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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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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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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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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6.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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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효율과 로맨틱

DUMMY

"딩동~ 딩동~"


수업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그래봤자 장소를 옮겨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되겠지만.

누군가는 쇠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감옥까지는 아니고 교실연금 정도라고 하면 적당한 타협점이 되지 않을까?


가방을 챙겨서 일어나는데 단짝인 김소영의 엄지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히힛'하고 웃는다.


"뭔데?"


내가 쓰윽하고 얼굴을 들이밀자 재빠르게 핸드폰을 치우려다가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비스듬하게 톡을 보여준다.


[오늘, 학원 6시에 끝나니까 끝나고 데이트. 콜?]


[ㅇㅋ ^^*]


고개를 들어서 맨 뒷자리의 우석현을 바라보니 그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띄고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영이와 석현이는 반공인 커플로 발렌타인데이에 석현의 고백으로 학교 제1호(비공식) 커플이 되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놀라운 이벤트였다.

학기가 시작된지 1달도 않은채 맞이한 발렌타인데이에 그것도 교실 뒤에서 공개 고백이라니.

인사도 못한 친구가 있을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우석현은 자신의 그룹까지 만들었다.

미리 이야기를 맞추었는지 그룹 중에 한 명이 소영이를 교실 뒤로 불러내고는 나머지 두 명은 양 옆으로 도열해 반 전원을 주목 시켰다.

‘뭐지?’하는 생각과 ‘설마?’하는 생각에 반이 술렁거렸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저와 사귀어주세요!"


"와아~!"


고백은 속전속결이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상당히 민망한 분위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당한 체구의 석현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의 화사한 카리스마가 반의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 잡았다.


접점도 없는 반친구에게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갑자기 고백을 받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소영이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소영은 반아이들의 기대 섞인 시선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려 석현을 살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훑어 보는데 걸린 시간은 5초 남짓.

그것을 숨을 죽이면서 바라보는 교실에는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


소영은 말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와아아~! 대박 사건!"


우뢰와 같은 함성에 옆 반의 아이들까지 "무슨 일이야?"하면서 모여들었다.


"고백이래 고백."

"누가 누구한테?"

"우석현, 김소영!"


이름을 듣는다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겠지만 너도 나도 들떠서 속보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참나. 직접 와서 말하라고 해."


"야아~"


장난끼가 발동해서 소영에게 한 소리 던져봤더니 손을 저으면서 얼굴을 붉힌다.

공인 커플이라지만 교실에서 대놓고 애정행각을 한다면 시기와 질투를 받을 것이 분명하니 현명한 처신이다.

복도 계단까지 함께 이동하다가 소영이는 방송반으로 나는 자습부3으로 향했다.


딱히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직은 고1 이지만 순식간에 수험생이 될 것이고 연애 같은 것에 한눈 팔려 있다가 성적에 영향을 받는다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반 특별활동도 하고 남친(키크고 잘생긴)도 있는 소영이를 옆에서 보고 있으면 너무 삭막한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청춘은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사막과 같기에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르륵"


자습부3의 문을 여니 거기에 또 한 명의 사막 위의 청춘이 눈에 띈다.

아직 예비종도 치지 않았는데 차분하게 참고서를 보고 있는 차한솔을 보고 있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저 녀석도 장미빛 내일을 꿈꾸면서 하루 하루 인내하고 있는 걸까?

아니,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녀석은 너무 편안해 보이니까.

내 청춘의 배경화면이 사막이라면 저 녀석은 거기서 자라고 있는 선인장 쯤 되는 게 아닐까?


"사람이 왔으면 인사라도 하지?"


거의 매일 만나지만 교실에서 인사를 한 적은 없다.

그래도 어제 친구임을 확인한 만큼 인사는 해야겠지?

어제도 나만 인사를 했는데 오늘도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서 한솔에게 면박을 주었다.

녀석은 고개를 들었다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책에 시선을 고정 시킨다.

속도의 변화가 미묘해서 이게 고개로 인사를 한 것인지 그냥 쳐다보고 고개를 숙인 것인지 헷갈리는 수준이었다.


"선인장 치고는 훌륭했지 뭐."


녀석이 '훗'하고 웃는다.

내가 무슨 뜻으로 한 이야기인지 알아들었을리 없는데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살짝 부끄러워 졌다.

적당한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을 베게 삼아 엎드렸다.

고개를 돌리고 참고서를 읽고 있는 한솔을 바라보고 있는데 참고서 너머로 눈이 마주친다.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흡'하고 숨을 멈춰버린다.


"들어 오자마자 자냐?"


"자긴 누가 자?"


발끈해서 재빨리 허리를 세웠다.

잠시 숨 좀 돌리려고 했을 뿐인데 잠순이 취급이라니!

일부러 '철컥' 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가방을 열고 안에 있는 책을 모조리 꺼내서 책상 위에 탑을 쌓아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녀석이 뭔가 한 소리 하려는 순간에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서사고 학생 여러분. 오늘도 활기찬 하루 되셨나요?"


소영이가 오늘부터 (강제) 자율학습 시간에 음악 방송을 담당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평소와 다른 아나운서 같은 똑 부러지는 발음이 조금 어색했지만 전문가 같은 느낌이 멋있다.

한솔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린다.

저런 아름다운 목소리라면 누구의 목소리인지 궁금하기도 하겠지.

유명인의 친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으쓱해졌다.


"목소리 예쁘지? 우리반 김소영이야. 나랑 얼마나 친한데~"


"드문 확률이네."


"응? 뭐가?"


"목소리도 예쁘고 얼굴도 예쁠 확률은 꽤 낮으니까."


녀석에게 '확률이 낮다'는 것은 긍정의 의미로 쓰이나 보다.


"김소영 알아?"


"모르면 간첩이지."


소영이는 조명 없이도 빛이 나는 자체 발광 미인이라 다른 반 남자애들에게도 눈에 띈다.

모르긴 몰라도 석현이의 고백 멘트인 '첫 눈에 반했습니다.'는 괜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남자애들이라면 몰라도 차한솔이 소영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였다.

'이 녀석이 소영이 얼굴 보려고 우리 반에 왔었다고?'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아랫배가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이미 차 떠나 갔네요. 김소영 남친 있어."


내 뾰루뚱한 반응에 '응?'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피식'하고 웃는다.

하긴 우리 학교에 발렌타인 고백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녀석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


"보기 드물게 효율적인 만남이었지."


"뭥?"


김한솔이 또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예의 그렇듯이 참고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는 듣기에는 그럴듯한 담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원래 고백이라는 건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 원래는 서로 충분히 호의를 가진 상태에서 그 호의를 확인하는 요식행위거든."


고백은 요식행위.

로맨틱에 이어서 또 하나의 낭만적인 단어가 녀석의 재정의에 의해서 색을 잃는다.


"그런데 발렌타인 고백 사건은 좀 달라. 진짜로 잘 모르는 상대한테 고백한 거거든?"


"그러니까 로맨틱한 거잖아? 네가 말대로 드믄 확률이니까."


녀석의 언어를 사용한 나름 회심의 반격이라고 생각했는데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반박한다.


"로맨틱하다고 하기엔 너무 효율이 좋아."


"므어?"


확률과 효율이 로맨틱에 미치는 영향을 구하라.

이 정도면 이번 중간고사 수학 문제로 손색 없어 보인다.

확률의 칼로 한번 다져진 로맨틱이 이번엔 효율의 채로 걸러진다.


"그건 잘 짜여진 판 위에서 벌어진 빅딜이었거든."


이 녀석의 머리 속에 발렌타인 고백 사건이 내가 아는 그 사건이 맞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어울리지 않는 분야의 용어들이 난무한다.

내가 무슨 태클을 어떻게 걸어야 할 지 감도 못 잡고 있는 사이 녀석의 설명이 쉴틈 없이 이어진다.


"모르는 남녀가 만나는 꽤 효율적인 시스템이 소개팅이야. 그 소개팅에서 조차도 만나자 마자 사귀자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단 말이지. 2-3회의 서로 호의를 쌓고 고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러게 꽤 효율적이네."


나도 모르게 녀석의 말에 동조하고 말았다.

뭔가 아닌 것 같지만 듣다 보면 최면이라도 걸린 듯 그럴듯하게 들리니 이거 참 큰일이다.


"발렌타인 고백 사건은 완벽한 무대였어. 일시는 발렌타인데, 장소는 교실, 관객은 반친구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조건."


"무슨 조건?"


무슨 범죄 사건을 재구성하듯 하는 녀석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지만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고백의 조건이라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녀석도 흥이 오른 듯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외모."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하게 되었다.


"우석현이나 김소영 둘 다 학교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남선녀. 청춘 남녀에게 최고의 가치는 외모일 수 밖에 없어.

우석현은 본인의 외모에 자신이 있었어. 그의 당당함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

무대 위에 김소영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거래를 한 거야. 원하기만 한다면 남친, 여친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은 두 사람이야.

이 거래가 무산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찾아가게 될 것이고, 최소한 외모적으로는 더 나은 사람을 찾기는 힘들겠지."


고백을 하는데 저런 걸 다 생각한다고?

입술이 마르는 느낌이 들어 입술을 살짝 깨물어보았다.


"관객이 기다리고 있는데 오랫동안 생각할 수는 없었지. 그래서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한 거야."


내가 살면서 직접 본 가장 낭만적인 고백은 녀석의 설명을 통하고 나니 유즈얼서스펙트를 능가하는 반전 스릴러가 되어있었다.


"에이, 누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고백을 하겠어?"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질문인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 스스로도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건 생각한다고 되는 건 아냐. 동물적인 감각이지.

우석현은 시간을 가지고 호의를 쌓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고 바로 고백을 했어. 청춘 남녀의 감정은 사소한 일로 크게 흔들리는 법이니까.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이용해서 승부를 건거지. 그 승부는 멋지게 성공했고."


내 청춘의 모하비 사막에 기적적으로 피어났던 한 송이의 장미가 사실은 조화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조금 의기 소침해졌다.


"하아, 이 세상에 로맨틱한 만남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니까 실제로도 가능하겠지."


"부정적인거야? 긍정적인거야?"


입만 열면 로맨틱한 것들을 산산히 부셔 놓고는 로맨틱한 만남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녀석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


"로맨틱한 만남을 기대해?"


'들어보나 마나한 질문을 왜 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항상."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들어 차한솔을 바라보았지만 한솔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무심하게 참고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 스피커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인장에도 꽃은 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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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2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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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29 0 12쪽
19 1+1+1+1? 19.07.09 33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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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1 확률과 로맨틱 +2 19.06.20 2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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