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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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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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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615

작성
19.06.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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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현실 (2)

DUMMY

지난주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델이라는 것을 해봤는데 무엇을 위한 촬영이었는지 아직도 알려주지 않는다.

꿈이라도 꾸었던 것일까?

핸드폰 속에 남겨진 스냅샷 두 장이 그 날의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차한솔과 나란히 찍은 사진.

나는 기억이 없는데 사진 속의 그녀는 한솔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내가 아니었다.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저 미소는 내가 항상 갈망하던 것이었다.

셀카모드를 거울 삼아 미소를 지어본다.

마법이 풀렸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다.


현실로 돌아온 마법소녀는 일상생활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인생의 동반자 공숙자.

공부하고 숙제하고 자습하고.

또 다른 인생의 동반자 김떡순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한솔에게 이 이야기 해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사실 차한솔에게 할 이야기는 따로 있다.

워터파크.

점점 방학은 가까워 오는데 워터파크 가자고 말할 엄두가 안 난다.

특활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그 녀석만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실없는 소리를 하고선 마음 속으로 머리를 쥐어 뜯는 일의 반복이다.

차라리 방학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곤란한 일이라도 있어?"


내가 하도 이상한 기색을 내비치니 참다 못한 차한솔이 입을 먼저 열었다.


"아니 그런건 아닌데... 아, 곤란하네."


"특이한 화법이네. 자기가 한 발을 바로 부정하는 모순화법?"


"저기 있잖아..."


"뭐가 있는데?"


녀석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녀석이 내 말을 받아치면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하려던 말이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말 꺼내기가 힘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냥 권유하는 방법을 묻기로 했다.

항상 정답을 찾아가는 녀석이니까, 녀석에게 워터파크에 가자고 권유하는 방법에 대한 해답도 내줄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게 기본이지.

그래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마법의 단어는 '날씨가 참 좋네요.'야.

그 다음에 말할 거리가 없어서 어색한 침묵이 보장되는 마법이긴 하지만."


"풉. 그게 뭐야."


"너무 보편적인 공통의 관심사인 날씨를 선택하다 보니 그 메세지가 바로 전달되거든.

'날씨가 좋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할 말이 없네요.'라고 바로 번역돼버리니까.

상대도 '날씨가 좋네요.'라고 말해버리면 '나도 할 말이 없어요.'라고 말해 버리는 게 되잖아.

남은 건 어색한 침묵 뿐이지."


"하하하하. 그래, 날씨는 안되겠다."


"너무 보편적이지 않으면서 너무 개인적이지 않은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하는 게 기본이야."


자연스럽게 말이 술술 나오는 녀석이 하는 말이니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럼 한 번 해볼게."


"언제든지."


대화의 목적지는 워터파크 그리고 권유.

생각을 해보자.

어디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물 좋아해?"


아무리 차한솔이라도 물놀이를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혹시 싫어한다는 대답이 나오면 이유를 알아보는 방식으로 대화가 끊길 염려도 없고.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려준다.


"물이라... 음료의 취향을 물을 때는 맛이나 향이 있는 걸 묻는 게 보통 아닌가?"


동문서답.

독심술이라도 쓰는 듯 대화의 숨겨진 의도까지 귀신같이 파악해내는 녀석이다.

이럴 때 독심술을 발휘해서 워터파크에 같이 갈 건지 말해주면 안되나?


"마시는 물 말고 물놀이. 수영이라던지."


워터파크라던지.


"수영 좋지. 상쾌하게 땀을 흘릴 수 있으니까."


"그렇지? 상쾌.. 땀?"


"운동하면 땀 흘리잖아. 물 속이니까 바로 씻겨나가서 끈적끈적한 느낌이 없어서 좋지."


물론 땀을 흘리겠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인 수영장에 75리터의 오줌이 들어 있다고 해.

땀과 오줌은 농도만 다르지 성분이 비슷하거든. 수영장 물에 섞인 땀과 오줌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상당수가 땀이 아닐까 싶어."


예상대로(?)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수영장에 놀러 가지 않을래? 땀과 오줌이 조금 섞여 있기는 하지만...

최악의 권유 라인이 머리 속에서 떠올라 버렸다.

생각해서 말을 해봤자 점점 더 꼬이기만 하는 기분이다.

이번에 생각하지 말고 의식의 흐름에 맡겨본다.


"저번 주 토요일에 소영이랑 쇼핑가서 수영복 샀거든."


"사진 찍은 날?"


"응."


사진 찍던 일이 기억이 나자 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차한솔도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는 듯 고개를 들어 빈 칠판을 바라본다.

녀석이 그때의 일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귀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수영복 산 게 아까우니까. 수영장 가려고."


뭔가 순서가 이상하지만 애초에 역순으로 진행된 일이라 이게 순서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칠판을 바라보던 한솔이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수영장 같이 가지 않을래? 둘만 가자는 건 아니고 석현이랑 소영이도 같이 가려구. 거기에 나만 끼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권유를 하자마자 주저리주저리 사족을 붙여 놓고 또 다시 후회한다.

이미 늦었지만 내뱉은 말들을 검수해본다.

'둘만'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면서 한솔의 대답을 기다렸다.


"곤란하게 됐구나?"


"으응."


몇 초 간의 침묵.

합격 통지를 기다리는 심정이 이런 심정일까?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게 친구잖아. 오랜만에 신나게 수영이나 해볼까?"


합격!

이렇게 간단하게 허락 받을 줄 알았으면 진작 이야기할걸.

그간 말도 못하고 애태웠던 시간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다.

방학 때 워터파크 그것도 차한솔과 함께라니.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안절부절 하지 못하게 된다.


"어디로 가는데?"


"워터파크 가려구!"


"워터파크? 수영 못하잖아?"


아차.

포괄적 합의를 이루었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워터파크에서 튜브타고 둥둥 떠다니기만 해도 운동 돼."


어느 정도는 되겠지.

나의 빈곤한 논리에 절박함마저 묻어났다.


"주말에 워터파크까지 가려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더 들겠다."


"그래서 방학때 가려구."


내가 생각해봐도 약속을 하는 방법이 글러 먹었다.

어이 없어 하는 한솔의 표정을 보니 망한 것 같다.


"방학때는 안 돼?"


말꼬리를 늘이며 떼를 써본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엄마한테도 떼 써본 적이 없는데.


"너는 백지에 도장부터 찍은 다음에 계약 내용을 적는구나?"


녀석다운 신랄한 비판.

그래도 특이한 언어 감각 덕분에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뭐, 도장 찍었으니 할 수 없지. 가자. 가끔 물에 빠진 개미처럼 튜브 타고 떠다니는 것도 괜찮겠지."


"정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긴장이 풀려서 책상에 기대어본다.

이대로 잠이 들면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방학때 놀 생각 만만이면 공부 좀 하지?"


"안 잔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부하라는 말을 들으면 생리적으로 반발심이 생긴다.

참고서에 자를 대고 중요한 문장에 빨간색 색연필로 밑줄을 친다.

줄을 치고 나서 빨간색 색연필을 바라보니 갑자기 옷장 서랍에 처박아 놓은 진홍색 비키니가 떠올랐다.

큰일났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자 얼굴의 열기가 손바닥에 그대로 전달된다.


"또 자냐?"


"몰라! 시끄러!"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눈치 없는 저 녀석은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을까?



오늘도 하루가 길기만 하다.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소연아 워터파크 어떻게 됐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소영이도 금세 눈치를 챈다.


"잘 됐구나? 그럴 줄 알았지. 분위기 보니까 잘 돼가는 것 같더라."


"잘 돼가다니. 어떻게 되고 싶은 거 아니야."


"언니가 하는 말 들어요. 진짜로 나중에 후회한다?"


"몰라. 빨리 방학이나 왔으면 좋겠다."


소영이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저기, 이거 너야?"


반에서 별로 말해본 적 없는 남자애가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스마트폰 화면에 보인 것은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어? 이걸 어떻게?"


"우와, 설마 했는데. 이거 최소연 맞데!"

"진짜? 대박이네!"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다른 무리의 여학생들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와, 이쁘다. 이건 어떻게 찍은 거야?"

"모델일 하고 있어?"


내 사진이 나와있는 스마트폰을 빼앗듯이 넘겨 받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신데렐라의 꿈이 현실로. 학생들 사이에 패션 촬영 유행.]

별 특별할 거 없는 광고성 기사였다.

기사의 이미지로 내 사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우연히..."


"그러면 길거리 캐스팅? 어디서?"


순식간에 내 주위에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와, 최소연 대박이네."

"아이돌 같아."

"안 꾸며서 그렇지 예쁠 줄 알았어."


"아, 나 잠깐 화장실 좀."


정신이 없어서 자리를 피해 화장실로 도망쳐 나왔다.

소영이가 따라와서 스마트폰을 열고 기사를 낭독한다.


"패션 촬영.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누구라도 아이돌 못지 않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왜 말 안 했어?"


"나도 몰랐어."


내 말을 들은 소영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번 주에 공원 쪽 시내에서 너 봤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또 그 소문.

어떻게 나를 봤을까?


"그래서 그 날은 나랑 쇼핑했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했어."


"아, 고마워."


"그럼 이건 저저번주에 찍은 거야? 그 이상한 소문 돌던 게 이 촬영 때문이었어?"


그 녀석은 말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고.

슈레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진실은 두 개.

믿고 싶은대로 믿기 때문에 고양이가 살아는지 죽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믿고 싶게 만드는 그럴 듯한 스토리.

차한솔은 그것을 대체 현실이라고 했다.


남자와 호텔에 드나든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그것보다 더 믿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현실의 판타지, 신데렐라 스토리.


차한솔이 한 일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더 큰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도 길거리 캐스팅된 적 있어.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했지만."


소영이의 표정이 샐쭉해진다.


"길거리 캐스팅 된 거 맞아?"


소영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묻는다.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가장 친한 친구인 소영이의 말인데.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때 소영이가 뭔가를 눈치채고 의뭉스럽게 웃는다.


"여기 이 팔 누구야?"


차한솔의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팔에 기대고 있는 사진이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차한솔."


"그럴 줄 알았어. 벌써 사귀는 거야? 비밀 연애?"


"그런거 아니야."


"스튜디오도 차한솔이 소개해 준거지?"


"응. 그걸 어떻게 알았어?"


"뭐, 다 아는 수가 있지."


소영이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말을 잇는다.


"나한테 숨길 필요 없어. 우리 베프잖아~"


"숨길려던게 아니라. 나도 무슨 일인지 몰랐어."


작은 소문은 더 큰 소문에 의해서 먹혀버렸다.

잘 된 일이겠지?

하지만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에 폭풍이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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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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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6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3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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