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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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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16
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7.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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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워터파크

DUMMY

[뭐해?]


방학이 시작되고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결국 놀러가기로한 전날에야 겨우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썼다 지웠다 몇 번이나 검수한 내용이 빈곤하기 그지없다.


[책 읽어]


[무슨 책?]


[리만가설]


[그게 뭐야?]


[책 이름]


이야기가 너무 빨리 끊기지 않도록 스토리 라인도 몇 개 구성해 놨지만 대화는 뫼비우스의 띠 속으로 빠져버렸다.


[책 이름인 건 나도 알아!]


[근데 왜 물어봐?]


별 의미 없는 문자의 교환 속의 설렘.

그런 것을 기대했다.

현실은 속 터지는 중언부언.

이 녀석에게 낭만이란 없는 걸까?


[어떤 내용이냐고 묻는 거잖아?]


[제타함수의 비자명적인 제로점은 모두 일직선상에 있다는 가설]


[그게 뭐야?]


[ㅋㅋㅋㅋ]


[뭐가 웃긴데?]


[다른 답을 해도 반응이 완전히 똑같은 점?]


바보 취급을 받은 것 같아서 약이 오른다.

바보가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바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 나 바보다! >:(]


내 쪽에서 쌀쌀맞은 메시지를 전송해버렸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도 많이 해봤는데 결과가 참담하다.

나만 매달리듯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리다.


[준비 다 했어?]


전파를 타고 스마트폰에 동아줄이 내려왔다.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무슨 준비?]


[내일 놀러갈 준비. 그것 때문에 메시지 보낸 거 아냐?]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내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건지.

입을 삐쭉 내밀어 보지만 스마트폰 너머로 보일 리는 없다.


[대충. 너는?]


쓰고 싶은 글자는 잔뜩 있지만 최대한 무심한 듯 단문으로 보낸다.


[이제 준비 좀 해볼까?]


[뭐야? 미리미리 준비하란 말야!]


방학이 시작하자 마자 짐 싸고 풀었다가 또 다시 싸고의 반복.

잠도 설치면서 설래발쳤던 나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되도 않는 심통을 부린다.


[준비할게 뭐 있다고]


놀러 간다고 잠을 설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안되나?

나만 기대하고 나만 설레는 일방통행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학교 친구.

나와 한솔의 관계성.

힘들 때 나를 지탱해주고 힘을 주던 그 관계성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야 하는데 녀석은 항상 저 만큼 앞서가고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일 재밌겠다.]


내 마음이라도 읽은 걸까?

나에게 필요했던 그 한마디가 주어졌다.

생각해보면 그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탈진하기 직전 겨우 목을 축일 수 있는 한 모금의 물이라고 할까?

그 것을 통해 겨우 죽음을 면했을 뿐이다.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더 심한 갈증에 몸부림 치게 된다.

끊임 없이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처럼.


[잘자.]


다시 한 번 메시지가 날아든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도 답한다.


[잘자.]


스마트폰을 가슴에 꼬옥 품고 몸을 웅크린다.


"잘자."


전달될 리 없는 혼잣말이지만 전달됐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조금 흘러 내렸다.

호르몬 이상인가?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수면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대로 잠에 빠졌다.



"갔다 올게요~"


"재밌게 놀다와."


맨날 공부하라고 타박하던 엄마가 웬일로 싱글벙글이다.

앞으로는 국물도 없으니 최후의 만찬을 즐기라는 것 같아서 조금 무섭다.


"사진 찍어와."


"아빠! 수영장 간다고. 변태 같아."


내가 출장 가는 아빠도 아니고 내가 배웅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일찍 나오려고 했는데 엄마 아빠에게 붙잡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 늦어버렸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차한솔, 우석현, 김소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


"저기 소연이 온다."


워터파크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 시간이 아직 여유 있다.

우석현과 차한솔이 방학 전날 했던 결승전 이야기를 한다.


"오프사이드 트랩은 어떻게 연습한 거야? 공 잡을 때마다 오프사이드인데 미치겠더만."


"덕분에 졌잖아."


"마지막 골이 오프사이드에 걸렸으면 비겼을 텐데."


"오프사이드였어."


"오오? 의외로 뒤 끝 있네?"


"그 판정이 잘 못 됐다는 게 아냐. 결승골이 오프사이드였다는 것 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뭔가 철학적인데?"


한솔의 괴논리에 소영이가 관심을 보인다.

그나저나 뭐가 철학적이라는 거야?

전교 1등이 하는 이야기는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걸까?


"스코어는 1:1 이었지만 경기는 꽤 일방적이었어. 경기가 그대로 끝난다면 룰에 따라 동전을 던져서 승패를 갈라야 해.

결승전이 코인 토스로 결정되는 게 안티클라이매틱 하기도 하고, 만약에 그 결과가 경기 내내 끌려 다니던 4반의 승리라면 누가 납득을 하겠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만큼은 과정이 결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있거든.

그래서 마지막 오프사이드를 눈감아 준거야.

더 뛰어난 팀이 승리한다. 얼마나 공명정대한 결과야?"


"사기잖아?!"


정해진 룰을 무시하고 다른 한 편의 기회를 박탈하는 게 공정하다고?

울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버렸다.

갑분싸.

당황한 우석현과 김소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최소연, 지금 남친 졌다고 화내는 거야?"


"..."


아니라고 부정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차한솔이 내 남친이 아니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달콤쌉싸름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솔의 앞에서 남친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인해버리면 영원히 그 관계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은근 슬쩍 차한솔의 눈치를 보았다.

곤란한 표정.

내가 그의 여친이라는 것이 곤란한 사실인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의기소침하게 대답한다.


"아닌 거 알잖아."


"얘, 장난이야 장난. 심각하기는."


나의 반응에 당황한 소영이가 찰싹 달라붙어 과장스럽게 아양을 떤다.

나에게도 이런 능청스런 사교술이 있었다면 나를 돌아보게 만들 수 있었을까?

때마침 셔틀버스가 도착한다.

우석현이 가장 먼저 올라타고 그 뒤를 소영이와 내가 따른다.

방학이라 그런지 이른 시각에도 버스에 사람이 꽤 많다.


우석현이 오른쪽에 빈 자리로 들어가자 소연이가 쏙 하고 그 옆자리로 들어간다.

당연히 남자끼리 여자끼리 자리에 앉을 줄 알았던 나는 당황하여 소영이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소영이가 혓바닥을 빼꼼 내민다.

그리고 양쪽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배려라면 배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한솔과 앉아서 가야한다니.

생각해보니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그냥 남친이랑 붙어 있고 싶었던 것 같다.

동성의 우정이란 이성 앞에서 이렇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걸까?


하아 하고 숨을 나지막하게 몰아쉬고는 빈 자리를 찾아 더 깊숙이 들어갔다.

거의 맨 뒤에 가서야 빈자리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를 따라 들어오던 한솔이 자리에 앉지 않고 손을 내민다.


"응?"


"가방 올려줄게."


"아, 고마워."


한솔이 내 가방을 받아서 자기 가방과 함께 짐칸위로 올리고 내 옆에 앉는다.

특활 시간에도 옆에 앉지만 책상과 책상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깝지 않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어깨가 살짝 살짝 닫는다.

어깨가 닿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몸에 힘을 꽉 주고 흔들리지 않도록 버텨본다.


"화장실 안 갔다 왔어?"


"뭐?"


"힘 주고 있길래 참고 있는 줄 알았지."


어이 없는 소리에 맥이 탁 풀린다.

몸에 힘을 풀었더니 어깨가 닫는 면적이 대폭적으로 늘어난다.

닿으면 터져버릴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심장이 예상과 달리 편안하게 자기 리듬을 찾는다.


"저기, 있잖아?"


한솔이 말 없이 나를 돌아본다.


"미안해."


"뭐가?"


"구기대회때 나는 우리반 응원했거든?"


"당연한 거 아냐? 나도 우리반 응원했는데?"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뭔가 미안하네. 그게 솔직한 심정이야."


꾸미지 말자.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나다우니까.


"고마워."


나의 한 마디도 의미불명 이지만 한솔의 한 마디도 의미불명이었다.


"뭐가?"


"글쎄 잘 모르겠네."


"니가 모르는 것도 있어?"


"그러게."


"우웩. 재수 없어."


그래. 솔직해지자.

그러면 조금이라도 전진할 수 있을 거야.



“최소연 뭐해? 빨리 갈아 입고 나가자.”


“먼저 가. 나는 틀린 거 같아.”


“영화 찍냐? 빨리 벗어!”


“아, 잠깐만, 잠깐만. 벗을께. 벗는다고.”


조금 더 반항했다가는 머리끄댕이까지 잡을 기세다.


내가 티셔츠를 목에서 빼자마자 소영이가 확하고 낚아챈다.

마치 신체검사 받는 죄수와 교도관 같았다.

가슴을 양팔로 가리고 머뭇거리자 뒤로 돌아와 브래지어의 후크를 당긴다.

한번의 스냅으로 브래지어가 간단하게 풀려버린다.


“와, 많이 해본 솜씬데?”


“뭐래 미친년이. 빨리 수영복 입어.”


결국 갈아입고 말았다.

주위에 더 화려한 수영복도 있었지만 나의 민망함이 덜해지지는 않았다.

커버업에 비치타올로 온 몸을 꽁꽁 동여매고 전장으로 향한다.


“최소연, 그러고 갈꺼야?”


“왜? 이상해?”


“뭐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거야?”


“수영하러?”


소영이가 내 팔을 끌고 메이크업실로 들어간다.

화장을 고치고 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보니 여기가 방송국 분장실인지 워터파크인지 구분이 안갈 지경이다.


“여기까지 와서 하하호호 하다가 그냥 갈꺼야? 하트를 잡아야지!”


소영이가 날렵한 손놀림으로 브러쉬를 놀린다.


“잘 되면 다 내덕인줄 알아.”


탈의실을 나서서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평소의 소영이도 예쁘지만 진심 모드의 김소영은 차원이 다르게 눈이 부셨다.

소영이를 향하는 눈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다.


“저기...”


“일행 있어요.”


소리가 나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능숙하게 헌팅을 퇴짜 놓는다.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며 인파를 뚫고 만남의 광장에 다다랐다.

소영이를 본 석현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여친님 아니 여신님 오셨습니까?”


선남선녀의 랑데뷰.

이 구역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선포하는 것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대관식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나의 눈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곧은 허리 부스스한 머리카락 그리고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전신 수영복.

안경을 벗어서 그런지 평소의 지적인 이미지와 달리 스포츠맨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솔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히려 평소보다 살이 드러나지 않은 차한솔과 비교하니 거의 나체로 선 기분이 들었다.

차한솔도 민망했는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지?”


“그게 새로 샀다는 수영복?”


“응. 소영이랑 맞추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본능적으로 변명을 하게 된다.

솔직해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구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용기를 낼 때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실은...”


한솔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하고 있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처음으로 한솔의 시선이 내쪽으로 향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피부에 센서라도 달린 것처럼 시선을 받는 부분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예쁘네.”


한솔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살짝 다가가서 버스에서처럼 어깨를 조금 기대 본다.

주변은 북새통이지만 내 모든 신경은 오른쪽 어깨에 쏠려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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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첫 번째 겨울 19.07.17 29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1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 워터파크 19.07.02 24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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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5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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