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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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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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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615

작성
19.07.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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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웰컴 홈?

DUMMY

자율 상담부가 정식 특활부로 인정을 받았다.

담당교사는 판서 대마왕 유선생님.

한솔이 유선생님을 선택한 이유는 '의욕이 없으니 특활부에 관여가 적을 것'이었다.


자율 상담부의 위치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의 작은 교실이었다.

원래 천문부였는데 서울 하늘에서 별을 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 자연스럽게 폐부됐다고 한다.

먼지 쌓인 천체 망원경만이 유물처럼 남아있다.


"영원한 건 없구나."


"별도 수명이 있는데, 천문부 사라진 것 정도로 영원이라는 수사까지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천문부가 사라진 자리를 자상부가 채웠으니 꿈이 이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상부?"


"자율 상담부니까 자상부. 뭔가 자상하게 상담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나름 귀여운 이름인 것 같아서 어필을 해보았다.

차한솔이 '흐음'하고 나지막하게 읊는다.


"말 한마디로 마음에 자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그런대로 말은 되네."


"그렇게 말하면 누가 상담하러 오냐?"


"안 와."


"지난번처럼 올 수도 있잖아?"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으니 다시 말해줄게.

대자보에 붙은 광고도 시한 지났고.

1학기에 나눠줬던 특활부 소개 책자에도 없고.

4층 구석에 있는 부실을 오가다 볼 리도 없고.

니가 나가서 호객 행위라도 할 거야?"


숨도 쉬지 않고 쏘아 붙이는데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크게 일을 벌인 것 같은데 누군가 올 가능성조차 없다니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뭐하지?"


"청소와 인테리어. 담당교사의 방문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럴듯하게 꾸며 놓긴 해야지."


"그 다음엔?"


"예전과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 공부해야지."


"우.와. 기.대.된.다."


원래 목적인 현상 유지에는 성공했지만 뭔가 아쉽다.

함께 시련을 극복했는데 관계가 조금이라도 진전돼야 되는 거 아닌가?


"빼앗긴 공간을 찾아온 것으로 만족하세요.

넓이는 1/4로 줄었지만 가용 공간은 더 넓어 졌으니 이득이네."


하이에나의 쫓겨 이제 막 동굴로 들어온 셈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시간은 많으니까.

일단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며볼까?


"부실은 어떻게 꾸밀까?"


"천체 포스터만 다 띄면 되지 않겠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데 재미없게 그게 뭐야?

일단 이 실험실 책상에 화사하게 테이블보를 씌우자. 그러면 좀 상담실 같은 분위기가 될 거야.

낡은 포스터는 다 띄는 게 맞는 거 같고, 그래도 이 망원경은 사라진 천문부의 유지를 받들어 저 구석에 세워 놓을까?"


"천문부의 유지를 왜 받들어?"


우리만의 공간을 꾸밀 생각에 한솔의 태클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매번 차를 준비할 수도 없으니까 커피 포트랑 티백도 좀 준비하자.

간단한 다과를 위해서 접시랑 과도도 필요하고, 포크, 티스푼.

필요한 게 너무 많은데?

한솔아 부르는 거 받아 적어봐."


"차소연씨 정신 좀 차리시죠? 필요 없는 걸 왜 사려고 하는 거야? 아무도 안 온다고.

그리고 특활비는 년 단위로 배정 되기 때문에 우리는 쓸 수 있는 돈이 한 푼도 없어."


녀석이 또 김을 뺀다.

하지만 이미 뽐뿌질이 잔뜩 들어간 나에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우리 돈으로 미리 마련하고 나중에 받는 방법도 있잖아? 부장의 명령이야! 받아 적어."


녀석이 마지못해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든다.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구나.

차한솔 마저 굴복 시킬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어 버렸다.

이거 중독될 것 같아!


"아까 말한 것부터. 테이블보, 커피 포트, 티백, 접시, 과도, 티스푼, 또 뭐 필요하지?

방석도 4개 정도 필요하고."


"방석은 왜?"


"손님을 어떻게 이런 딱딱한 의자에 앉힐 수 있어?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해져서 마음이 열리는 법이라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말도 술술 잘 나온다.

생각을 하다 보니 필요한 게 계속해서 늘어난다.


"이쪽에 액자도 하나 걸고. 테이블 위에 화분도 하나 있어야지. 창가 쪽에도 하나 둘까?"


부장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 대항할 의지마저 상실했는지 녀석 답지 않게 고분고분 받아 적는다.

권력에 맛을 들이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쪽에는 미니 냉장고 하나 놓고, 그 위에 개인 사물함도 있으면 좋겠다."


슬쩍 눈치를 보니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다.

너무 간단하게 속인 것 같아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한솔이 노트를 내민다.


"자 완성이다."


노트에는 가구배치가 완료된 부실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었다.

한솔이 펜으로 평면도를 가르치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가운데 테이블, 이쪽에는 선반, 선반 아래 벽에는 벽걸이 TV,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쪽에는 쇼파 겸 간이 침대.

쿠션은 두 개중에 하나는 곰 인형으로 하는 거 어때?."


완벽한 무기질의 영업용 미소.


"부실에다가 살림 차리냐?!”


녀석이 한심하다는 듯이 타박한다.

자연스럽게 한솔과 같이 사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용기를 짜내서 더욱 힘을 내본다.


"안 돼?"


허리를 살짝 숙이고 가슴 앞에 손을 모으며 아양을 떨었다.

부실에 정적이 흐른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한솔도 민망한지 고개를 돌린다.


"할 수 있는데 까진 해보지 뭐."


부끄러움을 제물로 성과를 내기는 했다.

방금 전의 일이 하이라이트 클립이 되어 뇌 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상황은 아까 종료 됐는데 데미지는 끊임없이 들어온다.


"언제 시간 돼?"


멘탈에 금이 가서 그런지 질문이 접수가 안된다.


"뭐가?"


"물건 사러 가야지."


"같이 가는 거야?"


혹시 데이트 신청 같은 것일까?

기대감에 살짝 기분이 들떴다.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쥐면 갑질을 하려고 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긴 한데. 적응하는 속도가 엄청나네.

나한테 리스트 넘겼으니까 사오라는 거야? 내가 인터넷 쇼핑몰이냐?"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없는데.

오해를 받아 버렸다.

마음에 생긴 작은 상처가 시리다.


"나 혼자 가면 되잖아?!"


상처를 숨기려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다.

그리고 속마음과 달리 질러버린 말에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작은 오해로 시작되는 엇나감.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한다면 바로잡을 수 있는데.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다.


가벼운 농담을 했을 뿐이다.

왜 웃어 넘기지 못한 걸까?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어서?

언어 속에 숨겨진 뼈가 나의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에?


알아 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빛과 몸짓 그 모두를 포함하는 바디랭귀지.

그저 나의 착각일 뿐이었을까?


"같이 가자."


따스한 목소리에 가슴에 막혀 있던 답답함이 녹아내린다.

떼를 쓴 것은 난데.

손을 내민 것은 그였다.

미안하고 무안해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너 혼자 가면 이상한 거 잔뜩 사올 거 같아서 불안해."


"푸핫."


긴장의 끈이 끊어지자 맥이 탁 풀린다.


"어쩔 수 없지. 같이 가 줄게. 짐꾼도 필요하고."


"짐꾼이 아니라 감사가 필요한 거 같은데. 배임으로 탄핵 당하지 않게 조심해."


"2명 밖에 없는 코딱지 만한 부실에 권력 투쟁이라니."


"헛소리 그만 하고. 꾸물거릴 것 없이 오늘 끝나고 어때? 시간 괜찮아?"


"으응."


처음으로 부실을 같이 나섰다.

얼마 전까지 내가 교실을 나서기 전에 돌아보면 그제야 가방을 챙기고 있었는데.

부실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미소가 번진다.


"자. 이거 잃어버리지 말고."


한솔이 나에게 여벌의 열쇠를 건넨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이렇게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


"문단속 잘하고."


감상에 젖어 있는데 여지없이 깨는 소리를 해댄다.


"왜 덜렁이 취급을 하는 거야? 내가 못 미더워?"


"아니, 믿어."


신뢰의 눈빛, 확신에 찬 목소리.

이런 사소한 것들에 호감이 쌓여서 결국 좋아하게 된 것일까?


"최소 한번은 안 잠글 거라는 걸."


"믿지마! 그딴 건 불신해도 된다고!"


나란히 교문을 나서는데 자꾸 주변이 의식 된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분명히 소문 날 거야.

그러면 녀석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황하면서 부정할까? 아니면 담담하게 같은 동아리 친구일 뿐이라고 말할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또, 사소한 소문 때문에 흔들리기 싫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춘기이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면 이런 불안한 생각들이 사라질까?


"차한솔. 방금 깨달은 게 있는데."


나를 잠시 돌아봤다가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 다시 앞을 바라본다.


"돈이 없네. 집에 들러서 엄마한테 용돈 가불이라도 받아야 할 거 같아."


"돈 있냐고 물어 본 적은 없는데?"


머리 속에서 전구에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내 한복판의 고급 오피스텔에 혼자 산다.

배치는 좀 이상했지만 고급 가구들도 많이 있었고.

수수하게 하고 다녀서 의식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돈 많아?"


질문과 동시에 반팔 교복 소매를 살짝 잡아 끌었다.

나도 모르게 가까워진 거리.

무엇이 나에게 이렇게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을까?


돈?


시계의 기어에 뭔가 걸린 것처럼 심장이 덜컥 소리를 내며 멈춘다.

순간 내면에 감추어진 본성의 밑바닥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소매를 잡았던 손에 힘이 빠지면서 스르르 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머리가 좋은 것 같아.

말을 잘해.

잘 보면 얼굴도 잘 생긴 것 같은데?

운동도 잘하나?

공부 엄청 잘하는구나?

돈도 많은 가?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관심에서 호감으로 바뀌는 나의 감정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서 자라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욕망의 결정체였다니.

나의 로맨틱이란 그런 것이었나?


"갑자기 왜 그래? 괜찮아?"


나의 안색이 나빠지자 안부를 묻는다.


"돈 많냐니. 나 정말 속물인가 봐."


"보통 아니야?"


그가 발걸음이 멈춰버린 내 팔을 이끌어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건 본능이잖아? 모아 놓은 식량을 과시해서 짝짓기를 하는 동물도 있고.

백만장자와 사랑에 빠진 미녀.

백만장자는 왜 미녀를 사랑하게 됐을까? 당연히 예뻐서겠지.

그럼 미녀는 왜 백만장자를 사랑하게 됐을까? 돈이 많으니까."


"그냥 돈을 사랑하는 것 뿐이잖아?"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빈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돈을 사랑하는 거랑은 달라. 돈과 그 돈을 가진 남자 중 택하라면 그 남자를 택할 테니까. 돈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 남자를 사랑하게 만드는 조건이 되는 거지. 조건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정말로 사랑하는 거야."


"남자의 돈이 다 떨어지고, 여자는 늙어서 더 이상 예쁘지 않게 되면?"


"깨끗하게 갈라서면 되는데 무슨 문제라도?"


사랑도 녀석에게는 논리로 풀이할 수 있는 공식일 뿐인가 보다.


"그게 뭐야! 난 해피엔딩을 원한다구!"


"해피엔딩을 원한다면 남자가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여자는 너무 늙기 전에 이혼하면 되잖아?"


"니 머리 속의 해피엔딩은 도대체 무슨 뜻이야?"


어이가 없어서 쏘아붙여 보지만 녀석은 웃기만 한다.


"잘 생각해봐.

남자는 다른 예쁜 여자를 찾아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고, 여자는 분할 받은 재산으로 젊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겠지.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법이거든.

상대는 바뀌었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되는 거야.

완벽한 해피엔딩이지."


어이 없는 논리에 기가 차다가도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하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넘치게 가지고 있는 녀석.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을 단 하나라도 가지고 있을까?


"혹시, 나한테 원하는 거 있어?"


"흐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무언가를 그리듯이 말한다.


"평범한 일상."


나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원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일까?

이 말의 뜻을 생각하느라 오늘 하루 머리 좀 아프게 생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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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무거운 자유시간 19.07.23 21 0 12쪽
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5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2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9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3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5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1 확률과 로맨틱 +2 19.06.20 2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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