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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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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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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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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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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안경과 신데렐라

DUMMY

스쿨카스트.

인싸와 아싸 사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계급 구조.

그것은 허상이다.


놀기 좋아하는 그룹, 유행에 민감한 그룹, 만화를 좋아하는 그룹, 공부를 잘 하는 그룹.

누구는 목소리가 크고 누구는 뒤에 물러나 있기 때문에 서열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실제로는 소가 닭 보듯 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기가 불편하다.

내 주위로 모여드는 잘 모르는 아이들.

예전에는 나에게 보여준 적 없는 웃음 짓는 얼굴들.

미디어가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을 줄은 몰랐다.


나는 나의 자그마한 안식처를 빼앗기고 쉬는 시간마다 유배를 떠난다.

내가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소영이의 옆이었다.

소영이의 손에 이끌려 우석현과 그 친구들이 있는 일명 리더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그 안에 속해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둘러쳐진 것처럼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다.


이전까지 이 벽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김소영과 이지아 뿐이었다.

이제 나도 그 벽을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은 것이다.

패션이나 유행 그리고 학교의 소문 따위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유배 생활이지만 내 자리에 있으면 갖은 질문에 시달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룹에 섞여 나의 빈 책상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식처로 향한다.


"안녕."


"안녕. 하아. 숨 좀 쉬자."


자리에 앉자마자 심호흡을 해본다.

부실을 슬쩍 슬쩍 들여다 보는 남자애들이 보였지만 들어올 용기가 있는 아이는 없었다.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쳐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 차한솔을 바라보았다.


"인기인이 된 소감이 어때?"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차한솔이 자신의 책임감을 느끼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녀석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스튜디오에서 차한솔과 실장님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나와는 다른 세계, 어른들의 대화.

궁금한게 너무 많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언제쯤 돼야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좀 있으면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될 거야. 여름방학이 끝나면 다 잊혀지겠지. 뭐, 더 크게 번질지도 모르지만."


녀석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소문을 없애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쪽은 나다.

하지만 그 부작용을 심하게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무책임한 녀석의 한 마디가 얄미웠다.


"책임을 좀 느껴줬으면 하는데?"


책임져라고 말하려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 들어 말을 돌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당장의 소문을 덮기 위한 것 뿐이었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했거든. 악의는 성실하고 끈질기니까."


처음엔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무시하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차한솔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타겟이 된 이유는 말했지?"


"소영이 친구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김소영의 친구지만 그룹에 속하지 못한 주변인이기 때문이야. 언제라도 다시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포지션. 무대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위험해. 무대 위로 올라가던지 무대 아래로 내려와야지."


어렴풋이 이해는 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경청하는 자세를 유지하여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잠시간의 침묵.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지 무겁게 입을 띄었다.


"김소영은 그룹에 너를 소개하고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할 수 없었지. 그룹의 구성원은 최소한의 자격 조건이 필요하거든.

너를 그룹에 소개했다가 자신의 그룹 내의 위상이 훼손될 리스크를 감수할 수는 없잖아?"


소영이 뒷담화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소영이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네가 무대 위로 올라갈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야.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미디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거든. 신데렐라에게 필요한 건 파티복 뿐이었잖아? 신분 상승으로 조건이 갖추어 졌으니 이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만 남은 거지."


"그럼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는 건."


"김소영과 절교. 너를 밟고 김소영을 끌어내려서 무대 위로 올라가려던 계획은 네가 무대에서 발을 띄는 순간 의미가 없어지니까."


여름이 된지도 좀 됐을 텐데 공기가 싸늘하다.

인간관계라는 게 이토록 계산적이고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


"아,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게 지금은 부담스럽고 싫겠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니까. 너무 가까이 가서 자기 몸이 타는 줄도 모르는 불나방만 되지 않는다면."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러 버렸다.

너는 무대 위로 올라오지 않을 거잖아?

너는 잠시 무대를 올려보다 관객석 뒤로 사라져 버릴 거잖아!

진짜로 외톨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서워졌다.


녀석의 표정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다.

화가난 걸까?

얼핏 녀석의 눈가에서 무언가 반짝였지만 이내 사라졌다.

안경에 빛이 반사됐었나 보다.


싸운 것도 아닌데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문제집을 끄적거려보지만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안경 써볼래?"


녀석이 뜬금없이 안경을 권한다.


"안경이라니?"


"스포트라이트가 싫다면 무대에서 내려와야지. 자신의 약점을 어필해서 매력을 떨어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거든. 나는 눈이 나쁩니다 라고 말이야. 두꺼운 뿔테 안경 같은 걸 쓴다면 패션 감각도 떨어진다고 어필할 수 있겠네."


"하하하하. 그게 뭐야. 바보 같아."


"딱히 바보 같은 이야기는 아닌데."


"그리고 나 눈 좋아. 좌우 시력 2.0의 천리안이 나의 숨은 매력이라구."


"매력이 매처럼 눈이 좋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매력적이네."


녀석이 피식하고 웃는다.

녀석의 썰렁한 농담에 나도 풋하고 웃었다.

웃고 나니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안경 좀 줘볼래?"


"왜?"


"한 번 써보게."


"눈 나빠져."


"잠깐인데 어때?"


한솔이 안경을 벗어 안경 알부터 안경 다리까지 정성스럽게 닦는다.

안경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에게 안경을 넘긴다.

철사처럼 얇은 안경테로 된 가벼운 안경.

안경다리가 부러질세라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안경을 써본다.

녀석의 눈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지 어지러운 느낌은 전혀 없었다.


"어때?"


"뭐가?"


"안경을 쓰니까 좀 촌스러워 진 것 같아?"


"말 하는 거 보니까 이미 관심 받는데 익숙해진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가끔 나를 바라볼 때 시선을 받는 느낌이 좋다.

녀석의 관심은 부담스럽지 않다.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


말을 돌린 쪽은 내 쪽이다.

마음을 들킬 것 같아 대답을 재촉한다.

녀석이 내 얼굴을 잠시 보다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여전히 매력적이네."


이 말만 따로 들었다면 심장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의 대화가 그 의미를 다르게 규정하였기에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눈 좋아 보인다고?"


한솔이 웃으면서 손을 내민다.

안경을 벗어 한솔에게 넘겨준다.

안경을 넘겨주는 찰나의 순간에 손끝이 스친다.

차갑지만 따스한 손.

나의 열을 걱정해주던 그때 그 손이다.


"시력이 얼마야?"


나의 시력을 이미 밝힌 것도 있고, 그리 눈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녀석의 시력을 물어 보았다.


"비밀인데."


"나는 알려줬는데 그게 왜 비밀이야?"


그때 머리 속에서 무언가 번뜩 하고 스쳐지나갔다.


"그 안경 도수 없어?"


"노 코멘트."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김한솔이 패션 안경이라니?

아니, 안티 패션 안경이라고 해야 하나?

놀란 표정으로 한솔을 바라보는데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는지 그저 책만 바라볼 뿐이었다.

뭐, 괜찮아.

저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솔의 모습이니까.

내가 공부하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녀석이 공부하는 것을 보는 것은 좋아한다.


"안경 잘 어울리니까. 안경 벗지 마."


"안 벗어."


"나도 안경 맞출까?"


혼잣말 하듯이 한 말에 대꾸를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표정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시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험 기간에 접어들자 나에 대한 관심도 떨어져서 다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것까지 계산한 것일까?

우연이겠지만 녀석이 그랬다고 말한다면 그대로 믿게 될 것 같다.


화장실에 가려면 4반 앞을 지나야 한다.

교실 앞을 지날 때면 눈이 자연스럽게 차한솔을 찾는다.

평소에는 혼자서 책을 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다른 애들한테 둘러 쌓여있다.

어떤 문제든 단칼에 해치워 버리는 최고의 무사.

전교 1등의 위엄이 복도 밖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유독 여자애들이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그룹에 들기 위한 최소의 기준.

녀석의 그룹에 속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걸까?

나는 기준에 한참 미달한 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녀석은 2등 하고도 너무 큰 차이가 벌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그룹이 형성될 것 같지 않다.

마음속으로 녀석을 외톨이로 만들어 놓고는 안심한다.


화장실에 앉아 스튜디오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나지만 내가 모르는 그녀.

한솔과 그녀는 잘 어울린다.

내가 그녀가 된다면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 될까?

녀석에게 전송 받은 사진을 이리 저리 돌려보다가 잘못해서 보낸사람 전화번호를 눌러버렸다.


"띠리리리리~"


송신음이 울린다.


"히익."


너무 놀라서 핸드폰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핸드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의 목소리를 확인한 한솔이 말이 없다.

학교에서 문자도 아니고 전화를 하다니 이상한 일이 분명하다.


"저, 그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응. 그래."


첫 통화였다.

반라로 화장실에 앉아서 이상한 타이밍에 이상한 내용의 전화.

변태 같아.

눈물이 핑 돈다.


화장실에서 나와 터덜터덜 교실로 걸어갔다.

주책 없는 눈이 4반 교실 앞을 지나자 조건반사적으로 교실 안을 살핀다.

그리고 차한솔과 눈이 딱 마주쳤다.

눈을 피하고 황급히 복도를 지나쳤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까지 들켜버렸다.

그냥 죽자.


멘탈이 걸레짝이 되어 기말고사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어졌다.

의기소침한 나를 보고 소영이가 힘을 준다.


"기말고사만 끝나면 워.터.파.크~ 힘내! 아자! 아자!"


당장 특활시간에 녀석 얼굴을 볼 자신이 없는데 워터파크에도 가야 하잖아?

한숨을 푹푹 쉬는 내 어깨를 소영이가 주물러준다.

아, 몰라!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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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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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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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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