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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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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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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7.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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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로운 시작

DUMMY

차한솔은 자료를 뒤지면서 어디서 얻어온 양식에 빈칸을 채우고 있었다.

일 하는 모습에서 전문의 포스가 느껴졌다.


"뭐 하는 거야?"


"동호회 설립."


자습부3이 폐지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니 새로운 동호회를 만들 생각인 것 같다.

기존에 존재하는 특활부에 가입하는 것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새로운 동호회를 만들 수 도 있는 줄은 몰랐다.


"어떻게 만드는 건데?"


"동호회 발기인 2명만 있으면 학기 중에도 교내 동호회로 인정 받을 수 있어."


"그렇게 간단해?"


"전혀 간단하지 않아."


옆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속편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신경이 거슬렸나 보다.

하지만 도와 달라고 해놓고 무슨 일인지 알려주지도 않으니 나도 속이 편하지 만은 않다.

내가 끊임 없이 호기심을 보이자 하던 일을 놓고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동호회를 만들어 봤자 특활 시간에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냐. 그냥 동호회라는 말 뿐이지. 동호회를 특별활동부로 인정을 받아야 특활시간에 지금처럼 활동을 할 수 있다구. 동호회가 특활부로 인정 받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해. 첫째는 담당교사, 둘째는 공간 활용 계획서, 셋째는 동호회 실적."


하루 만에 어디서 저런 정보를 얻어오는지 그 정보력과 추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조금 우쭐해 하는 기색이다.


"담당교사는 부탁하면 되고. 공간 활용 계획서는 거의다 썼고. 남은 건 동호회 실적이네."


"어떤 동호회인데?"


한솔이 동호회 신청서를 나에게 들이민다.


"거기에 사인해."


[학생 자율 상담부]


"학생들의 고민을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상담. 어른들에게 풀어놓기 힘든 고민을 또래 상담으로 피상담자의 심리적 안정 도모. 상담사로서의 진로 탐색."


그럴듯한 설명이 빼곡히 적힌 신청서 아랫부분엔 발기인 최소연, 김한솔이라고 적혀 있었다.


"싫어."


같이 하기로 해놓고 혼자 해치워 버리려고 하는 녀석의 무신경함에 심통을 부려보았다.

물리적이라면 모를까 녀석을 논리적으로 당황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싫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녀석의 예상 밖의 일이었나 보다.

완전히 벙쪄서 얼이 빠진 차한솔의 표정이 가관이다.


"푸하하하하."


한참을 웃다가 정신을 차려서 말을 잇는다.


"명색이 공동 발기인인데 무슨 부인지도 모르고 사인을 한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나 상담 같은 거 못한다고."


상담은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나는 그냥 사인해라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심통을 부리다가 결국 마지 못해 사인을 하는 그런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다른 대안도 없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녀석을 이길 수 없으니까.

그건 꼭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럴 때면 '먼저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한 건데?"


상담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녀석이 하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맞장구치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믿게 되는 내가?

상담하다가 오히려 상담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담의 기본은 경청이야. 이 사람이라면 내 말을 들어줄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거든. 너는 말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 상담사로서 최고의 자질을 가졌잖아?"


"그건, 그냥, 니가 말이 많은 게 아닐까?"


녀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반쯤 수긍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사실일지도 몰라.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다 하는 건 아니잖아?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어."


말과 논리도 그렇지만 눈 빛으로 나를 설득해 버리니 어쩔 도리가 없다.

주저주저 하고 있으니 차한솔이 쐐기를 박는다.


"내가 보증할게."


"으응."


감언이설에 속아서 연대보증서에 사인을 하듯 신청서에 사인을 했다.

이름이 나란히 적힌 공문서(?)에 사인을 하고 나니 '혼인신고서도 이렇게 생겼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망상이 빛의 속도를 넘어 오지도 않을 미래로 넘어가 버렸다.


"특별활동부 승급 신청을 하려면 최대한 빨리 상담 실적을 만들어야지."


"어떻게 실적을 만드는데?"


"누구 하나 매수해서 가짜 상담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하이에나가 돌아다니는데 꼬투리 잡힐 일을 해서는 안되겠지."


매우 수상한 단어들이 일상의 말로 가장하여 빠르게 지나갔다.


"일단 평범하게 대자보에 광고를 게재하고 기다려 볼까?"


"그런 걸 보고 찾아올까?"


"일반적으로는 안 오지."


"그렇겠지?"


"우리한테 필요한 건 딱 한 명이니까. 일주일만 기다려보지 뭐."


"아무도 안 오면?"


"말했잖아?"


진짜로 사람을 살 생각인가 보다.


"너 가끔 무서운 거 알아?"


생각 없이 한 말에 한솔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에게는 그냥 흘려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DNA는 발현되기 마련이니까."


이따금 드러나는 그의 원인 미상의 불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광고를 잘 만들면 누군가 오겠지! 전국 1등의 공부 비법 공개! 이런 거 어때?"


"누가 전국 1등인데?"


"태클 걸기는 광고에는 원래 과장이 조금 들어가는 거라구!"


"뭐가 과장인데?"


"엥?"


나를 가지고 노는 게 재미가 있었는지 푸훕 하고 웃는다.

힘들 때 웃는 게 1류라더라. 웃자 웃어.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 써볼까? 혹시 알아 나의 미모를 보고 남학생들이 몰려올지?"


"실물 보고 실망한 애들 뒷 감당은 어떻게 할 건데?"


"야아!"



대자보에 광고를 붙여봤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일 없이 주말이 지나고 나는 자습부2로 한솔은 자습부1로 특활부를 옮겼다.


"학교에 오는 낙이 없어졌어."


"내가 있잖아 소연아."


소영이가 나를 위로해준다.

힘들 때 옆에서 위로해주는 든든한 친구.

청춘의 한 페이지가 우정으로 채워진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하다.


"하아~ 학교에 오는 낙이 없어졌어."


"중증이네. 학교 끝나고 쇼핑갈래? 기운 없을 때는 쇼핑이 최고야."


"아, 이번주에는 힘들 거 같아. 끝나고 약속이 있어서."


"뭐야, 차한솔?"


"쉬잇."


"떨어지고 나서야 서로의 마음을 깨달았다 뭐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공동 프로젝트 같은 거야. 특활점수를 좀 잘 받아볼까 해서."


부활동을 열심히 하면 가산점이 있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버스 떠나고 나서도 손도 못 흔들 타입이네. 이제 그만 솔직해지는 게 어때?"


"노력하고 있어."


다 알고 있는 소영이에게도 부끄러워서 매번 숨기려고 하니 문제는 문제다.

김소영은 학교 전체가 다 아는 공개 연애를 어떻게 이어나가고 있는 걸까?

갑자기 소영이가 대단해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자습부2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번주까지 둘만의 공간이었던 자습부3을 지나 자습부2로 들어간다.

내가 자습부1 이었으면 지나가면서 녀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1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지.

아니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자습부3와 달리 교실에 아이들이 가득이다.

책상들의 거리가 미묘하게 조정되어 있다.

이미 그룹이 형성되어 있다는 증거.

학기 중에 전학 온 기분이다.


특활이 끝나고 다시 예전의 자습부3 으로 자리를 옮긴다.

남들은 다 집에 가지만 이제부터 동호회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간활용 신청을 해서 수업 끝나고 1시간 동안 교실을 쓸 수 있다.

그 사이에 누군가 나타나야 상담을 해주고 실적을 만들 수 있다.


종치기도 전에 집에 갈생각으로 가득인데 누가 지금 상담을 하고 싶을까?

심지어 전문가도 아닌 우리들에게.

예상대로 3일째 허탕이다.

교실을 빌리는 건 한번에 최대 3일이 때문에 다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학교에 1시간을 더 잡혀 있게 된 셈이지만 이대로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동장에서 가끔 들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학교는 고요했다.

이 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립감.

무인도에 둘만 떨어진 것 같은 이 느낌이 좋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기에 배덕감이 느껴진다.


“하이에나가 냄새를 맡기 전에 누군가 와야 할 텐데.”


“그렇구나.”


한솔의 말을 듣고 나서야 수학 선생님이 이 사실을 발견하면 가만히 둘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왜 이리 장애물이 많을까?

구지 비교하자면 헨젤과 그레텔이 더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과자 먹을래?”


감자칩을 녀석에게 권했다.

반응이 싸늘하다.

무안한 팔을 다시 움츠린다.

조용히 뚜껑을 닫고 가방에 집어 넣었다.


“똑똑.”


오늘도 허탕이라 생각해서 미리 공간사용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온다.

어깨 뒤로 떨어지는 햇살에 실루엣만 눈에 들어왔지만 누군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얼핏 메두사의 머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치렁치렁한 흑발.

마녀. 1학년 1반 이승연.


“어서와. 상담하러 온거지?”


나름 원형으로 배치한 책상 한편의 의자로 승연이를 안내했다.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차를 권했다.


“마실 거 필요해?”


나름 손님 접대를 위해서 사 놓은 녹차를 종이컵에 따라서 내놓았다.


“아, 과자 줄까?”


가방속의 감자칩이 생각나서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차한솔은 탐탁하지 않은 눈치다.


“뭐하냐? 앉아라.”


“손님이 왔는데 신경을 써야지!”


승연이가 갑자기 빵 터졌다.


“상담부가 아니라 만담부였어? 하하하.”


이렇게 상쾌한 웃음을 짓는 승연이에게 왜 마녀라는 음침한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과정이야 어쨌든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무슨 일로?”


“상담 좀 받고 싶어서.”


“아, 상담.”


물론 상담을 받으러 왔겠지.

겨우 띄워 놓은 분위기가 금세 싸해진다.

상담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비밀유지가 걱정이 된다면 서약서를 싸줄 수 있어. 법적 구속력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담보는 될 거야. 그게 아니라 상담자의 성별이 문제라면 나나 소연이 중에 원하는 사람하고만 해도 되고.”


역시 차한솔의 말은 신뢰가 간다.

말의 속도, 어조, 표정 등 모든 것이 완벽하다.

잠깐 넋을 놓고 한솔을 바라보는데 상담 내용이 예상 밖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어.”


“뭐?!”

하고 소리를 질렀다가 내 목소리에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전교 2등이 공부를 잘하고 싶다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이승연은 나의 작은 소란에는 미동도 없이 한솔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

보이지 않는 벽이 나와 그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상담이 아니라 선전포고를 하러 온 것이 아닐까?


"실질적인 결과물이 필요한 거야? 아니면 결과를 납득하고 싶은 거야?"


한솔의 질문을 받은 승연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목적이 분명해야 상담이 제대로 되니까. 생각해봐."


이승연이 가볍게 쥔 주먹을 입으로 가져가 검지를 살짝 깨문다.


"1등을 하면 만족을 할 거 같아?"


"아마...도?"


"그러면 1등이라는 결과와 1등을 했을 때의 만족감 중 무엇을 원해?"


"아..."


승연이가 뭔가 깨달은 듯 얼굴이 점차 환해진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구나. 상담 고마워."


"뭐야. 그걸로 된 거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만 빼고 뭔가 통한 것 같아서 조금 소외된 느낌이 들었다.


"그걸로 됐다면. 여기 상담 일지에 사인 부탁해."


교실을 나서는 이승연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말 몇 마디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빼앗긴 공간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상담부 활동을 해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적도 생겼으니 이제 특활부로 승급을 신청해볼까?"


"응. 나도 열심히 할께."


한솔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왜?"


"왜냐니!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야지! 내가 부장이니까 말 잘 들어!"


"누구 마음대로 니가 부장이야?"


"신청서에 내 이름이 앞에 있었거든?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한솔이 어깨를 으쓱하며 '맘대로 하시던지.'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지 않아도 맘대로 할 거니까 내 말 잘 들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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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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