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19
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7.12 23:00
조회
22
추천
0
글자
11쪽

하트 여왕

DUMMY

부모님이 학교에 오신다.

재밌겠다.

물론 10년 전이라면 말이지.

고등학생씩이나 돼서 공개수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공개수업을 보고 실제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공개할 수업을 정하고, 미리 리허설까지 마친 다음에 똑같은 수업을 반복하는 광대놀음.

공개수업은 모델 하우스 같은 것이다.


라고 차한솔이 말했다.

그 녀석이 말할 때는 빛이 나는 것 같았는데, 왜 내가 하면 중2병 느낌이 드는 거야?

하여튼, 이럴 시간이 있다면 교과서나 넘어가지 말던지.

적어도 안 가르친 부분에서 시험은 내지 말아야지!


우리 부모님은 공개수업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한다.

하나 있는 자식이 돈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걸까?


공개 수업이 예정된 시간은 점심식사 전 수업.

부모님들이 퇴장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초등학교 때는 부부동반 사교댄스 모임에나 어울릴법한 의상으로 나타나서 모든 이의 주목을 끌었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이 나가라고 할 때까지 돌아가지 않아서 두 번째 수업까지 참관할 뻔했다.

제발 이번에는 우리 부모님이 친구들 입에서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관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학부모들이 들어온다.

아니길 바랬지만 예상대로 엄마 아빠가 1번으로 입장한다.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 상견례 하러 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 힘이 들어갔다.


이십 여명의 학부모들이 들어왔는데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아빠들의 모습이 꽤 많이 보인다.

시대가 변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자식의 마지막 학창 시절을 보려고?

이유야 어찌 됐던 엄청난 희소식이다.

우리 부모님의 존재감만 희석 시킬 수 있다면 뭐든 좋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누군가를 극진히 영접한다.

그 뒤로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장년의 남성이 들어온다.

그 풍모 때문인지 주변의 다른 부모님들까지 목례를 한다.

장학사인가?

반의 모든 이목은 그 남성에게로 쏠렸다.


'지아 아버님 오셨네?'


소영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만나 뵌 적 있어?'


'아니. 뉴스에서 못 봤어?'


이지아는 학교의 여왕이다.

일부 학생들끼리 통용되는 스쿨카스트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 금룡건설 총수의 외동딸.

내가 사는 아파트도 그 회사에서 지었다.

아파트 이름이 '지안'인 것은 모르긴 해도 지아의 이름에서 따온 게 아닐까?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느껴지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른스러움이 묻어 난다.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에 압도되어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들도 그녀 앞에서는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노골적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구름 위의 존재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교감 선생님까지 나서서 에스코트를 하는 모습을 보니 학교도 사회의 일부라는 것이 실감 된다.

그래도 오늘만은 감사하자.

덕분에 우리 부모님이 평범하게 보이니까.


선생님이 저번에 했던 수업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똑같이 반복한다.

심지어 애드립인 줄 알았던 농담까지 똑같이 하니 실소가 나온다.

미리 약속했던 질문에 약속된 답변자 이지아.

이 쇼의 주인공은 지아고 관객은 지아의 아버지였다.

여기에 모인 학생들과 학부모들 모두가 들러리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씁쓸해진다.


수업이 끝나고 학부모들이 빠져나가는데 아빠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내가 오면 안 된다고 손을 저어 보지만 완전히 무시 당했다.


"소연아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해야지. 자꾸 뒤를 돌아봐?"


"아빠, 공개수업 끝났어."


"어차피 쉬는 시간인데 괜찮잖아?"


"아빠 때문에 애들이 못 쉬잖아?! 빨리 가!"


"안녕하세요. 김소영이라고 합니다. 소연이 친구에요."


소영이가 친구 부모님께 인사하는 법의 정석을 보여준다.


"아, 소연이한테 많이 들었어요."


"내가 언제? 말한 적 없잖아?"


"어? 단짝인 줄 알았는데 말 안 했어? 소연아 실망이야."


"그게 아니라. 니 이야기는 많이 했는데, 이름은 말한 적 없단 말야."


"방송반에 인기인을 친구로 둬서 너무 좋다고 하더라구요."


우와! 우왁!

왜 가족들은 내 흑역사를 만들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참, 뭐 그런 거 가지고. 소연이도 인기 많아요. 요전에 광고에 나가고 나서 대단했는데요?"


"광고? 무슨 광고?"


큰일났다.

이대로 대화가 계속되면 수습 불가능이다.

촬영한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차한솔 집까지 찾아가고도 남을 사람이다.

재빨리 아빠를 잡고 교실 밖으로 밀어낸다.


"아이참! 다들 갔는데 아빠 혼자 뭐해! 빨리 나가!"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집에 놀러 와요."


"안녕히 가세요."


아빠를 교실 밖으로 겨우 밀어냈더니 복도에 학부모가 한 명 더 있었다.

지아 아버지.

교감 선생님이 지아가 얼마나 우수한 학생인지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있다.

노골적인 아부에 별로 감흥이 없는지 지아에게 직접 질문을 한다.


"친구는 사귀었니?"


"아빠가 만들어 줬잖아?"


지아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남학생이 있다.

보디가드 김진수.

학기초부터 붙어 다녀서 남친인가 했는데 뭔가 분위기가 어색했다.

알고 봤더니 지아 아버지 회사 직원의 아들이라고 했다.

부모가 직원이면 자식도 직원이 되는 걸까?

부모의 부탁을 받고 이성의 동급생의 비서가 된 남학생.

나 같으면 죽어도 싫다고 울며불며 날뛰었을 텐데.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지아가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서 학기 초부터 남녀가 붙어 다니는 것도 평범하지는 않다.

만약 지아가 싫다고 했다면 그 남학생의 입장은 또 그 부모님의 입장은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것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일까?

아니면 구름 위의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일반인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 걸까?


대기업 총수라고 해도 외동딸 앞에서는 결국 평범한 아버지인가 보다.

퉁명스런 딸의 대답에 난감해 하고 있으니 지아가 다시 한 번 답한다.


"싫다는 건 아니고. 도움 많이 받고 있어. 다른 친구도 꽤 사귀었고."


"잘 됐구나."


평소에 대화를 하는 부녀는 아닌 듯 하다.

하긴 대기업 총수다.

여기에 나타난 것만 해도 엄청나게 큰 시간을 투자한 게 아닐까?

그 때 뜻밖의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차한솔이라고 아니?"


"이름은 들어 봤어. 왜?"


"알아두면 도움이 될 거야."


지아가 나지막하게 한 숨을 내쉰다.


"누구한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말을 있는다.


"알아볼게."



부실에 앉아서 아까 들은 이야기를 곱씹어 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차한솔의 이름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한솔의 아버지도 금룡건설의 직원인 걸까?

한솔도 지아의 비서 노릇을 해줘야 하는 거야?

생각해봤자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아는 해결책은 한 가지.


"지아 아버지 알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 있네요.


"그런 거 말고. 개인적으로 아냐고?"


한솔이 안경을 고쳐 쓰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무슨 일인데?"


"복도에서 지아 아버지가 니 이름을 말하길래."


"흐음."


한솔의 표정이 복잡하다.

핸드폰을 켜고 날짜를 확인하더니 손가락을 까닥이며 뭔가 세는 듯한 행동을 한다.


"생각보다 빠른데?"


"뭐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일상의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야."


제대로 된 대답은 해주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해댄다.

그때 누군가 부실 문을 두드린다.


"똑똑."


"들어오세요."


자동문일 리가 없는 부실의 문이 저절로 열린다.

문이 열리자 여왕님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를 보디가드 김진수가 따라 들어온다.

에스코트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너무 자연스러워서 방금 본 상황에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승연이가 어느새 종이컵에 티백을 담아 내온다.

그제야 나도 손님 접대를 시작했다.


"지아야 어떻게 왔어? 앞에 앉아."


진수가 의자를 당기자 지아가 그 자리에 앉는다.

진수는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는지 그 곁에 선다.

내가 진수에게 자리를 권하기도 전에 지아가 입을 연다.


"자율 상담부? 무슨 상담을 하는 곳이야?"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하긴 지아 정도라면 우리 말고 상담할 만한 주치의가 따로 있지 않을까?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해결 해주고."


"해결한 문제는 있고?"


질문이 다소 공격적인 것 같은데?

떨떠름한 느낌이 들어서 다소 주춤하고 있는데 승연이가 답한다.


"물론이지. 내 성적 고민을 들어 줬어."


"너는? 아, 마녀구나. 머리 묶어서 못 알아봤어. 너는 부원 아니야?"


깔보는 듯한 눈빛 때문에 가끔 오해를 받기는 하지만 지아는 항상 바르고 겸손하게 말을 하는 아이다.

하지만 오늘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격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은 부원 맞는데 상담은 중간고사 전이었어."


"상담 받고 성적이 더 떨어진 거네?"


전선이 명확해진다.

선전포고다.

이럴 때 부장인 내가 한 마디를 해야 하는데 지아의 기에 눌려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아의 아버지는 분명히 차한솔과 친하게 지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싸움을 거는 걸까?

친하게 지내라는 뜻이 가서 제압하라는 뜻이었나?

설마 조직의 암호 같은 건 아니겠지.


"대단한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안심해도 돼. 그냥 평범한 학생들의 동아리일 뿐이니까."


한솔의 말을 들은 지아의 톤이 조금 누그러진다.


"아버지의 눈에 띌 정도면 좀 더 특별할 줄 알았는데?"


"두 사람 입만 거쳐도 고양이가 호랑이가 되는 법이니까. 처음은 아닐 거 아냐?"


한솔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지아의 동의를 구한다.

항상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던 지아의 눈빛이 선명해진다.


"대부분 시시한 인간들이었지."


그러지 않아도 표정이 없던 진수의 얼굴이 더욱 경직된다.


"인간이란 원래 시시한 거니까."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갑작스러운 침략은 한솔의 담판으로 일단락 되었다.


"오늘은 인사하러 온 거야. 그럼 조만간."


일방적인 통보를 마친 지아가 일어난다.

진수가 부실 문을 열려고 할 때 한솔이 말한다.


"그럴 일 없기를 바래."


뒤를 돌아본 지아의 얼굴에서 순간 미소를 보았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갔다.


"승연아 괜찮아? 차한솔 방금 뭐였어?"


그제야 정신이 들어 주변을 수습해본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뭐?"


"다른 세상 사람이잖아? 엘리스라기 보다는 하트 여왕인가?"


"너는?"


한솔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흰 토끼라고 해야 하나?"


항상 불안했다.

그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

희 토끼라면 반쯤은 이쪽 세상에도 발을 걸쳤다는 뜻일까?

하지만 결국 이쪽 세상의 존재는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 이유가 그저 공부를 잘하고 생각이 깊기 때문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단서를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다.

그냥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을 직접 듣고 말았다.


바닥이 꺼지고 그 아래로 내 몸이 빠져들어간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도 된 듯 끝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확률과 로맨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무거운 자유시간 19.07.23 21 0 12쪽
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6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3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9 0 13쪽
25 셜록 19.07.16 20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1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 하트 여왕 19.07.12 23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4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5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1 확률과 로맨틱 +2 19.06.20 202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