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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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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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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6.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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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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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소문의 그녀

DUMMY

긴바늘이 한 바퀴 돌면 짧은 바늘이 겨우 한 칸 움직인다.

우리의 하루는 긴바늘 아니 초바늘 같은 게 아닐까?

매일 매일 무언가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항상 제자리.

그래도 하루 하루를 연료 삼아 인생이라는 열차는 조금씩 움직인다.


"아, 심심해. 이러다 시들어서 죽어버리겠어."


장미빛 청춘의 최정점에 있는 소영이가 이 정도면 나머지 학생들의 상태야 뻔하다.


"소연아 수영장 갈래? 시들어버리기 전에 물을 줘야지."


"수영장? 글쎄?"


물은 싫어하지 않는다.

사실 너무 좋아하는 게 탈이다.

주말에 수영장을 간다면 50m 트랙을 탈진하기 직전까지 왕복해버릴 것 같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수업에 뒤쳐지게 되겠지.

확실히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같긴 하다.


"아, 워터파크 가고 싶다. "


"워터파크? 가고 싶긴 한데. 학기 중엔 무리겠지?"


수영장은 애매하지만 워터파크 정도라면 확실히 가치가 있지.


"방학 되면 같이 갈래?"


"그럴까? 그전에 쇼핑도 해야겠네."


"주말에 쇼핑 같이 하자. 나도 살 거 있어."


무료한 일상에 한줄기 빛이 생겼다.

희희낙락 떠들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머리를 탈색 한듯 안 한듯, 교복 치마를 줄인 듯 안 줄인 듯.

교칙의 경계선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꾸민 3인방과 눈이 마주친다.


A.K.A 가쉽걸.

소영이가 없었으면 반내 최고 인기 그룹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의 리더인 석현이가 소영이와 '빅딜'을 하면서 2인자 그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빅딜이라니 차한솔의 언어 생활에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받았나 보다.


그녀들이 나와 마주치자 부자연스럽게 눈을 피한다.

너무 떠들었나?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그녀들이 아닐 텐데.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한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자습부3에 들어선다.

내가 아날로그 시계라면 저 녀석은 디지털 시계다.

중력이나 원심력 같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쿼츠 무브먼트.


놀기는 하는 걸 까?

녀석이라면 주말에도 똑같은 자세로 전에 본 그 책상에 붙어 있을 것 같다.

쉴 때는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겠지.

'오늘은 자메이카 풍으로 마셔볼까?' 따위의 상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너 말이야. 사람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는 건 예의에 벗어난다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 미안. 하하하."


"이상한 애라고 이미지 박히면 앞으로 2년 반 괴로워질걸?"


"하하하.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고 하잖아. 웃는데 무슨 이상한 이미지? 하하하."


녀석이 안경을 고쳐 쓰더니 문 밖으로 눈을 돌린다.

나도 따라서 그 쪽을 바라보니 가쉽걸들이 복도를 지나간다.


"왜?"


"들여다 봤다고 해야 하나?"


"볼 수도 있지."


"그렇지."


그녀들이 지나간 복도를 잠시 바라보다 한솔을 보니 형상 기억 합금이라도 되는 듯 원래 자세로 돌아가 있었다.

방학 때 워터파크에 가기로 했으니 지금은 공부를 조금 해둘까?



"다음 시간 뭐지?"


쉬는 시간에 소영이와 잡담을 하고 있는데 주변의 시선이 유독 많이 느껴진다.

눈을 마주치면 눈을 피하는 애들이 많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주변을 힐끔 힐끔 쳐다보자 소영이가 내 손을 당긴다.


"화장실 가자."


"그래."


화장실에 들어서자 소영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너, 진짜 차한솔이랑 사귀는 거 아니야?"


"또, 그 소리야? 아니야. 부활동에 둘 뿐이라 좀 친해지긴 한 것 같긴 한데."


친해졌다고 입으로 말하고 나니까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의 조금 들뜬 기분과 사뭇 다르게 소영이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석현이가 그러는데 이상한 소문 돈다고."


"무슨 소문?"


"토요일에 너랑 어떤 남자애가 호텔 골목으로 들어가는 거 봤다고."


"뭐?!"


누군가 나와 한솔이 집으로 가는 모습을 봤던 것이다.

그런데 호텔 골목이라니.

누군가 나의 소중한 추억을 추잡한 단어로 정의했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차한솔 아니었어?"


"아니야!"


"그럼, 다른 사람?"


상대가 차한솔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는 의미의 '아니야' 였다.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눈 앞이 아득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세면대를 붙잡고 서럽게 울다가 다리가 풀렸는지 몸이 비틀거린다.


"소연아 괜찮아? 양호실에 데려다 줄게."


소영이에게 기대서 양호실을 가는 동안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웅성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아이들의 시선이 비수가 되어 나에게 날아든다.

떨리는 몸을 겨우 소영이에게 의지하여 천천히 움직인다.


1-4 라고 쓰인 교실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어 문이 열린 교실 안을 보았다.

눈물이 번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항상 그 자세로 앉아 있는 차한솔의 실루엣만은 두 눈에 새겨진다.

나를 발견한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눈으로만 나를 쫓는다.


한 시간쯤 잤을까?


"일어 났니? 조퇴 할 거면 어머니한테 전화하고."


엄마한테 전화한다는 양호 선생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모님이 학교에 온다는 건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괜찮아요. 교실로 돌아갈게요."


말썽 안 부리고 숙제 빼먹지 않고 몇 년을 버텨서 얻어낸 나의 유일한 장점 평범함.

난 아무런 잘못도 한 적이 없는데 그 평범함마저 지키기 힘들게 되었다.

평범하기도 힘든 세상이라니.


"힘들면 더 쉬어도 돼."


"이제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성실하네."


양호실을 나서 교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힘겹게 발을 옮겨서 교실 뒷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드르륵."


문소리는 나의 바램과 다르게 수업 중인 교실에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야야, 수업중이니까 앞에 봐. 최소연 왔으면 자리에 앉아라."


"네."


평소보다 더 바른 자세로 졸음은커녕 눈도 깜빡하지 않고 수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똑바른 자세에 집중하느라 무슨 내용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특활 갈 거야?"


소영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이런 때에 소문의 남녀가 단둘이 만난다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겠지.

그래도 만나고 싶다.

그 녀석이라면 분명히 해답을 알고 있을 거야.

고개를 살짝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 자습부3로 향했다.



자습부3의 문을 열기 전에 주위를 살핀다.

이상한 기색은 없다.

누가 볼세라 재빨리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쫓기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런가?"


평소라면 자리에 앉을 때 쯤 무심한 듯 안녕하고 한마디 던졌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소문 들었어?"


"본인 귀에 들어갔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못 들었다면 그것대로 곤란하다.

소문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하고 나면 불편한 기분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미리 알고 왔으니 분명히 해답 또한 가지고 왔으리라.


"어떻게 하면 좋지?"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지."


"내가 원하는 거? 당연히 오해를 풀고 실제 있었던 일을..."


밝히는 것도 곤란하다.

사실을 밝힌다면 호텔 골목으로 들어갔다는 다소 추상적인 소문은 더 구체적으로 더 더러운 방향으로 악화될 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소문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야.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아.

그 소문이 어떤 이미지가 돼서 너를 따라다니겠지."


절망적이다.

불합리한 현실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아. 응?"


거의 울상이 되어 기도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묻는다.


"부당한 현실을 바로 잡기는 힘들어. 하지만 공평하게 만들 수는 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일반적으로 소문이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살이 붙어서 왜곡되기 마련인데 이 케이스는 좀 달라. 게다가 악의가 느껴지거든."


"악의라니 누가 일부러 모함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진짜 목표는 네가 아닐 거야. 우연히 포착한 기회였겠지."


그러지 않아도 머리가 멍한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최소연, 남자, 호텔 골목.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단어들.

소문에는 네 이름만 들어가 있어. 물론 너만 알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가능성도 있지.

그럼에도 확률로만 따지면 쉽지는 않은 일이야. 중간고사 이후로 나도 꽤 유명인이거든."


조용하지만 자신감 있는 목소리.

나에게도 저런 자기 확신이 있었다면 이런 소문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텐데.


"이름이 두 개 들어가 있었다면 주목을 끄는 쪽은 내 이름이 되었겠지.

소문을 낸 사람은 타겟이 갈리는 걸 원치 않았던 거야."


"너무 넘겨 짚는 거 아니야? 타겟이라니."


“내가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은 호텔 골목이라는 단어야.

그 골목 뒤에 호텔이 하나 있기는 해.

하지만 러브호텔도 아니고 상가 뒤나 오피스텔이라면 모를까?

거기를 호텔 골목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어.”


“나는 누구한테 원한 살만할 일 한 적 없어! 아마도...”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목표가 아니야.”


“그럼?”


“쿠테타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자비로운 왕이지만 언론 통제는 확실하거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으니 해답을 던져준다.


“우석현과 김소영의 자리를 뺏고 싶은 거야. 거짓 소문으로 평판을 깎으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직접 공격이 안 먹히니까 이번엔 주변인을 공격한 거야.”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있지도 않은 소문을 만들어내는 누군가의 악의에 소름이 끼쳤다.


“그럼 바로 잡을 수는 없지만 공평하게 만든 다는 건?”


“소문을 없애기는 힘들어도 만들기는 쉬우니까. 당사자에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지.”


베일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

녀석은 마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는 저격수 같았다.


“아니야. 똑같은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


착한 척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복수를 하고 나면 의외로 기분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니 원통하고 답답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실질적인 해결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안이었던 같다.

불안감이 해소되자 이 정도의 일로 멘탈이 무너지는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나도 너처럼 당당했다면 이런 소문 따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 확신 따위는 없어."


씁쓸한 표정이 아주 잠깐 녀석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자기가 가진 외모, 성격, 능력, 가치관 그 이외의 모든 것.

그건 하나의 점에 불과해.

그것만 가지고는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없어.

점과 점의 연결.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그 사람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

사람이란 자기가 가진 하나의 점이 아니라 그 점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관계 자체라고 보는 게 맞겠지."


담담하고 힘이 있는 어조.

하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느낌이었다.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기 확신이라는 건 없어. 그건 자기 확신이 아니라 어딘가 망가진 거겠지."


그가 눈앞에서 부서져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리면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서지지 마. 날아가지 마.'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에게 의지 하듯이 나도 그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상한 소리를 해버렸네."


"평소에도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괜찮아."


녀석이 피식하고 웃는다.


"진짜 괜찮아."


"응."


무언가 진심이 통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문제를 해결해 볼까?"


갈등의 해소, 클라이맥스 이후의 잔잔한 결말이 남은 줄 알았다.


"응? 아니. 나는 괜찮아. 나만 괜찮으면 된 거잖아?"


"내가 괜찮지 않아."


"진짜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오히려 내 기분만 불편해질 거야."


한솔이 빙긋하고 웃는다.


"걱정하지 마. 복수를 한다는 건 아니니까."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얼터너티브 리얼리티(Alternative Reality)."


"뭐?"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안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이 녀석은 차한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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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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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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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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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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