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01
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6.24 07:00
조회
44
추천
0
글자
13쪽

에니그마

DUMMY

학생의 본분은 공부!

중간고사가 코 앞이다.


입시가 곳 인생이고 인생이 곳 입시다.

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생을 방향을 결정할 첫 조각인 셈이다.


최근에 사소한 마음의 동요가 있었지만 입시라는 최종 보스의 존재가 실감이 되자 모든 신경이 공부에 쏠렸다.


"열심이네."


평소에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 하던 녀석이 시험이 가까워지자 오히려 한가해 보인다.

먼 하늘을 보면서 사색을 하거나 내가 공부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거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험 공부 안 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은 했으니까. 몇 점 더 올리려고 아등바등 하고 싶지는 않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자세가 글러 먹었네."


물론 녀석이 공부하는 모습은 질리도록 봤다.

그래도 누구는 1점이라도 높이려고 머리를 쥐어 짜고 있는데 여유를 부리는 녀석이 못 마땅해 한 소리 했다.


"최선이라... 내가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결과라서."


녀석은 늘 그렇듯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녀석이 어떤 논리를 펼칠 때는 항상 신나 보였는데 이번에는 왠지 침울해 보인다.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최선을 다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노력과 결과는 정비례 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아.

노력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면죄부일 뿐이야."


"최선을 다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잖아?"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 것 같았다.

세상은 노력보다 운과 우연에 의해서 지배 되고 있으니까.

태어날 때 부여 받은 유전자까지 운에 포함한다면 노력의 한계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나의 노력을 긍정하는 것 뿐이었다.


"정론이네. 너의 그런 점이 좋아."


'좋아'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욱신거린다.

다 아문 줄 알았던 마음의 상처는 사실 얇은 딱지가 겨우 앉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픈 가슴을 지혈이라도 하듯이 손끝으로 꾸욱 누른다.


"보통 과정을 통해야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정은 결과에 따라서 해석되는 후행성 지표야.

결과에 의해서 미화되거나 간과 되는 객관화 불가능의 영역이라구.

결과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말 따윈 나에겐 사치야."


내가 알던 차한솔이 아니었다.

항상 무심하고 냉철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격한 감정의 동요를 그대로 내비쳤다.

녀석의 격하고 침울한 아우라가 내 몸을 감싸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뭐, 아까 말했듯이 약속을 지킬 만큼은 했으니까."


녀석의 미소와 함께 나를 짖누르던 침울한 기운이 사라진다.

평소의 한솔로 돌아왔다.


무슨 약속을 말하는 것인지 무엇이 그를 이토록 압박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가갈 자격을 갖추지 못 했으니까.

도와도 된다고 허락 받은 적 없으니까.


"빨리 3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한솔의 입에서 평범한 고등학생다운 말이 나온 것 같았다.

녀석과 눈이 마주치니 동의를 구하는 듯이 싱긋 웃어 보인다.


"그러게."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여러가지 의미로...



중간고사가 끝났다.

수업 시간에 가르친 내용과 동 떨어진 시험 문제에 배신감 마저 느껴진다.


정문앞 대자보에 과목별로 전교 1등부터 10까지 점수를 붙여 놓았다.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

그것이 얼마나 치졸한 방법인지 알면서도 경쟁 사회의 노예인 우리들은 자극을 받는다.

그나마 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이름까지는 공개하지 않으니 조금은 나아졌으려나?


교실 뒤편에는 과목별 시험 결과가 붙어 있는데, 그 옆에 고유식별코드가 붙어 있어서 자신의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의를 제기하라는 목적이라고 하지만,

문자 메시지라던지, 개인 메일이라던지 여러가지 편리한 방법을 마다하고 구지?

뻔한 이유지만 좀 너무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몇몇 그룹들이 삼삼오오 모여 암호 해독에 열중이다.

신뢰할 수 있는 동지들을 모아 각자의 퍼즐 조각을 모아 학급의 판도를 유추해 보려는 것이다.

애니그마를 해독하는 듯한 이들의 모습은 마치 2차 세계대전의 정보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구지 감춰준 이름을 그렇게까지 해서 알고 싶을까?

사실 나도 좀 궁금하기는 하다.


웅성거리는 와중에 몇몇 이름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대충 반의 학업 서열이 정리가 된 것 같다.

학기 초에는 주목 받지 못했던 몇몇 인물 주변에 사람이 늘어난 것만 봐도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적 호기심일까? 아니면 더 큰 자극이 필요했던 것일까?

반 내의 암호를 간단하게 해독한 명탐정들은 대자보의 전체 순위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퍼즐 조각이 부족하다.

반장에게 총대를 매도록 압박해 보지만 난감해 하기만 할 뿐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때 히어로가 나타난다.

반의 실질적 리더이자 사교성의 왕.

교내 유명인 우석현이었다.

석현은 쭈뼛거리는 반장을 데리고 교실을 나선다.

아이들은 큰 전쟁에 출전하는 장군을 배웅하듯 문 앞까지 따라 나선다.


얼마가 지났을까?

석현이 돌아오자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석현이 무언가 적힌 종이를 펼쳐서 보여주자 종전협정 합의서라도 본 것처럼 "우와~"하고 환호한다.

비밀 외교문서가 탐정 그룹으로 보내지고 수업종이 울린다.


점심시간에 대부분의 정보가 정리 되었고, 수업을 마치고 나서야 완전한 표가 완성되었다.

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아랑곳 없이 학생들의 이름과 석차가 민낯을 드러낸다.

고급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암호 해독에 참여한 클래스 상위권 뿐이라 나 같은 평범한 학생들은 소문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소연아."


소영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분위기만 봐도 고급정보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친인 석현이로부터 들은 것이겠지.


"차한솔이 1등이래."


"진짜?"


공부를 잘 할 줄은 알았다.

시험 기간도 아닌데 공부를 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공부 다 했다고 멍 때리던 녀석의 모습이 떠오르자 살짝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전 과목에서 두 문제 밖에 안 틀렸대."


"미친놈."


아차 싶어서 손으로 입을 막아봤지만 이미 주어 담기에는 늦었다.

소영이가 '깔깔'거리면서 웃자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녀석들이 분위기에 맞춰서 같이 웃는다.


'공부 많이 했어?'하고 물었을 때 '할만큼 했어.'라고 말하는 녀석 치고 성적이 좋은 녀석이 없다.

오히려 '하나도 못했어.'라고 말하는 녀석들이 나중에 '아, 두 문제나 틀렸네.'라고 푸념하듯 자랑을 하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녀석일까?



"야, 차한솔!"


"안녕."


특활부 교실을 열자마자 따지듯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뭔가 따지고 싶긴 한데 막상 얼굴을 보니 딱히 할 말이 없다.


"전교 1등 축하해."


첫 인사의 기세등등함은 사라지고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건넨다.

축하를 받은 녀석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다.


"약속이니까."


누구와 무슨 약속을 한 걸까?

보통의 학교 친구의 자격으로는 물을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질문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서 공책에 받아 적은 나의 성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본다.

나름 열심히 했다.

중학교 때보다 앞 자리 숫자가 하나 올라간 훌륭한 성적인데, 녀석 앞에서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성적표다.

전 과목에서 두 문제만 틀렸다고 하니 내가 이 녀석과 점수가 비슷한 과목은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바로 옆에 앉아 있지만 손에 닫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학교를 졸업하면 명문대로 진학해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될 테지?

나는 계속 아등바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테고.

차한솔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또다시 심장이 조여온다.


"화학 다 맞았어?"


웬만큼 친한 사이라도 성적을 묻는 것은 실례다.

하지만 나에게 이 질문 만큼은 절박한 질문이었다.

화학은 내가 이번 시험에서 가장 잘 본 과목이다.

그래봤자 세 문제나 틀렸지만.

그래도 혹시 녀석이 화학을 다 맞은 게 아니라면 한 과목만 이라도 가까워 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았다.


나의 절박한 눈빛이 녀석에게 전달 되었는지, 아니면 그저 자기 성적을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두 문제 틀렸는데."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빛이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아무 관계 없겠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웃음이 자꾸 새어 나올 것 같아서 표정 관리가 어렵다.


"7번 문제는 문제가 잘못된 거지만."


"7번? 뭐가?"


7번이라면 나도 틀린 문제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긴 했지만 문제가 잘 못 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솔이 가방에서 자신의 화학 시험지를 꺼낸다.

화학 시험지를 내 책상 앞에 펼쳐 놓고 문제를 보여준다.

이것이 전교 1등의 시험지구나.

시험지의 빈 공간에 각종 화학식과 풀이 과정이 적혀있는데 너무 딱 맞는 크기로 적혀 있어서 시험지가 아니라 참고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아세트산의 공유결합 갯수를 구하라고 써있는데, 보기로 보여준 분자식은 아세트산이 아니잖아."


"그렇구나! 왜 아무도 이의제기를 안 했지?"


"분자식도 거의 유사하고, 보기로 준 화학식을 기준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이상한 점이 없으니까."


"이의제기를... 해봤자 나는 어차피 틀렸네."


보너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문제가 바뀌어도 내 답은 오답이었다.


"학사 규정에 문제가 잘못된 경우에는 전체 정답으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없는 문제로 취급하는 거지."


"이의신청 할 거야?"


한솔에게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구지?"


화학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한데 괜히 찾아갔다가 찍히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게다가 어차피 전교 1등인 녀석이 뭐하러 이의신청을 하겠어.


"아아, 누군가 이의신청 안해주려나?"


답을 틀려 놓고 문제가 틀렸다고 선생님에게 찾아갈 배짱 따윈 없다.

눈앞의 떡을 보고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답답함에 머리를 책상에 이리저리 굴려본다.


"가자."


"어딜?"


"이의신청하러."


눈이 크게 떠졌다.

구지 할 필요가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말해 놓고 왜 이의신청을 하러 가자는 것일까?

혹시, 나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니까?


"안 할 거면 그냥 있어도 되고."


"같이 가는 거야?"


"너 혼자는 못 하잖아?"


본인의 점수도 달려 있지만 완전히 나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점이 차한솔답다.

점수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질 법도 한데 실질적으로 동일한 결과니까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건가?


"고마워."


처음으로 같이 자습부3 교실문을 나선다.

한솔이 앞장서고 나는 뒤를 따라 간다.

그 뒤를 따르고 있으니 이 거리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솔이 갑자기 뛰어 가기라도 하면 영원히 놓쳐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한솔의 옆에 선다.


교무실에 들어가서 화학 선생님을 보자 저절로 한솔의 뒤로 몸을 반쯤 숨기게 된다.


"선생님 7번 문제 말인데요..."


녀석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선생님께 문제의 잘못된 점을 설명한다.

너무 직설적이라 선생님이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구만."


화자의 중요성.

전교 1등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선생님은 흔쾌히 이의 제기를 받아준다.


"뒤에 너는?"


화들짝 놀라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저는 같이 왔는데요..."


"소연이가 문제 오류를 발견했거든요."


'응?'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님 앞에서 내색할 수가 없었다.


"6반 차소연."


선생님이 생활기록부를 보더니 호쾌하게 웃는다.


"오호, 화학 잘하는구나.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네, 감사합니다."


따라온 학생에서 대리인을 대동한 본인으로 승격되었다.

교무실을 나서며 한솔에게 무슨 말이냐며 눈치를 줘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확률과 로맨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무거운 자유시간 19.07.23 21 0 12쪽
29 수학여행 19.07.22 34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5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2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8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2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29 0 12쪽
19 1+1+1+1? 19.07.09 33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6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4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3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2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0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7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4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1 확률과 로맨틱 +2 19.06.20 201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