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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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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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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6.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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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봉사활동

DUMMY

바야흐로 전인 교육의 시대.

학교는 지식은 물론이고 인성까지 겸비한 슈퍼히어로를 양성하기 위해서 학생에게 봉사활동 성적을 요구하게 되었다.

시험으로 부족해서 논술, 그것도 부족해서 토론 이제는 봉사까지 점수화 해서 평가의 지표로 삼는다니.


소영이와 같이 봉사활동을 고르려고 했는데 방송반은 봉사활동을 기록영상으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단다.

거기에 찍히는 순간 새마을운동(?) 홍보 영상으로 영구 박제될 것이다.

아무리 친구지만 카메라 보면 도망가야지.


"어린이집, 양로원은 좀 부담스럽고. 어디 쉽고 편하면서 끝나면 뿌듯한 느낌이 들만한 거 없나?"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굶주린 상어에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반대쪽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다니 놀라운 발상인데?"


참고서를 덮은 것을 보니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나 보다.


"말이 잘 못 나왔을 뿐이야. 편하거나 그게 안되면 보람이 있을만한 걸 찾고 있었다구."


재빨리 수습해 보지만 녀석의 얼굴에 '아아, 그러시겠지.'라고 써있는 듯 했다.


"부담스럽지도 않아야 한다니 방법은 하나 밖에 없네."


그런 방법이 있었단 말이야?

내가 흥미를 보이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답한다.


"땡땡이."


"아니, 그건 보람은 커녕 죄책감만 들고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이 불편한데다가 엄청 부담스럽잖아? 결정적으로 봉사 점수를 못 받는다구!"


녀석이 오늘은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내가 말했던 조건을 단 하나도 만족 시키지 못하는 이상한 선택지를 들이댄다.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


"모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뭔가 있을까?"


"글...쎄?"


또 녀석의 흐름을 알 수 없는 논리에 휘둘리기 시작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살짝 자포자기 상태랄까?

버티지 말고 난류에 정신을 맡기면 의외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단어의 재정의. '뚫는다'와 '막는다'라는 뜻을 다시 정의하면 모순은 간단하게 해결돼."


"그러니까... 눈 가리고 아웅하라는 거야?"


"너의 경우는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어. '부담', '편안', '보람' 모두 감정이니까.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돼."


땡땡이를 친다면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기는 하겠다.

불안하고 초조하면서 죄책감이 잘 느껴지는 그런 환경이겠지만.


"아닌 거 같은데?"


"문제의 원인은 봉사활동이라는 거야. 더 정확하게 말하면 봉사 점수가 걸려있다는 게 문제지.

점수를 얻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니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고, 날로 먹고 싶은 거지. 그러니 무슨 보람이 느껴지겠어?"


"날로 먹는다니!"


머리로는 수긍했지만 뭔가 꼬투리를 잡고 싶어서 단어 하나에 태클을 걸어본다.


"연결고리를 끊으면 돼. 봉사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부담 없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보람찬 활동은 무궁무진하니까."


"하아..."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책상에 머리를 박는다.

생각보다 더 점수에 연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내 자신이 속물처럼 느껴진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점수를 내려 놓으면 되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너는 뭐해?"


눈 앞의 현자에게 해답을 구해본다.


"근린공원청소. 아웃풋이 정해져 있다면 인풋을 최소로 줄이는 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그렇구나. 나도 청소나 해야겠다."



토요일, 오늘 따라 눈이 저절로 떠졌다.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 짙은 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화장대의 거울로 이리 저리 비춰보지만 거울이 작아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현관 옆의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너무 수수해."


수수하다 못해 칙칙한 느낌마저 든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셔츠와 바지를 벗고 옷장을 들쳐본다.

마음에 드는 셔츠가 있지만 여름 내내 입었더니 목이 늘어나 버렸다.

실용적이면서도 나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하지만 너무 꾸민 것 같은 티가 나지 않는 그런 옷이 필요한데...


"여름 옷 좀 사 놓을걸."


문득 '나의 매력이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나의 몸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숨을 한껏 들이켜고 어깨를 쫙 펴니 S라인은 아니지만 봐줄 만 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참지 못하고 후우 하고 숨을 내뱉는다.

허리 춤을 손으로 휘어 잡자 두툼한 살집이 한 손 가득 잡힌다.


"하아~ 살 빼야지."


딱히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학생의 몸 관리의 중심은 몸이 아니라 뇌니까.

잘 먹고 잘 자야 뇌가 활발하게 움직여서 공부를 잘할 수 있으니까.


"3키로만 빼자."


화장대를 여니 핑크 색 립글로스가 눈에 띈다.

아랫입술에 엷게 펼쳐 바르고 윗입술로 살짝 문지르자 화사한 핑크 톤 입술이 되었다.


"너무 짙은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재빨리 휴지로 입술을 닦아냈다.

립글로스 대신 투명한 립밤을 바른다.

립글로스가 완전히 닦기지 않았는지 입술이 평소보다 화사해 보였다.


시간이 다 돼간다.

결국 정답을 찾지 못하고 흰 티에 스키니 진을 입고 집을 나선다.


"소연아. 공원 청소하러 간다며? 흰티를 입고 가면 어떻게 해?"


"나도 몰라~"


"얘!"


엄마의 한 소리를 뒤로 하고 후다닥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공원 입구에 다다르자 봉사 활동을 위해 모인 학생들이 보였다.

그 중에 체크무니 남방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차한솔의 모습이 보였다.

단추란 단추는 모조리 채운 뭔가 경직되어 보이던 교복 차림과 달리 편안한 인상이었다.


손을 흔들까 하다가 다른 학생들의 눈에 띌 것 같아서 조용히 다가갔다.

옆구리를 쿡 찔러서 한솔을 불렀다.

무슨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움찔하고 놀라더니 내 쪽을 돌아본다.


"킥킥킥."


녀석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본다.


"너무 뭉쳐 다니지 말고 흩어져서 청소 하도록 하세요. 봉투에 쓰레기 다 채우면 이쪽으로 와서 도장 받아가면 됩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온 공무원이 간단하게 안내를 하고는 2리터 종량제 봉투를 나눠준다.

마지막으로 봉투를 받고 돌아서는데 공무원의 혼잣말이 들린다.


"봉사 활동이 아니라 데이트하러 왔구만. 부럽다 자식들아."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공원으로 흩어지는 학생들을 둘러 보았다.

남자 셋이 모인 한 그룹을 제외하고는 남녀가 짝을 지어서 흩어지고 있었다.

손에 쓰레기 집게만 없으면 누가 봐도 데이트하러 나온 커플들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한솔 쪽으로 다가 가는 게 쑥쓰러워진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잠시 기다려주는가 싶던 한솔이 먼저 공원 쪽으로 어깨를 돌린다.

깜짝 놀라서 재빨리 한솔의 옆으로 다가간다.


"뭐야? 그새를 못 기다리고 혼자 가는 거야? 참을성 없기는."


뾰로통하게 쏘아붙이니 웃으면서 말한다.


"'빨리 와'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 간다'라고 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거든.

강아지는 어깨만 돌려도 그 방향으로 따라온다고."


"내가 강아지야?"


오늘 뿐만이 아니다.

항상 녀석에게 휘둘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휘둘리는 정도가 아니라 조련 되고 있었다니.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더 자존심이 상했다.


GDP의 성장에 맞춰 발전한 시민의식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공원은 대체적으로 깨끗했다.


"이래 가지고는 2리터 채우는데 하루 종일 걸리겠어."


"가득 채울 필요는 없어. 어차피 점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서로 인정하고 하는 거니까.

'이 정도면 점수를 줘도 되겠다.'할 정도면 충분해."


"그게 어느 정도인데? 절반 정도?"


쓰레기 봉투를 들어 절반이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해 보니 그것도 꽤 많은 것 같다.


"감독하는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세 번째 정도?"


"세 번째라니?"


"저 삼인조가 농땡이 피다가 10분 쯤 뒤에 검사 맡으러 갔다가 퇴짜 맞을 테고, 끝나고 영화관이라도 가려는 건지 벌써 시계를 보고 있는 저 커플이 두 번째겠군. 그 뒤에 가면 될 거야. 한 30분 정도 걸리겠네."


드라마 셜록의 한 장면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단해!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거야 모르지. 그럴 것 같다는 것 뿐이야."


"에이, 뭐야."


살짝 김이 새는 것 같은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 그 동안 뭐하지?"


시간만 보내면 된다니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은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다가 "푸하하핫!"하고 크게 웃는다.


"뭐하긴 뭐해? 청소해야지. 바보냐?"


"아, 그렇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쓰레기를 찾아 보지만 담배꽁초 몇 개를 주었을 뿐이다.

아무리 시간만 때우면 된다지만 텅 빈 봉투를 들이미는 것은 염치가 없다.


“그렇게 빨리 찾으려고 할 필요 없어. 지금 채워 봤자 무겁기만 하잖아.”


“쓰레기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조금은 채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자 할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기지개를 한 번 펴고서 안경을 고쳐쓴다.


“그럼 조금 이르지만 시작해볼까?

쓰레기를 찾고 싶으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해야지.”


“아니...”


녀석이 집게로 화단에 심은 나무를 쓱쓱 제친다.

나무에서 맥주캔이 열리기라도 한듯이 나뭇가지 사이에 정성스레 꼽혀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 경우라면 숨기고 싶기 마련이지.”


내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발걸음을 옮긴다.

종종걸음으로 따라가 보니 쓰레기통 앞에 멈춘다.


“설마, 쓰레기통에서 꺼낼 생각은 아니겠지?”


“쓰레기통 주변이 가장 쓰레기가 많은 곳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쓰레기통 뒤편으로 향한다.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다.


“쓰레기 던지기는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적 스포츠니까.”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는데 봉투에 넣는다는 점이 좀 그렇네.”


내가 쓰레기를 주우며 다소 난감해 하자 녀석이 답한다.


“그 부분이 이 봉사활동의 교훈이겠지.”


“교훈?”


“진짜 봉사활동이 아니라 점수를 얻기 위한 의무활동라는 것을 깨닫는 것.”


집게를 멈추고 1/3정도 채운 쓰레기 봉투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봉투를 들어 공원의 쓰레기통에 부어 버렸다.


“그게 뭐야. 봉사활동을 하러 왔으면 보람이 있어야지!”


무슨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양 의기양양하게 빈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찾아 나선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지지 제법 더워졌다.

나름 열심히 쓰레기를 찾아다닌 것 같은데 비닐봉투는 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큰소리쳐 놓고 이제 와서 녀석에게 쓰레기를 나누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역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자 녀석이 권유한다.


“이거.”


오랜지 쥬스였다.

잠시 사라졌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보다.


“쓰레기 찾기가 힘들다면 쓰레기를 만들면 되지.”


꿀꺽 소리가 날 정도로 시원하게 한 번에 들이키더니 빈 캔을 내 봉투에 집어 넣는다.


“아, 고마워.”


“고마워 하려면 쥬스를 고마워 하라고 쓰레기를 고마워하지 말고.”


한솔이 즐거운 듯이 농담을 건넨다.

당황스런 말에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 그러니까 쥬스 고맙다고.”


“자판기 주변에도 쓰레기 많을 거야. 잘 안 보이는 틈에 열심히 숨겨 놨겠지.”


“쓰레기 버리는 사람의 심리란 말이지?”


웃음 짓는 한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봉사 점수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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