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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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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17
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7.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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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선거의 왕자

DUMMY

길고 긴 겨울 잠이 끝났다.

침대 반 책상 반의 가택 연금 생활을 끝내고 2학년 새학기를 맞이한다.


"밥 먹고 가야지!"


"늦었어!"


이런 날은 설레는 마음에 일찍 일어날 법도 한데 방학 내내 늦잠을 잤더니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겨울의 끝자락에 얼어붙은 보도블록을 박차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증기기관차라도 된 것처럼 입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찬바람을 가른다.

교문까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결승선을 통과한 육상 선수처럼 무릎을 잡고 숨을 고르고 있으니 선생님이 격려한다.


"그러고 있다가 종 친다."


"하아, 하아. 네에. 하아."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2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2학년 1반의 열린 뒷문으로 들어가 비어있는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아무도 내가 늦게 왔는지 모르겠지?

긴장이 풀려서 책상 위에 머리를 기대고 후우하고 숨을 내쉰다.


"엎드려 자는 게 학교 일상이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차한솔이 나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를 보자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너 문과라며?"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법대나 경영대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


"유리하다고 했지 언제 간다고 했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 보는데 확실히 문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친구들과 다 떨어져서 같은 반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놀라운 희소식이었다.


"같은 반이네?!"


"그 이야기는 맨 처음에 했어야지.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방금 깨달았거든."


"인지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됐는데? 뛰어오다가 머리라도 부딪혔어?"


대놓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그런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서 그저 헤실대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차한솔도 표정이 점점 풀어지더니 어느 순간 우리는 같이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고 하는 말은 사실이었나 보다.


종이 울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아~.”


아이들 사이에서 얕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식들 좋아서 죽는구나.”


2학년 1반 담임을 맡은 체육선생이 살인 미소로 학생들을 반겨준다.

모범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생님이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다면 준법체벌이 가해진다.


“오늘 첫 날이니까 간단히 자기소개하자. 1분단 맨 뒤부터 앞으로 시작!”


1번으로 지명된 차한솔이 일어난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선생님이 말씀을 하실 때도 잡담을 하던 아이들조차 숨도 쉬지 않고 집중한다.


“차한솔입니다. 시험기간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와하하하.”

“역시 대단하네.”


위트 있고 간결한 자기소개였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만한 내용이었지에는 사실 의문이다.

주변 눈치를 보다가 분위기에 맞춰 웃는 아이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절대권력이라도 가진 것 같았다.

다음 학생이 일어나 쭈뼛거리며 자기 소개를 하지만 분위기에 묻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1분단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2학년 1반 김소연입니다.”


“여기 2학년 1반 아닌 사람 있냐?”


앞서 까불거리며 자기소개를 했던 남학생이 큰 소리로 핀잔을 놓는다.


“카하하하”


일순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귀가 화끈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자기소개를 마쳤다.


“특별활동으로 자율 상담을 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특활 시간에 4층 자상부를 찾아주세요.”


소개를 마치자 웃고 떠들던 반 분위기가 서서히 잦아든다.


“차한솔도 자율 상담부 아냐?”

“아, 축제 때 본 거 같아.”


나의 존재가 차한솔의 동료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듯 하다.

권력자의 후광이 비치는 나에게 웃음을 비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없었다.

계속해서 조용히 자기소개가 진행된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 들려온다.


"이지아입니다."


자기소개류 미니멀리즘의 극치.

하지만 거기에 토를 다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름으로 모든 것이 소개되는 사람이니까.

하트 여왕 이지아.

그 옆에는 그의 충실한 카드 병사 김진수가 앉아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지아 아버지 앞에서 굽실거리던 교감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반 좀 쩔지 않냐?"

"그러게 차한솔에 이지아까지 있네."


학생의 등급이 뭘로 결정되는 지는 모르겠다.

1학년 때는 인싸력이 가장 중요한 척도였다면 2학년이 되자 장래의 가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

어쨌든 차한솔과 이지아라는 미래의 별이 한 반에 모였다.

하지만 그 둘의 사이에 어떤 불안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만이 알고 있다.


"자기소개 다 했으니까 이제 서로 잘 알게 됐지? 반장선거 시작한다. 입후보 할 사람 손들어."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가끔 반장을 하려고 연설까지 준비해 오는 아이도 있지만 이 반에는 없는 것 같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썰렁한 분위기가 잠시 이어지자 선생님이 후보를 호명한다.


"이지아, 차한솔. 앞으로 나와."


호명에 의해 두 명의 학교 유명인이 앞으로 나선다.


"정견 발표하고 바로 투표 들어간다. 1등이 반장 2등이 부반장. 이의 없지? 지아부터 시작."


선생님이 바쁘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진행에 가속도를 붙인다.

지아가 단상에 다소곳하게 선다.


"후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반과 선생님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반장 후보의 연설이라기 보다는 반장 수락 연설 같았다.

김진수의 박수 유도로 반전체의 박수를 받으면 뒤로 물러난다.

차한솔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단상에 선다.


"2학년 1반 학생 여러분. 오늘의 선택은 앞으로 1년간 반의 얼굴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이지아 양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업무는 적절히 분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미지입니다. 단 한번도 전면에 나선 적 없는 학교 유일의 진짜 셀러브인 이지아양을 반의 얼굴로 나서준다면 정말로 센세이션한 일 아닐까요?"


여기 저기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분위기다.

차한솔이 한 마디를 더해 쐬기를 박는다.


"반장이 되면 부모님이 한 턱을 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겠습니다."


"오오오오~"


영악한 아이들이 차한솔의 말을 알아듣고 환호한다.

돈으로 매수 하다니 이거 선거운동 위반 아닌가?

당사자가 상대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괜찮은가?

어쨌든 공정한 선거 따윈 개나 줘버리고 금권으로 얼룩진 투표가 시작된다.

학생임원으로써 첫 번째 업무는 개표였다.

이름이 적힌 종이를 걷어 선생님이 호명하면 자신의 이름 앞에 작대기를 바를정(正)자로 표시한다.


18:3

압도적인 표차로 이지아가 반장으로 당선되었다.

3표.

나머지 두 표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아, 서기를 먼저 뽑았어야 하는데. 서기 할 사람 있어?"


김진수가 손을 들어 의사표시를 한다.

이지아가 반장이 된 만큼 본인도 학급 임원이 되어야 그녀를 보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충성스러운 비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저렇게 까지 하는 걸까?


수업이 끝나고 부실로 올라간다.

작년과 달라진 점은 차한솔과 같이 교실을 나선다는 점이다.

대놓고 우리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차한솔을 주시하고 있을 것만 같다.

가상의 이목을 의식하느라 말 한마디 못하고 어색하게 계단을 오른다.

부실 문 앞에 서자 내가 처음으로 부실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한솔이 자물쇠를 열려고 하길래 차한솔의 차가운 손을 붙잡아 제지한다.


"내가 열 거야."


"그래라."


흔쾌히 허락하고 자리를 비켜준다.

그런데 주머니를 뒤져봐도 지갑을 열어봐도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안 가지고 왔나 봐."


어깨가 쳐진 채로 다시 자리를 양보하자 차한솔이 풋 하고 웃는다.

그리고 나의 손에 자기의 열쇠를 쥐어준다.


"첫 경험에 집착하는 타입인 줄은 몰랐네."


뭔가 뉘양스가 이상하다.

하지만 태클을 걸었다가 나의 성벽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아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부실에 들어서니 집기들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어후 먼지. 청소 한 번 해야겠다."


엄마가 방은 치우라고 아무리 성화를 부려도 꿈쩍 않는 나지만 부실 만은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자."


차한솔이 내 손에 손걸레를 들이민다.

화들짝 놀라서 손을 움츠리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한다.


"새거거든."


"아, 미안. 사온 거야?"


"부실 상태가 예측이 되잖아."


차한솔의 철저한 준비성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부장인 내가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걱정 마. 이제 아니니까."


"응. 응? 뭐?"


"기억 안나? 2학년 되면 부장 새로 뽑는다고 했지?"


녀석의 야릇한 미소.

아직까지 나의 횡포에 앙금이 남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뒤끝 너무 심하잖아?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앞니로 엄지 손톱을 갉고 있으니 승연이가 들어온다.


"안녕."


"응. 안녕."


승연이가 초조해 하는 나를 보고 묻는다.


"무슨 일 있어?"


“승연아 너 부장해라.”


“누구 마음대로 권력을 승계해?”


이 녀석 기어이 부장자리를 차지하려나보다.

가상투표를 해본다.

승연이가 자기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차한솔 당선이다.


“차한솔 너는 부반장이잖아? 특활부장까지 맡는 건 이상하잖아? 그 뭐야, 아, 겸직금지!”


“그런 규정 없거든? 학급임원이 특활부장에 학생회장까지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코너에 몰렸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승연이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난 승연이가 부장이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분위기를 파악한 승연이가 자기의 의견을 피력한다.


“고맙긴한데 나보다는 한솔이가 더 잘 하지 않을까?”


캐스팅보트는 차한솔의 손으로 넘어갔다.

반란 진압에 실패한 독재자처럼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나도 승연이한테 한 표.”


“응? 니가 하려던 거 아니었어?”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기쁨보다는 의문이 생겨났다.

차한솔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선의 선택을 한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네가 더 잘 할 것 같은데 왜?”


승연이도 의문을 표했다.


“이번에 신입부원을 뽑아야 되잖아. 인형같이 생긴 미소녀가 부장인편이 훨씬 수월 하거든.”


미소녀라는 말을 들은 승연이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인형뽑기도 아니고 승연이가 무슨 상품이야? 그리고 그딴 방법으로 뽑은 부원이 얼마나 가겠어?”


“쓸만한 부원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많은 면접을 보는 거야. 신청을 가려서 받는 이유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뿐이라고. 우리는 그런 상황 아니야.”


니가 나서도 되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대로 삼켜버렸다.

차한솔에게 선배님, 선배님하고 따라붙을 여자 후배를 상상했더니 짜증이 솟구친다.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한솔이 덧붙였다.


“내가 나서는게 효과적이었다면 내가 나섰을 거야. 여자부원만 늘어나는 것이 보기에 이상하기도 하고.”


자기가 잘난줄 아는 잘난 녀석.

엄청나게 짜증이 났지만 딱히 할말이 없었다.


2전 2패

차한솔은 하루만에 선거에서 두번이나 지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모두 자기의 손바닥 위의 선거였다.

나름 선거의 왕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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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과 로맨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무거운 자유시간 19.07.23 21 0 12쪽
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6 0 14쪽
» 선거의 왕자 19.07.18 23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9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1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4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5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1 확률과 로맨틱 +2 19.06.20 20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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