 더 크거든."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을 찬찬히 생각해보다가 몇 초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


"내가 잘 속는다는 말이야?"


"잘 속는 다기 보다는 속을 준비가 되어 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일부러 속으려 하기라도 한단 말이야?"


"마술 보여줄까?"


또 시작되는 주제의 널뛰기.

그래도 원래의 주제를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믿고 따라본다.


"응? 해봐."


"자, 내 손을 잘 살펴봐."


나에게 두 손을 내밀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 시킨다.

내가 손을 뒤집어 손 등에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혹시 무언가 숨겨 놓은 게 있나 해서 손을 유심히 살피고 있으니 한솔이 말한다.


"시작 좀 하게 해줄래?"


"아."


한솔의 손을 조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놓았다.

어색하게 한솔의 뒤 쪽 바닥에 시선을 두고 있으니 한솔이 한 마디 한다.


"딴 데 보고 있으면 너무 쉽잖아. 내 손을 잘 봐야지."


"미안."


한솔이 양손을 붙이고 슬슬 비비자 손 바닥 사이에서 무언가 나오기 시작한다.

천원짜리 지폐였다.

카드 기계에서 영수증이 뽑혀 나오듯 지폐가 손바닥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와!"


지폐를 나에게 보여준 다음 앞 주머니에 넣고 내 옆에 앉는다.


"이런 거야."


"이런 거라니?"


"내가 지폐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그럴 리가 없잖아? 어딘가에 숨겨 놨겠지."


"마술 공연을 보러 온 관객 같은 거지. 마술사가 속임수를 쓰지만 속임수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 한마디는 그가 보여준 마술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맨날 당하면서도 자진해서 함정에 발을 들이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놀라움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바람이 불어와 나의 이마를 차갑게 식혀준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마술? 알면 허무할 텐데? 진짜로 알고 싶어?"


꿈과 현실의 갈림길.

매트릭스에서 파란약과 빨간약의 선택을 종용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쓸데 없이 긴장이 되어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딴 데 보고 있길래 앞 주머니에서 꺼냈지."


그게 끝?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짖고 있으니 한솔이 말한다.


"허무할 거라고 했지? 놀랍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이면을 알고 나면 별로 대단치 않아."


"대단하잖아?!"


나의 반응에 한솔이 의외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기울여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데 보게 만들었잖아? 성공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너에겐 평범하고 당연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너무 놀라운 일들인 걸?"


그가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 알려주었듯 나도 그가 모르는 그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너무 저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한솔이 감상에 젖은 것처럼 나의 말을 음미하다가 입을 연다.


"목소리 들어보니 이제 기운 차린 것 같네. 버스 타자."


"응."


마지막까지 버스 밖에 나와있던 아이들이 선생님의 부름에 맞춰 버스로 들어간다.

천천히 버스 통로를 지나는데 남학생 둘의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아까 뒤에서 이상한 소리 못 들었냐?”


다른 학생이 이어폰을 귀에 꼽으려다가 말고 묻는다.


“무슨 소리?”


“신음 소리 같은 거 못 들었어?”


“뭐?”


“여자 신음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야동 좀 그만 봐라 미친새꺄.”


“아니, 진짜라니까.”


남학생은 그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고른다.

아파서 소리를 낸 것인데 저렇게 저질스러운 말을 할 수 있지?

남자들은 다 그런걸까?

애꿎은 옆의 남자를 쏘아보았다.


“왜? 또 안좋아?”


아니라고 말 하려다가 은근슬쩍 손을 내밀었다.

나의 손을 넘겨받은 한솔이 아까와 달리 부드럽게 지압해준다.


“으... 음.”


그의 어깨에 속삭이듯 얕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상한 생각했지?”


함정수사에 성공한 탐정처럼 의기양양하게 행세했다.


“이상한 생각이야 항상하지. 구체적으로 어떤 이상한 생각을 말하는 건데?”


“어, 그러니까....”


말로 설명하려니 얼굴에 열기가 확 올라왔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한솔을 타박했다.


“나한테 무슨 말을 하게하려는 거야?!”


“나야 모르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터질것 같은 얼굴을 감싸고 힘겹게 입을 띄었다.


“왜 못살게 구는데?”


“내가 언제? 니가 시작했잖아?”


“몰라. 나 이제 울거야.”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짐짓 우는 시늉을 해본다.

잠시 진정할 시간을 주나 싶더니 말을 잇는다.


“너무 심했던 거 미안하게 생각해. 그런데 너도 잘못했잖아?”


“미안.”


“나도 미안해.”


“두 번이나 사과할 필요 없어.”


한솔이 머리를 긁적인다.


“두 번째 사과는 이상한 생각에 대한 사과야.”


“거봐 이상한 생각했잖아? 무슨 생각했어?”


“2차전 해보자는 거야?”


“아니에요. 항복. 무조건 항복.”


수백명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낯두꺼운 녀석과 승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첫번째 관광지인 박물관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휙휙 지나쳐 버렸지만 한솔은 하나 하나 찬찬히 돌아보고 있었다.


“재미있어?”


“일찍 돌아봤자 시간만 남고 이왕 왔으니 사진이라도 찍어 놓으려고.”


“사진촬영 금지인데?”


촬영금지 표시가 붙어있는 벽을 가리켰다.

한솔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자기 머리를 가리킨다.


“사진만 안쓰면 되잖아?”


“뭐?”


놀라서 소리를 내자 한솔이 소리를 내며 웃는다.


“농담이야. 정말 잘 속는구나?”


내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정말 농담이야?”


한솔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한 번 보면 기억에 남잖아?”


“포토그래픽 메모리?”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빵 터져서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어댄다.


“도대체 무슨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망시켜서 미안해. 하하하하.”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눈 앞에 보이는 유물의 이름과 설명을 주의깊게 살폈다.

기억하는지 나중에 물어봐야지.



식사를 마치고 한옥 마을로 이동했다.

한솔이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간다.

거의 놓칠뻔 했지만 겨우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같이 가!”


한솔이 발걸음을 늦추는가 싶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본다.


“지금부터 나는 땡땡이 칠 건데 괜찮겠어?”


“선생님들이 입구 지키고 있어서 아무데도 못가.”


“여긴 입구가 많아서 빠져나갈 수 있어. 시간도 넉넉한 편이고.”


“어딜 가려고?”


한솔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


누군가를 만나려나보다.

중요한 일인것 같았다.


“갔다와. 혹시 누가 물어보면 나랑 같이 있었다고 말해줄게.”


최대한 밝은 미소로 그를 배웅했다.

목례로 감사의 뜻을 밝히고 뒤를 돌아 몇 발을 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뒤를 돌아 내쪽으로 뛰어 오더니 손을 내민다.


“같이 갈래?”


“어? 나랑? 그래도 돼?”


“오랜만이라 좀 긴장 돼서.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의 세상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반쯤 체념하고 있던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마다할 수는 없다.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옥마을을 빠져 나오자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시립추모공원으로 가주세요.”


“시립추모공원? 아, 화장장이요?”


“네.”


택시 내부의 공기가 무겁다.

한솔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의 손을 꽉 쥔 그의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시립추모공원에 도착해서 납골당이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로 들어서자 수많은 납골함으로 이루어진 벽이 나타났다.

언젠가 증조할머니의 묘지에 갔던 기억이 난다.

산의 한 면을 가득 메운 수 많은 산소들.

하지만 납골당에서 느껴지는 음습한 기운은 차원이 달랐다.

가로세로 50센치 정도되는 선반에 갑갑할 정도로 딱맞게 들어가 있는 납골함들.

앞뒤로 가득 들어찬 그 죽음의 무게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솔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생각지도 못한 납골함의 주인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저 살아 남았어요.”


한솔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만족하세요?”


한솔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김숙자 19xx.xx.xx ~ 20xx.xx.xx]


아무 무늬도 없는 회색 도자기 납골함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각인되어 있었다.

별세일을 따져보니 한솔이 초등학교 6학년 졸업 즈음이었다.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솔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슬픔이 나에게 전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솔의 눈에서도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가자.”


진정이 된 한솔이 자리를뜨려고 했다.

이렇게 그냥 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한솔을 기다리게 하고는 1층으로 내려가 납골함 앞에 붙일 수 있는 작은 꽃을 사왔다.

어머님의 납골함 앞 유리벽에 붙여 헌화했다.


“저는 한솔이 학교 친구 차소연이에요. 한솔이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에요.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


초등학교 6학년에 어머니를 여읜 마음의 상처는 상상이 되지 않기에 아무말도 해줄 수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그의 곁에 있어주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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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6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3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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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축제 준비 19.07.15 21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3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4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5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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