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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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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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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615

작성
19.07.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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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상부 스타트 업!

DUMMY

몇 일 간의 수고 끝에 부실 정리가 끝났다.

자그마한 곰인형 패턴이 오밀조밀 박힌 테이블보를 손으로 만져본다.

내가 원했던 핑크색(하트 무늬) 테이블 보는 단칼에 기각됐지만 이것도 나름 귀엽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부장이라는 권력도 돈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부활동비로 메꾼다 하더라도 일단 한솔의 돈으로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그 녀석의 몫.

부장의 힘으로 몇 가지를 밀어 붙이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힘겨운 협상의 연속이었다.


창가에 놓고 싶었던 허브는 조화로 대체 되었다.

커피 포트와 과도는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

그 대신 찬물에 우릴 수 있는 녹차를 구매했다.

종이 컵이면 충분하다는 녀석의 주장에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한다는 나의 주장이 받아 들여졌다.

녀석은 취향이라는 것이 없는지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있는 컵을 집는다.

디자인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까만 머그컵.

반지름만 재면 원 기둥의 부피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안돼! 컵도 인테리어의 일종이라고."


재빨리 만류해서 제 자리에 놓게 하고 컵들이 진열된 선반을 꼼꼼히 살핀다.


"이거 귀엽지 않아? 커피잔이 좋을까? 머그컵이 좋을까?"


같이 쓸 물건을 고른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연신 질문을 했다.

'그래.'라는 영혼이 없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지만 예상했던 바다.

Lo와 ve가 각각 적혀있는 커플 컵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거 사자고 하면 기겁을 하겠지?

반응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린 짓을 할만한 용기가 없다.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머그컵이 마음에 들었다.


"이거 어때?"


"좋네."


예의상 물어봤을 뿐이다.

어차피 무조건 좋다고 할 테니 내 마음대로 하면 그만이다.

컵을 두 개 집어 들자 한솔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똑같은 모양으로 사면 헷갈리잖아?"


같은 컵 두 개.

쓰다 보면 섞일 수도 있겠다.

간접 키스?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의 타액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컵에 입술을 대는 상상을 해보았다.

기분 나쁜 상상일 텐데 이상하게 야릇한 흥분이 느껴졌다.

나 변탠가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켰을리 없지만 그의 눈앞에서 이상한 상상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졌다.

조용히 컵 하나를 집어넣고, 그 옆에 강아지가 그려진 컵을 꺼냈다.


"됐지?"


"아, 그래."


한솔이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컵을 받아 바구니에 넣었다.

그제서야 사실상 커플컵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괜찮잖아?

변태 같은 상상을 하고 나서 그런지 이 정도면 순수하게 봐줄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힘들게 구매한 물건들을 자상부에 장식하고 나니 부실이 한결 환해졌다.

당장이라도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안 온다는 것을 빼면 완벽하다.


"누구 안 오려나?"


"안 와."


"저번처럼 올 수도 있잖아?


마주 앉은 한솔이 고개를 든다.

전 교실에서는 나란히 앉았지만 자상부에서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마주 보고 앉는다.


"대자보 광고 게재 시한도 끝났고.

2학기에 만들어진 특활부라 1학기에 나눠준 특활부 소개집에도 안 나와 있고.

4층 구석에 있는 부실을 오가다 볼 리도 없고.

나가서 호객 행위라도 하기 전에는 오고 싶어도 올 방법이 없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3년 뒤면 없어진단 말야?"


힘들게 만든 특활부가 시한부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서글퍼졌다.


"3년? 3학년은 특별활동 안 하잖아? 그리고 1년간 활동 실적이 없으면 폐부라서 이러나 저러나 이번 학기 빼고 1년이야."


둘만의 공간을 지키고 싶었다.

그 사심 가득한 소원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

이보다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힘들게 이루어 놓은 성과가 1년 만에 사라진다니 싫다."


"어쩔 수 없잖아?"


차한솔은 조용한 공간을 확보한 것에 만족한 것 같다.

혼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함께 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신기루처럼 지나갈 것이고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당장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어렵다면, 같은 방향을 바라 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번 상담 정말로 보람 있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엄연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일익을 담당한 느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거라면..."


녀석의 태클이 들어온다.

우리의 상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쓸대 없이 정확한 사실이겠지.

사회학과 인문학을 심지어 자연 과학을 넘나드는 그의 현란한 언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설득 당하고 만다.

그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치자.


"열심히 하고 싶어. 같이 열심히 해보자. 부장으로 명령 이전에 친구로서 부탁하는 거야."


"친구로서 부탁 이후에는 부장으로 명령한다는 거야?"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뭐..."


한솔은 뭔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다.

나에게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화려한 언변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설득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손을 뻗어 한솔의 두 주먹 위에 손을 얹었다.


일순간 주변에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진다.

여름이지만 다소 차가운 그의 손에서 미세한 박동이 느껴진다.

나의 온기가 그의 손에 전달되자 손이 따스해진다.

영원처럼 느껴진 찰나의 순간.

시간은 다시 흐르고 나는 어색하게 손을 당겨 상황을 수습한다.


"열심히 한다는 데 응원은 못 할망정 말리는 것도 우습네."


"고마워."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모을 건데?"


"몰라. 너한테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지런히 포개 놓았던 손을 관자놀이에 가져간다.


“다음 학기에 부장 다시 뽑아야겠다. 권력 남용이 도가 지나친 걸?”


“뭐야? 쿠테타?”


“쿠테타였으면 지금 당장 엎었지. 새학기가 시작되면 부장을 뽑는다는 관습법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거야.”


“나는 몇 개월 안 남았는데. 다음 부장은 통으로 1년 이잖아?”


“레임덕이 올 때가 됐네.”


“부장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레임덕이야?”


“리더쉽을 좀 보이지 그랬어?”


기억력이 비상한 녀석이다.

서투르게 부려먹으려고 들었다가 분명히 복수할거야.

한 여름이지만 오한이 든다.

이것이 남자의 원한?


“왜 1학기때 특활부에 안 들었어?”


차기 부장님께서 질문을 하시니 답을 안 할 도리가 없다.

아, 권력의 무상함이여.


“딱히 의욕도 없었고. 학교는 그냥 평범하게 다니고 싶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의욕이 넘치네?"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가 만든 특활부인데 활동도 안하고 부실만 이용하다가 1년 만에 버린다니. 뭔가 불쌍하잖아."


"살아있는 거였구나."


누가 들어도 농담 같은 대사였지만 그는 진지했다.

실패한 농담인지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선문답인지 알 수 없었다.


"너랑 내가 낳은 자식 같은 거잖아. 버린 자식 취급하면 되겠어?"


이상한 말을 해버렸다.

잘 못 들으면 한 없이 이상하게 들릴 것 같다.

뒷수습을 고민하며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한솔은 여전히 진지하다.


"버린 자식이란 취급이라..."


한솔의 표정이 씁쓸해진다.

논리의 집약체 같은 녀석이지만 감정이 드러낼 때가 있다.

드러낸다기보다는 숨기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약한 모습을 보고 그도 인간이구나 싶어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내가 싫어진다.


"선택 받는 것이 꼭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는데."


'괜찮아?'라고 한 마디를 건내고 싶지만 그것은 계산된 호의다.

약해진 마음의 틈으로 손을 내밀어 호감을 사는 것 따위는 할 수 없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이론적으로는 찾아 올 수 없는 공간에 누군가 들어왔다.

실루엣 만으로도 알 수 있는 그녀.

마녀 이승연이었다.


"부실이 바뀌었네? 찾기가 좀 힘들더라."


"승연이구나. 또 무슨 상담할 일이라도 있어?"


내 말은 흐응하고 흘려버리고 부실을 둘러본다.

인테리어 센스를 테스트 받는 것 같아서 살짝 긴장 된다.


"상담하러 간다고 하면 자습 빠질 수 있고. 겸사겸사."


"전교 2등이 땡땡이??"


승연이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 지더니 나를 흘겨본다.


"등수로 부르지마."


"하지만 대단하잖아? 칭찬이야. 칭찬."


말을 하는 도중에 앞에 앉은 한솔의 존재가 인식된다.

압도적 전교 1등 앞에서 전교 2등이라고 부르는 게 칭찬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말이 쏙 들어간다.


"아, 미안."


"미안해 하지도 마."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제대로 건드렸나 보다.

상담 내용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승연이 눈치만 본다.


"녹차 마실래?"


대답인지 콧바람인지 모를 의사표시를 하고는 직접 녹차와 생수가 비치 된 구석 책상으로 다가간다.

고양이 그림의 머그컵에 생수를 따른다.


"아니, 그거는..."


"왜? 안 닦았어?"


"아니 닦긴 했는데."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티백을 담그고 컵을 들고 내 옆에 앉는다.

한솔의 컵이다.

차를 탈 때마다 은근슬쩍 컵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골적으로 컵을 교환하는 변태 같은 짓은 차마 못한다.

일부러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혹시 한솔의 컵이 손에 잡히면 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더 변태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포기했다.


승연이의 입술이 컵에 닫는다.

왼손잡이인 차한솔과 달리 이승연은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다행히 입술이 닫는 위치가 달랐다.

안도감이 들었다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 승연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표정이 밖으로 드러났나?

롤러코스터의 다음 코너는 쪽팔림이었다.


"지난번 상담이 도움이 안됐어?"


한솔의 질문에 승연이 컵을 내려놓고 대답한다.


"실제로는 그 반대야. 내 자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


두 사람이 똑바로 마주 보고 하는 정직한 대화.

지난번처럼 두 사람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


"그래서 공부가 잘 안되는 문제가 생겼어."


"잘됐네."


한솔의 너무 나도 시원한 대답에 자칫하면 '우왓!'하고 소리를 지를뻔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위협이 될만한 사람이 공부에 집중을 못하게 됐으니 잘됐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승연의 표정이 미묘하다.


"고민 없이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거야. 그래도 더 늦는 거 보다는 낫지. 고3 때 왔으면 더 문제잖아?"


"뭐가 왔다는 거야?"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생겨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춘기."


"에엥?"


사춘기라면 육체와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

청소년기를 통칭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중학생 빠르면 초등학생때 격고 지나간다.

나이도 나이지만 승연이를 보면 육체의 형성이 완료된 것이 확실한데 사춘기라니.


승연이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새빨개진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은 차각이었다.

일찍 철이 들어서 성공을 위해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늦게 사춘기가 온 것이다.


그나저나 세심함 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녀석.

사춘기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입에서 꺼내다니.

상담 내용은 정확할지 몰라도 상담 받는 사람의 멘탈을 생각한다면 낙제점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승연이의 어깨를 두 팔로 안아주었다.


새빨간 승연이를 보니 마녀라는 별명이 우습게 느껴졌다.

여전히 새빨간 얼굴의 승연이가 입을 연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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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2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29 0 12쪽
19 1+1+1+1? 19.07.09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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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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