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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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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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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7.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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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작은 왕국

DUMMY

여름 방학은 꿈처럼 지나갔다.

워터파크에서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물놀이가 시작되자 처음의 조금 로맨틱한 분위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웃고, 떠들고, 정말 오랜만에 정신 없이 놀았다.


그리고 나서 밥 사먹고, 간식 먹고, 음료수 마시고...

되돌아보니 돼지처럼 뭘 그렇게 많이 처먹었는지 모르겠다.

다이어트로 힘든 와중에 노느라 칼로리소모가 심했나 보다.

이미지 관리 좀 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으니 후회는 없다.


그나마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면 사고로 손을 잡은 것?

유수풀에서 튜브를 타고 떠다니다 길을 잘못 들 뻔 했을 때 한솔이 손을 잡아주었다.

딱히 로맨틱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붙잡은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워터파크 이벤트 이후로는 한솔을 만나지 못했다.

뭔가 구실을 만들어 보려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안부를 묻는 초딩 수준의 문자만 오갔을 뿐이다.

조금 아쉽지만 괜찮다.

모멘텀은 만들어졌으니까.



"안녕."


"안녕."


오랜만의 인사지만 어제도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느덧 이 공간이 학교에서 가장 익숙한 곳이 된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 워터파크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해본다.

옆에 앉은 본인과 비교하니 새삼 이런 표정을 짓기도 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핸드폰을 켜지 말고 책을 피시죠?"


녀석의 공부를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자는 것도 핸드폰을 보는 것도 못하게 한다.

옆에 가정교사가 붙은 느낌?


"핸드폰 안의 차한솔이 더 좋은 걸?"


직접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렇게 라면 말할 수 있다.

나의 어필이 통하지 않았는지 담담하게 대꾸한다.


"당분간이라도 열심히 공부하는 게 좋을 거야."


"맨날 공부하래! 선생님 같아."


"드르륵."


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잡담하지 말고 공부해. 특활시간도 엄연한 수업시간이야."


이번 학기에 새로 오신 수학 선생님이다.

학교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서 여기 저기를 순찰한다고 하는 것 같다.


"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마지 못해서 책을 펼친다.


"여긴 둘 뿐이야?"


"네."


"반 배정을 어떻게 했길래 한 반에 남녀를 그것도 단 둘만 넣어 놨어? 자습부3반?"


수학 선생님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교실 명패를 체크하고 교실을 나섰다.

차한솔이 보던 책을 내려 놓고 생각에 잠긴다.


"왜 그래?"


또 선생님이 들어올지 몰라 작은 소리로 물었다.


"문제가 되겠는 걸."


"무슨 문제?"


"일단 지켜보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건지 낌새를 차리지 못한 채 조용히 교과서만 읽다가 특활을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1학년 4반 차한솔, 1학년 6반 최소연 지금 교무실로 내려오세요."


교실 스피커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송이 흘러나온다.


"최소연, 너 무슨 사고 쳤어?"


"아니."


당번일때 빼고는 한번도 교무실에 불려간 적이 없었다.

공개적으로 이름이 불린 것도 그렇지만 곳 수업이 시작하는데 종례후도 아니고 당장 내려오라고 하는 것이 불안했다.


교무실 앞에 수학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을 따라서 교무실 끝 쪽에 위치한 교감실로 들어갔다.

6개의 무거운 가죽 소파 중 하나에 차한솔이 앉아 있었다.

그 뒤에 책상에 교감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교감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차한솔의 옆에 앉았다.

푹신한 가죽 소파지만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으려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맞은 편에 수학 선생님이 앉자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변선생님 그러니까 문제라고 뭐라고 했죠?"


"이 학생들 둘만 자습부3에 배치되어 있는데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큰 스캔들이 될 겁니다. 사춘기 남녀가 교내에서 불순 이성교제라니. 쯧."


수학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고 모욕적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단정 짓고 단죄까지 하려고 든다.


"변선생님 흥분하지 마시고. 선생님은 이번 학기에 오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차한솔군은 그런 학생이 아닙니다. 그 옆에 김소연양도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구요."


"어제 잠깐 들러봤는데 자습은 안하고 히히덕거리고 있던데 학생을 너무 방임 하시는 거 아닙니까?"


험악한 분위기에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한솔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 만을 바라고 있었다.


"차한솔군은 1학기 중간, 기말고사에서 전체 1등을 한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재원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행이다.

성적으로 말하는 남자 차한솔 덕분에 교감 선생님은 확실하게 우리편이었다.

수학 선생님이 얼굴에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비친다.

교감 선생님 앞인데도 다소 무례해 보이는 수학 선생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욱 문제죠. 이제 1학년이고 앞으로 더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는데, 지금 불순 이성교제로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학교로서도 큰 손실 아니겠습니까?"


말끝마다 불순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기분이 나빴지만 참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순간이지만 차한솔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뜩였다.


"흐으음."


교감 선생님이 난감한 듯 턱을 쓰다듬는다.


"편의를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불순 이성교재를 방조하는 수준입니다. 당장 두 학생을 자습부1,2로 나눠서 배정하고 자습부3은 폐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한솔군 의견은 어떤가?"


"이론적으론 흠잡을 데 없네요. 주말까지만 시간을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니, 무슨 시간을 준다는 말입니까? 당장 옮기면 그만인 것을."


"변선생님 그러지 말고. 몇 일 사이에 무슨 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교감 선생님이 가장 높은 사람인데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 건지 수학 선생님과 한솔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한마디도 못 한 채로 교무실 문을 나섰다.


자습부3은 없어지는 건가?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만들어준 차한솔과 함께할 수 없게 된다니.

떠들다가 꼬투리를 잡힌 내 잘못이다.

차한솔 말대로 조용히 자습하고 있었다면 그 공간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안."


조용하게 사과를 했지만 한솔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입을 열지 않는다.

우연히 주어진 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설산 위를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와 바닷가를 거니는 펭귄의 만남 같은 것이었다.

그 기적과 같은 장소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 날려버린 것이다.


"미안해."


다시 한 번 힘내서 사과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몰라."


한솔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복도 풍경이 일렁인다.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반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숨을 죽였다.

녀석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빙산이 무너지자 한 마리의 새는 날아오르고 다른 한 마리는 바다 속으로 미끄러진다.

신천옹이 날아오르면 펭귄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원래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소연아 왜 그래?"


"자습실3에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다른 반으로 이동하라고..."


소영이에게 답을 해주다가 꾹꾹 눌러서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소영이가 나를 껴안고 위로해준다.


"다시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왜 울어? 초등학생이니?"


둘만 남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게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애였다면?

나 대신 그 아이가 차한솔과 친해졌겠지.

나보다 더 매력적이고 적극적인 애였다면 연인이 되었을지도 몰라.

하루에 한 시간.

그를 독점할 수 있었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공기를 나누면서 언젠가 그의 곁에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반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영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양호실에 데려다 줄게."


다시 한번 소영이 손에 이끌려 양호실로 향했다.

차한솔은 복도를 지나가는 나를 봤을까?

그렇게 울다가 지쳐서 양호실 침대에 쓰러졌다.


오후 수업은 몽땅 빼 먹었지만 특활은 빠질 수 없다.

앞으로 단 3일 최후의 만찬이다.


"안녕."


"안녕."


이 인사도 앞으로 두 번 뿐.

우리를 각각 1,2반으로 갈라 놓는다고 했으니 다시 같은 반이 될 확률은 제로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지만 책을 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동물들은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서 똥이나 오줌을 싸지."


생각해보니 이상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튀는 게 패턴이었다.

한솔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아마 처음이지 싶다.


"몇 일 안 남았는데 꼭 그렇게 더러운 이야기를 해야겠어?"


"영역 표시를 하려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거 보니 인간도 동물이구나 싶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변상일. 37세. 미혼. 작년에 교사 자격증 취득. 2학기 사립 서사고등학교 발령. 현 이사장 변영욱의 삼남."


"수학 선생님?"


"여기가 자기 세상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리는 중이지. 악취를 풀풀 풍기면서 말이야."


수학 선생님에 대한 노골적인 악담.

이런 이야기를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정학 당하는 거 아닐까?

내가 한 말도 아닌데 너무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뭔가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학교를 어슬렁거렸던 거야."


"그냥, 학교 순찰을 한 것 뿐일지도 모르잖아."


내키지 않지만 선생님 편을 들어야 했다.

한솔이 학생 신분이라는 선을 넘어가는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교감실의 대화를 통해서 그 가능성은 배제됐어.

원래 문제 삼은 건 교내 이성교제였어. 그러다 학업 성취도와 학교의 위신으로 논점이 빠르게 옮겨갔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원인을 가져다 붙인 거야."


어른들 그것도 학생을 컨트롤 할 권한을 가진 선생님들의 영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차한솔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버드나무처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악의에는 악의로 맞서고 싶은 기분이 들거든."


지난번에 살짝 스쳐 지나갔던 싸늘한 미소.

너무나도 낯선 차한솔의 모습.

내가 아는 차한솔이 맞나 싶어 손을 뻗어 차한솔의 소매를 잡았다.

내가 뻗은 손을 따라 시선을 나에게 돌리는 녀석은 다행히 내가 아는 차한솔 그대로였다.


"위험한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


왜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험한 일에 하려고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부러 일을 벌이는 건 현명한 방법은 아니겠지. 그럼 부드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


"문제 해결? 자습부3을 유지할 방법이 있다는 말이야?"


"자습부3의 유지는 불가능 하지만. 다른 형태로 그 의지를 이을 수는 있을 거야."


자습부3의 의지?

또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보았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소연. 네 도움이 필요해."


무엇이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녀석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은 차한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다.

우리의 문제니까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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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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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축제 준비 19.07.15 21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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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2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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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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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워터파크 19.07.02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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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7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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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봉사활동 19.06.25 28 0 12쪽
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5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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