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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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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02
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7.13 23:55
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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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비오는 날

DUMMY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지만 폭풍전야의 전운이 가시지 않는다.

또 언제 찾아와서 어떤 풍파를 일으킬까 전전긍긍 하는 가운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 또 죽었다."


한솔이 책을 덮고 안경을 벗는다.

승연이는 공부에 열중이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찾으러 가봐야겠는데?"


"뭘 찾아? 맡겨 놓은 거 있어?"


"잃어버린 거 같아서."


한솔이 깨끗하게 닦은 안경을 다시 쓴다.

그 타이밍에 맞게 승연이가 고개를 든다.


"뭘 잃어 버렸는데?"


"니 양심."


"풉."


승연이가 빵 터진다.


"웹서핑까지는 봐주겠는데 게임은 좀 심하지 않냐? 그리고 그만 좀 죽어. 왼쪽으로 피하라고."


"아. 응? 잠깐만."


집중력이 얼마나 떨어졌나 테스트를 했던 것인데 좀 과했나 보다.

특활시간에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그런데 내가 오른쪽으로 피하다 죽은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맞은 편에서 내 핸드폰 화면이 보일 리도 없고.

내가 의문에 빠져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자 한솔이 해답을 알려준다.


"몸을 같이 움직이잖아. VR게임이냐?"


"푸하핫."


승연이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책상에 파묻는다.

착한 아이니까 나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웃기는 짓을 하고 있었는지 반증 할 뿐이었다.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한번 KO펀치를 날린다.


"운전하지 마라. 너 같은 사람은 숄더 체크 하면서 핸들도 같이 돌아가니까."


"소연이 그만 놀려."


승연이가 내 편을 들어주며 나를 보호하듯 안아준다.

고개를 들어 승연이를 보니 눈가에 눈물이 조금 맺혀있다.

설마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은 거야?


"콰르르릉."


갑자기 천둥이 친다.

그러지 않아도 구름이 수상해 보이긴 했는데 이렇게 폭우가 쏟아질 줄은 몰랐다.

그러나 유비무환.

어쩐 폭우에도 나의 몸을 지켜줄 장우산!

벽에 기대 놓은 진보라색 장우산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부실에 우산이 하나 밖에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산 안 가져왔어?"


"가져왔어."


승연이가 가방에서 손바닥 만한 분홍색 삼단 우산을 꺼내 보인다.

우산으로 싸움을 한다면 확실하게 나의 승리.

하지만 여고생으로서 승부라면 어떨까?

싸운다는 전제 자체로 이미 패배 확정이다.

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너는?"


차한솔의 우산은 어떤 것일까?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명품을 쓰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기능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녀석이니 자동 우산일 것 같다.

색깔은 무난하게 군청색 정도.

근 1년 간 녀석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관찰해온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군청색 2단 자동우산!


"오늘은 필요 없어."


"므어?"


손가락으로 차한솔을 한 번 가리켰다가 폭우가 내리는 밖을 한 번 가리켰다가.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입이 떨어졌다.


"비 오잖아? 일기예보 못 봤어?"


챙겨주는 사람이 없구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얼마나 정신이 없을 만 하다.


"봤어."


일기 예보를 봤다고?

그럼 깜빡하고 챙겨 놓은 우산을 놓고 온 걸까?


"누가 데리러 와?"


승연이가 내가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를 말한다.

검은색 리무진이 학교로 들어와서 레드 카펫을 깔면 그 위를 지나가는 차한솔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


단칼에 기각.

하긴 지아도 학교에서 그런 눈에 띄는 짓을 하지는 않는다.


"그럼 어쩌려고? 뛰려고?"


학교에서 번화가까지는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폐활량이 좋다면 한달음에 뛰어갈 수도 있을만한 거리다.

녀석이 비 속을 뛰는 모습이 별로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뭘 해도 어울리는 남자니까 의외로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비가 내리고 있을 때, 걷는 것과 뛰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비에 젖을까?"


뜬금없는 수학 시간의 시작.

언젠가 문제집에서 봤던 문제다.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답은 알고 있다.


"둘 다 똑같아."


"하지만 뛰면 집에 빨리 도착하잖아? 뛰는 쪽이 덜 맞겠지."


승연이가 내가 시간 개념을 추가하자 답이 달라진다.


"물리학 개념으로만 따지면 맞는데 실제로는 달라. 뛰는 쪽이 훨씬 더 젖어."


나도 이해가 안되지만 승연이도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머리 위로만 비를 맞는다고 치면 위치의 변화에 상관 없이 일정한 속도로 내리는 비를 맞게 되는데, 사람은 2차원 평면이 아니잖아. 앞으로 전진할 때 정면에 내리고 있는 비를 뚫고 지나간다구. 이동 속도가 빠르면 빠를 수록 정면으로 부딪히는 물방울의 양은 늘어나지."


무슨 소린지 이해를 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한마디로 생각을 편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정도의 폭우면 그런거 상관 없이 교문까지만 가도 홀딱 젖을 거야. 옷감이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으니 그 다음부터는 더 맞아도 똑같아."


"그래서 그냥 비를 맞고 가겠다는 거야?"


한솔이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샤워는 항상 하는 거고. 오늘 교복 세탁 예정이었으니 타이밍 완벽. 쓸 데 없이 우산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빨아야 되니까 젖어도 상관 없다.

그게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가 난다.


"옷이 젖지 않게 하려고 우산을 쓰는 게 아니잖아? 몸을 보호해야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쩔 거야? 돌봐줄 사람도 없으면서!"


벽에 있는 내 장우산을 잡아서 한솔에게 집어 던지듯 건넸다.


"이거 쓰고 가."


"넌 어쩌려고?"


머리에 열이 올라서 지르고 보니 진짜 나는 어쩌지?


"승연이랑 같이 쓰면 되... 지 않을까?"


하지만 나와 한솔은 정문 승연이는 후문으로 간다.

말 그대로 정반대 방향.


"아니면 승연이 집 앞까지 가서 우산을 빌리면."


"생쑈를 해라."


녀석이 냉소적으로 한 마디 내 뱉는다.


"그러면 편의점까지 가서 우산을 사면 어떨까?"


"우산 가져온 사람이 우산을 왜 사? 사려면 내가 사야지."


"그래 그러면 되겠다. 나랑 편의점까지 가서 우산 사면 되잖아?"


"나한테 필요 없는 우산을 사게 하려는 거야?"


"그럼 내가 살게."


"그러니까, 우산 가져온 사람이 우산을 또 왜 사냐고?"


아, 힘들다. 힘들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냥 주저 앉아서 울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어쩌라고!"


"어차피 편의점까지 가면 집이 코앞이니까. 집까지 부탁할게."


겨우 해냈다.

그런데 진이 빠진다.

다리가 풀려서 집에 걸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업어 달라고 하면 업어 주려나?

이상한 망상을 하다가 한솔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책상에 고개를 숨겨버렸다.


"난 먼저 일어날게. 천천히 나와."


승연이가 고개를 책상에 파묻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려 인사를 한다.


"응. 내일 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문을 나서는 승연이를 보고야 깨닫는다.

대담한 짓을 해버렸다.

수 많은 학생들이 사이로 둘이서 우산을 쓰고 가야 한다.

일단 우산을 쓰고 나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니 우산을 쓰기 전까지가 문제.

입구에 서서 우물쭈물하지만 않으면 된다.

앞을 막고 있으면 누군가 하고 얼굴을 확인할 수도 있으니까.


"일기예보 봤다며?"


"응. 그런데?"


"기다린다고 비가 잦아들지 않아. 이제 그만 일어 나지?"


인천상륙작전 뺨치는 일생일대의 작전을 수립하고 있는데 벌써 출전의 시간이 되었다.

비장한 각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실 문을 열고 좌우를 살핀다.

평소보다도 조금 늦은 시간이라 복도는 조용하다.

1단계 클리어.


2단계는 계단.

일종의 병목이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부분이다.

중앙 계단은 양쪽에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건물 끝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생각보다 늦게 부실에서 나왔는지 아무도 없다.

2단계 클리어.


이제 저 문만 자연스럽게 통과하면 된다.

우산을 빨리 필 수 있도록 끈을 풀어 놓자.

잠깐, 우산 어디 갔어?

우산을 부실에 놓고 왔나 해서 옆을 돌아보는데 다행히 차한솔이 챙겨왔다.

우산을 넘겨 받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나의 손을 못 봤는지 우산을 넘겨주지 않는다.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나서 다시 오른손을 내밀어 우산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내 손에 올라온 것은 우산이 아니라 차한솔의 왼손이었다.

너무 놀라서 한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거 아니었어?"


"사...상식적으로 우산이잖아?"


"너와 나의 키차이를 고려할 때 내가 우산을 드는 게 합리적인데. 지금 너한테 우산을 넘기는 게 상식적이라고?"


항상 그렇듯 뭔가 그럴듯하다.

그래도 어떤 '합리적'인 생각을 통하면 손을 내밀게 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손은 아니잖아?"


"여러가지 가설을 세웠는데. 우산은 앞에 말한 이유로 아니고. 손가방이라면 모를까 책가방을 들어주겠다는 것도 이상하고. 핸드폰은 아니고. 우산 사용료를 내라고 한 것이 가장 유력하긴 한데."


"유력하긴 뭐가 유력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그래서 손을 잡았잖아."


상쾌하게 웃는 녀석도 얄밉지만 그 얼굴을 표정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도 참 얄팍하게 느껴졌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손에는 손."


나는 가슴이 뛰어서 미칠 것 같은데 녀석에게는 그냥 악의 없는 장난일 뿐인가 보다.

누가 보기 전에 손을 놓아야 한다.

하지만 한솔이 내 손을 잡고 있어서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소문 날지도 모른다구."


"자의식 과잉이야. 이성 동급생이 복도 끝에서 끝까지 손잡고 걸어가도 아무도 신경 안 써. 소문을 낼만한 가치가 있어야 소문이 나는 거거든. 학생과 교사 정도는 돼야 가십거리가 되지."


"그래도..."


"그럼 시험해볼까? 나는 우리가 여기서부터 집까지 손잡고 돌아가도 아무 소문 안난다에 걸게."


"뭘 거는데?"


"글쎄.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너무 자신만만해 보이는 녀석에게 오기가 발동한다.

녀석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내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문을 내가 낸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는 질 수 없는 내기.


하지만 나는 이 내기를 이길 수 없다.

양심의 가책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으니까.

주기 싫어도 줄 수 밖에 없고,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말 없이 한솔의 손을 끌었다.

내기는 성립됐다.

하지만 이길 수는 없겠지.

그래도 남는 장사잖아?

이 순간 만큼은 연인처럼 비 오는 거리를 걸어보자.


건물 입구에서 우산을 피기 위해서 손을 놓았다.

장우산이지만 두 명이 들어가기에 넉넉하지는 않다.

한솔 곁에 바짝 붙어서 빗속을 뚫고 나간다.

한솔의 왼손에 들린 우산 때문에 손을 다시 잡을 수가 없다.

오른손을 뻗어 우산을 든 팔을 가볍게 감았다.

한솔이 조금 놀란 듯 내 얼굴을 본다.


"내기는 내기니까."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교문을 나선다.

장대비가 우산을 사정 없이 때려 대지만 빗소리마저 내 심장박동 소리와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말이 없는 한솔도 다소 긴장되어 보였다.


내일은 모른다.

미래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은 투명한 유리처럼 그 속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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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학여행 19.07.22 34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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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29 0 12쪽
19 1+1+1+1? 19.07.09 33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6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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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워터파크 19.07.02 23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2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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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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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니그마 19.06.24 45 0 13쪽
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4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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